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이주혜 李柱惠

1971년 전북 전주 출생.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leestori@hanmail.net

 

 

 

아무도 없는 집

 

 

몸이 열리나보다. 반듯이 누운 몸 위로 차가운 메스가 Y자를 그리며 움직인다. 통증 없이 싸한 느낌만 드는 걸 보면 아마도 카데바가 된 모양이라고 녕은 짐작한다. 평생 시체나 주무르며 살 거냐는 어머니의 힐난이 저주가 된 걸까. 몇년 전 캠페인 차원에서 신문기자들을 불러놓고 동료 교수들과 시신기증 서약서를 쓰고 사진을 찍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제 녕의 몸에는 양쪽 어깨에서 시작해 복장뼈까지 비스듬히 내려왔다가 복부를 따라 치골까지 수직으로 곧장 내리긋는 칼자국이 생기겠지. 곧 어떤 손이 Y자의 줄기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 녕의 몸을 열어젖힐 것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뱃살이 두둑해졌으니 그 손은 누렇게 끈적거리는 지방질을 처리하느라 곤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녕은 조금 고소한 기분이 든다. 해부학 교수로 일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카데바가 녕의 손을 거쳐갔던가. 메스 쥔 손에 자꾸만 엉겨 붙는 미끄러운 지방질은 해부실습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존재 중 하나였다. 가끔은 아이고 어르신, 뱃살 관리 좀 하지 그러셨어요, 시신을 향해 농 아닌 농을 던지기도 했더랬다. 지금쯤 저 손의 주인도 녕의 누런 지방질을 향해 똑같은 농을 던지고 있지 않을까? 아이고 교수님, 너나 잘하지 그러셨어요.

눈은 떠지지 않는데 몸의 감각만 오롯해진다. 그런데 어느새 죽어 카데바가 된 걸까. 명색이 의대 교수에 의사 면허까지 있는 과학자가 이렇게 사후세계를 또렷이 경험해도 되는 건가. 늘 유물론자에 합리주의자를 자처했기에 왠지 겸연쩍다. 얼굴이 슬며시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카데바도 얼굴이 달아오르나? 포르말린에 푹 절여진 단백질 덩어리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순간적으로 후각이 되살아나며 알싸한 냄새가 훅 끼쳐온다. 아는 냄새다. 녕은 뇌 주름마다 저장된 온갖 냄새의 기억을 재빨리 훑어본다. 화한 휘발성의 이 느낌은, 멘톨. 누군가 멘소래담 로션을 쓰고 있다. 후각이 살아나며 촉각마저 돌아온다. 어떤 손이 녕의 몸을 ‘주무르고’ 있다. 어깨부터 시작해 가슴을 지나 치골까지 이어지는 야무진 손길. 근육 갈피를 정확히 짚어내며 녕의 몸을 매만지고 있다. 사람의 몸을 속속들이 아는 손이다. 순간 현실감각이 쏴아아아 밀려오며 자잘한 기억의 포말을 들씌운다. 따끔하게 녕의 피하를 뚫고 들어오던 날카로운 주삿바늘.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던 젖빛 액체. 낯선 방으로 녕의 등을 떠밀던 K. 카데바가 된 게 아니구나,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눈이 떠진다. 수증기가 자욱한 공간의 천장에 별 가루를 뿌려놓은 듯 자잘한 전등이 박혀 있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목도하는 풍경이 조악하게 흉내 낸 밤하늘이라니, K의 미적 감각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여기 누워 죽음 같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뜬 사람들은 저 모조 밤하늘을 보고 드디어 천상에 왔구나, 감격할까. 시꺼먼 저승사자를 그려놓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걸핏하면 죽고 싶지만 정작 죽을 용기는 없어 깨어날 보장을 하고 죽음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K의 은밀한 고객들일 테니. 그런데 녕은 이렇게 깨어나버린 게, 왠지 서운하다.

천장 아래로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녕의 팔뚝에 수면마취제를 주사하던 그 여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여자는 열심히 녕의 몸을 주무른다. 그 카데바 냄새부터 좀 씻어라. K는 가엾은 동생 대하듯 녕을 이곳으로 밀어 넣었다. 해부학 교실에서 살다보면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다. 시신의 부패를 막으려고 넓적다리와 목 뒤쪽 혈관을 통해 온몸을 채운 포르말린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부패의 기운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독특한 냄새. 그 어떤 것과 싸워도 이겨낼 지독한 냄새가 옷이며 머리카락 사이에 끈끈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부학자가 된 후로 녕은 그 냄새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은, 특히 녕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형용하기 어려운 그 냄새에 당황했다.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가 냄새의 습격에 놀라 마구 흔들리는 그 눈빛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녕은 집에 들러 샴푸질과 비누칠을 두번이나 하고 병원에 가 아이의 탯줄을 끊었다. 아기를 집에 데려온 첫날 장모는 퇴근하는 녕의 몸에 굵은소금을 뿌렸다. 자식 위한 일이니 이해하게. 영 찜찜해서 말이야.

