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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분단 너머의 한반도
거울 밖으로 나온 북한소설들
동시대 북한문학 읽기
오창은 吳昶銀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저서 『비평의 모험』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 『절망의 인문학』 『나눔의 그늘에 스며들다』 등이 있음. longcau@hanmail.net
1. 『문학신문』에서 ‘카프’를 만나다
중국 옌볜(延邊)대학 도서관은 북한 자료를 중요도에 따라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의 공개조건이 까다로운데, 중앙대 국제교류처의 공식 협조 요청과 옌볜대학 외사처의 도움으로 북한자료에 대한 접근이 허가되었다. 2018년 7월 10일, 옌볜대학 도서관 1층의 ‘신문열람실/사회과학서적서고’에 처음 들어갔다. 방학이라 이용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실내 조명등도 꺼져 있었다. 그 넓은 서고 가득 쌓여 있는 중국어·조선어·한국어 책들이 무덤의 벽돌처럼 느껴졌다.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큰 거울이 하나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1층 도서관 전체를 비추려는 듯한 거울의 어둠 속에 내 모습이 어릿하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나는 얼른 거울을 외면하며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언덕을 넘어서니 광활한 녹음이 펼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자료들의 위치에 익숙해지자 방대한 자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동신문』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민주조선』과 『로동청년』도 보였다. 『조선일보』 도 있었다. 내가 찾는 『문학신문』은 안쪽 모서리의 맨 아래 칸에 숨바꼭질하듯 놓여 있었다. 『문학신문』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창간 당시에는 매주 목요일에 간행되었던 주간신문이다. 안타깝게도 1956년 12월 6일 창간호는 없었지만 1957년 1월 3일자부터는 비교적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1958년 8월 21일자를 읽을 때는 감정의 파도가 내면에서 요동쳤다. 두면에 걸쳐 ‘우리 문학의 빛나는 혁명적 전통 카프 창건 33주년’ 특집이 실려 있었다. 한설야·송영·윤세평·신고송·엄흥섭·박승극의 기고문들이 순식간에 나를 60년 전으로 이끄는 듯했다. 1925년 8월 24일, 카프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이 ‘서울 견지동’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큰 성과였다.
나는 2018년 여름을 온전히 옌볜대학 도서관과 옌볜 자치주 도서관에서 보냈다. 1990년대 초중반에 옌볜대학 도서관의 ‘조선문도서열람실’은 북한문학 연구자들에게 ‘자료의 성지’였다. 조명희·리기영·한설야·림화 같은 카프시대 문인들의 자료와 백석·리용악 등 월북 문인들의 자료가 이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그 자료를 활용해 한국에서 문학선집과 작가들의 전집이 간행되었다. 내가 북한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곳도 옌볜대학이었다. 1997년 석사과정 때 교환연구생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북한문학사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천세봉의 『석개울의 새봄』(1955), 황건의 『개마고원』(1956), 윤세중의 『시련속에서』(1957)를 읽었다. 그때도 옛날 신문이 있는 열람실은 이용하지 못했는데 31년이 지난 지금에야 ‘자료의 성지’는 나를 온전히 품어주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문학신문』을 읽으면서, 2010년대 북한문학의 텍스트적 원형이 1950년대 후반의 문학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북한문학은 노동 중심의 서사, 비극이 없는 낙관주의,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집단주의의 추구 등을 특징으로 한다. 1950년대 후반 『문학신문』에는 작가들이 노동현장에서 쓴 글들이 지속적으로 실렸다. 윤시철이 김책제철소에서 용해공들과 만나 쓴 오쩨르끄(르뽀, 실화문학)나, 강계식료공장에 대한 현지보도나 강선제강소 모습에 대한 보도 등이 그 사례다. 노동현장과 문학세계를 연결시킨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지금까지 북한문학의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낙관주의적 세계관은 ‘우리식 사회주의’로 이어져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얼음 폭풍을 견뎌냈다. 주체사상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든, 그 자부심은 1950년대 성공적인 전후 복구를 통해 형성되었다. 1956년부터 시작된 ‘천리마 속도’의 자부심이 ‘고난의 행군’ 시대를 거쳐,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만리마 시대’를 향해 간다는 구호로 외쳐지고 있다.
