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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읽고 쓰고 저항하라

페미니즘 출판의 가능성

 

 

김영선 金永善

창비 청소년출판부 편집자. kys1212@changbi.com

 

 

먼 곳에서 온 목소리들

 

올해 1월 타계한 미국의 SF 작가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오래된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1973)에는 “한 사람이 행복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수천명의 행복을 내던져야 한다는”1 윤리적 딜레마가 등장한다. 오멜라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고 지적이며 성숙하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과 번영은 한 아이의 비참한 희생에 빚지고 있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말뜻을 알아들을 열살 무렵에 이러한 사실을 다 알게 된다. 도시의 운명이 한 아이에게 달려 있고, 그 아이는 지금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에 갇혀 제 배설물을 깔고 앉아 제발 내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음을, 그러나 누군가 이 아이를 꺼내 보살피려 든다면 그동안 유지되어온 오멜라스의 행복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아이의 처참한 현실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은 점차 메말라간다. 그 대신 자신이 변제해야 할, 그러나 결코 다 갚을 수는 없을 빚을 깨달은 댓가로 더욱 높은 선(善)과 이상을 좇으며 번영을 일군다. 가령 오멜라스의 사람들이 자기 아이에게 자애로울 수 있는 것은 지하실 아이의 불행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평온한 세계란 그렇게 유지된다.

타자의 희생과 세계의 균형에 관한 빛나는 통찰이 깃든 이 단편은 1974년 휴고상을 수상하며 이후 숱한 서사에 영향을 끼쳤다. 워낙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 소설을 보지 않았다 해도 ‘소수의 희생을 담보로 한 다수의 행복’이라는 설정은 익숙한 클리셰처럼 여겨질 법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삼스러운 전율에 휩싸인다. 우리는 흔히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단순히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적극적인 외면에서, 나아가 그 고통을 제물로 삼으려는 미필적 고의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어떨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런 날카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찌른다.

페미니스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르 귄의 소설에 빗대어 말하자면 ‘지하실 아이’를 더이상 외면하지 않으려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아이는 과거의 상처에 갇혀 버려진 채 옹송그리고 있던 자기 자신일 수도, 여성 일반일 수도 있다. 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과 억압에 눈뜨고 나면 이전과는 달라진 시선으로 보게 되는 유사한 종류의 이분법들, 예컨대 정상과 비정상, 국민과 비국민, 주류와 비주류 등의 구분 속에서 만나는 또다른 약자일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그 아이의 희미한 목소리에 서로의 목소리를 보태어 지하실 바깥의 세상으로 발신하려 한다. 그 중첩된 목소리들이 이제 말과 글이 되어 우리 앞에 당도하고 있다.

 

 

페미니즘 웹툰과 만화의 약진

 

오늘날 독자들은 이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페미니즘 작품은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강렬한 독서체험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처음으로 ‘나와 닮았다’고 느끼는 인물을 만나고, ‘내 이야기 같다’고 생각되는 서사를 만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은 자신과 비슷하게 느끼는 다른 이들의 감상과 교류할 때 더욱 증폭된다. 1990~2000년대 여성문학의 수혜를 조금이나마 받은 독자이자 청소년문학서를 만드는 편집자인 내 경우에도 최근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 작품에 열광하고 작품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사주는 모습을 보면서는 남다른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우리가 『이갈리아의 딸들』2 말고도 여러 작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안도와 기쁨이었다.

