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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살아 있는 역사와 좋은 시의 언어
신동엽론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평론 「텅 빈 자리의 주위에서」 「21세기 오감도(烏瞰圖)」 「분열하는 감각 너머의 리얼리티」 등이 있음. renton13@daum.net
1. 시의 눈동자
평범하거나 좋지 않은 시에 ‘하늘’이나 ‘강물’이 나오면, 감당하지 못할 존재와 세월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감상적으로 누설하는 형식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또한 이런 형식들에 대한 반감을 알게 모르게 훈련하다보면, 하늘이나 강물이 나오는 작품을 다르게 보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세련된 것들을 수용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세련되지 않다고 여기던 사고에서 벗어나 달리 보는 일에도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신동엽(申東曄, 1930~69)의 시에 나오는 하늘과 강물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시어가 품은 조건과 맥락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그것을 의미가 굳어버린 상징어처럼 읽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한 평자는 저 단어들이 용해시키고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꿈, 그리고 피로를 읽어주지 않은 채 ‘막연한 몇개의 비유’라는 말이나 ‘무의지의 비유’ 같은 말로 신동엽의 시를 비판하기도 했다.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동엽의 시를 실패한 비유의 관점으로 설명하다보면 그 설명하는 언어가 실패한 비유처럼 뻔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평범한 비유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굳은 결기와 같은 힘은 물론이거니와 읽는 이의 행동을 추동하는 감동을 주는 시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신동엽의 대표시로 꼽히는 「껍데기는 가라」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같은 시는 분명 그런 부류일 게다. 이런 작품들을 만날 때 우리는 신동엽의 시를 통해 단단한 기운을 충전받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는 신동엽의 시가 확보한 독특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저 유명한 하늘을 보는 시선을 말하기 위해서는 사실 돌아갈 길이 멀다. 우선은 그의 시에 눈동자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자.
너는 말이 없고,d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척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呱呱)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눈동자」 부분2
빛과 눈동자 모두 신동엽의 시에서는 중요한 시어들이다. 이들이 출현하는 곳에 시인의 특별한 인식이 자리하며 또한 시를 발동시킨 삶의 현장이 그려진다. 두개의 중요한 시어가 결합된 「빛나는 눈동자」는 장엄한 기운마저 맴도는 작품이다. 어떤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위엄을 지키는 저 ‘빛나는 눈동자’는 신동엽의 시세계 전반을 가로지르는 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다른 시선의 위용일까. 그것은 “봄〔視〕도 없이” 걸어간다. 이는 일차적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평범한 눈과 다른 빛을 내고 있다는 의미일 테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그 눈동자와 눈빛을 주고받는 시선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많은 눈들은 저 눈동자의 빛과 시선을 교환하지 못한다(“너를 알아보는 사람은/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러기 때문인지 눈동자는 세기의 대합실에서 그 빛을 알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뒤에서 밝히겠지만 신동엽 시의 특별한 시선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어떤 흐름을 감지하며 저 막막한 기다림 속에서 출발한다.
시의 후반부에 가면 ‘빛나는 눈동자’에 몇개의 이미지가 덧붙는데, 그때 우리는 ‘정신의 눈’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그것이 ‘이승을 뚫어버린 인간정신미(美)의 지고(至高)한 빛’을 발한다는 말과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정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다소 의심스러운 구석이 생긴다. 빛이 초월성의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는 점까지 고려하면 빛나는 정신의 눈은 마치 범인들에게는 차단된 어떤 초월적 진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전이 있다. 사실 저 눈빛을 사람들이 잘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한없이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 사람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신동엽이 자신의 단상을 적은 산문의 일부이다.
人間의 座席은 非美·非眞·非善이다. 藝術과 宗敎는 人間을 上部로 이끌어 올리려는 길이 아니다.