『문학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당시 북한 작가들이 『현대문학』 『문학예술』 『자유문학』 『신태양』 등의 남한 문예지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리상현은 「남조선문학의 현상태와 전망」(『문학신문』 1957.12.19)에서 한흑구의 「보릿고개」(『현대문학』 9호)나 정한숙의 「화전민」(『신태양』 10호)을 거론하며 사실주의문학으로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최소한 1950~60년대 북한 작가들은 남한문학을 읽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남한에서는 1988년 ‘납·월북문인 해금조치’ 이후에야 북한문학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접근이 이뤄졌다.
2. 북한에도 좋은 소설이 있을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한 민중과 북한 인민은 새로운 역사적 국면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판문점선언은 남북정상 간의 합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은 한반도 전체의 운명과 결부된 일이다. 그렇기에 남북한 공통의 언어를 다루는 작가들의 역할도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납·월북문인 해금조치’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판문점선언이 이뤄진 점도 공교롭다.
문학 텍스트에 스며들어 있는 정신적 내밀함이 남북한의 문화예술 교류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북한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북한문학을 읽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일까? 남북의 작품들은 과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결코 ‘낙관주의적 전망’과 연결되지 않는다. 근대문학사의 뿌리를 공유한 남북한 문학은 해방기를 거치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창작의 물적 기반도 다르고, 사회가 설정하는 작가들의 역할도 상이하고, 독자들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크게 엇갈린다. 다만 남한의 독자가 북한의 역사소설을 읽을 때, 남북의 근원이 같다는 것을 깨닫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950~60년대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왔던 남북문학은 이제 별개의 미학과 가치를 지향하는 이방인의 문학이 되었다.
북한사회에서 문학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북한 대표 문학단체인 조선작가동맹은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도와 검열을 받는 중요 기구이다. 『조선문학』 『청년문학』 『아동문학』 『문학신문』과 같은 매체가 정기적으로 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는 언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중시하고 문자언어의 공식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에 ‘문학과 미디어’를 국가기구에서 통제한다. 북한에서 출판된 문학작품은 공식 문학, 당의 문학이다. 북한에는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에 의해 발표되는 개성적인 문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화되기 전까지 검토와 토의를 거친 집체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 출간된다. 견고한 검열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는 현역과 현직이라는 두 부류의 작가가 있는데, 현역 작가는 북한의 대표 전문창작기관인 ‘4·15문학창작단’에 소속돼 활동하며 특별대우를 받는 작가를 일컫는다. 현직 작가는 별도의 직업을 지니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를 가리킨다. 현역 작가는 모두 조선작가동맹 소속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검열을 받는다.
4·15창작단 소속 작가의 작품이나 『조선문학』 『청년문학』 『아동문학』 『문학신문』에 실리는 작품은 작가의 개성보다는 동시대 북한사회가 요구하는 문학적 지향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가 부과한 과업이나 당에서 요구하는 정책에 부응하는 작품을 창작해 발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 뛰어난 작품은 있을까? 남한의 문학적 관점을 문학의 보편성으로 간주한 상태에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북한문학 작품’을 판별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문학적 가치평가에는 어떤 문학이 좋은 문학인가,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접근 방법을 바꿔보면 어떨까? 북한문학계가 좋다고 평가하는 작품은 어떤 것일까? 북한문학의 공식적인 평가에 따르는 것이니 이 질문에는 조금 더 쉽게 답해볼 수 있겠다.
나는 이 글에서 김정은시대에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하고, 이들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북한문학은 낯선 문학이다. 이 글은 북한문학의 이질성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포함하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외면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북한문학계에서 높게 평가하는 두 작품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더불어 북한문학계가 외면하는 작품에 대한 적극적 의미 부여를 동시에 수행하려 한다.
