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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자유와 혁명과 사랑을 향한 여정

김수영의 시세계

 

 

황규관 黃圭官

시인. 시집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 등이 있음. grleaf@hanmail.net

 

 

왜 아직 김수영인가?

 

김수영(金洙暎, 1921~68)이 떠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포연은 아직 자욱한 것만 같다. 그처럼 한국 근현대시 역사상 격렬했던 시인이 드물어서일 것이다. 또 만만찮은 ‘물음’을 남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설령 ‘신화화’라는 부정적인 현상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시는 김수영의 자장 안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김수영은 시인들에게 평생 넘고 싶은, 또는 넘어야 할 ‘적’이기도 하다. 니체의 말대로 진정한 적은 자신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창조하게 만든다.1 진정한 적은 친구가 되기도 하며, 친구를 적으로 삼을 줄 아는 역량만이 시를 쓰게 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어떤 점이 이렇게도 끈질기게 우리를 붙잡고 있는 걸까? 단지 그가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어서일까? 그래서 그것에 대한 예의 혹은 오마주 때문일까? 하지만 현재의 삶에 아무런 파고를 일으키지 않는 ‘기념비적 역사’란 조용히 그 움켜쥔 손을 놔야 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역사인식은 1960년 중반 무렵부터 김수영 자신도 가졌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무거운 역사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만큼 명랑하고 긍정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시인도 드물 것이다. 이 점은 나중에 살펴볼 주제이기도 한데, 암튼 김수영이 떠난 지 50년이 되도록 그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수영을 적으로 삼을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김수영에게서 받아야 할 유산과 청산해야 할 유물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려면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 작품을 통해 드러낸 의지와 인식, 그리고 정신을 우리 시대의 것과 함께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아봐야 한다. 문학에서, 특히 시에서는 이런 작업이 어떤 층위에서건 행해져야 하며 도리어 두말을 하는 게 췌언에 가깝다.

그의 시적 공생애에는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든 아니면 역사적 사건의 개입 때문이든 ‘차이’가 우글거린다. 이 말은 그가 남긴 작품 사이에, 심지어 한 작품 안에서도 크고 작은 전회(의 기미)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그동안 도드라지지 못한 것은 아마도 그의 시의 난해성 때문일 것이다. 그 난해성이 차이를 가렸거나 또는 난해성 자체에 붙들려서 독자들이 그 차이를 못 읽은 것일 수도 있다. 이 난해성에 연구자들이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솔직히 소상히 알지 못한다. 대략 남은 기억으로 말하자면, 김수영 시의 난해성은 문학사적 관점에서, 즉 근대에 등장한 문예사조에 입각해 정리된 면이 있다. 이런 현상은 김수영을 계승했다는 특정 한국시의 흐름에 다소 맥락 없는 난해성을 기입하는 결과를 낳았다.

왜 우리는 아직도 김수영인가? 결론을 일부 당겨 말하면, 그의 시는 싸움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싸움이 행동주의자의 방식이 아니어서 필연적으로 그의 시에 난해성이 부여되었을 따름이다. 물론 김수영 시의 난해성은 김수영 특유의 인식 방법 또는 표현 방식에 큰 원인이 있다. 새로움을 위한 고투야말로 그의 시 전체에 흐르는 전류인데, 그의 새로움은 근대적 양식으로 새로워지던 현실에 대한 응전에서 시작되었다. 「서시」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새로움에 대한 기투에 끼어든 허위 또한 인식하고 있었고, 현실과 자신의 응전 사이의 괴리로 인한 피로를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영은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2(「달나라의 장난」)을 평생 간직했다. 그런데 이것은 의지였던가? 아니, 다소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그것은 그의 기질이었고 그의 본래적 역량이었다.