下野의 짐승이나 꽃에게로 내려가려는 안타깝고도 凄絶한 몸부림이다.3
이 낮은 곳으로의 지향은 다른 산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훌륭한 시인을 설명하던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훌륭한 詩人이란 그 사고 속에 가로막힌 장벽이 없는 精神人을 말한다. 그는 夕刊에서 읽은 세계의 표정이나 社會面 기사를 호흡하되 목구멍으로가 아니라 가슴·아랫배, 더 깊숙이 내려가서 발끝으로까지 빨아들였다가 그 가운데서 연민과 기쁨과 진실을 읽고 또 노래한다.4
인간의 자리가 “非美·非眞·非善”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그것들에 이를 수 없다는 회의로 빚어진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진선미라고 불리는 것들이 차지한 자리가 인간들의 생생하고 가치있는 삶에 비해 비좁을 수 있다는 말이며 동시에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보기에 진선미를 창조하려는 예술은 의미가 이미 매겨진 자리가 아니라 의미와 가치의 체계로부터 배정받지 못한 자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거기에는 인간적 의미가 미처 포섭하지 못한 생명력이 짐승의 모습으로도 있고 꽃의 모습으로도 있다. 달리 표현하면 저 아래는 의미 이전의 어떤 힘의 자리이며 새로운 사고를 추동할 사실적 질료들이 자리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를 가로막는 장벽에 저 의미의 체계와 가치의 체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5
시인이 보았다는 그 ‘하늘’ 역시 실은 우러러 마주하게 된 것이 아니라 발끝으로 감지한 무엇일 것이다. 우리의 속된 기대 역시 배반하기 쉬운 행동의 영역을 발끝으로 느낀 것이며 거기에서 감지한 생동력 또한 하늘의 자리가 품은 힘이고 사실이지 않을까. 먹구름 같은 생각이 그것을 가리고 쇠항아리 같은 무거운 습관이 또한 그것을 억누를지라도, 먹구름과 같은 생각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올 사건으로 사그라들 수 있으며 쇠항아리 역시 뜨거운 열기만 넉넉하면 언제든 녹일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저 사건도 그리고 열기도 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 가능한 영역에 있지 않다. 그래서 저 빛나는 눈동자는 어떤 기다림을 수행한다.
2. 기다림이 서러움으로 서러움이 연민으로
신동엽 시의 빛나는 눈동자가 눈빛을 주고받은 다른 눈동자를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에 돌아가야 할 길목이 있다.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
비 오는 오후
버스 속서 마주쳤던
서러운 눈동자여,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 흐르고 있는
맑은 강물, 조국이여.
돌 속의 하늘이여.
우리는 역사의 그늘
소리 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나니.
조국아,
강산의 돌 속 쪼개고 흐르는 깊은 강물, 조국아.
우리는 임진강변에서도 기다리고 있나니, 말없이
총기로 더럽혀진 땅을 빨래질하며
샘물 같은 동방(東方)의 눈빛을 키우고 있나니.
—「조국」 부분
얼음 뚫고 새 흙 깊이 씨 묻어두자
새봄 오면 강산마다 피어날
칠흑 싱싱한 눈동자를 위하여.
—「싱싱한 동자(瞳子)를 위하여」 부분
대표작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의지 때문일까. 신동엽의 시에 기다림이 담겨 있다는 말은 의외로 덜 이야기되었다. 기다림을 말할 때 신동엽 시의 어조는 조금은 누그러질 뿐 아니라 약간은 애상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애상적이라고 해서 깎아내리는 말은 아니다. 비극적인 것을 극대화하여 시적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방식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취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한 시인에게 이 정조는 그의 시에 특별한 질감을 부여하는 부분일 수 있다. 간절히 기다려본 사람은 기다림이 간절한 만큼 기다림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이 고난을 통과하기 위해 시인은 다양한 전략과 이미지를 창조했다. 가령 「조국」에 그려진 ‘뜨개질’이 그것일 수 있는데, 그보다 대표 격으로는 신동엽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구름을 들 수 있겠다. 흔히 생각하듯 시인이 늘 닦으라고 말한 마음속 구름은 기다림을 막는 장애물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막연한 기다림을 구체적 근심으로 전환한 장치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금강」을 쓰며 적어 내려간 다양한 옛이야기들 역시 그에게는 일종의 구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구름 같은 생각들이 때로 혼돈을 불러와 기다리는 자를 지치게 하고 먹구름과 같은 사고의 정체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의 인식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한 경험들을 속속들이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 과정은 우리의 경험 속에서 미래를 여는 데 힘을 보탤 알갱이를 발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시사(詩史)를 살피면, 저 구름도 그렇거니와 기다림도 처음은 아니다. 한용운(韓龍雲)의 구름과 그리움이 그것들에 앞서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했다.6 한용운이 아니었다면 신동엽 역시 하늘에 감춘 구름을 무서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용운이 「알 수 없어요」에서 이미 “지리한 장마 끝에 서쪽으로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라고 말해준 적이 있기에 신동엽은 한용운이 펼쳐놓은 이미지를 보고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지에는 한계가 있다. 시인에게 더 구체적으로 감각되는 것은 누군가가 미리 보여준 이미지라기보다 자기 체험이다. 그래서 구름을 닦듯 마음을 다스리면서도 기다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수행이었다. 이로 인해 시에는 기다림이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가령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으로” 가 진달래 붉은빛이 되었다는 암시의 구절(「진달래 산천」)이 그러하고, “얼음 뚫고 새 흙 깊이 씨 묻어두자”(「싱싱한 동자(瞳子)를 위하여」)는 표현도 그러하다. ‘씨를 심자’라고 할 수도 있었겠으나 굳이 ‘묻는다’는 표현을 불러온 데에도 역시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사양들 마시고
지나 오가시라
없는 듯 비워둔 나의 자리.
