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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노서경 『알제리전쟁 1954-1962』, 문학동네 2017

알제리전쟁, 어떻게 쓸 것인가

 

 

이용재 李鎔在

전북대 사학과 교수 leeclio@jbnu.ac.kr

 

 

179_478국내에도 알제리전쟁사가 나왔다. 『알제리전쟁 1954-1962: 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이하 『알제리전쟁』)은 우선 그 두툼한 분량만으로도 저자의 노고와 내공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국내 역사학계의 수준을 제고하는 값진 성과이다. 그럼에도 굳이 군말을 덧붙이자면, 판박이 개설서와는 확연히 다르게 구성된 이 책을 읽다보면 신선한 만족감과 동시에 무언가 막연한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실 독자들은 ‘알제리전쟁’이라는 제목을 놓고 역사를 성찰하는 저자의 안목과 역량에 찬사를 보낼 수도 있으며, ‘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이라는 다소 어색한 부제를 놓고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식민지 항쟁의 주인공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니! 왜 저자는 이렇게 모호하고 당혹스러운 표현을 썼을까?

알제리전쟁은 민족해방의 성전(聖戰)이요 건국의 혁명으로 알제리에서 널리 기념되고 있다. 역대 정권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해방전쟁에서 찾으면서 피와 눈물로 얼룩진 독립투쟁의 이야기를 집권자의 구미에 맞는 웅장한 영웅담으로 만들었다. 독립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알제리전쟁사는 민족의 일체감을 다지는 공인된 민족서사로 거듭 쓰이고 읽힌다. 반면 프랑스인에게 알제리전쟁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쓰라린 상처였다. 전쟁이 끝나고 한 세대를 훌쩍 넘긴 후에야 프랑스 정부는 전쟁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전쟁의 상흔을 봉합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때부터 알제리전쟁은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로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사실 전쟁의 실상을 밝히는 책들은 개전 당시부터 줄곧 출판되었다. 증언록, 회고록, 참전기, 기록문학 따위를 망라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출판된 알제리전쟁 관련 서적은 무려 3천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문서고 자료와 관련 사료들을 토대로 쓴 본격적인 알제리전쟁사가 등장한 것은 아마도 2000년대에 들어서일 것이다. 전쟁이 남긴 상흔이 너무도 컸던 탓에 종전 40주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차분한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종합적인 전망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알제리전쟁은 너무나 뜨거운 주제이다.

그렇다면 알제리전쟁을 어떻게 쓸 것인가? 알제리 역사가들은 응당 ‘민족해방’이자 ‘독립투쟁’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곤 한다.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선 독립투사와 건국영웅들의 활약상이 전면에 부각된다. 반면에 프랑스 역사가들은 범세계적인 탈식민화 추세의 일환으로서 전쟁의 양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해방투쟁의 대의보다 식민통치의 한계와 국제정세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알제리전쟁』은 여느 개설서와는 구성과 내용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우선 저자는 프랑스 측과 알제리 측에 공평하게 지면을 할애한다. 이 책은 짤막한 서장에 뒤이어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프랑스를, 제2부는 알제리를 다룬다. 알제리 해방의 대의에 헌신한 프랑스인들의 동향과 알제리인들의 동향을 대칭적으로 조명한다. 반면에 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전략 전개와 전투 현황 같은 군사적 측면에 대한 분석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전쟁의 원인과 승패, 영향과 결과에 대한 서술도 아주 간략하게만 제시된다. 식민주의 논리나 민족해방 이념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알제리전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당시 식민통치와 전쟁을 몸소 살아내고 고민했던 식자층,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참여하는 지성’의 시선이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에서 어떤 방법론적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지적인 힘으로 전쟁 읽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알제리전쟁의 ‘지성사’를 시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서장에 실린 짤막한 언급만으로는 저자의 의중을 포착하기 쉽지 않다. 아무튼 미루어 짐작건대 이 책은 지식인이든 민중이든 식민지해방의 대의에 몸을 던진 사람들의 지성적·정신적 궤적과 영향을 중심으로 알제리전쟁사를 써보려는 오랜 모색의 결과로 보인다.

이렇게 저자가 지성계의 동향으로 알제리전쟁을 조명하고자 하는 데에는 겉잡아 두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우선은 식민지전쟁의 성격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느 전쟁들과 달리 식민지전쟁은 애초부터 이념적인 성격을 지닌다. 억압과 해방,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 따위의 이념투쟁과 결부되기 마련인 식민지전쟁에서는 애초부터 지식인들이 직접 개입할 공간이 열려 있으며 군사적 충돌 못지않게 이념적 충돌도 한몫을 한다. 지성의 힘과 지식인의 실천은 알제리전쟁의 지층을 드러내는 횡단면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 사유와 경험에 있는 듯하다. 학창 시절 프랑스 지성사를 전공한 저자는 싸르트르, 아롱, 까뮈, 부르디외 등 지식인들의 사회참여를 직접 듣고 배웠을 것이다. 서장에 담긴 짤막한 술회로 짐작하건대, 저자는 이미 1970년대에 알제리전쟁에서의 고문과 폭력의 문제를 이들 지식인의 글과 행동을 통해 알고 고민한 듯하다. 행동하는 지성은 역사의 진전에 큰 몫을 하지 않는가. 지성계의 동향으로 알제리전쟁사를 쓴다는 대담한 시도는 지성의 힘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오랜 성찰의 결실일 것이다.

1부 ‘프랑스 지식인과 식민지 민중’은 프랑스 지식사회가 알제리전쟁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핀다. 잡지 『에스프리』(Esprit)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계의 동향, 싸르트르, 아롱, 까뮈, 부르디외 등 지식인들의 사유와 참여, 미뉘 출판사에서 프랑수아마스뻬로 출판사까지 반식민주의 전선에 선 출판계의 동향, 비밀리에 알제리해방군을 지원한 장송 조직망 사건과 재판 등등이 굵직한 필치로 소개된다. 그리고 알제리전쟁에 연루된 정치범과 변호사들을 다룬 마지막 장은 사법제도와 식민지배의 연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정의를 외치다 현행법에 의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 그래도 법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의 고뇌를 되새기려는 저자의 심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2부 ‘식민지 알제리의 민중지식인들’은 알제리인들이 민족해방의 대의에 어떻게 동참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 상황을 알리고 독립투쟁을 고무한 프랑스어-아랍어 신문 『엘무자히드』(El Moujahid), 프랑스 정부와 독립협상을 벌인 알제리공화국임시정부, 독립투쟁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정치범, 특히 여성 정치범들, 학업과 투쟁을 병행하며 독립의 대의를 외친 식민지 대학생들의 생생한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2부의 첫 장을 알제리민중당에 할애한 것은 식민지 경험세계에서 민중과 지식인의 이분법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저자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이렇게 프랑스와 알제리의 지성계 동향을 두루 살핀 후 저자는 식민지 현실에서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어떤 확고한 논증을 마련하지도, 가설적인 입론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민중이 지식인이고 지식인이 민중이라는 자신의 즉자적인 인식을 서술 자체를 통해 보여줄 따름이다. 식민지 해방의 동력은 고뇌하고 행동하면서 어느새 터득하는 지성의 힘에서 나온다. 저자가 볼 때, 알제리전쟁의 주역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명명하나? ‘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이라는 어정쩡한 부제를 마지못해 내걸 수밖에 없었을 저자의 깊은 생각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