 

 

자유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기까지 하지만 ‘자유’는 김수영의 시를 설명하는 데 가장 앞자리에 놓이는 열쇳말이다. 그가 바랐던 자유는 1960년대에 생산된 산문에서도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다. 그가 느끼기에 그만큼 대한민국의 현실에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일성 만세」는 그가 얼마나 근원적인 자유를 갈망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또 산문 「창작 자유의 조건」에서도 자유에는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면서, 자유에 대한 시인들의 불철저한 인식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김수영이 가졌던 긴장을 이해하지 않으면 ‘자유’는 추상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4·19혁명 당시 “위대했던 것은 한국 시인이 아니라 자유였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자유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시를 보는 기준은 이 ‘자유의 회복’의 신앙이다. 작품이 좀 미흡한 데가 있어도, 그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유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는 좋게 보이고 또 좋게 보려고 한다”(이상 산문 「자유의 회복」)고까지 했다. 김수영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언론(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와 ‘반항의 자유’를 넘어서 해방의 이미지를 갖는다.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직후 쓴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傷病捕虜) 동지들에게」는 김수영이 말하는 ‘자유’가 실존적인 깊이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의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 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 부분

 

이 대목은 한국전쟁 때 끌려간 의용군으로서 “북원(北院) 훈련소를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서울로 돌아왔다가 뜻밖에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자전적 경험을 압축하고 있다. 그가 전쟁과 포로수용소 생활을 통해 얻은 자유에 대한 뼈저림은 사실 독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 시가 그의 전쟁 체험을 압축해놓았다 해서 과거를 단순하게 상기한 작품인 것은 아니다. 도리어 “악귀의 눈동자” 같은 시간을 딛고 앞으로의 여정을 말하고 있기에 심각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반항의 자유

진정한 반항의 자유조차 없는 그들에게

마지막 부르고 갈

새날을 향한 전승(戰勝)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보는 각도에 따라 이 작품은 마치 ‘반공시’로도 읽힌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김수영의 몸에 깊게 새겨진 전쟁 그 자체의 기억이다. “북원 훈련소를 탈출하여 순천(順川) 읍내까지도 가지 못하고” “중서면(中西面) 내무성(內務省) 군대에게 체포”되어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 군복을 사흘을 걸려서 찾아내고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에 대한 감각이 먼저 일어나야 이 시에서 말하는 자유가 어떤 성격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자유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피어난 육체화된 정신인 동시에 “새날을 향한 전승의 노래”였다. 혁명도, 사랑도 오로지 자유를 동력으로 하는 동시에 자유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설움에 입을 맞추다

 

전쟁이 김수영에게 남긴 것은 ‘자유의 상실’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기 삶의 조건이 폐허가 돼버렸다. 물론 김수영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바는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 상처에서 얻은 ‘설움’은 실존적 무게를 더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움’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맞선 그의 태도를 우리는 먼저 살펴봐야 한다.

 

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 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 안에는

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으냐

—「방 안에서 익어 가는 설움」 부분

 

“설움을 역류하는” 것이 자신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인 것을 믿는다는 이 작품은 ‘설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시의 정조까지 설움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설움이 “확실한 나의 생활”이라고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긍정은 어떤 것을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당연히 아니다. 즉 삶에 질환을 남기는 노예적 체념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폐허를 원망하지 않고 새로운 조건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랬을 때만이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다. 미움과 원망은 시간을 흐르지 못하게 고정시키며 결국 과거를 특권화한다. 비록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 보”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현재를 긍정하는 힘만이 미래의 시간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거미」에서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고 했지만, 첫 행에서 이미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김수영이 가진 설움은 단지 전쟁이 남긴 상흔에서만 피어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자신이 바라고 있기 때문에 설움이 “몸을 태우는 것”이다. 김수영이 가진 설움의 내포는 이중적이다. 하나는 전쟁 때문에 생긴 부정적 정서로서의 설움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려 하는 능동적 의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설움이다. 전쟁 후 2년 정도까지는 전자의 설움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점 후자의 것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이 당시의 김수영이 무엇을 바랐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도 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없고, 또 시에 그런 정보를 바라는 것도 난센스일 것이다. 다만 「달나라의 장난」에서 고백했듯이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은 평생에 걸친 자신과의 약속이었다는 것만 말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지속적인 자기혁신은 ‘바람’ 없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차라리 ‘바람’이 자기혁신을 지속시켜주는 동력이라 고쳐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수영의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은 도덕적 수신(修身)이나 예술적 욕망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에게 자기혁신과 현실의 변화는 언제나 동시적으로 일어나야 할 과제였다. 「네이팜 탄」에서 “창조를 위하여/방향은 현대—”라는 진보주의자의 면모를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현실을 강제하고 있는 근대적 삶의 양식을 거부할 수만은 없다는 리얼리스트적 태도 때문이었지 김수영이 근대주의에 쏠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김수영이 “모더니즘의 위대한 비판자”(염무웅)였던 건 사실이다.