와, 춤 노래 니겨
싶으신 대로 디뎌 사시라.
한물 웃음떼 돌아가면
나 죽은 채로 눈망울 열어
갈겨진 이마 가슴과 허리
황량한 겨울 벌판 돌아보련다.
(…)
나의 나
없는 듯 누워.
고이 천만년 내어주련마
사랑과 미움 어울려 물 익도록.
바람에 바람이 섞여 살도록.
—「나의 나」 부분
시의 목소리는 내 자리를 내어줄 테니 와서 그 자리 마음껏 채우라는 말을 덤덤하게 전하는 듯하지만 이 덤덤함은 기다림의 고통에 직면해 독특한 정서이자 인식을 획득한 사람이 표출할 수 있는 어조이다. 직접 표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 죽은 채로 눈망울을 연다’는 말이나 ‘황량한 겨울 벌판’의 이미지 안에 녹아든 서러운 기다림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신동엽이 특별한 시인인 지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기다림과 서러움을 결합하여 애수의 정서로 흐를 수 있는 길을 피해 그 정념의 소용돌이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시선을 발견했다. 아픈 사람만이 예민하게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시인은 자신 말고도 자신의 삶 하루하루 속에서 서러워하면서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얻었다. 만약 저 눈동자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신동엽의 시는 전봉준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금강」)도, 도시에서 환영처럼 만난 소년의 순박한 눈동자(「종로5가」)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서러운 기다림이라는 정서가 공유지를 만들자 그곳에서 나의 자리를 말하는 일이 불필요해졌는지도 모른다. 나의 알맹이가 바로 그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알맹이에 ‘연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타깝게도 이 이름은 오해를 부르기도 했다. 연민은 마치 권위있는 자가 그것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시혜적 감정처럼 여겨지기 쉬웠다.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한 도덕심의 발로라고 비판했고, 또 누군가는 그가 강인한 의지를 상실하고 혼돈에 빠졌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신동엽이라면 연민은 시혜적 감정이 아니라 ‘생명의 발현’이며, 시가 늘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호혜적(互惠的) 통로”7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다. 비판자들은 연민이라는 단어만 알 뿐, 그 단어가 시어가 되는 과정 속에 어떤 감정의 경로를 통과하고 어떤 생각이 참여했는지에는 무관심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서러움과 엄숙함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묻기도 했다.
연민,
누가 누구를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한 수렁 속에 돋아난 버러지,
버러지의 기다림이
불쌍하게만 여겨짐이여,
사랑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미움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금강」 제18장 부분
기다림이 막막해질 때, 그것을 버러지에 빗댈 만큼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을 때 시인을 다독이던 것은 연민이다. 이 연민에 자기를 연민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사랑과 미움이 끝난 후에도 연민이 남는다는 말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바깥으로 향해 있는 감정이다.8 그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 시인은 연민이라는 두 글자를 따로 떼 한행으로 처리했을 정도다. 그러므로 저 이름이 “누가 누구를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물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신동엽은 연민 또한 엄숙한 것으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가엾게 여기되 위엄과 존중을 잃지 않는 태도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다른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을 빚어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시에 나타난 수많은 장삼이사들과 같은 구체적인 이웃이 그와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3. 시와 이웃
한용운, 신동엽. 두 시인 모두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노래했고 그것을 기다렸지만 둘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한용운의 이별극은 임을 갈구하긴 하지만 임과 접촉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동엽은 달랐다. 그에게는 기다리던 시간이 육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가 있었다.