물론 페미니즘 작품의 열기 한편에는 우려의 말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남녀관계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나 도식적인 갈등구조, 경직된 서사 등이 문제가 되며, 때로는 ‘보편적’ 여성 인물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여성들을 배제하게 되는 한계3가 논해지기도 한다. 그중에는 우리가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날카롭고도 애정 어린 비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페미니즘 작품이 여성의 현실을 둘러싼 핵심적인 질문들을 아주 대중적인 감각과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책이라는 전통적인 출판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웹툰은 여성서사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특히 ‘일상툰’ 내지는 ‘생활툰’이라 불리는 일상 장르의 웹툰은 ‘힐링’과 감성 충족을 바라는 이삼십대 독자의 수요와 만나 발전하면서, 여성의 이야기가 독자와 연결되는 통로를 마련해주었다. 일상툰에서 주인공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얼핏 쉽고 편안하게만 들리지만, 일상툰이 그리는 현실이 반드시 밝고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또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 작품성이 부족하다는 말과 직결되지도 않는다.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작들만 보아도 다섯 작품 가운데 두편이 이러한 일상툰에 속한다. 『단지』4와 『며느라기』5가 그들인데, 대중성과 완성도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얻으며 독자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다른 수상작 『아, 지갑 놓고 나왔다』6는 어린 시절 입은 성폭력 피해와 미혼모의 삶 등 녹록지 않은 여성 문제를 그린 드라마 장르의 웹툰이다.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작 중 과반이 페미니즘 만화인 셈이다.

단지의 자전적인 작품 『단지』는 남아선호사상과 남녀차별이라는 다소 진부하게 들리는 주제를 핍진한 묘사와 가슴 아픈 전개로 풀어낸다. 집에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던 31세 여성 ‘단지’는 어느날 엄마에게서 아픈 아빠의 병간호를 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데도 굳이 자신에게 간호를 요청하는 엄마를 보며 단지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남녀차별과 가정폭력의 문제를 깊숙이 돌아보게 된다. 아빠의 성희롱, 딸이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엄마의 폭언, 오빠가 행했던 폭력 등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촘촘히 되살아난다. 단지가 과거의 상처와 단절하지 못했으며 현재진행형인 폭력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그래도 이를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점이 처절하게 전해지며 짙은 페이소스를 안긴다.

주인공 이름과 작가의 필명7이 동일한 데서 알 수 있듯 단지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실재적 인물이자 서술적 자아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과 작가는 분리되지 않는다. 작가는 웹툰을 연재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자신의 심정까지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중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2부에서는 작가가 메신저 역할을 자처해 독자들로부터 가정폭력 피해사례를 받고 이를 만화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가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위안을 얻고, 나아가 그들의 사연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며 위로를 전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생생한 치유의 의미를 띠며 선순환을 이룬다.

『단지』뿐 아니라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여성이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가부장적인 현실을 확인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 『며느라기』, 혼자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혼자를 기르는 법』8, 성 불평등을 소재로 삼아 현대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썅년의 미학』9등 페미니즘 만화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물론 만화계 전반으로 보자면 페미니즘적 관점보다 가부장적 시선이 여전히 지배적이며, 여성의 신체를 왜곡해 그리거나 여성인물을 부차적 조연으로만 등장시키는 관습도 만연하다. 그러나 페미니즘 만화는 점점 더 많은 독자를 끌어모으면서 여성만화라 하면 곧 순정만화만을 뜻했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조류를 형성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웹툰으로 시작해 종이책 출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출판만화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

 