 

 

민중의 발견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내려가는데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 아침」 부분

 

서강으로 이사한 후 김수영의 시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 작품은 서강으로 생활을 옮긴 후에 쓴 것인데,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도 “차차 시골 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가듯 자신의 정신도 “검게 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은 숙련이 덜 되었지만 지금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해야 할 때다. 이런 역경주의, 또는 ‘일’을 통해 시대적 아포리아(aporia)를 돌파하려는 자세는 김수영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럼 서강에 와서 김수영에게 온 변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설움을 끊고 피어나는 “과거와 미래에 통하는 꽃”(「꽃 2」)에 대한 자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의 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지」에서 “바늘구멍만한 예지의 저쪽에 사는 사람들”을 “나의 현실의 메트르”라고 부를 때,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너의 벗들과/너의 이웃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늘구멍만한 예지(叡智)를 바라면서 사는 자”나 “너”는 바로 “나”다. 김수영이 자신의 메트르(maître)3라 부르는 그 사람들은 “어제와 함께 내일에 사는 사람들”이고 또 “강력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둬야 할 점은 김수영의 시간관인데, “과거와 미래에 통하는 꽃”이라든가 “어제와 함께 내일에 사는 사람들”에서 보듯 선형적인 근대적 시간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관점은 「서시」에서도 엿보인다. 자신이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고 “정지의 미에 너무 등한하였다”고 자아비판을 한다. 그러나 이제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 알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첨단의 노래”와의 “부엉이의 노래”는 “더러운 노래”이며 “생기 없는 노래”라 끝을 맺으면서 “첨단의 노래”와의 단절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 ‘서광의 노래’는 그에게 당도하지 않았다. 근대적 시간관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훗날 「거대한 뿌리」에서 좀더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김수영이 서강 생활을 통해 민중을 발견했다고 해서 설움이라든가 비애, 피로가 완전하게 그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의 작품을 보면 설움이나 비애, 피로는 현실의 변화가 미진한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눈」(1957)에서는 “눈을 바라보며” “기침을 하자”고 말하는데,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듯이 자신도 ‘살아 있는 눈’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하고 있다. 존재는 증명보다 개진(改進)이 필요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비애”(「비」)를 이해할 수 있고, “간간이/자유를 말하는데/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사령(死靈」)라는 자탄의 의미를 밝힐 수 있다. 이 당시 김수영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때가 강력한 반공국가 체제를 독점하던 이승만 치하였다는 역사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봄밤」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읽어야 그 본뜻이 명료해진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독백은, 현실이 그의 ‘바람’대로 운동하지 않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조급증을 자가치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서둘지 말자는 이 자기다짐은 피로와 비애 같은 부정적 정서에 빠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읽힌다. 「채소밭 가에서」도 그 연장에 있는 시다. 「봄밤」에서 자가치유를 하고 있다면 「채소밭 가에서」에서는 자기를 독려하는 주문(呪文)을 외우는 중이다. 1950년대 후반에 이러한 내적 투쟁을 진행해왔기에 4·19혁명이 일어나자 그런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반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수영의 시에 끼친 4·19혁명의 영향은 이런 맥락 위에서 읽어야 한다.

 

 

혁명과 반혁명 사이에서

 

김수영이 남긴 ‘혁명시’들은 별다른 해석이나 분석이 필요 없을 지경이다. 해석행위가 불필요하다고 해서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관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정념의 직접적인 분출이 어떻게 지성으로 통어되느냐가 문제일 텐데, 김수영의 ‘혁명시’에서 발견되는 비()시적 표현과 비유들은 작품에 넘실거리는 힘과 에너지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들이다. 이미 그는 1960년 6월 16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시의 운산(運算)에 과거처럼 집착함이 없다. 전혀 거울을 아니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놀라울 만치 적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쁜 일이다. 투박해졌는지? 확실히 투박해졌다. 아니 완전한(혹은 완전에 가까운) 스데미4이다. 그 대신 어디까지나 조심해야 할 것은 스데미를 빙자로 한 안이성이나 혹은 무책임성!