K에게 등을 떠밀려 들어온 곳은 작지만 고급스러운 사우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피부과 한쪽에 이런 밀실이 숨어 있다니, 녕은 K의 수완에 내심 놀랐다. 의대 시절 성적은 바닥이었던 K가 동창 중 가장 돈을 잘 버는 것도 이러한 감각 때문이리라. 일단 샤워부스에 들어가 샴푸를 하고 나와 웬 꽃잎이 둥둥 떠 있는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조금 있으니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 욕조에서 나온 녕의 젖은 몸에 가운을 입혀주고 침대로 안내했다. 녕은 이런 시중에 익숙한 듯 짐짓 여유를 부렸다. 침대는 푹신하고 공기는 적당히 안온했다. 여자가 젖빛 액체가 든 유리병에 주삿바늘을 꽂고 주사기를 채웠다. K 녀석, 이런 걸로도 돈을 벌어왔구나, 피싯 웃음이 터졌다. 한숨 주무시고 가실게요. 여자가 복화술처럼 입도 거의 벌리지 않고 말했다. 순간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순식간에 잠에 들었다.

수면마취제를 놓아주었던 여자와 같은 여자인지 모르겠는 여자가 녕의 뒷목을 주무른다. 단단히 뭉쳐 늘 화를 내는 녕의 뒷목을. 녕의 근육을 화로 다져놓는 것들은 많았다. 카데바 앞에서 킬킬거리며 셀카를 찍어대는 어린 학생들, 해부학 실습이 시작된 지 한두달이 넘도록 새로운 장기를 만날 때마다 매번 토악질하며 실습실을 뛰쳐나가는 습자지 같은 정신머리들, 사흘에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온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장모까지. 카데바를 향해 예의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에겐 단호하게 낙제점을 주었고 약해빠진 정신머리를 착한 심성으로 착각하는 무지렁이들에게는 일부러 두개골 톱질과 근막 제거 같은 가장 어려운 일을 맡기는 것으로 보답했다. 걸핏하면 우는소리를 해대는 장모에게는 침묵으로 벌을 주었다. 당신 딸도 어떻게 못하면서 감히 나에게. 어쩌면 녕의 화는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있어서 뒷목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뒷목을 주무르던 여자의 손길이 어깨를 거쳐 가슴으로 올라온다. 이제 마사지와 애무의 경계가 흐려진다. 어디로 간단 말도 없이 나라 밖을 돌아다니는 아내를 향해 분노가 솟구칠 때면 녕의 근육은 이음매 없이 한 덩어리로 똘똘 뭉친 듯 도무지 풀어지지가 않았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욕도 튀어나왔다. 그 도저했던 여자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떻게, 사랑해드려요? 여자의 물음이 녕을 현실로 잡아끈다. 녕이 거친 손길로 여자의 손목을 잡아챈다. 생각보다 가느다란 손목이다. 여자가 흠칫 놀란다. 조금만 더 자겠습니다. 녕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다. 수면마취제 없이 한번 더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녕이 여자의 손을 놓아준다. 여자가 몰래 안도하는 기색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사랑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녕은 생각한다. 눈을 감는다. 녕의 근육은 마사지나 사랑 같은 걸로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

 

여자의 몸이 열린다. 선 채로 힘을 주던 여자의 아랫도리로 주르륵 따스한 물이 쏟아져 내린다.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아랫도리 쪽을 살피던 규의 얼굴에 핏물 섞인 양수가 쏟아진다. 규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무심히 쓱 얼굴을 훔친다. 이곳은 선 채로 아기를 낳는 여자나 양수를 뒤집어쓰는 의사의 모습이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곳이므로. 규는 큰 소리로 네모를 불러 급히 임시침상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바나 한가운데 설치한 임시진료소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순으로 부족한 침상을 배치하다보면 임산부가 맨바닥에 누워 혹은 계단 옆에 서서 몸을 푸는 일은 고통 축에 끼지도 못했다. 여자는 무사히 출산에 성공했고 규의 손으로 탯줄을 끊은 사내아기는 매끄러운 양막에 싸여 가느다란 울음을 토해낸다. 깨끗이 씻긴 아기를 안겨주자 열여덟살 산모는 새하얀 잇바디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교전의 소식이 30킬로미터 밖까지 바짝 다가와 언제고 폭격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이 마당에도 엄마가 되는 건 좋은 일인가, 규는 생각한다. 용케 폭격을 피하더라도 언제 굶어 죽거나 전염병에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이 불안한 시공간에서 어린 생명을 어찌 감당하려고. 규는 어린 엄마의 만용이 차라리 부럽다. 저 어린 여자는 엄마가 된다는 게 뭔지 알고나 있을까?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다.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 먼 곳의 폭음처럼 남편의 악다구니가 들려왔던 것이다. 저 무구한 여자를 질투하고 있었음을 규는 인정해야 했다. 무슨 자격으로 저 가엾은 여자를. 자격은 규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단어였다.

