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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새로운 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

 

페미니즘의 눈으로 읽는 문학사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문학사의 ‘여성’을 호명하다

 

문학출판계에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활발하게 출간되는 가운데 여성작가와 그들이 쓴 작품을 새로운 비평적 시각으로 읽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 속의 여성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조명하려는 기획들이 풍성한 가운데 교육현장과 일상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여성작가와 작품을 접하려는 대중적 관심도 꾸준히 지속되는 듯하다. 성별의 경계성을 통찰하며 여러 소수자의 삶을 주목하는 페미니즘의 문학사는 다양한 장르 간의 경계와 시대적 구분을 돌파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문학사를 기술할 경우, 글읽기를 포함해 문자행위로서의 글쓰기의 전과정과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속적 문학사 구상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주의 깊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1 최근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개되는 고전 여성영웅서사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쉽지 않았던 봉건사회의 금기를 뛰어넘으려는 대담한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방한림전』(작자 미상)은 당대의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동성혼을 상상적으로 구현한 각별한 작품으로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한림전』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지닌 여성 방관주가 성별을 숨기고 영혜빙과 결혼까지 한 후 공직에 진출해 남자로 행세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개의 여성영웅서사가 남장을 하더라도 정체가 밝혀진 후 본래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구조를 취한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동성혼 후 하늘이 내려준 자식까지 키우며 명예와 복을 누린다. 물론 소설은 동성혼을 금기로 여기는 시대적 관습을 의식해 몇가지 서사장치를 동원한다. 중국 명나라로 배경을 설정하고, 두 사람은 원래 천상의 부부였는데 일을 돌보지 않고 애정에 몰두한 벌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났다는 사연을 말미에 소개한다. 방관주가 평생 성별을 속인 것을 황제에게 고백한 후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도 파격적인 상상력을 완화하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다양한 퀴어서사의 창작과 소개가 활발한 흐름 속에 고전작품인 『방한림전』도 당대 사회의 금기에 저항하는 ‘퀴어 로맨스’의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듯하다. 등장인물인 방관주와 영혜빙의 당당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각각의 형태로 저항하고자 한 여성들의 성공적인 만남이라는 점에서 놀랍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2 차갑고 도도한 매력을 풍기는 영혜빙은 “나는 본래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되어 그의 통제를 받고, 눈썹을 그리며 남편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것을 괴롭게 여겨왔다. 그래서 평소 금슬우지와 종고지락을 원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이런 일이 생겼구나. 이를 어찌 우연이라 하리오? 반드시 하느님께서 내 뜻을 헤아리신 것이리라”3라며 방관주와의 만남을 기뻐한다. 영혜빙은 방관주의 남장과 사회적 활동을 감싸면서도 부부생활에서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대적 관습을 감안하여 성적 교감보다는 ‘지기’의 순수한 우정과 형제의 정으로 그려지지만, 은유적으로 서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다.

남장 신분을 고수하며 제도 속에서 성공하기를 열망하는 방관주와 그를 지지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도모하는 영혜빙의 삶은 봉건적 제약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여성의 열망을 분명히 보여준다. 더불어 두 인물의 위장된 동성혼은 당대의 젠더 규범과 성별체계를 교란하는 삶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함도 드러낸다. 소설의 동성혼과 인물의 페미니즘적 의의가 다양한 현대적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일 것이다.4 조선사회의 젠더 규범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욕망과 꿈을 환기한다.

