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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손택수 孫宅洙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음. ststo700@hanmail.net
나의 망원(望遠)
막 퍼올린 찬물 빛이다
그 속살과 향을 잊지 못해
부러 그 곁을 스쳐
출근을 했다
쓸모없어진 전화 부스 옆에서 하루 종일 도라지를 벗겨내는 노인,
성미산 이마에서 흘러내린 노을빛이
그 누추한 자리까지 깔리는 저물녘엔
또 그 자리를 지나 퇴근을 했다
비록 거친 살껍질일망정 벗겨내고 벗겨내면 돋는 도라지 속살과
도려낸 상처 위로 끼치던 그 정갈한 향이 없었다면
내 일과는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물을 끼얹어 먼지를 재우듯 연신 향을 끼얹는 노인의 곁을 지날 때
내 걸음은 절로 더뎌지는 것이었다
마치 여기가 가장 먼 곳이라는 듯, 망원
시장 귀퉁이 들끓는 소음 먼지들 속에서 정물처럼 앉아 있던 노인
지상에 와서 아까운 몇가지를 뽑으라면
십년 넘게 내 출퇴근길을 지켜준 노인의 도라지를 빠트릴 수 없으리라
껍질을 벗기는 동안 늘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