김정은시대에 뛰어난 북한문학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서청송의 「유봉동의 열여섯집」(『조선문학』 2017년 제4호)과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조선문학』 2016년 제3호)를 꼽을 수 있다. 「유봉동의 열여섯집」은 『조선문학』 2018년 제2호의 ‘『조선문학』 축전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2017년에 발표된 작품 중 『조선문학』이 선정한 우수작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서청송이라는 작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는 김정은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주목할 만한 소설가’다. 그의 「무지개」(『조선문학』 2014년 제7호)는 ‘전국군중문예작품현상모집 1등 당선작품’이었고 「영원한 나의 수업」(『조선문학』 2014년 제6호)도 주목받았다. 서청송은 조선로동당이 정책적으로 중시하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젊은 감각을 맘껏 발휘해 유희적이면서도 희화적인 기법을 잘 활용한다.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는 2016년도의 중요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해를 결산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별도의 평론이 『조선문학』에 게재될 정도였다. 문학평론가 정향심은 「해당화를 향하여 철썩이는 파도…: 단편소설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를 읽고」(『조선문학』 2016년 제12호)에서 “읽어볼수록 이 소설은 확실히 잘 조화되는 성격들을 형상한 작품”이라면서, “문명강국건설에 떨쳐선 우리 군대와 인민들을 고무추동하는 명작, 력작”(69면)에 속할 만하다고 고평했다.
3. 북한 문학제도는 작가를 삼킨다
북한문학이 평가한 우수한 작품은 어떤 면모를 보일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을 통해 동시대 북한문학의 가치지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유봉동의 열여섯집」은 두만강 유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홍수 피해를 겪고 난 후의 복구 과정을 그렸다. 이 마을은 조선 세종 때 4군 6진이 설치되면서 이주해온 삼남 지역 주민들이 만들었다. 마을 이름에 얽힌 전설도 있다. 옛날에 토질병으로 추측되는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위난의 시기에는 영웅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효성이 지극한 총각이 그 역할을 한다. 총각은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해 하늘을 감동시켰다. ‘하늘의 신선’이 구름수레를 타고 꿈속에 나타나 ‘희귀한 새’ 한마리를 청년에게 주었다. 총각이 깨어나 살펴보니 집 지붕 위에 새가 있었고, 그 알을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에게 먹여 병을 퇴치했다. 이 설화로 인해 닭 유(酉)와 봉황 봉(鳳)을 써서 ‘유봉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16세대로 구성된 이 마을 사람들은 닭 기르기를 전통으로 여기고 서로 경쟁까지 하였다. 그중 한영배 아바이와 공달식 아바이는 희귀한 새가 지붕 위에 내려앉은 집이 자기네라면서 닭 키우기에 더 열을 올렸다. 일도 많고 말도 많던 유봉동이 큰 물난리를 겪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서사의 큰 줄기이다.
이 홍수피해는 2016년 함경북도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이다. 당시 남한에는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은 2016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에 태풍 ‘라이언록’이 몰고 온 집중호우로 인해 두만강이 범람하는 큰 홍수피해를 입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16년 9월 12일 133명 사망, 395명 실종, 3만 5500가구가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방송도 ‘해방 후 처음 겪는 대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북한사회에 타격이 심각했다. 그런데도 당시 남한정부는 북핵 문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대북지원이 어렵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거부한 바 있다. 소설 속에서는 홍수피해 이후에 당 중앙의 책임일꾼들이 ‘직승기’를 타고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이어 군당의 일꾼들이 쌀 배낭을 지고 찾아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인민군 1개 대대가 마을로 파견 나와 결국에는 열여섯집 모두를 새로 지어주는 복구작업을 진행하는 모습도 그려냈다. 서청송은 ‘직승기’를 전설 속 ‘구름수레’로 비유하고, 원호 물품들은 ‘행복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것에 빗댔다. 이를 통해 설화적 세계가 현실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수혜를 받는 유봉동 주민들의 입장에 서서 ‘원수님의 뜻’과 ‘당의 뜻’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세세하게 그려낸 것이다. 집을 잃은 절망에서 나라의 은혜를 입고 희망을 갖게 되는 여정을 유봉동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작가는 재난당한 사람들을 먼저 보살피는 ‘우리식 제도(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에 대한 자긍심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서사를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유봉동의 열여섯집」은 왜 북한문학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것일까? 이 소설은 ‘유봉동’의 열여섯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일종의 제유적 기법으로 피해의 구체성을 부각하는 서사적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열여섯집의 피해에 서사적 응축을 가함으로써, 고난극복의 서사를 낭만적이면서도 낙관적으로 펼쳐냈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작가는 피해가 제한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멀리 리 소재지의 상황을 “2층짜리 학교는 지붕만 남아 있었”다고 묘사하거나 “역사는 금방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37면)고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인 피해의 심각성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더불어 북한문학계에서는 ‘로동당’과 ‘수령’에 대한 유봉동 주민들의 충성심을 잘 그렸다고 평가한다. 체제가 다른 남한의 관점에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소재가 이 소설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수령들의 초상화’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이다. 한영배는 산모인 장수만의 부인을 이불로 감싸 피신시키면서, 가장 먼저 “초상화를 정히 싸안았”(35면)다. 역무원이면서 마을 주민인 칠성이도 자기 직업의 상징인 철도망치와 더불어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37면)를 가슴에 품고 나왔다고 그려져 있다. 인민반장이 희생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민반장이 친정아버지의 60세 생일을 맞아 온 식구가 집을 비운 옥이네 집에 뛰어들어간 이유는 초상화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의 시신은 “옥이네 집 초상화를 정히 가슴에 안고 물에 떠내려갔”(39면)다가 나중에야 발견되었다.