페미니즘 비평이 문학사의 읽기와 쓰기에 기여하는 창조적 덕목이 있다면 삶과 역사를 읽는 새로운 관점이라 할 것이다.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 속에서 급진적 흐름을 띠는 문학사 연구 역시 독자의 향유 활동을 강조하며 연구영역과 감수성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연구대상 범위도 잡지, 신문, 미디어 등으로 넓어지면서 젠더 연구는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분야의 최신 흐름을 껴안는 적극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여성의 역사 쓰기와 정전 해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흐름과 더불어 최근 급진적 정체성 담론과 결합된 문학사 연구의 방향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수많은 차이와 갈래를 지닌 광범위한 페미니즘 연구의 현황을 포괄하는 것은 제한된 지면에서 가능하지 않기에 최근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경향을 드러내는 주요 논의들을 검토함으로써 문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단초로 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문학사 서술의 작업 역시 대화와 해석을 통해 쇄신되는 문학비평의 작업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논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여성의 역사 쓰기, 정전 해체의 의미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첫걸음은 여성작가의 작품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여성작가문학’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여성작가의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연구시야를 확장해간다. 이봉지는 여성을 역사 속에 복원하고자 하는 여성사 기술의 시도가 여성문학사 기술의 시도와 맞물려 있다고 설명하며 여성사 연구자들이 품는 질문을 여성문학사에도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5 이미 존재하는 문학사에서 누락된 부분만을 모아 보충하는 것으로 여성문학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여성의 경험이 남성의 경험과 변별되는 고유한 역사를 이루며, 특유의 집합적인 작품 미학을 지닌다는 여성문학론의 정체성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 예로 해방 후 ‘한국여류문학인회’의 기획 아래 총 6권으로 출간된 ‘한국여류문학전집’(삼성출판사 1967)은 식민지 이후부터 전쟁과 분단을 거쳐 1960년대 등단한 신예작가까지 아우르는 여성문학의 주요한 계보를 보여준다.6 전집의 주요 편집자인 박화성은 머리말에서 “사십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서 줄기차게 뻗어 내려온 남존여비의 완강한 관습과 지극히 인색한 사회의 모든 여건에도 꺾임이 없이 꾸준히 자기의 문학을 키우고 확대시켜 온”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는 의의를 강조한다. 제도적으로 여성문학인의 활동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배와 동료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추천과 감상을 나눔으로써 남성중심의 문학지면과 제도적 장에 대응하는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집의 출간이 당대 문학제도에서 산출된 정전 기획의 의미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7 남성작가와 다른 제도적 환경에 처한 여성작가의 글쓰기가 문학사 속에 어떻게 기입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당대 작가들의 고민의 산물로 들여다보는 관점도 필요하다. 기존의 문학사가 소외시켜온 여성의 경험을 발견하고 나누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성작가가 문학사에 기입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실감케 된다. “여성 문학의 생산을 방해하는 이러한 온갖 장애물 중에서 문학사는 여성작가가 봉착하는 마지막 관문”8이라는 통렬한 지적도 과장된 표현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문학작품의 평가에 개입된 성적 불평등을 읽어내고 새로운 가치평가와 젠더인식을 기입하려는 노력은 근대 문학사 전반에 대한 성찰 작업과 연결된다. 1980년대 운동성과 실천성을 고민하며 등장했던 페미니즘 비평은 민족과 여성, 계급의 얽힘을 둘러싼 주체 논쟁 속에서 1990년대를 통과하게 되었다. 당대 서구에서 유입된 탈근대 및 탈식민 담론들은 그 어떤 영역보다도 페미니즘 비평과 빠르게 접속하여 ‘정전’ 문학사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확장하고 구축한다. 근대, 민족, 남성, 엘리트 등의 키워드로 기존 문학사를 요약하고 이를 해체 비판하는 방식의 탈근대 담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은 여성문학 연구를 통해 확실한 급진성을 과시할 수 있었다. 김양선은 최정무, 권명아, 최경희의 젠더 연구에 담긴 탈식민주의, 탈근대 담론의 의의와 한계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실제 민족주의 담론을 (초)남성적인 담론의 정치학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여성을 배제시키는 동학”에 90년대 이후의 한국근현대문학연구가 정향되어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9 이선옥 역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수용한 일부 문학사 연구들이 획일화된 민족주의 비판을 펼쳤음을 지적한다.10 이들의 비판은 탈근대, 탈민족주의 관점을 결합한 젠더정치학이 한국문학사 전체를 ‘여성의 이중식민화’라고 간주하는 문제점을 짚고 있다. 두 논자의 우려대로 이러한 시각에 서면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 등 식민지 시기 다수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젠더의식은 제국주의적 계몽의 산물로 단일화된다. 문학작품이 지닌 성취와 균열, 저항과 적응의 양면성이 젠더의식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도 해명하기 어려워진다.

여성과 민족, 계급의 복합적 고려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어가면서 기존의 이항대립적 문학사의 이해에서 벗어나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여성문학사 서술과 연구를 고민하기란 쉽지 않다. 탈근대 담론에 대한 거리두기와 비판적 독해를 보여준 여성문학 논자들 역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불화’ ‘민족문학론의 자기동일성과 통합적 특성’이라는 이분적 구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11 민족문학론이든 탈근대 담론이든 자기동일성이라는 완결된 실체를 전제하게 되면, 극복의 시야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 근대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탈근대론 비판이 어느 순간 해체론과 뒤섞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페미니즘 특유의 운동적 성격이 감당해야 할 근대적 현실의 복잡성이 드러난다. 김영희는 페미니즘에서 근대의 산물이되 주변화되어온 여성성에 대한 적극적 가치부여가 근대의 지배적 가치나 작동기제를 넘어서는 데 중요하지만, 그것의 적극적 가치 부여만으로는 본질주의를 넘어설 수 없음을 강조한다.12 그는 페미니즘 비평이 본질주의적 이분법을 낳은 사회구조에 대한 물음과 도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성성으로 규정된 여러 가치나 정향들에 의미를 부여할 때 거기서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노력도 필요하며, 나아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적일 뿐 아니라 상호배타적인 이항대립을 해체하는 작업을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의 시각은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근대극복의 과제가 “특정한 진리 개념을 가진 서구중심적 지식의 구조를 극복하는 문제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 되어버린 근대 및 근대성을 제대로 감당”하는 적응의 문제 역시 동시적으로 제기되는 과제인 것이다.13