이야기가
소용없었다
촉촉이 젖은
둘의 입술,
가늘게 떨리면서
열렸단 멎고
열렸단 말 뿐,
손과 손
마음과 마음
역사와 역사는
얽혀 흐르면서
뼈 없이 녹아,
구석과 구석을 적시고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여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해조(諧調)의 음악이 되어
—「금강」 제10장 부분
신동엽이 보여주는 육체적 합일의 이미지는 조화에 대한 낭만적 색채를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들어 해조의 음악이 되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적이며 또한 착란적이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착란은 완벽한 조화에 대한 상상적 정념을 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분열의 감각이 최소화된 듯한 이 말들은 둔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동엽 역시 이 둔중함에 무감한 것은 아니었다. 이 완벽한 합일의 순간은 서사시 「금강」에서 급작스럽게 시작되어 급하게 끝이 나는데, 이 시의 흐름이 바뀐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역시 이러한 이미지가 지속되지 못할 꿈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신동엽은 한 산문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표현 중에 가장 진실된 것은 눈감고 이루어지는 육신의 교접이고, 다음으로 진실된 표현은 눈동자끼리의 열기라고 말했지만, 그의 시에서 가장 진실된 부분은 오히려 후자라고 여겨진다. 눈을 감는 순간 자신의 서러움과 타인의 서러움은 소거된다. 하지만 저 상상적 합일의 순간에 눈동자의 열기가 살아나 서러움의 상태가 동반된다면 더 진실되지 않았을까.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자면 저 사이에 분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레 신동엽의 시에서 유토피아를 읽고, 그것의 허구성을 강조하는 읽기에 익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화를 지향하는 문장의 주어는 여전히 ‘둘’이며, ‘와’와 ‘과’를 사이에 둔 둘 이상의 것들이 얽혀들고 있지 않는가. 저 시는 둘 이상의 존재 사이에 갈등을 심화시켜 비극으로 치닫는 형식을 피할 뿐 아니라 완벽한 합일의 허구도 피하고 있다. 신동엽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관념을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둘은 영원히 둘로만 남는다는 관념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시인은 둘이 둘로만 남지 않는 순간에 노래가 오고 역사가 쓰인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만 가지와 만 노래를 한 가지로 흐르게 하라”(「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고 말했던 이유도,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꽃밭처럼,/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고슬고슬한 쌀밥처럼/마을들은 자라났다”(「금강」 제5장)고 쓸 수 있었던 바탕에도 저 믿음이 있다. 그래서 그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 속에 있으려 했고, 이웃과의 인간적인 애정을 중시했다.
다방이나 대학연구실이나 중앙도시의 빌딩만이 우리 조국의 현실일 수는 없다. 총인구 가운데 7할을 차지하고 있는 굶주리고 헐벗고 학대받고 있는 농·어촌은 그럼 누구의 현실이란 말인가.9
굶주리고 헐벗고 학대받는 저 낮은 자리야말로 그에게는 현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고 시가 출현할 자리였다. 그곳이 고통의 자리이고 서러움의 자리여서가 아니라 다른 미래를 기다릴 수 있는 자리여서 그랬다는 것은 이제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민중시인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가 민중의 말을 대신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의 얼굴을 늘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눈동자에서 아직 현실로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조용한 눈동자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잠재해 있음을 아는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요란한 말보다 더딘 말을 선호했고, 얼굴 없이 떠도는 말보다 얼굴에 묻힌 말이 되지 못한 표정을 중시했다. 가령 그가 시에 ‘봄이 오면 피어날 생명을 얼음을 뚫고 심어두자’는 식의, 시로 치자면 다소 쉽고 빤한 말을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색하거나 유치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웃의 얼굴처럼, 저 평범한 말에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내팽개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자의 열기를 발견하고 그것이 더 타오르도록 이끄는 눈빛을 신동엽이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가 생활 속에서 이해하는 일상의 말에서조차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모두의 얼굴에 묻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저 익숙하고 평범한 말들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하늘의 얼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신동엽만큼 실천적으로 파악한 시인도 드물 것이다.
