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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성동 『국수』, 솔 2018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유용주 劉容珠
시인 sinmusan@daum.net
『국수(國手)』(전6권)가 27년 만에 완간됐다.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봤다고도 한다. 끝까지 다 봤을까? 좋다. 끝까지 안 봤어도 좋다. 대통령이 우리 문학, 장편소설을 읽었다는 게 중요하다. 후배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성동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국수』가 완간됐다고는 안 본다. 그렇다고 『국수』가 차지하는 한국문학에서의 위치를 끌어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중간보고하는 자리라고 할까. 1부 ‘노을’을 끝내는 데 27년이 걸렸으니, 2부 ‘밤길’과 3부 ‘새벽’까지 완간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사랑은 기다려야 온다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김성동의 저력을 믿어본다.
『국수』에 대해 논하자면 이 작품의 탄생에서부터 공간적·역사적 배경, 등장인물, 줄거리, 문체,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모두 중요하다. 『국수』 다섯권의 전체 주제는 단 한마디다. 가사를 벗고 밖에 나가면 한가락 하고도 남을, 철산화상이 도령 석규(김옥균의 항렬을 따라 원래 이름은 석균이다)에게 한 말, “밥이야 있지. 다만 나눠먹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렇지.”(1권 32면)
대략 120년에서 130년 전쯤 일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하고 똑같다. “무릇 큰 고기는 중간치 고기를 잡아먹고 중간치 고기는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이치로 아전배들 위에서 더 큰 작간질을 하는 것은 군수라고 하였다.”(4권 272면)
더군다나 우리 문단은 단편이 주를 이루고 장편이 대우를 못 받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김성동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 부디 『임꺽정』과 『토지』를 뛰어넘는 작품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남들이 보통 건너뛰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어봤다.
첫번째는 일패기생 일매홍과 김병윤의 사랑이다. 책 광고에서는 김옥균의 정인으로 나오는 일매홍이지만, 나는 김병윤의 정인으로 읽었다. 김병윤은 과거에 급제해(처음 여섯살 때 시를 지은 천재였다. 낙화천지홍花落天地紅. 아버지 김사과는 떨어질 락落 자가 거슬렸다. 락 자 대신 필 발發 자를 넣었으면 안 죽었을까) 아산현감을 지냈다. 키도 훤칠하고 똑 부러지게 생겼다. 비록 요절했지만 박영효나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에서 아끼는 인물이었다. 그런 김병윤이 일매홍한테 마음이 쏠린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병윤은 가정을 가진 사나이다. 아내는 신심 깊은 일색이고 아들 석규(석규는 리평진 처사의 딸 은수에게 마음이 가 있다. 바둑을 핑계로 리평진의 집에 자주 들른다)는 아비를 닮아 깎아놓은 밤 같고, 바둑을 아주 잘 두는, 할아버지 김사과에게 경사자집을 배워 어렸을 때부터 슬기로운 아이였다. 김병윤은 목민관으로서 다산에까지 미치지는 못하지만 감사, 관찰사,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자리까지 영전할 가능성이 농후한 재목이었다. 그런 그가 아전의 농간으로 파직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넘어갈까. 일매홍 편지 하나에 득달같이 서울로 달려간 김병윤의 마음은 뭘까. 나는 두가지로 주판알을 튕겼다. 하나는 일매홍 속마음이다. 김병윤 같은 개화파와 가까이하면 출세는 따놓은 당상이고 권력과 돈이 막 들어온다. 봐라, 일매홍이 경영하는 다방골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제들하고 논다. 그들은 나들이할 때, 영상대감이나 쓰는 합하, 행차시오, 물렀거라, 어쩌구저쩌구 큰소리치지 않았는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한편 김병윤의 입장에서는 개화파와 줄이 닿아야 승진할 수 있다. 소위 권력욕이다. 없다고 항변할 텐가. 권력과 돈, 명예가 인간의 내면에 똬리 튼, 저저금 욕심 아닌가. 물론, 순수하게 김병윤이 일매홍을 사랑할 수 있다. 일매홍이 김병윤 건강까지 신경 쓰는 대목이 나온다. 아내가 못 가진 것을 일매홍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때는 공식으로 첩을 둘 수 있는 사회였다. 엄한 양반집 아내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기생에게 마음이 쏠릴 수 있다.