 

 

3. 정체성 담론과 문화론 연구의 접속

 

앞서 살펴보았듯 탈근대 담론과 접속된 페미니즘 연구가 근대 비판의 전략으로 내세우는 정체성의 해체와 유동성은 역설적으로 근대주의에 얽매인 면모를 드러내곤 한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페미니즘 연구는 문화사 연구와 신속하게 접속하면서 기존의 문학사 연구에 대항하는 출구로 부상하였다. 대표적인 논의로 소영현은 ‘민족, 부르주아, 남성 중심의 발전 사관에 기반한 문학의 선별 작업과 가치 판정이 지닌 편향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배경으로, 여성문학연구가 ‘문학’의 의미를 새롭게 재조정하고 문학의 가치와 독해법을 둘러싼 새로운 발견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14 여기에는 ‘근대문학’이란 “한갓 관념적 구성물의 차원”에 지나지 않으며 “문학사에 전제되었던 유기적 완결성과 발전사적 타당성 즉 총체적 인식이 상상된 것에 불과”하다는 근대문학 종언론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15 근대문학 혹은 민족문학의 완결성과 폐쇄성을 일반화하는 이러한 완강한 도식은 기존의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여러차례 반복돼온 주장이기도 하다.

연관하여 이 글에서 주목되는 것은 여성 주체의 범주를 강조하는 정체성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문화론적 연구방식이 실제 젠더/섹슈얼리티 연구에 어떤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에 제출된 이 글은 문화사, 풍속사, 문화연구 등에서 ‘젠더’가 문화에 대한 연구 방법론 일반으로 통합되면서 페미니즘 비평의 정치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필자의 문제제기와 달리 일부 탈근대담론에 기댄 문화론적 연구는 페미니즘의 정체성론과 대비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체성론의 핵심에서 흘러나오는 측면이 강하다. 역사적 현실에서 떼어낸 키워드로서의 감정과 보살핌, 특정한 글쓰기와 문체의 탐구는 ‘여성적인 것’의 증명을 위한 실증적 자료 나열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성별’의 범주를 쉽게 버릴 수 없는 페미니즘 연구의 딜레마야말로 페미니즘이 근대의 이중적 과제를 환기하는 절실한 지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남성중심적인 근대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주체의 운동성을 놓을 수 없는 페미니즘 특유의 실천적 지향성은 단순한 근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근대적 현실의 산물이며 일부기도 한 여성주체의 모순적인 현실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생산적 출구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 전제하는 ‘근대=민족=문학’의 대항담론구도는 “여성주의 내부를 관통하는 이질적인 정체성의 파편과 여성주의의 ‘대표/재현’ 시스템에 주목”(38면)하며 ‘복수의 문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이상의 대안을 찾기 어렵다.16