4. 시의 눈동자에 비친 역사
신동엽의 현재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간절하게 기다림을 품었으면서도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장한 흐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동학혁명을 말할 때도 4월혁명을 말할 때도 그것을 시간 차가 나는 일처럼 말하지 않았다. 어느 일이 얼마나 더 앞섰는지 따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개는 별개가 아니라 한 ‘흐름’에 놓인 사건들이었다. 그에게는 이 생생한 흐름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흐름이야말로 시인의 말처럼,10 늘 있는 것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시인은 그것을 좀더 감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강물과 바람이라는 평범한 시어에 기댔다. 강물과 바람이 유장한 이유는 그것들이 변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질적인 무언가가 뒤엉킨 긴장된 상태로 흐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엽은 시적 방법인 응축이라는 말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저 강물과 바람은 유사하면서도 다른 사건 내지 이미지를 겹쳐놓고 그것의 가능성을 폭발시키는 응축의 생산물이다.
현재가 어떤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시가 얄팍한 허무주의에 기대기 쉽다면, 어떤 힘있는 사건을 현재화하여 품은 시는 허무에 기대는 대신 더 큰 원(願)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동엽이 역사를 차용했다고 표현하며, 미래를 향한 진취적 발판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켰다고 말했지만11 그의 시에서 과거가 그렇게 도구적이고 기능적으로 다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차용되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부가하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신동엽의 시에 내재한 흐름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그 흐름이 읽는 이의 현재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일이 더 필요하다. 신동엽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개별적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안에 배치될 때 운동성을 회복하고 생명력을 되찾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신동엽의 시에 살아 있는 흐름을 직관하고 이를 생생한 언어로 잘 밝혀준 평자는 백낙청이다.
백낙청은 신동엽 시인의 20주기 추모글에서, 1970년대 ‘민주회복운동’의 시점에서 4월혁명과 당시 사이에 이어져 있던 민족사적 큰 흐름을 직관했던 순간을 떠올린다.12 4월혁명의 미완의 작업을 1970년대 민주회복운동이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인데, 백낙청은 이 생각이 1960년대 쓰인 「껍데기는 가라」에 이미 구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덧붙인다. 백낙청이 「껍데기는 가라」에 구현된 정신이 더 큰 현실성을 띠고 다시 한번 생생한 것임을 확인하는 시점은 20주기인 1989년이다. 짐작하듯 「껍데기는 가라」는 1980년 5월과 1987년 6월의 역사까지도 품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시의 언어 내지 형식과 무관하게 덧붙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사월도”라는 표현 속에 숨어든 절묘한 감각과 “중립”과 “알맹이”라는 시어에 깃든 사상을 민족사와 연동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백낙청이 신동엽의 시를 통해 4월을 현재화하여 힘을 얻은 방식이 신동엽이 과거의 사건들을 시에 녹여 현재를 두텁게 하는 방식과도 상당히 닮았다는 것이다. 백낙청은 자신만의 진솔한 읽기 방식으로 신동엽 시에 내재한 커다란 형식과 그것이 역사와 만나는 지점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아마도 이는 두 사람 모두 민족사라는 큰 흐름을 인식하고 그 위에서 자신의 현재적 실천을 시적으로 또는 비평적으로 수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동엽 시에 내재한 흐름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문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중립이다. 중립 또는 평화, 혹은 완충지대. 이 말들은 신동엽이 바라던 세계에 긴밀히 닿아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투명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평자들은 이를 모호하게 읽은 면이 없지 않다. 일차적으로는 시어의 다의성을 의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또한 읽는 사람들이 거기에 더 많은 무언가를 부가해서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저 말을 가장 사실적으로 읽기 위해서라도 가장 소박하게 읽는 방식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관념적 색채가 덜하고 물질적 느낌이 강한 완충지대를 인상적으로 그린 산문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날짜를 擇해 板門店이나 임진강 완충지대에 그리운 사람들끼리 모여 아리랑을 합창해보자고 제의하는 사람이 南北을 通해 아직 없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13
‘남북의 자유로운 문화교류를 위한 집단회의를 제의하며’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글에서 시인은 대립적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행할 수 있는 ‘창조적 협업’의 하나를 그려 보이고 있다. 아쉽게도 그 협업은 아직 부재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완충지대’라는 말은 지정학적 용어의 차원에 머물고 만다. 저 지대는 관습에 이끌리던 시간으로부터 풀려나와 그 위에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덧입을 때 비로소 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중립도 평화도 마찬가지이다. 완충지대가 여러 차원의 의미가 생성 가능한 잠재적 공간임을 되새겨보면 거기에는 어떤 핵심적 의미도 아직 담기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저 텅 빈 의미의 자리 주위를 배회하며 언제든 완충지대에서 발생한 의미를 간섭하고자 하는 수식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동엽은 완충지대에서 펼쳐질 역사의 합창을 상상하며 그 주위에 ‘주체적’ ‘적극적’ ‘역사적’ ‘문화적’ ‘실질적’ ‘민중적’ ‘지성적’ 등등의 움직이는 말들을 적어놓았다. 중립과 평화의 형식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그 형식의 도래에 참여할 힘들의 성격을 뚜렷하게 밝혀놓은 셈이다.
