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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마샤 바투시액 『블랙홀의 사생활』, 지상의책 2017
물리학적 상상력의 산물, 블랙홀
김기흥 金起興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dinkim@postech.ac.kr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있다. 그 중심에는 아마도 블랙홀이라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우주탐사와 연관된 많은 SF 영화나 소설에서 블랙홀은 반드시 주인공이 극복해야 하는 일종의 과학문화적 아이콘으로서 군림해왔다. 그러나 블랙홀에 대해 대중이 이해하는 수준이 매우 단순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빛이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에너지가 응집된 어떤 것 정도가 아닐까.
최근 블랙홀이 다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마지막으로 증명할 수 있는 최종 증거로 알려진 중력파의 측정 소식 때문이었다. 지구에서도 측정 가능할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에너지원이 바로 두개의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오는 중력파이다. 이 중력파의 발견과 존재의 증명은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인슈타인, 뉴턴, 호킹, 킵손까지 과학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과학자들과 블랙홀에 연관된 다양한 개념들이 서로 얽혀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블랙홀은 언제 관측되었고 지금 우리가 지닌 대중적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익숙한 듯 느껴지지만 사실 물리학계에서 블랙홀만큼 혼란을 일으킨 논쟁적 개념도 없었다. 뉴턴 이래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이론과 논리를 동원해 이 미스터리한 천체를 해석하려 애썼으며 어디에서 어떻게 블랙홀을 찾아낼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기도 했다. 이 책 『블랙홀의 사생활: 블랙홀을 둘러싼 사소하고 논쟁적인 역사』(이충호 옮김) 원서의 부제 “뉴턴주의자들에게 버림받고, 아인슈타인에게 미움받고, 스티븐 호킹이 킵손과 내기를 걸었던 개념”이라는 말대로 블랙홀은 물리학자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였다.
미국 MIT의 과학글쓰기 담당교수인 마샤 바투시액(Marcia Bartusiak)은 이 책에서 과학글쓰기 전공자로서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해, 블랙홀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의 기원과 전개, 논쟁 과정 그리고 관측까지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물리학의 논의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 책은 특정한 세부분야로 분류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잡종적인 성격을 지닌다. 저자는 대중과학에서 공상과학 그리고 과학사회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블랙홀이라는 개념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의 초반부는 ‘중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뒤 중력이나 별의 붕괴 같은 현상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별의 생성과 붕괴 과정에 대한 천체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들춰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뉴턴을 비롯해 과거의 과학자들은 우주공간을 절대적인 공간, 안정화되고 예외 없이 기계처럼 작동하는 자연으로 상상했다. 그 안에서 운동하는, 질량과 중력을 가진 별들이 사적이고 예외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1920년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대두로 인해 그러한 개념이 붕괴하게 된다. 원자가 대부분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 공간을 빽빽하게 채울 수 있는 질량의 압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백색왜성으로 현실화된다. 이에 대해서 상대성이론을 관측을 통해 증명해낸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별이 자체적으로 붕괴를 일으켜 한계를 넘어서는 이상행동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제시하면서, 백색왜성과 그 붕괴 과정에서 별이 실제적으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됨을 주장한 찬드라세카르(S. Chandrasekhar)의 입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때 에딩턴이 던진 유명한 발언 “별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자연의 법칙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는 과학사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이처럼 블랙홀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는 별의 일생과 붕괴 과정 그리고 에너지 방출에 대한 모든 메커니즘을 둘러싼 상이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문제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일단 물리학자들이 블랙홀뿐 아니라 중력과 연관된 수많은 개념 및 수학적 계산을 어떻게 전개해나갔는가에 대해 내밀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때 주목할 점은 바로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이다. 대부분의 대중 과학서는 과학발전이나 블랙홀 같은 개념의 기원과 논쟁 과정을 일종의 영웅사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자들의 노력과 천재성으로 인해 과학이 단계적으로 발전해나간다는 전개방식이다. 물론 바투시액도 부분적으로 그것을 답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이면에 과학자들이 천체의 모습을 먼저 상상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구체화·현실화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보통 과학적 발견과 개념의 전개 과정을 논할 때 이미 완결된 형태를 기초로 거꾸로 그 기원을 보여주는 형태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는 과학자들의 내밀한 탐구 과정을 보기 어려웠다. 과학사회학에서는 이러한 완결된 상황을 ‘블랙박스’라고 부른다(블랙홀이나 블랙박스나 볼 수 없고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이 책은 그 내밀한 블랙박스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백색왜성 붕괴에 대한 논의를 왜 그토록 강력하게 비판했을까? 상대성이론과 관련한 관측-증명을 해낸 1919년 이후 영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권위있는 과학자로 자리매김한 에딩턴은 1930년 인도에서 케임브리지로 건너온 이 젊은 이방인 과학자의 주장,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여 백색왜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찬드라세카르의 접근법을 ‘불경스러운 동맹’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권위적이고 영국의 자부심을 체화했던 에딩턴과 젊고 자유로운 상상을 하던 찬드라세카르의 충돌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투시액은 블랙박스를 완전히 공개하지는 못한다. 그저 그 내밀한 모습을 훔쳐보도록 허락할 뿐이다. 왜 블랙홀 같은 개념이 좀더 일찍 제안되지 못했을까? 왜 1920~30년대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에 이처럼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차단했을까? 왜 심지어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도 블랙홀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분명 과학자들의 노력이나 천재성의 부족보다는 당시 물리학계의 상황과 사회적 사고방식의 틀(우리는 이것을 보통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이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표현한 ‘삶의 양식’이라고 부른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빅토리아시대(19세기)에 태어나 교육받은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사고방식, 즉 예외적인 사건이 허락되지 않는 완전한 자연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상대성이론의 수용이 지체되는 상황(이론물리학계의 거부감과 나치 권력에 의한 유대인 과학에 대한 탄압 등의 지적·사회적 환경) 등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완전히 블랙박스를 열어서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아쉬움은 상대성이론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폭발한 사회적 조건과, 이어지는 블랙홀에 대한 관심 및 정식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대성이론이 대중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50년대 중엽 냉전시기 미국의 연구비 지원 확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국 1960년대에 퀘이사(quasar, 블랙홀이 물질을 흡수하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거대 발광체)가 발견되고 블랙홀이 공식적 개념으로 인정받은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인 환경의 덕분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 부족이 이 책이 ‘블랙홀의 사생활’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비로소 ‘블랙홀의 사적·공적 생활’을 모두 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