큰 물난리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들은 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목숨 바쳐 지켜내려 하는 것일까? 우선 ‘초상화’는 북한체제의 상징이기에, 이 행위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북한체제를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표로 해석할 수 있다. 또다른 측면에서는 관습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연결될 수도 있다.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북한의 공민임을 국가와 당에 증명하기 위해 목숨 걸고 ‘초상화’를 지키려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문학적 증언의 욕망에 따라 ‘초상화와 홍수피해’를 상징화해 표현했을 수도 있다. ‘수령들의 초상화’로 상징되는 체제로 인해 북한 주민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반복해 표현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문학계는 이 작품이 2016년의 대홍수 피해극복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남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북한사회의 내밀한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 서청송의 변화 양상이다. 서청송은 2014년 북한문단에 등장할 때만 해도 북한체제의 모순에 대해 내부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무지개」에서는 노동영웅인 혁신자들이 관리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양상을 폭로했고, 「영원한 나의 수업」에서는 ‘쉼없는 전진이 교사에게 강요하는 피로감’을 묘파해냈다. 그런 그가 「유봉동의 열여섯집」에 이르러서는 국가정책에 충실히 따르는 창작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신분도 북한 작가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4·15창작단’ 소속으로 바뀌었다. 서청송의 변화는 북한의 문학제도가 발랄했던 소설가를 어떻게 체제 내적인 작가로 변모시키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4. 북한문학에는 비극이 없다
그렇다면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는 어떤 작품일까? 이 작품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가는 ‘서해안 간석지 건설장’ 취재길에서 앞자리에 앉은 돌격대 청년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 청년은 ‘어여쁜 해당화들이 수놓아진 흰 수건’을 정성스럽게 쥐고 있었다. 박철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금성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서해안 간석지 건설장 대대장으로 임명돼 그리로 가던 중이다. 박철은 작가에게 서해안 간석지 건설장에서 벌어진 청년 돌격대의 활약상과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준다.
박철은 북쪽 광산도시 태생으로 어린 시절 부모님이 광산에서 순직하여 삼촌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주먹질 드새고 검질기기가 지독하다’ 해서 ‘날파도’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삼촌마저도 ‘네가 좋은 제도에서, 훌륭한 사람들 속에서 성장’해서 그렇지 다른 나라였으면 ‘강도나 깡패두목’이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힘, 패기,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가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안고 1중대 중대장으로 부임해 중대원들을 독려한다. 1중대의 목표는 ‘연간 총화’에서 여단 1등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 박철과 1중대의 경쟁 상대가 ‘해당화중대’로 불리는 3중대다. 모두 ‘처녀대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중대장은 군복무 시절 해안포대 사관장(선임하사관)을 지낸 ‘현희’라는 여성이다. ‘해당화처녀중대장’으로도 불리는 현희는 제대군인당원으로서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보수를 바랄 수 없는 헌신”(44면)이 필요한 이곳 서해안 간석지 건설장에 자원해 왔다. 1중대와 3중대는 남성과 여성, 엄격한 규율과 여성적 부드러움이라는 측면에서 애초에 경쟁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외성은 서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다. 1중대에서는 가혹한 노동을 버티지 못한 ‘도망군’(중도포기자)이 속출하지만, 3중대는 서로 다독이며 똘똘 뭉쳐 도망군 하나 없이 힘든 노동을 버텨낸다. 그뿐 아니라 3중대에서는 ‘처녀 함마명수’ ‘함마 장수’들이 힘을 내기 시작하면서 1중대의 성과를 능가하기까지 한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3중대는 ‘려단 체육대회’의 일정에도 없는 ‘바줄당기기’(줄다리기) 경쟁을 감히 1중대에 제안하기까지 한다. 1중대는 장난처럼 생각하고 응했는데, 3중대가 연거푸 두번이나 이기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다. 박철은 “일생 처음으로 무서움을 느꼈”(41면)다고 할 정도로 놀라고 만다.
