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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백상웅 白象雄
1981년 여수 출생.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 2008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 bluepostman@naver.com
호주
그날 우리는 여섯과 서른하나였는데 요즘은 서른둘과 쉰일곱.
첫 이사를 하던 봄날도 말이 없었는데 우린 지금도 말이 없다.
시간 가도 나이가 좁혀지지 않은 아버지와 내가 그렇다는 거다.
그날 경운기 타고 꽃잎 펴지는 속도로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가족을 태우고 모든 세간 싣고도 자리가 넉넉히 남았던 경운기.
나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아버지는 그때도 늙었고 지금도 늙었다.
그간 꽃은 몇만번 폭발했나. 우린 몇킬로그램이나 말을 섞었나.
우리의 등본은 자꾸 뒷장으로 뒷장으로 도시를 넘고 동을 넘는다.
언젠가부터 우린 사력을 다해 방을 구한다. 이제 근력 다할 때까지 이리 살아야 하나 싶은 것인데.
주름 그어지는 생들은 왜 자꾸 경운기 모터처럼 시동을 거는가.
어쩌다보니 그날의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또 벚꽃이 날린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하필 선거 하는 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왜 자꾸 내보내는 걸까.
볼넷, 볼넷, 볼넷, 밀어내기 볼넷.
딱딱 떨어지는 각운.
눈여겨본 상대에게 연애 걸 때처럼, 복권 긁을 때처럼, 해가 지고 밤이 막 오는 이런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확률과 통계가 통용되지 않는다.
저 자는 무슨 자신감으로 등판한 것일까.
저 자는 과연 이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볼 때마다 팀이 진다.
이쯤에서 타자가 대충 스윙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
팀이고 뭐고 저 투수를 위해 아웃되어줬으면 하는 바람.
투수는 강판, 왜 이제야 바꿔! 복장이 터질 때 다른 채널에선 개표방송을 한다.
내가 찍은 자는 낙선, 내가 찍은 정당은 해체.
이게 요행이다.
나무는 마음 내킬 때 꽃 피웠으면 하고, 스트라이크 존은 쪼개서 좀 나눠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살았으면 한다.
이게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