 

이런 인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려주는 텍스트는 산문 「저 하늘이 열릴 때」이다. 부제가 잘 알려주듯 이 글은 월북한 친구 김병욱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인데 여기에서 김수영은 “그러나 형, 내가 형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자체부터가 벌써 어쩌면 현실에 뒤떨어진 증거인지도 모르겠소. 지금 이쪽의 젊은 학생들은 바로 시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는 시가 우리가 논의하는 시보다도 암만해도 먼저 앞서갈 것 같소”라고 썼다. 다시 말하면 시에 대한 김수영의 관념 자체가 반()시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혁명은 언제나 배신과 반혁명을 불러왔다. 김수영은 그 배신의 징후를 발견하고 「푸른 하늘을」을 쓰지만, 이 작품에는 이미 혁명에 대한 득의와 배신당한 혁명을 통해 얻은 비애의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물을 때, 이 “고독”은 ‘바람’과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 때문에 생긴 그 자신의 고독과 다름없다. “방법부터가 혁명적”(「육법전서와 혁명」)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아갔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김수영 자신이 현실을 잘못 읽은 측면도 있다. 「치유될 기세도 없이」라는 산문에서 스스로도 “혁명에 대한 인식착오”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혁명의 변함없는 진전이었는데, 다시 「눈」(1961)에서, 쏟아지는 눈을 혁명의 이미지로 그려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김수영은 직접적으로 ‘민중의 힘’을 말한다. 혁명의 퇴락 속에서 이제 믿을 것은 “저 펄 펄/내리는/눈송이” 같은 민중의 힘밖에는 없다는 것을. 그런데 그 “민중”도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산 너머 민중이라고/하여둡시다”라고 말한다. “영원히 앞서 있”는 “민중”이 “저 펄 펄/내리는/눈송이”처럼 도래하는 미래를 가만히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을 완벽하게 짓밟은 5·16쿠데타 이후 김수영은 깊은 침잠에 빠져든다. 김수영 시의 특징은, 침잠과 모색의 시기에는 시의 난해성이 특히 심해진다는 점이다. ‘신귀거래’ 연작의 일부 작품은 요설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그런 시기의 작품에는 건강할 때 쓴 좋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비밀통로가 숨겨져 있다. ‘신귀거래’ 연작 직후에 쓴 「먼 곳에서부터」는 회복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으나 아직 건강 상태라기보다는 모색기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김수영의 서정시는 모색기에서 단연 빛난다. 앞에서 언급한 「봄밤」도 그 예다. 아무튼 4·19혁명부터 5·16쿠데타까지의 시간은 김수영의 시와 삶에 다시 큰 변곡점을 가져왔지만, “먼 곳”에 대한 꿈과는 별개로 자신의 일상은 ‘일’을 해야 꾸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다시 ‘일’을 통해 새로이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역사는 삶의 조건들을 냉정하게 제시할 뿐, 그다음의 지평은 삶을 사는 존재들의 몫인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의 힘 또는 힘이 낳는 긍정

 

「거대한 뿌리」가 터져 나올 때까지 혹자들은 김수영의 시적 경향을 풍자나 해탈의 포즈로 보면서 퇴보적 혹은 답보적이라 비판하지만, 그것은 ‘신귀거래’ 연작에서 받은 인상의 잔재를 모색기의 작품에서 나타난 약간의 방황과 자조를 관성적으로 읽어서 내린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모색 과정에서 김수영은 유머를 배운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존재론적 탐구를 시도한 것처럼도 보인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한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거대한 뿌리」 부분

 

앞서 1950년대에 보였던 김수영의 시간관을 짚어봤는데, 「거대한 뿌리」에서는 근대적 시간관과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식민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역사철학 테제’로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벤야민(W. Benjamin)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과제는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그 위험은 전통 존속에뿐만 아니라 그 전통의 수용자들에게도 닥친다. 둘 모두에게 그 위험은 똑같은 것으로서 지배 계급의 도구로 넘어갈 위험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승된 것을 제압하려 획책하는 타협주의로부터 그 전승된 것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는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 온다.”5