날파도 중대장 박철은 마침내 해당화 중대장 현희를 남모르게 연모하다 상사병을 앓게 되고 만다. 그 사랑의 감정은 다음과 같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선생님도 이른아침 무릎을 치는 숫눈길우를 걸어보셨겠지요.
숫눈은 희다못해 연푸른빛을 은은히 비칩니다.
그 숫눈은 청신한 향기를 풍겨주며 마냥 마음을 맑고 생기롭게 해줍니다.
볼수록 돋보이는 처녀의 청신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이 처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꼭 그런 숫눈길을 걸으며 마음껏 호흡하는것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
파도가 아무리 모래불을 치고 쳐도 백사장의 해당화를 안지 못하는것처럼, 날파도가 덮쳐들고 또 덮쳐들어도 해당화꽃을 꺾을 수 없는것처럼…
그래도, 그랬어도 파도는 해당화를 향한 자기의 흐름을 멈출수 없는것입니다.(44면)
사랑에 빠진 남성의 낭만성이 그대로 투영된 문장들이다. ‘숫눈길’에 색감과 향기, 그리고 정서를 불어넣은 표현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서해안 풍경을 연상시키는 ‘날파도’와 ‘해당화꽃’의 비유가 남성적 판타지를 잘 보여준다. 남성의 열정적 움직임과 대비되는 여성의 정적인 매력이 이 비유에 담겨 있다. ‘날파도’와 ‘해당화꽃’의 상징은 남성적 노동과 여성적 노동의 대비로 이어진다. 1중대가 “휴식 한번 없이, 야간돌격”을 하면서 나아가면, 3중대는 서로 “눈물이 그렁해”져서도 “서로서로 밀어주고 이끌어가며 투쟁의 불길”(42면)을 지펴나간다. 3중대가 여단에서도 큰 성과를 낸 것은 바로 모든 중대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중대의 일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희는 박철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인 후 “사랑하려면 같아져야 한다고 봐요. 자기 동지들과 마음도 생각도 같이하고 조국과 생각과 뜻도 함께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봐요. 사랑할수 있는 권리가 말이예요”(48면)라고 당부한다.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중대원들의 동등한 지위에 대한 권고는 북한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는 언술이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들이 남성화되지 않고, 차이를 인정받으면서도 남성과의 경쟁을 이겨낸다. 이는 징후적으로 읽을 때, 북한 민중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확장해 해석할 수 있다.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는 ‘위대한 장군님’ ‘인민의 령도자’에 대한 헌사만 없다면 바로 남한 독자들에게 소개해도 될 만큼의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반면 북한문학계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헌사가 적절히 덧붙여져 있기에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또한 1중대장의 패기가 부드러움으로 변모해가고, 1중대원들과 3중대원들의 우호적 연대가 결국 중대장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청춘 남녀들의 열정이 노동으로 승화하여 높은 생산성을 낳는 역동성이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어 있다. 액자소설의 단조로움, 일방적인 대화식 전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물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점도 중요한 성취라고 평가할 수 있다.
