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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왼쪽 나라의 앨리스

춤출래, 말래?

 

 

아리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

소설가, 미국 듀크대학 교수. 아르헨띠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칠레에 정착해 집필활동을 시작했으며, 삐노체뜨의 쿠데타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국내 번역 출간된 저서로 장편소설 『체 게바라의 빙산』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희곡집 『죽음과 소녀』,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등이 있다.

 

 

 

공작 부인이 말했어. “쯧쯧, 얘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일엔 교훈이 있는 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657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처음 출간된 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리고 그 책이 나온 지 몇달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 어린 소녀가 아버지의 발치에서 열심히 그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그 아버지는 런던의 자기 서재에서 그 책과는 완전 딴판이며 장차 세상을 바꾸게 될 책을 쓰고 있었다. 딸의 이름은 엘리너였지만 집에서는 ‘투씨’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카를 맑스(Karl Marx)였고 어려운 상황에서 공들여 『자본』(Das Kapital)을 집필 중이었다. 사시사철 빚에 쪼들리고 빚쟁이들이 연방 집 문을 쾅쾅 두드려댔다. 그해 7월말, 어쩌면 투씨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명작을 읽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쓴 편지에서 그의 후원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에게 털어놓듯이 맑스는 “전적으로 전당포 신세를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맑스가 어린 엘리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감안하면(“투씨가 바로 나야”라고 공언한 적도 있다), 다가올 백오십년간의 대부분의 주요 혁명을 고무한 이 사나이가 딸을 그토록 매혹한 명작동화를 읽었다 한들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대격변들을 이끌거나 참여하다가 고생도 했던 이들의 경우, 다수가 ‘앨리스’를 즐겨 읽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어쨌든 그 책은 엄청난 인기가 있었으니까(더 많이 읽힌 책은 셰익스피어와 성경뿐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그후 백오십년 동안 급진주의자와 혁명가 대다수가 그 책에 숨겨진 교훈과 직관으로 가득한 보석 같은 구절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유감스럽다. 그들에게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도록 북돋웠을 교훈과, 그 숱한 함정과 실수와 패배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됐을 구절, 낙원 대신 파멸로 이끈 다수의 ‘미치광이 다과회’1)로의 초대를 거절하도록 경고했을 구절들 말이다.

 

“경기가 너무 뒤죽박죽이라서 앨리스는 지금이 자기 차례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었다.2)

 

나는 루이스 캐럴의 이 책을 여러번 읽었다. 어릴 적에 읽었고 내 두 아들에게 읽어주었으며 최근에는 이 책의 혼돈스러운 재치나 맛볼 요량으로 아내 앙헬리까와 읽었다. 하지만 또다시 토끼굴 아래로 떨어지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백오십년간의 투쟁의 관점을 렌즈로 삼아서 보니 오십여년에 걸친 나 자신의 진보적 운동과 참여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이런저런 구절과 상황이 놀랄 만큼 계시적이었고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때가 많았다.

나는 그토록 많은 명석한 동지들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시간을 “〔흰 장미를〕 빨갛게 칠하느라 정신없이”3) 보내지 않았던가? 우리는 우리 식탁에 앉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사실은 “자리가 충분히”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자리 없어! 자리 없어!”라고 소리치지 않았던가?4) 그리고 “선수들은 차례를 기다리지도 않고 한꺼번에 게임을 했고 계속 말다툼과 쌈박질을 했다”라는 구절은 서글프지만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동화 속 쥐처럼 “너무도 쉽게 자존심 상해하던” 다수의 좌익 조직 및 분파의 전투적 동지들과 끝도 없이 이어지던 회의를 회상하면, 또 사소하고 관념적인 세부사항과 난해하고 모호한 이론 들을 두고 열나게 언쟁했으니, “모자 장수가 하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게 딴 나라 말이 아닌 건 확실했다”5)는 앨리스의 관찰을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동물들이 말다툼하는 모습들은 정말이지 끔찍해. 돌아버리고도 남을 정도야”라고 생각에 잠기던 앨리스에게 너무나 쉽게 동감이 되었다.

말장난나라에서 겪은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에게, 루이스 캐럴은 우리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놓아주지 않을 작가다. 공손하고 한결같이 사리에 맞는 앨리스가우리도 그렇듯이주위의 아수라장을 초월해 있는 사람인 체할 때, 체셔 고양이는 그녀도 다른 이들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제정신이 아님을 손쉽게 입증한다. “넌 분명 미친 거야. 안 그러면 이런 곳에 왔을 리가 없잖아.” 체셔 고양이는 반박하지 못하게 또박또박 말한다.