어제는 중년 여인이 잔뜩 부른 배를 하고 진료소를 찾아왔다. 여인이 가파르게 쏟아내는 호소의 말들을 네모가 옮겨주었다. 배가 불러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계류유산인가 싶어 초음파로 살펴보았더니 여인의 배 속에 든 건 아기가 아니라 단단히 뭉친 종양이었다. 여인을 설득해 곧장 수술에 들어갔고 당장 학회에 보고해도 될 만큼 커다란 종양을 떼어냈다. 그대로 놔뒀다면 종양은 자라고 자라 여인의 목숨까지 집어삼켰으리라. 문제는 여인이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기를 찾던 여인은 의료진이 보여준 종양을 보고 울며불며 규를 향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쏟아냈다. 분노와 원망의 말임은 분명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여인은 배 속의 것이 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절규했다. 여인의 원망을 네모는 통역해주지 않았다. 규도 따로 통역을 부탁하지 않았다. 모기를 피하려고 뺨에 발라놓은 재가 여인의 눈물에 검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여인의 검은 눈물 앞에서 규는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이곳에서 더 참기 어려운 쪽은 웃음이니까. 소형 비행기에 급히 실려 온 예닐곱살 어린아이는 폭격에 손목 절단수술을 받고도 반대편 손으로 규가 내민 막대사탕을 받고 배시시 웃었다. 그 천진한 웃음을 눈앞에 둔 규에게 아이의 고통은 포르말린 용액에 담근 표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어디에 눈길을 주어도 익명의 고통, 몰개성의 고통이 낭자하게 뱃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기가 훅훅 끼치는 한낮의 더위가 가시면 까만 밤하늘에 잘게 부순 얼음조각 같은 별이 흩뿌려졌다. 막사 앞에 내놓은 테이블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별을 쳐다보는 이 순간만은 30킬로미터 밖까지 바짝 다가왔다는 교전의 소문도 진료 중 목숨을 잃은 사상자의 수도 잠시 머리 밖으로 물러난다.

닥터, 커피 한잔 줄 테야?

현지인 간호사 네모가 옆자리에 앉는다. 네모는 규가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믹스를 퍽 좋아했다.

공짜는 곤란해.

양 한마리 줄게.

언제 줄 건데?

내전이 끝나면.

이 나라의 내전이 끝나면 규가 네모에게 받을 양이 스물세마리. 규는 평화가 찾아온 이 나라에서 양을 치며 사는 자신의 모습을 잠깐 그려보았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네모가 후루룩 면발 빨아올리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신다. 네모와 함께 하는 커피 타임은 규가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이번 미션에 합류해 처음 네모를 만났을 때 그는 규의 눈으론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이국의 청년일 뿐이었다. 네모라는 이름이 독특하다는 말에 어렴풋이 짐작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적도 뭣도 거부한 채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닷속을 살아가는 『해저 이만리』의 네모 선장. 그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를 제 이름으로 삼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니. 수십년째 내전으로 곪아가는 이 나라의 네모는 무엇을 거부하고 싶어서 스스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하지만 규의 의문과 달리 눈앞의 네모는 도무지 긴장이라는 걸 모르고 눈부시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헤벌쭉 웃기만 하는 태평한 젊은이였다.

한국 사람은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 지참금 같은 게 있나?

그런 건 없지만, 예전에는 남자가 집을 마련하면 여자가 세간을 채웠어.

넌 빈손으로 와도 돼. 나는 양이 오백마리나 있어. 너한테 백마리는 줄 수 있어.

지금 청혼하는 거야?

응.

규는 웃지 않는다. 네모의 청혼 타령은 캠프 안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여자라면 의사건 간호사건 코디네이터건 가리지 않고 양 백마리를 걸고 수작을 걸었다. 네모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는 오백마리를 다 주면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누구는 양 말고 낙타로 달라 요구하기도 했다. 어차피 내일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심심풀이, 합의의 농담이었으니까.

규는 네모가 청혼 농을 건넬 때마다 집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환자며 부상자를 상대하다보면 자신에게 돌아갈 집이 있었던가, 까맣게 잊곤 했다. 고향은 현실에서 잠시 초점을 뗄 때 겨우 느껴지는 존재인데, 이곳의 현실은 잠시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게 준엄했다. 네모가 양을 걸고 결혼 이야기를 꺼낼 때에야 비로소 규는 아프리카에 가서 체체파리에 물리면 안 된다고 자못 진지하게 당부했던 오래전 아이의 말랑한 볼 감촉을 떠올리곤 했다.