더 심층적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이 작품은 ‘날파도’ 총각의 남성성과 ‘해당화’ 처녀의 여성성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서사를 단순화했다. 특별한 성장배경으로 인해 승부욕이 강한 박철에 비해, 현희는 눈이 크고 유별나게 눈동자가 검을 뿐 행동거지나 차림새는 평범하기만 하다. 다정다감한 평범한 처녀가 오히려 여단 전체에서도 남성 돌격대마저 앞서간다는 설정 자체가 반전을 이뤄낸다. 남성들을 이기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의외성이 설득력 있게 구성된 것이 이 소설의 큰 매력이다. 또한, 이 소설은 전체의 서사가 밝고 희극적인데 결말에서는 슬픔의 정조를 자연스럽게 우려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북한문학은 혁명적 낙관주의를 강조한다. 북한문학에서 비극의 서사화는 ‘전쟁서사’나 ‘혁명서사’에서 드물게 보일 뿐, 동시대 북한 주민들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품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 소설은 ‘혁명적 낙관주의의 관습’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현희는 간석지 건설 5년의 1단계 공사가 끝날 무렵, 제대 당일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중대원들이 ‘햇참미역’을 따겠다고 바다에 나갔다가 바다폭풍을 만나는 위기에 처하자 현희가 바다에 뛰어들어 두명을 구한 후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박철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이며, 서른두명의 중대원들에게는 존경하는 중대장을 잃은 비극이었다. 좋은 문학은 관습에 도전하고,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는 비유를 통한 등장인물의 성격화, 남성을 이기는 여성의 서사, 비극적 긴장감의 측면에서 충분히 되새겨볼 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청송의 「유봉동의 열여섯집」은 현재의 북한문학이 바라보는 문학적 관습에 부합할 뿐, 남북문학사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평가받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청송이라는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발표할지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는 의외의 문학사적 성과로 남을 수 있다. 동시대 북한문학의 혁명적 낙관주의를 깨뜨린 비극적 서사와 남녀의 성격화,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적 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본다.
5. 북한 노동자의 일상을 발견하다
문학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북한문학 작품의 발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를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북한문학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 ‘위대한 장군님’(김정일), ‘위대한 원수님’(김정은)이라고 호칭을 구분해 사용한다. 이러한 ‘정치지도자에 대한 헌사’가 포함된 작품이 문학적 논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 동시대 북한문학 대부분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앞에서 논의한 「유봉동의 열여섯집」에는 “김정은원수님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41면)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서른두송이의 해당화」에도 “위대한 장군님”(47면) “경애하는 원수님”(48면) 같은 표현이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문학이 높게 평가하는 작품일수록, 작가적 역량이 잘 투영된 작품일수록 관습적으로라도 ‘지도자에 대한 경외심’이 대부분 표현되어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조선문학』 2016년 제6호)은 특별한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북한 노동자들의 세세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당 창건 70돐’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정치지도자에 대한 직접적인 호명이 등장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나의 소대원들」은 일인칭 시점에서 모든 사건이 서술되기에 풍부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나’(박윤식)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탄광고속도굴진돌격대’의 사관장이었다. 청년돌격대가 해산되면서 ‘6갱설비보전공’으로 배치받았다. 그사이에 결혼도 하여 6개월여의 설레는 신혼생활 중이다. 그런데 탄광의 설비를 정비하는 ‘보전공’의 역할이 애매하다. 탄광은 ‘굴진’이나 ‘채탄막장’이 중심이기에 기계와 설비를 다루는 보전공으로 이뤄진 설비중대는 항상 뒷전이다. 이 소설은 “탄광에서는 보전공이라는 직종은 3부류이하”(33면)라면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 노동자들의 하루를 세세히 그려냈다.
박윤식은 아내가 내놓은 새 구두를 신고 기분 좋게 출근한다. 마침 ‘탄광 기동예술선동대’의 한 처녀가 출근을 격려하며 던진 꽃보라 뭉치가 새 구두 앞에서 터지는 꽃세례를 받는다. 함께 출근하던 갱사람들이 “오늘은 윤식동무에게 복이 굴러드는 날”(26면)이라며 흥겨워한다. 특히 저녁에는 도예술단이 탄광문화회관에서 ‘당 창건 70돐’을 앞두고 공연하기로 되어 있어 아내와 함께 갈 생각에 들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윤식에게 신임소대장 자리를 제안했던 현 설비소대장 오승권이 일의 책임성에 대해 추궁한다. 어제 윤식이 1호 압축기 수리를 끝낸 뒤 최종 점검까지는 하지 않고 퇴근하는 바람에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윤식의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하며, 소대원들의 행태도 삐딱한 시선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 불편한 감정의 결이 스며들면서, 탄광 설비소대원들의 일상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퇴근을 앞두고는 윤식이 담당하는 ‘2호사갱 펌프’마저 고장이 나 모든 소대원들이 도예술단 순회공연을 보지 못하고 자정 넘도록 야근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윤식이 아침에 받은 꽃보라가 단지 허망한 폭죽이었음을 고단한 현실이 증명한 셈이다.