2014년 세월호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분노를 느끼는 만큼이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말에 얼마나 애끊는 진심이 담겨 있는지는 주지하는 바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서의 청소년을 함의하는 그 말 너머로는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선장, 해경, 정부를 향해 쏘아진 화살은 정작 일상에서 청소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는 데 익숙한 우리 자신을 겨냥하지 못했다. 대다수 성인은 청소년 인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나의 자녀 혹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실정에서 페미니즘 만화의 활약이 더욱 반가운 까닭은, 웹툰의 주요 독자층이 10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페미니즘 만화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감각과 감수성을 캐치하고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더욱이 여성과 청소년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순응할 것을 요구받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으며 접속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페미니스트로서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고 기억을 맥락화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차별이고 폭력인지도 모른 채 어린 시절 무방비로 겪어야 했던 의아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은 여성의 성장 경로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굴레로 작용한다. 그리고 훗날 그 자국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고 계기가 생겼을 때, 선연한 기억들은 삶의 의지를 흐트러뜨릴 만큼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는 왜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가. 그러고도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는가. 이러한 고민 끝에는 ‘그때 나는 힘없는 어린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는 통렬한 자각이 뒤따른다. 여성들은 자신의 기억을 톺아보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청소년은 자기와 같은 행로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품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의 출간 또한 그러한 실천의 일환일 것이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에 독자들이 보낸 지지는 그간 쉽고 명쾌한 페미니즘 입문서가 우리에게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방증한다. 이 책에서 아디치에는 젠더 고정관념이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으며 이제 다른 미래를 펼쳐나가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또다른 책 『엄마는 페미니스트』(황가한 옮김, 민음사 2017)에서도 아디치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행복한 페미니즘을 강조한다. 각각 저자의 강연 내용과 SNS 글을 엮은 이 책들은 분량이 100면 내외로 짧고 온건하고 간결한 어조를 띤다는 점에서 기존의 페미니즘 도서와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아디치에의 책은 페미니즘 도서가 반드시 복잡하고 논쟁적인 이론서여야 할 필요는 없으며,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교양적 차원에서도 더욱 활발히 출간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외서뿐 아니라 학교현장의 교사들이 우리 현실에 맞추어 쓴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홍혜은 외 지음, 동녘 2017)와 『학교에 페미니즘을』(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마티 2018)의 출간도 반갑다. 지난 2017년 여름, 인터넷매체 ‘닷페이스’에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영상이 올라왔다.10 ‘마중물샘’이라는 별칭의 초등학교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상은 예기치 못한 그악스러운 반응을 일으켰다. 악의적인 신상털기와 억지스러운 비방이 자행되고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에까지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교사는 휴직을 해야 할 만큼 큰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백래시에 맞서 페미니스트들은 SNS에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면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에 동의를 표했다. 학교 내 성차별을 고민하고 성평등 교육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실천적인 책들이 출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페미니즘 운동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 운동의 현장성이 관련 도서의 출간으로 이어지고, 이 책들이 다시 너른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현상은 출판이 내포한 공공성의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단순히 어른에게 청소년 문제를 고민해보라고 이끄는 차원을 넘어 청소년 당사자에게로 곧장 향하는 책들도 출간이 활발하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정희진 외 지음, 우리학교 2017),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 지음, 창비 2017), 『나다운 페미니즘』(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창비 2018) 등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진 내용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이러한 책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다. 다뤄지는 내용 또한 남자와 여자의 성차는 정말 존재하는가, 차별은 옳은가 등 대체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평이한 차원에 머무르는 편이라서 그 바깥의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할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예컨대 청소년을 위한 성소수자 관련 도서는 얼마나 심화된 내용을 담을 수 있나, 물리적으로 가정을 떠나기 어려운 청소년의 현실을 생각건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나 가정폭력 문제는 어디까지 이야기될 수 있나 하는 등의 고민이 남는다. 교육관계자나 양육자 등 대다수 성인이 청소년에게 다소 급진적이거나 사회변혁적인 담론이 가닿는 걸 꺼려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기성세대의 보수성에 맞서 청소년들은 직접행동에도 나서는 중이다. 학교 내 성희롱을 묵과하지 않고, 속옷 색깔 제한 등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과도한 규율에 반발하며 이를 공론화한다. 지난 7월 18일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집담회’를 통해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을 만난 청소년과 교사들은 학교 내 만연한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쏟아냈다.11 이들의 증언은 특정한 이론이나 어려운 해석이 아니라 자기체험에 기대어 있기에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여성에게는 리본, 남성에게는 넥타이를 매게 하는 교복을 바꾸는 제도적 변화부터 성차별적인 시선을 거두고 언어의 관습을 새로 써가는 일상적 변화까지 아직도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이러한 변화가 얼핏 여성 청소년 문제로만 국한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점차 청소년 인권 보장이라는 너른 차원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 남녀 모두를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청소년의 절박한 목소리와 요구에 귀 기울이며 현실을 바꾸어가는 작업은 청소년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일원이자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병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고 논할 수 있는 책들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페미니즘 출판의 미래

 