도처에 깔린 광기가 해롭지 않은 헛소리 정도 형태로 나타날 때도 더러 있지만, 종종 집요하고 악몽과도 같은 이상한 나라 식의 폭력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하트 여왕은 스딸린(I. Stalin)이나 마오 쩌둥(毛澤東)이 된 양 “선고 먼저, 평결은 나중에”라고 명령 내린다. 구타, 가짜 재판, 즉결처형 협박, 부하들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 그리고 무엇보다 하찮은 실수에도 사람 목을 쉬지 않고 잘라대기 등이 자행된다. “여기 사람들은 사람 목 베기를 끔찍이 좋아해. 근데 신기한 건 말이야, 그래도 아직 산 사람이 있다는 거야!” 루이스 캐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오는 독재의 위험을 독자들에게 경고하는 듯하다. 그것이 인민의 이름으로 최상층을 공격한 20세기 혁명가들의 독재이건, 아니면 무시받고 더이상 갈 데 없는 바로 그 인민의 공격으로부터 자본주의와 특권층을 구해내려는 정권들의 독재이건 간에 말이다. 현재의 급박함으로 정당화하며 미친 듯 미래를 향해 내달리던 광기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확신 때문에, 우리는 “다시 빠져나올…… 방도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토끼굴 아래로 충동적으로 내려가기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 좀 해줄래요?”

“그거야 전적으로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6)

 

그렇다면 앨리스와 ‘왼쪽 나라’에서 그녀에게 일어날 법한 모험을 이렇게 암울하게 명상함으로써 나 자신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 걸까? 이렇듯 소란스럽고 명랑한 책을 급진적 기획과 방법에 대한 불길한 비판으로 바꿔버리는 게 정당한 일일까? 우울한 3월 토끼를 흉내를 내면서 실의에 빠진 채 오로지 한탄만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7) 내가 지금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와 인물들의 본질적이고 지속적이며 사랑스럽고 해방적인 면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냐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유토피아적 충동으로 넘쳐나는 선동적인 텍스트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불가능한 건 정말 거의 없어”라는 앨리스의 깨달음을 강조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바로 이 신조가 그렇게 많은 사회운동의 불을 지폈으며, 최근의 동성애자 권리운동이나 생태적인 발의 및 시위의 물결로 그 진실성을 입증한 것이니까. “내 것이 많아질수록 네 것은 적어진다”는 공작 부인의 말8)을 진한 글자로 눈에 확 띄게 강조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 격언이야말로 최저임금 인상은 거부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챙기는 대기업과 탐욕스러운 경영진의 본심을 꿰뚫는 것이니까. 이 책은 독재적인 인물들을 갈팡질팡하고 무능하다며 조롱하는 반면, 반란과 불복종은 찬양한다(요리사가 공작 부인에게 프라이팬을 집어던지고, 공작 부인은 여왕 귀싸대기를 후려치며, 카드패의 잭은 파이를 훔치고, 앨리스는 협조 못하겠다고 거부하며, 기니피그는 제지당하면서도 환호한다).

우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구해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전복적이고 시끌벅적한 유머다. 그것은 지난 백오십년에 걸쳐 수백만명의 반란과 저항과 반체제를 불러일으킨 것과 동일한 야성이자 동일한 권위에의 핵심 질문이며, 변혁의 요구가 절박하기에 그 사회의 규칙에 따르지 않는 가능한 평행현실을 상상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카니발적인 에너지와 장난기야말로 우리 자신의 것으로, 우리의 진보적 정체성의 핵심적 일부로 인식하고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좌파는 물론 이와 상반되는 언어와 스타일과 태도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역사의 온갖 비극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듯 무겁고 둔한 근엄함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데,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다. 고난은 엄청나고 불의는 참을 수 없고 어리석음은 사방에 퍼져 있고 군산감시복합체의 약탈은 확장되고 미래는 암담한 디스토피아이고 지구는 종말 직전에 놓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럴수록 기회가 있을 때 우리 자신의 해방을 한껏 기뻐하는 한편 관습을 타파하고 우리 자신의 믿음과 확신과 교리를 심문하는 짜릿함을 만끽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그럴수록 희망과 연대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와 더불어 되살아나는 마법 상태를 깨닫고, 세상을 우리가 발견한 상태로 내버려둘 필요가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순전한 환희를 찬미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정말 멋진 춤 같군요.” 앨리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춤을 조금만 보여줄까?” 가짜 거북이 물었다.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 앨리스가 말했다.9)