석달 일정을 기약하고 다시 짐을 쌌을 때 어머니는 규가 보는 앞에서 눈꺼풀부터 파르르 떨었더랬다. 칠순이 훌쩍 넘은 노인네가 볼살이고 눈꺼풀이고 떨리는 거야 지극히 당연한 순리라고 규는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어느 귀퉁이에 붙었는지도 모를 땅덩어리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제 피와 살을 만들어준 병든 어미의 고통은 모른 척하는 천하의 싸가지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몸이 납덩어리를 매단 듯 천근만근이다, 눈밑 살이 칼바람에 속절없이 떨리는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린다, 풀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 어머니가 열거하는 고통은 가깝고도 구체적이었지만 규의 마음은 멀고 먼 추상의 고통을 향해 내달렸다. 남편은 그런 규를 향해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온갖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끝내 마지막 말만은 접어두었다. 규로선 언제고 들을 각오가 되어 있는 그 말. 그래서 간혹 이곳의 낭자한 고통이 마음을 짓눌러올 때면 규는 어머니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스스로 읊조려보곤 했다. 제 자식 잡아먹은 년이, 무슨 염치로 남의 자식을 살리겠다고……

허리케인이 30킬로미터 앞까지 다가왔대.

허리케인은 교전지역을 뜻하는 캠프 안의 은어다. 한번 발생하면 이념도 이해관계도 상관없이 모든 것을 휩쓸어가버리는 돌풍. 허리케인은 캠프의 존재 이유였지만,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캠프 역시 휩쓸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본부는 인간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인도주의 철학 아래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해왔지만, 의료진의 안전 자체가 위협을 당하면 즉각 철수를 원칙으로 했다. 규가 속한 단체는 상명하달식이 아닌 회원 사이의 적극적인 토론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기에 허리케인이 가까워 오면 곧 철수 여부를 둘러싼 회의가 열릴 것이다. 이 아드레날린 중독자들은 웬만한 모험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배포를 자랑했지만, 의료진과 입원환자, 고가의 장비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캠프가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킬로미터라. 그건 가까운 건가, 먼 건가?

철수를 원하는 사람에겐 멀지만 남고 싶은 사람에겐 가깝지.

네모, 넌?

넌 내가 왜 여기 와 있다고 생각해? 양 오백마리를 놔두고.

규는 까닭 없이 진지해진 네모의 새하얀 눈자위를 쳐다본다. 양털을 깎고 양젖을 짜는 네모의 순한 어깨가 얼핏 보인 것도 같다. 그을린 얼굴로 양 백마리를 치며 사는 자신의 모습도 아른거린다. 산부인과 진료실 초음파 화면에 비치는 태아들의 윤곽이 겹쳐 떠올랐다. 별처럼 반짝이는 그들의 심장. 튼튼이, 개똥이, 은총이 같은 태명으로 불리는 태아들은 규의 눈에는 몰개성의 추상체에 불과했다. 자기야, 우리 장군이 심장 소리 좀 들어봐. 웅장웅장웅장, 이렇지 않아? 장군감 맞나봐. 앳된 임부가 옆에 선 남편의 손을 꼭 쥐고 달뜬 목소리로 말했을 때 정작 규의 귀에는 그 소리가 총성총성총성으로 들렸다. 부부가 뿜어내는 행복의 아우라가 규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밭은기침을 했다. 임부가 반사적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갈수록 타인의 행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규는 거칠게 도리질을 친다. 남의 행복을 구경하기 싫어 고통의 땅으로 도망쳐온 주제에 양을 치며 사는 순한 나날들을 탐하다니. 무슨 자격으로. 혀끝에 들러붙은 커피의 단맛이 역하다.

네 양은 지금 누가 돌보니?

어머니.

넌 나쁜 아들이로구나.

네모가 피싯 웃었다.

네 양은 누가 돌봐?

난 돌볼 양이 없어.

그러니까 내게 와!

무른 복숭아 같던 아이의 볼 감촉이 떠오른다. 네모가 뜻 모를 노래를 읊조린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먼 이국의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네모의 노래가 뚝 끊긴다. 먼 곳에서 희미한 포성이 들려온다. 고통이 포르말린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고 있다.

 

*

 

니들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여기 구멍이 있었다.

녕의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녕의 손에는 70대 남성에게서 적출해낸 심장이 들려 있다.

태아 시절 혈액은 오른심방에서 허파로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이 구멍을 통해서 왼심방으로 들어간다. 태아는 아직 숨을 쉬지 않는데도 산소를 풍부히 공급받는다. 왜지?