몇년 사이 페미니즘은 출판계의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다. 지면의 한계상 이 글에서는 페미니즘 도서 가운데 다소 부차적인 것처럼 여겨지던 만화와 청소년 분야를 재조명하는 데 만족해야 하지만, 시, 소설, 이론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미니즘 도서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온라인서점 예스24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사회 및 문학 분야 내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 권수는 전년 대비 751.1%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나12 상업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무슨 상품이든 페미니즘이라는 표지만 붙으면 잘 ‘팔리는’ 현상을 가리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비아냥이 들려온다. 출판계 내부에서도 종종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식의 조급한 인식이 드러날 때가 있다. 출판이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페미니즘 도서가 약진하는 배경에는 실천적인 글쓰기를 추구하는 저자들의 왕성한 집필력, 원고를 발굴하고 기획하며 더 널리 알리려 애쓰는 출판사 차원의 노력, 눈 밝은 비평가들의 뒷받침,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의 열띤 성원이 있다. 책을 매개로 이들 집단은 변혁을 열망하고 실천하는 연대체로서 결속한다.

한동안 출판의 운동성은 사그라진 듯 보였고 독서의 연성화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책이 깊이있는 성찰의 매개가 되지 못하는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자기계발이나 자기위안용 도서들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씁쓸한 현실이 존재했다. 더욱이 그 청년이라는 이름에서도 가려지고 지워진 여성들의 삶이 있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힐링’만으로는 해결되지도 치유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안다. 여성들은 즐거움과 위안을 얻는 게 전부라고 여겨지던 일상 만화부터 가볍고 대중적인 교양서, 문학과 이론서까지 출판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어둡고 소외된 지하에서 들려온 이 목소리들이 책의 공공성과 출판의 책임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에는 슬픔과 분노를 안은 채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지하실의 아이를 본 어떤 청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을 떠나고, 몇몇 나이 든 어른들도 어둠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간다고 한다. 르 귄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는 끝내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467면)이라고 적을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지금 미래로 향하고 있다. 상상하기 쉽지는 않지만 그들은 알고 있는 미래로. 여행자의 가방에 책이 빠지면 서운한 일이 될 터, 출판의 공공성이 “나의 것으로도 또 모두의 것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13들어가는 과정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믿으며, 그 분명하고 힘찬 여정에 어떤 책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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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의 열두 방향』(개정판),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4, 465면.
  2.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뒤바뀐 가상세계 이갈리아의 모습을 그린다. 1977년 출간되어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라면 꼭 읽어야 할 여성학 입문서로 이야기된다. 한국어판 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1996.
  3. 이와 관련해서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을 둘러싼 비평을 참고해볼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가시화하는 그런 재현의 논리는 그럼으로써 거꾸로 또다른 현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사실 공통감각을 분유(分有)하는 동질적인 여성공동체란 하나의 허구다. 그 안에는 계급 및 계층의 위계와 불평등과 적대가 겹겹이 존재하고 ‘우리의 김지영’에도 속하지 못한(그럴 가능성도 없는) 경계 밖의 수많은 김지영‘들’이 존재한다. ‘82년생 김지영’의 현실과 감각을 여성의 이름으로 보편화하는 순간 저들 ‘김지영 이하의 김지영’은 가시성의 장에서 사라진다.” 김영찬 「비평은 없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문학이 하는 일』, 창비 2018, 66~67면.
  4. 단지 지음, 2015~17 레진코믹스 연재. 단행본(전2권) 레진코믹스 2016~17.
  5. 수신지 지음, 2017~18 개인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연재, 단행본 귤프레스 2018.
  6. 미역의효능 지음, 2015~17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단행본 새잎 2017.
  7. 단지는 잘린 손가락〔斷指〕을 뜻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에 빗대어 자신은 잘려나가도 괜찮은 손가락이었느냐고 묻는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만화가 단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데…”」, 『채널예스』 2016.2.11.
  8. 김정연 지음, 2015~18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단행본(전2권) 창비 2017~18.
  9. 민서영 지음, 2017년부터 저스툰 연재 중.
  10. 해당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RArvdK3MbU8&vl=ko에서 볼 수 있다.
  11. 「멧퇘지, 딸감, 리본 달린 교복… 여가부 장관 만난 중고생들, ‘학교 성차별’ 호소」, 경향신문 2018.7.19.
  12. 「예스24, 2017년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 발표」, 『채널예스』 2017.12.4.
  13. 황정아 「문학성과 커먼즈」, 『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