‘민족주의-남성-엘리트’ 중심의 정전 문학사에 대항하는 복수의 ‘문학들’로서 페미니즘 문학을 규정하는 시도는 최근 출간된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에도 급진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난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에서 오혜진은 강력한 정체성 정치의 귀환과 더불어 문학연구와 문화론적 연구가 한층 직접적인 방식으로 결합되고 있음을 알린다.17 기존의 한국문학사의 정전이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타자(성)에 대한 모종의 배제와 위계화를 경유 승인함으로써 형성되어왔다는 전제 아래 여성은 ‘이물적인 것’ ‘불순한 것’ ‘비문학적인 것’으로서 한국문학(사)의 전복적 가능성을 확보해왔다는 것이 오혜진의 주장이다. 이때의 페미니즘 비평은 남성적 ‘정전’의 해체에서 나아가 그동안 ‘문학(성)’이라고 규정되어온 것 전반에 대한 해체와 도전을 천명한다. 그러나 ‘타자적인 것’ ‘비문학적인 것’이라는 확장된 수사를 동원했지만 이러한 논의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본질화하여 대비하는 이분법적 구조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젠더 비평 자체가 ‘문학(성)’ 해체 비평으로 곧장 연결되는 가운데 문학사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가치기준과 비평적 해석의 중요성을 건너뛰고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과 문학성을 가늠하는 가치기준이 무엇인지 도전적으로 질문하지만, 그 답을 섬세하게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비문학적인 것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애초의 문제제기 자체를 흐려버리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의 일부에서는 한국문학사 전반을 정전주의·남성주의로 비판하는 대항구도를 주장하다가, 함께 존재해온 여성작가들의 문학적 작업을 의미화하기 위해 문학사가 ‘우리가 함께 형성하고 향유해온 공동의 자산’에 해당한다는 분열적인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는 실정도 여기에 있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대항구도를 직접적으로 적용한 분석을 포함하여 젠더적 시각이라는 느슨한 명명 아래 각기 다른 이론적 관심사와 작품 분석의 방식을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상당수의 글들이 지금까지 국문학 분야에 축적되어온 문화론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특정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문학사에 잠재한 ‘여성적인 서사’의 양상을 읽어내는 징후적 독해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신소설, 문학소녀, 소문 서사, 전쟁, 남성성, 교양소설 등 각각의 글은 낱말과 상징을 통해 한 시대의 흐름을 진단하고자 한다. 문학작품을 포함하여 다양한 기사와 칼럼, 전기적 자료를 통해 각 시대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노력 속에서 여성서사가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역사와 만나는 문화론적 연구가 지나간 시대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유도하는가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문화론 연구 특유의 징후적 독해는 이데올로기 분석의 과정에서 뚜렷한 지향성을 표출한다. 텍스트 해석의 과정에서 대중(여성) 주체는 지배적인 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체성이 길들여지는 존재로 단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신소설이라는 양식이 민족국가를 둘러싼 구심적·원심적 운동이 교차하는 가운데 번성했다든지, 남성지배체제에 균열을 시도했던 욕망의 주체로서 문학소녀의 표상을 읽는 것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18 문학작품의 향유 과정에서 문화적 실천과 문화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분석들이지만, 고유하고 뛰어난 문학작품이 포함하는 젠더적 감수성의 균열에 대한 감식과 평가의 지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영희’는 “가문, 국가, 남성의 대의를 위해 마음을 바쳐 기꺼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희생”시키는 존재 이상으로 읽힐 수 없는지,19 혹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하인숙’이 남성의 순수와 위악을 증명하기 위한 희생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토론하지 않을 수 없다.20 페미니즘 비평의 궁극적 목표가 젠더의 시각을 핵심적 주제로 부각함으로써 유의미한 현실 읽기를 도모하고 역사적 관심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면, 문학작품에 대한 섬세한 분별과 깊이있는 독해야말로 오히려 이러한 작업의 기반이 되는 필수적 행위이다. 여기서 문학작품을 섬세하게 읽는 일을 좁은 의미의 ‘문학주의’로 애써 오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주요 쟁점을 비판적으로 짚었지만, 이 책을 포함하여 최근 여성문학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는 기록문학 및 문화사, 정동과 감정 연구는 근래 페미니즘 비평의 정치성을 확장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정동, 감성/감정, 써발턴(Subaltern) 등 다양한 문화연구 주제들은 근대적 이성중심주의, 혹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억압적 기제를 비판하는 통로를 넘어서 다양하게 현실과 접속될 가능성을 지닌다. 여성문학 연구에 적용된 문화론적 접근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주의가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어떻게 일상적 욕망들을 구획하는가에 대한 젠더적 관점을 투영하며 여러 연구성과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여성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사랑과 성, 섹슈얼리티의 주제를 분석할 때, 이를 드러내는 감정과 욕망의 표현들이 시대적이면서 정치적인 산물임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체제에 맞서는 감각적이고 고유한 여성적 글쓰기의 사회적 실천 과정에 대한 세심한 분석은 그동안 여성작가의 특징으로 여겨져왔던 ‘내면성’ ‘감각주의’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근대적 제도와 질서에 맞서는 여성의 ‘정열’과 ‘감각’ ‘감정’이 그 자체로 근대를 초월하는 파격적 저항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익숙한 대립구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후 여성의 성과 사랑, 욕망의 담론을 고찰할 때 새삼 환기되는 것은 특정한 키워드 속에서 성별, 인종, 계급 등 다양한 차이를 지닌 여성들을 급진적인 성적 일탈의 이미지로 단일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박경리나 강신재 등 전후현실을 형상화한 여성작가의 전쟁서사 속에서 현실과 대비되는 ‘낭만적 사랑’이나 ‘감각’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놓인 것이 아니라 냉전구조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분단적 정체성의 현실적 모습과 연동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1 여성이 감지하는 사랑과 열망의 세계는 이념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 현실과 분리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구축되는 현실인식과 감수성 속에서 공존한다. 이 지점에서 감정, 감각의 문제를 여성적 세계로만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한 인식과 감정체계의 비틀어짐”22을 드러내는 분단체제 특유의 인식구조와도 연동시켜 입체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4. 페미니즘 비평과 문학사 연구