학생 하나가 어머니 혈액에서 산소를 끌어오기 때문입니다,라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맞다. 그런데 태아가 세상 빛을 보고 첫 숨을 들이켜면 자기 허파를 사용하게 되므로 이 구멍은 필요 없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그럼, 막힙니까? 한 학생이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한다.

첫 숨과 동시에 혈액은 곧바로 허파로 들어가고 몇시간 안에 구멍은 닫히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 아기 몸의 순환계통에 혁명이 일어나지. 구멍이 막히면서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른 흔적을 남긴다. 자, 각자 카데바의 심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달 동안 카데바 하나를 둘러싸고 씨름을 하듯 해부에 몰입하다가 가끔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학생들은 제 생명의 기원이라도 찾으려는 듯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곤 한다. 선생으로선 나쁘지 않은 순간이다. 녕이 사사한 해부학 노교수는 자신을 고고학자에 빗대기도 했다. 삽 대신 메스를 들고 인체 속에서 인류의 기원을 발굴하는 고고학자. 녕은 그런 교수의 대책 없는 낭만주의에 코웃음을 쳤더랬다. 지금도 그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가끔 노교수에게 주워들은 풍월을 읊어주면 서늘한 해부학실에 잠시 안온한 공기가 일렁이기도 했다. 재빠른 학생 하나가 오른심방과 왼심방 사이 구멍의 흔적을 찾아 녕에게 보여준다. 타원오목. 채 굳지 않은 붉은 점토 위에 누군가 무심하게 엄지를 살짝 눌렀다가 뗀 것 같은 까끌까끌한 지문. 몸이 간직한 먼 과거의 기억. 폐기의 흉터.

자네 심장에도 이런 흔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떤가?

학생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별말이 없다. 녕도 한때는 저런 표정을 지었으리라. 규는 달랐다. 해부학 교실에서 규는 가장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이자는 왜 하필 그런 작용을 하는 겁니까? 여기 관절은 왜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귀밑샘은 왜 여기에 위치할까요? 당돌하게 느껴질 법한 규의 질문공세를 노교수는 성심껏 받아주었다. 노교수의 눈에 고고학과 등치된 학문으로 해부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제자가 규였을 것이다. 지금보다 카데바 구하기가 어려웠던 당시 규는 여덟명이나 되는 조원들을 따돌리다시피 하고 혼자서 카데바 속으로 들어갈 듯 전투적인 자세를 보였다. 계집애가 그악스럽다, 질린다, 규에 대한 뒷말도 은밀히 나돌았다.

녕도 카데바 앞에 서면 질문이 많아졌다. 방부액에 푹 절여진 채 눈을 감고 반듯이 누운 카데바를 보면 해부학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질문들만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 남자는 평생 섹스를 몇번이나 해봤을까? 저 억센 손아귀로 사람을 죽여본 일이 있을까? 보통 시신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얼굴이나 손은 거즈를 덮어 가리는 경향이 있지만, 녕은 실습 내내 카데바의 얼굴과 손에 주목했다. 악취미라고, 당시 연인이었던 규는 말했다. 카데바의 개성을 찾는 행위는 해부실의 무례라고. 그러나 녕은 일년간의 실습 내내 그 악취미를 버리지 못했다. 장기 흡연의 흔적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노인의 허파랄지 텅 비어 있던 중년 여성의 자궁 자리랄지, ‘남다른’ 면을 발견할 때마다 녕은 속으로 환호했다. 밤에 녕의 하숙방에서 서투른 섹스를 나누던 어린 연인은 이런 녕의 고백에 ‘사람은 원래 누구나 다른 법이다’라며 제법 조숙하게 타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조의 카데바 옆구리에서 희미한 닻 모양 문신이 발견되었을 때 조용히 녕을 끌고 가 그 흔적을 보여준 건 규였다. 악취미라도 선뜻 품어주고 싶었던, 사랑하던 시절이었다.

해부학 실습이 끝나던 날, 학과에서 조촐한 위령제를 준비했다. 자신들의 메스 끝에서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조각이 난 카데바를 향해 미안한 마음도 품어보고, 생명이란 뭔가, 새삼스레 철학적이 되어보기도 하는 시간이었는데, 정말로 몇몇 학생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규는 예의 그 전투적인 눈빛으로 간소한 제사상을 노려보았고 녕은 처음으로 해부학이 오히려 규보다 자신에게 썩 어울리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어보았다.

해부학은 ‘왜’라고 물어보는 학문이 아니다. 우린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이해하는 게 해부학이다. 그러니 자꾸 물어보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알겠나?