「나의 소대원들」은 소대장 진급을 기대하던 윤식이 동료들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생활세계를 세세하게 묘파해낸 문제작이다. 윤식은 오승권이 매사에 집단주의만 강조하고 일을 깐깐하게 진행하는 것이 여간 탐탁지 않다. 소대 연장자 강세운 아바이는 잔소리꾼에다가 연로보장을 앞두고 있는데도 훈장은 두개뿐이면서 공로메달만 주렁주렁 달고 있다고 얕잡아보기도 한다. 쌍둥이의 아버지이자 익살꾼인 안성만의 태도도 마뜩잖기는 마찬가지이다. 진지한 구석이 없고 모든 일을 대충대충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축인 신춘일은 호리호리한 몸에 멋내기를 좋아하고 처녀들에게 치근대기나 한다. 안쓰러운 이는 2호사갱 펌프 책임 운정공인 분희뿐이다. 책임감도 강하고 마음도 착한데 스물일곱이 되도록 결혼 상대를 못 만난 것이 연민을 자아낸다. 윤식은 소대 전체가 “누구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곳에 용빼는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굴러들어와 형성된 집단”(31면) 같아서 미래에 소대장 업무를 맡아 할 자신감마저 잃을 지경이다. 그런데 ‘운수 나쁜 하루’ 동안 소대원들에 대한 박윤식의 평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는 자신에게 딱딱하게 굴던 오승권 소대장이 누구보다 책임성이 높은 일꾼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잔소리꾼인 강운세 아바이는 보전공이 “병을 제때에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유능한 의사”(33면)와 같다고 말할 정도로 자긍심 높은 일생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윤식이 아끼고 안타까워하던 분희와 못마땅해하던 신춘일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고, 안성만은 가정뿐 아니라 직장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낙천꾼이었다. 이러한 반전을 경험하며 윤식은 소설의 마지막에 오승권에게 자신을 반성하며 “난 소대를 이끌만한 재목이 못 됩니다”(36면)라면서 스스로 소대장 후보자에서 용퇴를 선언하게 된다.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은 ‘나’의 내면세계를 중심에 놓고 소대원들의 하루를 세세하게 묘사한 수작이다. 내가 특히 이 소설에 주목하는 것은 다음 몇가지 때문이다. 첫째, 이 작품은 북한에서도 ‘3부류’로 취급하는 보전공들의 노동을 다룸으로써, 비주류적 노동세계를 형상화했다. 대부분의 북한소설이 혁신자, 노력영웅, 혹은 헌신적인 일꾼을 그리는 데 비해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자기도취’에 빠진 ‘예비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둘째, 노동자의 내면세계를 그렸으면서도 소대원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성격 묘사에도 성공했다. 소설 속 화자는 진술 태도에 자기모순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걸 숨기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기도 하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세계를 적극적으로 표출한 작품은 북한문학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들기에 예외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대원들의 성격화도 뚜렷하고, 오해와 그 해소라는 서사적 흐름도 원활하다. 셋째, 북한 작품으로는 예외적으로 ‘모더니즘적 요소를 지닌 노동소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16년을 살아가는 북한 노동자의 하루 동안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일상이 다음 날도 반복될 것임을 기동예술선동대 처녀가 안성만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줌으로써 암시한다. 노동하는 일상을 통해 근대적 삶의 반복성과 동일성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남한문학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현장 노동자의 일상을 이 작품이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특색 있는 ‘비주류노동’으로 노동자의 감성세계를 포착해낸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6. 남북문학의 장벽 너머를 상상할 수 있을까
옌볜대학 도서관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큰 거울이 잊히지 않는다. 동시대 북한문학을 읽는 작업을 도서관에서 갑작스럽게 대면한 커다란 거울에 비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놓여 있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무방비 상태에서 거울에 비춰짐으로써, 자신이 믿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맞기도 한다.