두번째는 머슴 만동이의 인선이(아전 홀태질로 돈을 모은 윤동지가 양반을 사들이고, 온호방을 앞세워 인선이를 첩으로 두려 한다. 이것을 미끼로 온호방은 거금을 뜯어낸다)에 대한 사랑이다. 노비 아들이 양반(“양 반인가 두냥 반인가. 돝 팔아 한냥 개 팔아 닷 돈 허니 양 반인가”, 3권 279면)집 규수를 사랑한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는 엄격했다. 만동이는 힘이 장사다. 대흥고을뿐 아니라 조선 땅에 유명짜하다. 씨름판에서 우승을 해서 황소를 타오기도 했다. 황소보다야 체중이 적게 나가지만, 황소를 거꾸러뜨리는 대호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중에 자신이 잡은 호랑이를 가로채려는 포수들을 우습게 제압하지만, 마음은 비단결처럼 곱다. 그런 만동이를 같은 노비 출신인 덕금이가 좋아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만동이가 장선전(장선전은 과거에 급제한 무관으로, 소설에서는 빚이 많은 늙은이로 나오지만 병마절제사나 통제사 자리도 소화해낼 만큼 출중한 무예를 지닌 양반이다) 딸인 인선이한테 마음이 가 있는 걸 덕금이도 안다. 인선이는 만동이를 노비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월을 잘못 타고 태어나서 그렇지, 대장부에다 한 나라를 경영하고도 남을 지혜와 덕목을 가진 인간으로 대한다. 항시 좋은 말을 하며 언젠가 때를 만나면 글공부도 그렇고 무예 또한 출중하니 크게 한번 이름을 떨치리라 믿고 있다. 만동이가 새로운 세상을 그리며 화적패 당수(만동이가 서장옥 다음으로 동학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필연이리라)가 되는 것도, 인선이 아버지 장선전을 파옥시키고 부녀를 구출하면서 시작한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도(친아버지 천서방을 김사과 댁에 두고 야반도주도 서슴없이 행한다) 장선전과 인선이 옆에 붙어 있으며 지켜준다.
“생각같아서는 인선아기씨 하나만 달랑 꿰어차고 어디 만경창파 머나먼 바닷속 섬으로라도 들어가 살고 싶지만, 안뎌. 다시 또 힘껏 도머리를 쳐 보는 것이었으니, 장슨전 나으리는 워찌 되시구 아부지는 또 워찌 되시며 뭣버덤두 그러구 애긔씨께서 날 따러가 주실랑가. 예까지는 오셨다지먼 그거야 어마지두에 그렇게 된 것이것구, 그렇긔까지 헤주시것냐 말여.”(5권 360면)
그러나 사랑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만동이와 덕금이가 헤어지는 대목에서 목이 멘다.
아부지 뫼시구 잘 있어.
……
다시 올 테니께.
그게 원제랴?
그제서야 덕금이는 고개를 치켜들어 만동이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그 사내 얼굴이 두 개로도 보이고 세 개로도 보이었다. 이히힝! 이힝! 철총이가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만동이가 다시 말하였다.
원제구 반다시 다시 온다니께.
지축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서둘러 철총이 쪽으로 가던 만동이는 잠깐 그 여자를 돌아다보았다. 달빛 아래 두 사람 눈이 마주쳤다. 골짜기를 훑으며 내려오는 밤바람이 그 여자 금박 물린 자주댕기자락을 흩날리게 하고 있었다. 만동이가 소리쳤다.
다시 만나게 될 겨!(3권 407~ 408면)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덕금이를 몽득이가 좋아한다. 몽득이는 만동이하고 동갑이다. 머슴이면서 사람도 좋다. 덕금이가 자기한테 시집오면 뭐든지 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도 덕금이는 애오라지 만동이만 사랑한다. 오오, 짝사랑의 순수함이여! 슬픔이여!