애정을 담은 노교수의 눈길이 규에게 가 꽂혔다. 규는 여전히 전투적인 눈빛을 풀지 않았다. 녕은 지금도 해부학 실습이 끝나면 어린 학생들에게 노교수의 그 말을 고스란히 복기해 들려준다. 왜냐고 묻지 마라. 그냥 받아들여라. 왜 타원오목이 생기느냐고 묻지 마라. 왜 흉터가 생기느냐고 묻지 마라. 그건 상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녕과 규가 각자 해부학자와 대형 산부인과 페이닥터가 되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 동기들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의학계의 알파와 오메가 커플이 탄생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녕은 그런 호들갑이 싫지 않았다. 결혼생활은 홀로 걷던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녕의 생각과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녕과 규의 우주는 반포의 열여덟평형 아파트에서 시작되었고 균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말해봐. 피임실패와 낙태 중 어떤 게 산부인과 의사에게 더 쪽팔리는 일일까?

화장실에 다녀온 규가 빨간 두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녕의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아니면 어느 쪽이 덜 쪽팔릴까? 너라면 어떻게 할래? 응?

심각한 상황일수록 짓궂은 표정으로 임하는 건 규의 오랜 버릇이었다. 상대방에게 절대로 진심을 보여줄 수 없다는 듯 한껏 무장한 저 위악의 얼굴. 녕은 그런 규 앞에서 제 자식이 생겼다는 사실을 맘껏 기뻐할 수도 당혹스러워할 수도 없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구석으로 몰아넣고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고르라며 마치 커다란 시혜를 베푸는 듯 구는 건 규의 악취미였다. 원은 그렇게 태어났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덜 쪽팔리는 선택의 결과물로.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한 선물이라는 뜻으로 지었어. 온리 원. 하나. 한자는 둥글 원 자야. 둥글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둥근 우주. 녕의 수사가 듣기 싫다는 듯 회복실에 누운 규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옆에 누운 원이 에에에에 가느다랗게 울었다. 지나치게 붉었던 원. 아기가 시뻘건 거 보니 살결이 하얀 아가씨가 되려나보네. 장모가 민망했는지 분위기를 띄워보려 애썼지만 규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버렸다. 제 새끼를 외면하는 건 산부인과 의사로서 안 쪽팔리냐? 이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녕은 쓴 물을 삼키듯 독한 말을 꾹꾹 눌러두었다. 적어도 그때는 규가 서운했어도 밉지는 않았으니까.

원의 알파와 오메가는 녕의 손을 거쳐갔다. 떨리는 손으로 원의 탯줄을 끊은 사람도 녕이었고, 생각보다 떨리지 않는 손으로 원의 마지막 모습을 갈무리한 사람도 녕이었다. 1년 전,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원은 머리통이 박살 난 모습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까마득한 후배 의사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보고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순간 에에에에 가느다랗게 울던 16년 전 신생아 원의 붉은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그런 원을 외면하던 규도 떠올랐다. 주체할 수 없게 부풀어 올라 내압을 높이던 감정이 옆에 있지도 않은 규를 향해 쏟아졌다. 천하에 나쁜 년! 제 머리를 스스로 박살 낸 건 원인데, 미칠 듯이 규가 미웠다. 원이 15층 옥상에서 제 몸을 던진 날도 규는 3개월의 미션을 기약하고 아프리카에 가 있었다. 녕은 외과에 부탁해 박살 난 원의 몸을 직접 꿰매고 붙였다. 의사회 한국지부와 국제본부를 거쳐 현지 캠프까지 위성전화로 겨우 연락이 닿은 규는 원의 시신을 ‘정리’하고 경찰조사를 받고 장례를 치른 다음에야 돌아왔다. 이미 넋이 나가 있는 규를 며칠 전에 넋이 나가버린 녕이 어떻게 할까봐 겁이 났는지 장모는 자꾸 두 사람 사이를 몸으로 막았다. 원의 몸을 꿰맬 때만 해도 한땀에 한번씩 규의 몸을 찌르고 베던 녕도 막상 실물의 규를 봤을 때는 모든 전의를 잃어버린 후였다. 왜, 그랬대? 규가 겨우 힘을 쥐어짜 처음으로 입 밖에 낸 말이었다. 왜냐고 묻지 마.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그날 녕은 자기 안에서 한꺼번에 두개의 목숨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

 

나무를 깎아 만든 남근은 생각보다 정교하고 매끄럽다. 천막 안에 마을 여자들을 모아놓고 나무 남근에 콘돔을 씌우고 벗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규가 맡은 일이다. 오래된 내전으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이곳 여성들은 잦은 임신과 출산, 혹은 유산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미숙아 출산율도 높았고 어렵게 태어난 아기들도 영양상태가 좋지 못해 생존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이들에게 콘돔은 생명을 지켜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규의 간절한 호소가 느껴지지 않는지 여자들은 규가 처음 나무 남근을 꺼내 들 때부터 열두살 애들처럼 킥킥거리며 수줍어했다. 통역을 위해 네모가 나서자 남자에게 피임 수업을 듣기가 민망하다며 도망치는 여자도 여럿이었다. 규는 이들의 무구함이 불편했다. 곧 죽을 수도 있는데 왜 해맑은 얼굴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진하다고 모든 게 용서되지는 않아요. 네모는 뾰족한 규의 말까지 일일이 통역해주지는 않았다. 분위기는 도무지 진지해지지 않았다. 기어이 규는 버럭 화를 냈다. 아무렇게나 낳고 죽이고 싶지 않으면 콘돔을 쓰라고!

