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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재학 鄭載學
1974년 서울 출생.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모음들이 쏟아진다』 등이 있음.
3jhjung@hanmail.net
실내악(窸內樂)*
-초인종과 초상화 2중주
현관문 앞에 빈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화분을 치우자 녹슨 부분이 드러났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현기증이 나면서 귀에서 맥박이 뛰었다. 귀를 막아도 맥박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문을 연다. 거실에는 죽은 나무들이 꽂혀 있었고 바닥에는 사막이 서걱거렸다. 초인종이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나무들마다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오작동하는 여자의 얼굴이 거실 벽에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액자를 갖지 못한 채 현관문을 바라본다. 물소가죽 소파에는 얼굴이 지워진 유화 한점이 누워 있었다. 그림 속에 얼굴이 비워진 사람이 낮달처럼 잠들어 있다. 바람은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자장자장 작은 목소리로 불었다. 그의 꿈에서 성냥 타는 냄새가 났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얼굴의 윤곽이 비친다. 초인종이 울려도 그의 몸통은 깨어나지 않았다. 윤곽이 찌그러지며 온통 주름살이 되더니 내 얼굴이 먼지로 가라앉는다. 벽에 그려진 여자의 귀에서 모래가 쏟아졌다. 나무에 걸려 있던 초상화들이 모래로 흩어진다. 모래바람은 꺼진 성냥처럼 흐느끼고 빈 액자들이 덜그럭거렸다. 바람소리와 초인종소리 사이에서 가늘어진 목뼈 몇개가 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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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서 흘러나온 불안한 소리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