김수영이 ‘역사적 유물론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면면이 이어온 존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이해했고, 그 존재들에게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다. 「거대한 뿌리」는 민중에 대한 뜨거운 긍정이며, 그에 비하면 서구와 일본의 식민주의를 동반한 근대의 문명이란 것도 “좀벌레의 솜털”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도 ‘구원’을 메시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당대의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데서 본능적으로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그는 블랙유머에 가깝게 보여주었다. 한국시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저 욕설이 아무리 읽어도 불쾌하지 않은 것은 그런 유머 때문이다. 김수영은 긍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고양될 때 뛰어난 작품을 쓰곤 했다. 그 긍정의 정신이 휘두르는 칼은 당연히 긍정을 부정하는 것들을 베어 넘긴다. 부정을 부정하는 것은 긍정의 힘에서 나오기 마련이고, 긍정의 힘이 행하는 비판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비판을 넘어 다른 시간의 문턱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김수영의 후기시에서 그 예시가 되는 작품으로는 우선 「사랑의 변주곡」 「꽃잎」 그리고 「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한편 한편을 읽고 해석하려면 별도의 글이 필요하지만, 몇가지 사항은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이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사랑의 변주곡」 부분

 

인용구절의 앞부분에서 그는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혁명에서 배웠다고 분명히 썼다. 지난 혁명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통해서 다시 미래의 혁명을 예감하고 있는 이 작품도 그의 새로운 역사인식에서 나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 “복사씨와 살구씨가/한번은 이렇게/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라는 확신은 당연히 섣부른 예언이 아니다. 김수영은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욕망”의 입 속에서도 “사랑을 발견”할 정도로 힘이 세며, 심지어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 되는 기적을 만든다.

그런데 정말 이것은 기적인가? 사랑이 존재의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적이 맞는다. 동시에 그 기적은 구원이기도 하다. 절망 속에서도 이 사랑의 힘을 믿는다면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그런데 사랑의 힘은 “곰팡이 곰팡을” “속도가 속도를” 서로 되비추는 동일성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딴 데에서” 오는데, 당연히 우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이상 「절망」) 다른 존재를 품는 순간에, 즉 사랑을 하는 중에만 그것은 온다. 하지만 구원은 완성태로 오지 않는다. 언제나 ‘씨’로, 그것도 단단해서 쉬 열리지 않는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로 우리에게 던져진다. 다시 벤야민에게 기대자면 “역사적으로 파악된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6

다른 시간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탐색은 「꽃잎」에 와서 시도된다. 특히 「꽃잎」 제3장을 보면 “열네 살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순자”가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소식을 완성”한다. “순자”에게 시의 화자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허위”와 “음탕한 전통”이 간파당한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냐면 “열네 살” “순자”는 “어린애가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기 때문이다. “순자”야말로 변화·생성 중인 존재인 “소녀”다. 순자가 ‘씨’였던 것이다. 물론 「꽃잎」 제1장에서 존재가 운동을 통해 구성되는 상황이라든가, 제2장에서 보여주는 “다른 시간”을 생성하는 가치 이전의 시간에 대한 믿음을 우선 읽어봐야 “순자”가 그런 것들의 인격적 구현체라는 점이 드러난다.

따라서 제3장이 단순히 ‘식모 소녀’에 대한 연민으로 씌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에서는 다시 “순자”라는 존재는 비인칭적 사건들로 화하고 있다.

 

실낱같은 여름 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낱같은 여름 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하얀 풀의 아우성이여

—「꽃잎」 3장 부분

 

“순자”에게 “전모를” 간파당하면서 김수영이 도달한 지점은 바로 “바람”과 “풀”이 등장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과 “풀”이 만나는 세계가 김수영의 어느 작품에서 펼쳐지는지 잘 알고 있다. 연보에 의하면 「꽃잎」은 1967년 5월 하순에 씌어졌고, 「풀」은 1968년 5월 29일에 펜을 뗀 작품이다. 이 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바람”과 “풀”이 조우하는 장면이 익어갔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사이에 씌어진 몇몇 작품에서는 그 기미를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따라서 「꽃잎」의 “바람” “풀”과 「풀」의 “바람” “풀”은 별개의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김수영의 여러 작품이 지속적인 인식의 흐름을 단절시키며 융기한 양태(mode)임을 감안했을 때, 약간의 과감함은 큰 허물이 아닐 것이다.