간밤에 캠프에서 회의가 열렸다. 허리케인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찬반양론이 팽팽했지만 결국 철수론이 패배했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불안한 일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폭격에 사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자들에게 피임법을 가르치는 자신이 어쩌면 더 한심한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일상 속에 드문드문 위험이 독버섯 같은 싹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만연한 위험 속에 일상이 풍문처럼 슬며시 다가왔다 사라졌다. 언제고 철수해야 할 캠프 안에서 정성껏 화분을 기르는 사람도 있었다. 고통의 비명이 왁자한 곳에서도 제 몫의 귀한 물을 식물에게 나눠주며 하루에도 몇번씩 푸른 잎과 시선을 맞추는 동료 의사를 볼 때마다 규는 자신에게 없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깨닫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밤이면 막사 안에 누워 원이 빠져 허우적거렸을 고통의 기원을 더듬어보았다. 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슬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던 원을 모른 척했을 때부터? 그보다 어린 원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몇개월씩 남의 나라로 봉사활동을 다녔던 때부터? 한밤중에 깨어나 우는 원에게 누가 젖병을 물릴 것인가를 놓고 늘 피로에 절어 있던 녕과 규가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며 다퉜던 때부터? 아니면, 빨간 얼굴의 신생아 원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을 때부터? 아니, 그것도 아니면, 임신테스트기에 빨간 줄 두개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 공포가 정수리 끝부터 서늘하게 온몸으로 흘러내렸을 때부터?

한참 후에야 녕이 원의 마지막을 갈무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규는 둘이 함께 들었던 해부학 실습시간을 떠올렸다. 인체의 보편성을 배우는 해부학 실습실에서 카데바의 개성을 찾는 데 골몰하던 녕을. 여성 카데바의 손톱에서 반쯤 지워진 매니큐어 자국을 발견한 날 밤 녕은 집요하게 규의 몸을 파고들었다. 녕이 세번째로 규의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규는 등을 찰싹 때리며 너 변태냐? 나무라기까지 했다. 규는 녕이 의대에 진학한 건 아무래도 착오였다고 믿었다. 뼛속까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과 달리 녕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였다. 자기는 곧 죽어도 유물론자에 합리주의자라고 우겼지만, 그런 주제에 원의 탯줄을 끊으며 엉엉 울었다지. 딱한 사람. 그런 녕도 모르는 게 있었다. 원을 낳고 끝내 갓난아기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내 눈을 감고 있던 규가 그날 밤 늦게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한참을 걸어 신생아실을 찾아갔던 사실을. 면회가 불가능한 시간인데도 병원 의사라는 신분을 남용해 원을 품에 안고 수유실에 숨어들어 아직 붇지도 않은 빈 젖을 물리고 엉성한 원의 이목구비를 외우듯 바라보며 밤을 꼬박 새웠던 일을. 아무리 바라봐도 아이가 예쁘지 않아, 내 안에서 나온 아이가 영 낯설고 무서워서 푸슬푸슬 부서져 내리던 그날 밤의 마음을.

원의 장례를 마치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규가 일년도 안 되어 다시 아프리카행 짐을 꾸렸을 때 드디어 녕은 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너, 단단히 미쳤구나? 원망도 분노도 아닌 한없는 경멸의 표정이 녕의 얼굴에 더께처럼 앉아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네가 슈바이처라도 되는 것 같냐? 아니, 넌 그냥 고통 중독자야. 자식 버리고 나간 나쁜 엄마야. 그거나 알고 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살짝 기운 녕의 어깨가 마지막 모습이었다. 규는 그때 알았다. 하나의 우주가 이렇게 요란하게 폭발하는구나. 짐을 들고 현관에 서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한동안 집 안을 눈으로 훑어 내렸다. 원이 없는 집. 녕의 마음이 떠난 집. 어쩌면 이 집을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규 자신일 것이다.