신동엽의 시에는 극단적인 데가 없다. 이 말은 그의 시가 덜 뜨겁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은근한 기다림을 가장 뜨겁게 말할 수 있는 시인이었다. 많은 시인들이 선호하는 극단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취했던 이유는 그 극단이 순간적으로 타오를 수는 있어도 큰 원(願)을 품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한 산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두치 앞의 모이만을 보고 일평생 쪼아 다니는 닭의 정신을 가리켜 小圓이라 한다. 눈과 모이와의 두치 간격을 직경으로 하여 한바퀴 돌려 그린 圓이 즉 그 닭의 정신의 크기이다.14
그는 또한 커다란 원(願)을 품은 언어가 얼마나 소박할 수 있는지를, 소박한 언어로 얼마나 담대한 시가 가능한지를 증명한 시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 「좋은 언어」의 일부를 옮긴다. 언뜻 보면 이 작품은 시를 아직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의 평이한 언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동엽의 시라는 것을 알고 읽어도 과연 감상에 변화가 없을까. 시인의 명성이 시의 감상을 뒤흔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신동엽이라는 이름 뒤로 밀려오는 역사의 무게와 그것을 감당하려 애쓴 시의 불가해한 생명력을 기억하고 있다. 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동엽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할 것이다.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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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연 「詩에서의 참여 문제: 申東曄의 『錦江』을 중심으로」, 구중서 외 엮음 『민족시인 신동엽』, 소명출판 1999, 262면.↩
- 『신동엽 시전집』, 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2013(이하 신동엽의 시는 이 저서에서 인용).↩
- 「斷想抄」, 『신동엽 전집』(개정 증보판), 창작과비평사 1980, 358면(이하 신동엽의 산문은 이 저서에서 인용).↩
- 「7月의 文壇」, 『신동엽 전집』 381면.↩
- 앞의 산문의 이어지는 구절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체계를 부정한다. “人間에 充實하려는 사람은 體系를 싫어한다. 體系란 鐵甲옷이다.”(「斷想抄」, 『신동엽 전집』 358면)↩
- 신동엽에게서 한용운의 모습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염무웅이다. 염무웅은 신동엽의 「산에 언덕에」를 분석하면서 신동엽이 김소월의 언어로 한용운의 정신을 읊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수영과 신동엽」, 구중서 외 엮음, 앞의 책 47면.↩
- 「詩人精神論」, 『신동엽 전집』 370면.↩
- 시인의 연민이 ‘이웃에의 연민’과 ‘인류에의 연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의 산문도 있다. 「7月의 文壇」, 『신동엽 전집』 382면.↩
- 「8月의 文壇」, 『신동엽 전집』 384면.↩
- “늘 있는 것은 存在하지 않는 것.”(「斷想抄」, 『신동엽 전집』 354면)↩
- 조태일 「신동엽론」, 구중서 외 엮음, 앞의 책 101면.↩
- 백낙청 「살아 있는 신동엽」, 구중서 외 엮음, 앞의 책 14~18면.↩
- 「傳統精神 속으로 結束하라」, 『신동엽 전집』 399면.↩
- 「詩人精神論」, 『신동엽 전집』 3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