산문 「반시론」에서 김수영은 하이데거의 ‘릴케론’7을 “거의 안 보고 외울 만큼 샅샅이 진단해 보았다”고 말한다. 「라디오 계」 「미인」 「성」에 대한 시작(詩作) 노트도 겸하고 있으니 1968년 2월 이전의 글은 아닌 듯하다. 그는 「미인」을 “조용히 운산(運算)”해보면서 “합격”점을 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창문—담배·연기—바람. 그렇다, 바람. 내 머리에는 릴케의 유명한 「오르페우스에 바치는 송가」의 제3장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다음에 인용한 릴케의 해당 시 구절은, ‘릴케론’에도 실려 있는데8 김수영이 옮긴 것은 다음과 같다.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입김. 신()의 안을 불고 가는 입김.

바람.

 

이 글에서 김수영은 「미인」에 꽤 흡족했는지 “또 한번 Y부인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게 되면 (…) 제2의 「미인」을 쓸 구상이나 할 것인가”라 방백을 하기도 한다. 과연 「반시론」에 와서 “풀”과 “바람”이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참여시의 후진성”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미래는 기껏 남북통일에서 그치고 있다. 그후에 무엇이 올 것이냐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미래에도 과학을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과학”은 “우리들의 문화적 쇄국주의”를 겨냥하면서 나온 말이지 ‘과학기술’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그의 “과학”은 미래를 향하는 탐침(探針)은 아니었을까?

 

 

함께 부르는 노래

 

「풀」은 “바람”과 “풀”의 상호작용을 간결하고 역동적으로 또 ‘무의미’적으로 그린 작품인데 김수영의 대표작답게 슬픔이나 원망 같은 부정적 정념은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드디어 울었다”라든가 “늦게 울어도” 같은 슬픔을 나타내는 구절이 있고, “풀”이 “바람”을 맞아 보이는 수동적인 동작들이 있지만 그것은 시인의 정념이 개입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바람”과 “풀”이 함께 움직이는 장면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봐야 한다. ‘웃다’ ‘울다’ ‘일어나다’ ‘눕다’ 같은 술어는 인간의 삶을 환유하지만, 일차적으로 어느 바람 가득한 날 강변에서 얻은 느낌이 또는 그 느낌들의 종합이 이 작품을 쓰게 했을 것이다.

시가 시적 주체의 감각과 감성과 지성의 총체라고 한다면, “바람”과 “풀”에는 대략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김수영의 민중 발견은 1950년대 중반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혁명의 지지부진을 강도 높게 비판한 「육법전서와 혁명」도 민중적 관점이 투영됐으며, 「눈」(1961) 「쌀난리」 「만주의 여자」 「거대한 뿌리」 「강가에서」 「식모」 등에서 민중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역사에 간단(間斷)은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흐름을 감당한 ‘거대한 뿌리’를 자각하고 있었는데 그 뿌리는 바로 민중이었다. 따라서 “풀”을 그가 발견하고 경험한 민중의 상징적 초상으로 읽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민중은 사실적인 재현을 통해서만 표현 가능하고 또 표현되어왔다는 오랜 도그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말이다. 이는 창작과정에서 김수영이 ‘풀=민중’이라고 규정하고 시작했다는 말이 당연히 아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충전하면서 ‘사랑’을 배웠다. 그런데 역사에서 사랑을 어떻게 배우는 걸까? 김수영은 「현대식 교량」에서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停頓) 속에서/다리는 사랑을 배운다”라고 적었다. 김수영이 인식한 역사적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듯 과거와 미래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다. 현재란, 다만 그 상호작용이 눈앞에서 현시되는 시간대이며 그것이 잠정적으로 “정돈”되면서 사랑을 배우는 “희한한 일이” 생긴다.