 

*

 

어둠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아득한 그 소리가 구조요청으로 들린다. 녕은 묵직한 숙취를 떨쳐내고 겨우 눈을 뜬다. 창밖은 아직 대낮이다. 동틀 무렵 취해 들어와 그대로 거실에 쓰러졌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평일 낮의 고즈넉함이 거실 가득 고여 있다. 거실 텔레비전 옆의 전화기가 깜박깜박 붉은 등을 점멸하며 벨을 울려댄다. 저기 저런 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낯설다. 집 전화기가 울리는 걸 본 지가 언제던가. 이 시간에 울리는 집 전화라니, 자신에게 아직도 불현듯 놀랄 일이 남았던가, 녕은 헤아려본다. 전화를 받지 않자 자동응답기가 돌아간다. 언제 녹음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인사말이 거실에 울린다. 원의 집이에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사오니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어린 원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린다. 삐 소리가 들리고 딸깍 저편에서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려온다. 숙취가 뭉근하게 일렁인다. K의 피부과에 갔다가 조명이 침침한 술집에 갔던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젖빛주사를 맞고 한숨 잤다가 가녀린 손목의 여자에게 마사지까지 받았는데 밤새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욱신거린다. 이것도 K의 수완인가.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볼까. 자동응답기가 돌아간다. 원의 집이에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사오니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순간 기억의 갈피 하나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아직 귀여운 목소리와 살짝 어눌한 발음을 간직하던 때의 원이다. ‘없사오니’를 자꾸 ‘어따오니’로 발음해 녕과 규를 웃음 짓게 했던 원. 몇번을 연습시키고 녹음하고 지우고 녹음하며 완성한 인사말. 그땐 이 집에도 웃음이 있었겠지. 그 시절이 이 집의 전성기였을까? 생각해보면 녕과 규는 원이라는 낯선 인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던 멸종 직전의 구인류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등을 돌린 건 원이었을 것이다. 규가 원을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원이 서툴기 짝이 없는 부모를 버린 것이라는 뒤늦은 자각이 묵직하게 뒷골을 때린다.

삐 소리가 들리고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은 아까보다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전화를 끊는다. 녕은 왠지 울고 싶어진다. 원을 꿰맬 때도 울지 않았던 녕이 아득한 과거 원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려온다. 세번째로 전화벨이 울리고 기어이 또 귀여운 원이, 원의 집이에요, 말하기 시작했을 때 녕은 낚아채듯 전화기를 들어 귀에 댔다. 원은 없어요. 원은 없습니다! 우리는 없어요! 우린 여기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제발, 그만…… 녕은 바보같이 운다.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는다. 어느 시공을 통해 날아오는지 희미한 전파음이 찌릿하게 녕의 심장을 때린다. 꿈결인 듯 현실인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곳에서 녕은 오래도록 몸을 들썩이며 운다. 저 먼 곳의 어느 수화기에 닿아 있는 게 규의 단단한 귓바퀴였으면 싶어서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 타원오목이 하나 더 생겼을 시간이다.

 

*

 

네모는 제법 자란 화분에 물을 준다. 사바나 캠프는 철수했고 의료진은 일부 귀국했다. 현지화를 지향하는 의사회 정책에 따라 네모는 수도에 마련한 소박한 병원에 새로 배치되었다. 화분은 작은 체구에 늘 지쳐 보였던 동양의 산부인과 의사가 주고 간 것이다. 저녁마다 달짝지근한 인스턴트커피를 나눠 마셨던 여자. 양 쉰마리어치 시혜를 베풀고 간 여자. 네모가 새 근무지에 짐을 풀고 있을 때 동료들은 상자 속에서 삐죽이 모습을 드러낸 나무 남근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네모는 웃지 않았다. 그 모형을 쥐고 혼자 열띠게 호소했던 동양 여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도무지 진지해지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향해 여자는 급기야 화를 냈다. 한 여인의 남편이 막사 안으로 쳐들어와 남근 모형을 뺏어 들고는 여자 눈앞에 흔들어대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흉측한 거나 가르치려면 당장 네 나라로 가버려! 네모는 남자의 말을 통역해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 여자의 눈에 분노가 맺히는 걸 보았다. 그날 여자는 남자와 드잡이를 하며 싸웠고 그 일로 캠프 안에서 징계를 받았다.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다른 대륙으로 장기 미션을 떠났다는 말도 있고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말도 돌았다. 네모는 저녁마다 달달한 커피의 맛과 함께 여자를 떠올렸다. 늘 다른 곳을 헤매던 그 눈동자는 네모가 어머니 곁에 버리고 온 양떼를 생각나게 했다. 여자는 자기 양에게로 돌아갔을까? 여자는 첫 만남 때부터 인상적이었다. 네모라고 해. 악수를 청하는 네모에게 여자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원이야. 원? 넘버 원? 온리 원. 우리말로 원은 둥글다는 뜻이야. 하나이자 둥근 우주. 그게 내 이름이야. 원을 기억해줘.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여자의 자기소개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네모는 입속으로 원, 하고 길게 발음해보았다. 찰나라면 찰나이겠으나 또 하나의 우주가 생겨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