김정은시대의 북한문학을 읽는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은 외국문학 작품을 읽듯이 북한문학을 접하고는 그 낯섦에 진저리를 치며 외면하기 쉽다. 언어가 같기에 번역이 필요 없지만, 이데올로기적 간극은 더 크기에 ‘경멸의 시선’이 무의식 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며 확산된다. 미학적으로 뒤처진 문학, 고루한 사회주의리얼리즘 문학, 외부가 없이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문학·북한문학에 덧입힐 수 있는 수사적 외투들이다.
시야를 역사적으로 넓혀보자. 마침 내가 옌볜대학 도서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1960년 1월 1일자 『문학신문』을 보면서였다. 신문의 3면에는 한설야의 「남반부 작가들에게」라는 글이 크게 실려 있었다. 한설야는 이 글에서 남한 작가들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어느 지역도 좋다. 우리들은 서로 만나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자”라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는 조선에서는 소련군도 중국 조선인민지원군도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남반부에만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과 북한의 근대적 공업국가로의 성장을 자긍심을 실어 강조했다. 이러한 우월감에 기반해 남북 작가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1960년 북한의 자신감은 분명한 물적 토대를 갖고 있었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앞세운 상대와 과연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었을까? 남한문학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북한의 작가와 문학적 대화는 가능한 것이기나 했을까? 이미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규정된 남한문학을 북한 문인들은 문학으로 존중하면서 읽었을까?
1960년 한설야의 강력한 자신감은 남한의 4·19혁명으로 역전되었다. 독재정권을 교체하는 혁명적 경험을 한 남한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정치적 주체로 스스로를 각성시켜나갔다. 4·19혁명은 남한 민주주의의 활력이 되었다. 이는 북한의 유일사상체제가 세습체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렇듯 역사적 국면 전환은 갑작스럽게 이뤄지기도 한다. 1960년 당시, 한설야가 보인 우월감은 지금의 남한 문인들에게도 그대로 되돌릴 수 있다. 2018년의 국면에서 체제적 우월의식에 기반해 남북 작가들의 문학적 만남을 기획한다면, 그것은 북한 작가들에 대한 암묵적 무시를 동반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설야가 ‘상대를 배려하는 상상력의 결여’를 보여주었다면, 2018년의 남한 문인들은 ‘소수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북한문학의 특수성을 껴안는 전향적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북한문학을 폄훼하는 가치평가들은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능력이 결여되었을 때, 자신이 우월하다는 확고한 믿음이 발산된다. 북한문학은 자본주의적 근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예외적인 문학일 뿐이다. 남한 입장에서 생각하는 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은, 서구적 가치에 기반한 것일 수 있다. 근대적 공통경험이 서구적 경험에 편중되어 있기에, 예외적인 문학을 ‘열등한 문학’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북한문학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외부와 차단된 내부의 문학으로 자신의 장벽을 견고하게 구축해왔다. 이제 그 장벽이 다시 열림으로써, 북한의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도 북한문학에 대한 점진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북한문학의 관습적 수사, 문학적인 것과 비문학적인 것의 구분 등은 북한문학계의 담론 질서에 따라 구축된 것이다. 그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고 읽으면, 북한문학을 동시대적 현상으로 파악해 비판하고 외면하게 된다. 단지 구경꾼처럼 거리를 두고, 스스로는 개입되지 않은 평안한 상태에서 바라보게 될 뿐이다. 거리를 두는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다.
앞으로 남북 문학교류가 다시 이루어지게 되면 문학 텍스트의 교류는 필수적 과제일 것이다. 남한은 ‘북한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질문할 수밖에 없고, 북한 또한 ‘남한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 문학의 텍스트적 교류는 ‘같아야 한다’는 전제가 아니라, ‘다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다름을 실증해 보이기 위해 서청송의 「유봉동의 열여섯집」,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의 텍스트 분석을 진행했다. 남북의 문학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의 대화는 앞으로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리라고 본다. 문학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은 보이지 않는 정서적 힘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