마지막으로 갈꽃이와 쌀돌이의 사랑이다. 갈꽃이의 원래 이름은 언년이였다. 아버지를 모시고 밥 빌어먹고 살았는데, 눈먼 봉사였던 아버지가 죽었다. 마음 좋은 손이득(짐승도 존중하는 성실한 농군 손이득을 보고 불문문장不文文章이라고 부름)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묻어준다. 어린 언년이는 손문장 수양딸로 새 삶을 살아간다. 법 없이도 살아갈 손문장은 당연히 가난했다. 손문장은 동학을 했다고 겁박하는 색차지 말에 갈꽃이를 순사또 영감 첩으로 넘긴다. 살수청 드리는 짓을 죽은 중 매질하듯 용인하는 것이다. 쌀돌이는 윤초시 댁 곁머슴이다. 쌀돌이는 동학을 공부한다고 밤마다 손문장 돌쩌귀가 불이 나게 드나들었다. 사실은 갈꽃이가 보고 싶은 거였다. 갈 데마다 갈꽃이는 말한다.
“장부루 한시상 태났다먼 글 배서 급제허구 활 쏴서 출신헤서 장부에 쾌헌 이름을 후세에 냉겨야 헐 게 아니냔 말여, 내말은,”
“글 배구 활 쏘넌 게 똑 급제 바레구 출신 바레서 허넌 건감.”(4권 338~ 39면)
쌀돌이도 잘 안다. 하지만 신분제에 꽉 막혀 있다. 빨간 상놈 주제에 감히 어쩌란 말이냐.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이냐. 갈꽃이도 쌀돌이를 좋아한다. 기방에 오르기 전, 도시락을 싸들고 쌀돌이를 만난다. 귀한 삶은 달걀과 온갖 나물과 질옹두루미 마개를 따며 한 소리한다.
“츤츤히 먹어. 목 맥히잖게 입 먼저 췩이구.”(4권 346면)
나는 이 대목에서 울었다.
『국수』는 평등세상을 말한다. 굳이 수운과 해월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이 하늘이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증산이나 율려를 얘기하지 않아도 밥이 하늘이다. 이것이 『국수』를 통해 김성동이 하고 싶은 말이다. 제사를 모신다면 살아 있는 사람 앞으로 상을 놔라, 이것이 고루살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수운인가 해월인가가 관군에게 쫓길 때, 어느 시골 제자 집에서 묶었다. 아침에 길 떠나는 스승보고 농투산이가 인사를 했다. 그래, 덕분에 잘 잤다. 근데, 밤새 베 짜는 소리가 들리던데 누구인가? 네, 제 며늘아기입니다. 그래, 그분이 곧 한울님일세. 잘 모시게. 일하는 사람이 하느님이다.
아내는 충청남도 사람이다. 당연히 충청도 말을 한다. 나는 이십년 넘게 서산에서 살아서 내포 지방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오덕 선생이 펴낸 책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평생 연구와 공부를 하는, ‘시절 같은’, 개갈 안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김성동의 내포 말은 어렵다. 솔직히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기회에 공부 많이 하고 갈고닦아 아름다운 우리말을 넓혀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되겠다.
내가 아는 동료들 몇은 붓글씨를 잘 쓴다. 그러나 한자를 비롯하여 김성동만큼(이문구 선생님도 할아버지 앞에서 글씨와 한자를 배웠다. 살아 계신다면 만만치 않을 것인데)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못 봤다. 만약에 소설과 붓글씨로 나라에서 국수를 삼는다면, 김성동은 국수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과언이 아니다.
국수(절에서는 승소라 부른다. 국수가 나온다면 스님들도 저절로 웃는다는)를 좋아해, 국수 근이나 끊어먹은 글 쓰는 사람이, 가끔 찾는 우리 동네 방화동계곡 윗용소(아랫용소는 이태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부군」(정지영 감독, 1990)을 찍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에는, 너럭바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어떤 신선이 있어 깊은 산과 나무를 쳐다보며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 삼아 바둑을 즐기겠나. 돌이 사라지면 바둑판도 사라진다. 글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