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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최실 『지니의 퍼즐』, 은행나무 2018
‘지니’에게
김태식 金泰植
일본 큐우슈우(九州)대학 특별연구자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시인이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 수밖에
1960년에 씌어진 김수영 시인의 시 「김일성 만세」는 4·19혁명 뒤에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 보내졌지만 당시 진보적이었던 두 신문에서조차도 발표되지 못했고, 2008년에서야 학술대회를 통해 소개되었다. 그 정도로 김일성 찬양은 한국사회의 금기였고 남북관계의 극적인 진전이 보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남아 있다. 한편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동포사회로 눈을 돌리면 오랫동안 김일성을 적극 지지해왔던 민족단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하 조총련)가 있고, 일본 전국에는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가 있다. 장편소설 『지니의 퍼즐』(ジニのパズル, 정수윤 옮김)은 바로 이 조선학교를 무대로 한다.
2016년에 재일조선인 3세 소설가 최실이 쓴 장편소설 『지니의 퍼즐』은 군조오신인문학상, 오다사꾸노스께상, 예술선장신인상을 받는 등 일본문학계에서 높이 평가받았고, 올해 한국에서도 번역·출판되었다. 소설은 마이클 잭슨을 영웅으로 여기는 주인공 지니가 미국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할 처지에 놓인 장면에서 시작한다. 지니는 일본 초등학교에서 차별을 경험한 뒤 조선학교로 진학한다. 조선학교에서도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 대포동미사일 발사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일본사회의 불안과 적대가 고조된다. 그날 지니는 당분간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입지 말라는 학교의 연락을 미처 받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 날 등굣길에 스스로를 경찰이라고 칭한 세명의 중년 남자에게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다. 충격에 빠진 지니는 교실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로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 ‘혁명’을 결심한 지니는 학교에 성명문을 뿌리고 초상화를 운동장에 내던지며 외친다. “북조선은—김씨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살인자의 학생들이 아니다. 초상화는 지금 이 순간부로 배제한다. 북조선 국기를 탈환하라!”(155면) 지니는 결국 조선학교를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도 지니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마지막에 호스트 패밀리인 스테파니에게 구제받으면서 작품은 끝난다.
『지니의 퍼즐』은 일본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 역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대다수의 의견과 다르다. 오히려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담론들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면의 제약상 한국어 번역본에 수록된 재일조선인 학자 문경수의 작품해설을 짚어가며 『지니의 퍼즐』을 둘러싼 불편함에 대해서 몇가지 적어본다.
문경수는 우선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김명준 연출, 2006)를 언급하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이 유포된 이 같은 조선학교 이미지도 다소 단편적이어서, 조선학교가 가진 문제와 모순을 제대로 파고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180면)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생겨난 조직과 교육현장에까지 참을 수 없는 부조리가 만연하다며 조선학교를 강하게 비판한다. 최실의 소설에 대해서도 “악의에서 아이들을 비호해야 할 조선학교에서는 ‘빌어먹을 독재자’를 숭배하며, ‘아이들이 희생돼도 변함없는’ 무사안일주의가 횡행한다”(188면) 라는 대목을 들어, 조선학교가 지닌 내부적인 억압구조와 모순을 비판한 지점을 높게 평가한다. 이 책이 주목받게 되니, 재일조선인 사이에서도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서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극찬과 비판이 경쟁하듯 올라왔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까지 오갔다. 그중에는 왜 조선학교를 그렇게 나쁘게 그리는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지니의 퍼즐』은 결코 조선학교를 나쁘게 그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세력 내의 폭력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내부의 억압구조를 비판하면 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최실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조선학교를 그린다. 나는 이 소설이 오히려 조선학교의 따뜻함을 그린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조선어를 모르는 지니를 도와주는 친구들도 그렇고, 지니가 일본학교에서처럼 빨리 어른이 될 필요 없이 반항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학교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작가는 일본사회의 차별구조에 대해서도 무게감 있게 그린다. 특히 지니를 폭행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분노를 안겨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화살이 조선학교에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김일성’에게만 향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식민자의 담론을 내면화해버리는 피식민자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는 점은 오히려 높이 살 만하다. 슬프지만, 지니는 우리의 곁에 많이 있다.
이 작품은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사회를 둘러싼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도 훌륭하다. 또다른 재일조선인 연구자 강윤이는 우선 ‘시간의 조각’으로 나뉜 이 소설의 구성에 주목했으며 조선학교·일본학교·미국학교 어디에서도 적응을 못하는 지니의 모습을 통해 조선학교 상대화의 문제를, 그리고 작품 속 ‘치마저고리’를 통해 재일조선인사회의 여성문제를 짚어내기도 했다1. 그는 『지니의 퍼즐』의 혁명성의 진로는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했는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화와 문학작품에 투영된 재일조선인 표상을 살필 때는 사회적 문맥의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김일성 만세’가 금지된 사회이며, 그런 한국사회에서 그려진 조선학교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사회 이상으로 ‘김일성’이 금기인 것이 오늘날의 일본사회일지 모른다.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환과는 대조적으로 지금 일본사회의 북한혐오는 절정에 이르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 대상에서 조선학교는 배제됐고 지방자치체에서 나오던 보조금도 격감됐다. 차별과 억압의 근거는 늘 북한과의 관계이다. 그런 속에서 문경수도 ‘김일성’ 비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일본사회 북한혐오 속에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조선학교 관계자들이 SNS에 올린 소박한 글까지 비판한다. 그래서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그러나 금방 잠에서 깨어난다. 문경수 또한 ‘지니’이다. 나 또한 ‘지니’일 수 있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이 처한 현실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리고 있으며, 동시에 ‘김일성’을 둘러싼 문화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선학교를 생각할 때 ‘김일성’의 긍정적인 영향과 그들이 왜 ‘김일성’을 지지해왔는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지니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연루된 폭력부터 인식하고, 마이클 잭슨이 노래한 바대로 ‘거울 속 사람’(Man in the Mirror)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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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康潤伊 「斷章のゲ—ム: 崔実 『ジニのパズル』論」, 『日本文學』 vol.67, 日本文學協會 2018, 33~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