 

칠레혁명(1970~73) 동안, 내 조국의 사람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쌀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행진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내 곁에 있던 그 형제자매의 에너지, 그들의 탄력과 용기와 창의성, 활력 넘치는 농담과 손수 만든 플래카드들이 그후 계속 나에게 힘을 주었다.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또 한가지는 우리 도시의 길거리에 나온 그 남녀들이, 연단 위에서 지겹도록 여러 시간 동안 대중을 제지할 수는 없다고 훈계하고 분석하고 단언하던 대다수 사내들(그들은 거개가 남성이었다)보다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창조적이었던가 하는 사실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나는 의아했다. 저 민주적 군중의 열정과 저항이 왜 봇물 터지듯 터져나가지 못했던가, 지도자와 민중이 왜 그렇게 분리되었던가? 그리고 우리의 평화적 혁명이 결국 파국으로 끝나서 아옌데가 죽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고문과 박해를 받고 망명길에 오르고, 그렇게도 많은 꿈들이 끝장나거나 끝장난 듯 보인 것이 나는 지금 뼈저리게 아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왕은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해 하얀 토끼에게 근엄하고도 짐짓 상식적인 충고를 한다. “시작하는 데서 시작해. 그리고 끝나는 데까지 계속 이어가. 그러다가 끝이 되면 멈춰.”

 

그는 틀렸다.

 

다른 세상을 갈구하고 다른 지평선을 찾으려는 우리는 끝에 다다랐다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정의를 향한 우리의 요구에 끝이란 없다는 것을, 반란이란 결코 “촛불처럼 한방에 훅 꺼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우린 체셔 고양이 같은 존재이다. 몸이 다 사라진 후에도 유령 같은 존재처럼 미소는 늘 끈덕지게 남아서10)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고 또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입증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 나아갈 수는 없지만, 루이스 캐럴의 후계자 쌔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가 감지했듯이, 우리는 반드시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걸 입증할 것이다. 10)

결국 자기파괴적인 우리 시대의 계속되는 전쟁과 탐욕에 대한 유일한 답으로서 근본적 변화를 아직도 믿는 우리에게 이것이야말로, 이 환상적일 만큼 터무니없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야말로 다음 백오십년 동안의 깨달음과 투쟁을 위해 우리가 배우고 소중히 간직해야 할 바인 것이다.

숱한 고생과 시련 끝에우리가 여태 겪어왔고 앞으로도 새로 겪게 될 그런우리는 아주 용감해져서 “출래, 말래, 출래, 말래, 함께 춤출래?”라는 가짜 거북의 부름에 거듭거듭 응할 수 있지 않을까?

가짜 거북이 노래할 때, “저편에, 말이야, 또다른 바닷가가 있거든”11)이라고 춤추면서 약속할 때 그의 말은 틀린 게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번역 | 강미숙(姜美淑)·인제대 교양학부 교수

 

 

* 이 글의 원제는 “Alice in Leftland: Will You, Wont You Dance?”이며, 필자가 『네이션』(The Nation)에 발표한 글을 토대로 새로 쓴 것이다.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것이다. © Ariel Dorfman, 2015 / 한국어판 ©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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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ad Tea-Party”. 루이스 캐럴의 장편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7장 제목. 한낙원·한애경 옮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창비 2015) 참조.

2) 8장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

3) 여왕의 정원에서 정원사들이 흰 장미에 빨간색을 칠한다(8장).

4) 식탁에 앉아 있던 ‘3월 토끼’와 ‘모자 장수’영국에서 이 두 표현은 미치광이를 나타내는 은유이다가 앨리스를 앉지 못하게 하는 장면(7장 「미치광이 다과회」).

5) 모자 장수와 3월 토끼가 얼토당토않은 말장난을 하는 장면(7장).

6) 6장 「돼지와 후추가루」.

7) 7장 「미치광이 다과회」 참조.

8) 9장 「가짜 거북 이야기」.

9) 10장 「바닷가재 카드리유」.

10) 6장에서 앨리스가 만난 체셔 고양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가령 ““제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 말아주세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요!” “알았어.” 고양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아주 서서히 꼬리 끝부터 사라지더니 웃는 입이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고양이의 몸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그 웃는 입만은 남아 있었다.”

11) 10장 「바닷가재 카드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