그의 민중은 하나의 미래였으며, 완성태가 아니라 잠재태였고, “풀의 아우성”인 동시에 “바람의 아우성”이었을 뿐이다. 결국 “복사씨와 살구씨가/한번은 이렇게/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날은 “바람”에 의해 노래하는 “풀”의 형상으로 실험되었다. 하이데거의 다음과 같은 말은 「풀」을 이해하는 데 일말의 섬광을 안겨준다. 즉 바람이 어떻게 풀을 노래하게 하며, 풀이 바람에 의해 어떻게 노래가 되는지에 대해.

 

노래한다는 것은 완전한 자연의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중심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끌어당김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다. 노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바람’이다. (…) 더욱더 모험적인 자들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노래에 의해 우리의 보호받지 못한 존재를 열린 장 속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그런 시인들이다. 이러한 시인들은 열린 장에 대한 〔종래의〕 결별을 전환시키고, 온전하지 못한 것을 온전한 전체 속으로 〔마음의 내면을 열어 밝혀〕 상-기하고 있기에, 온전하지 못한 것 속에서도 온전한 것을 노래한다.”(강조는 인용자)9

 

 

위험한 모험을 위하여

 

김수영은 「풀」에서 또 한번의 시적 전회를 시도하려고 한 것 같다. 자신의 몸을 통해 발견한 민중인 “풀”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중심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만남을 기반으로 그는 무엇을 꿈꾸었던 걸까. 중요한 것은, 이 만남에 근거 없는 낙관이나 희망을 불어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람을 통해 “더 빨리” “늦게” “먼저” 같은 속도를 “풀”에 공속(公屬)시킨 다음 “풀”을 역사적 지속으로부터 비은폐시킴과 동시에, “풀뿌리가 눕는다”에서 보듯, 다시 역사 속으로 은폐시킨다. “풀뿌리가 눕는다”는 김수영이 살아온 시간을 떠올려볼 때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지치지 않고 수행해온 변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내미는 그가 겪은 역사의 상처가 혹 그런 표현을 낳은 것은 아닐까? 역사의 상처는 단순히 (정치적·예술적) 승리를 통해서 사라지거나 아무는 것이 아니라 끝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김수영은 4·19혁명을 통해 역사적 승리를 경험했지만, 곧바로 처참한 패배를 맞아야 했다. 승리가 우리의 정신과 예술의 승리를 무조건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도리어 현실은 “간악한 신념”을 드러내어 우리를 ‘도취의 피안’으로 내몰기도 한다. 김수영은 그것을 역사를 해석하면서 알아차렸다. 그의 시에 아이러니와 반어, 그리고 역설이 넘실대는 것은 현실은 인과적 필연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그의 인식을 반영한다. 그가 민중의 삶의 원리가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그 사랑의 원리를 존재론적으로 밝혀보려고 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김수영이 보여준 시적 태도는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언젠가는 맞게 될 ‘남북연합’의 시대가 좀체 끝이 안 보이는 근대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과 깊게 연동될 수 있다는 우려는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사건으로 닥친 역사적 국면을 뜨겁게 긍정하는 것은 김수영이 먼저 보여준 윤리이기도 하다. 그는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새로 시작하라고 소리쳤고(「시여, 침을 뱉어라」) 그 자신도 언제나 새로 시작했다. “온전하지 못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 “온전한 것을 노래”하려 한 것은 그 예증일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위험한 모험’이다.

김수영은 이렇게 하나의 ‘물음’으로 우리 앞에 떨어져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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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134면. “내가 나의 적들을 향해 던지는 창이여! 결국 내가 창을 던질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적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2.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2018. 이하 김수영 작품의 인용은 모두 이 책(전2권)에 따랐다.
  3. 주인, 지배자, 선생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전집의 ‘편집자 주’)
  4. 포기, 자포자기를 뜻하는 일본 말이다.(전집의 ‘편집자 주’)
  5.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2008, 334면.
  6. 같은 책 348면.
  7. ‘릴케론’으로 알려진 이 글의 정확한 제목은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이다.
  8. 마르틴 하이데거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 『숲길』, 신상희 옮김, 나남 2008, 465면.
  9. 같은 책 466~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