 

그동안 문학사 연구에서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주요한 작업은 기존의 제도화된 문학사 논의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 개인 또는 집단적 여성작가의 존재를 부각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적 타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확인하는 서술방식은 그 자체로 고정적인 인식구조를 되풀이해서 보여주기 쉽다. 그런 점에서 최근 페미니즘 비평이 결합된 문학사 연구는 ‘여성’과 ‘문학’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의 경계가 지닌 고정성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여성문학사’라는 직접적 명명보다는 ‘문학사의 젠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문학사’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여성’이라는 성별 범주 역시 사회적·문화적 구성물로서의 젠더 개념을 분명히 하며, 최근에는 남성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다양한 소수자의 시각에 선 비평으로 관심사를 넓혀가고 있다.

여성문학사를 ‘문화사’의 범주로 넓히고 한국근대의 여성문화 전반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최근 페미니즘 연구의 동향은 문학비평이 어떤 방식으로 문학사 연구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가를 짚어보게 한다. 젠더적 감수성과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게 문학적으로 발화되는 시대에 페미니즘 소설들을 읽는 비평의 역할 역시 긴요해지고 있다. 최근 부상하는 감정연구의 경우도 페미니즘 비평의 경로를 통해 독자성의 문제와 문학작품의 가치를 해명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감정의 텍스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은 가부장적 관습과 충돌하는 여성들의 감정구조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한다.23 물론 페미니즘 소설을 읽는 새로운 미적 규준으로 ‘감정의 교감’을 드는 것은 문학작품의 해석 방식으로 볼 때 지나치게 느슨한 범주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의 교감을 평가할 때 그것이 작품의 가치평가와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가의 문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인문학적 비평의 사회적 실천이 중요한 의제로 부상한 학문현장에서 문학연구와 문학비평은 분리되기 어려운 영역으로 새롭게 설정되고 있다. 프랜시스 멀헌(Francis Mulhern)이 지적한 대로 ‘문화에 관한 지식 생산으로서의 문학연구’의 우선성은 오늘날 인문학 연구의 주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핵심은 ‘비평’의 자리와 역할이다.24 그런 점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을 강조하는 문학사의 다시 읽기는 문학비평이 문학사 연구에 기여하고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환기한다. 작가의 창작활동과 더불어 독자의 창조적 읽기가 함께 작동하는 문학적 나눔의 장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야말로 ‘문학이라는 커먼즈’의 역사를 일러주는 현재적 유산이다.

 

 

  1. 이경하는 한국고전문학연구의 전제가 되는 광의의 문학개념이 고전과 현대를 아울러 여성문학연구의 유리한 지점이며, 텍스트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문학활동 자체를 중시해야 하며, 구술 및 문자행위에서 문학의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경하 「‘여성/문학/사’에 관한 이론적 고찰」,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5권(2002.12), 251~56면 참고.
  2. 「퀴어 로맨스 고전을 읽다: 방관주×영혜빙 방한림전」,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4호(2018.7), 44~45면.
  3. 『방한림전』, 이상구 옮김, 문학동네 2017, 32면.
  4. 방관주와 영혜빙의 동성혼이 당대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초월적 꿈꾸기로만 해석될 것인지, 아니면 조선 후기의 역사적 현실에서 포착되는 실질적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는 논자에 따라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선행연구에서는 방관주의 정체성을 주체적인 여성주의 인물로 보는 견해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인물로 보는 상반된 견해가 공존한다. 관련된 최근 논의로는 곽현희 「여성영웅소설에 나타난 금기와 위반: 『방한림전』의 서사와 인물을 중심으로」, 『한민족어문학』 83집(2019.3), 162면 참고.
  5. 이봉지 「왜 여성문학사가 필요한가?」, 『한국프랑스학논집』 64집(2008.11), 183~84면.
  6. 『한국여류문학전집』 6권에는 소설, 시, 아동문학, 희곡, 수필 등의 장르가 고루 포함되어 있다. 전집의 상당 부분은 소설장르에 할애되며, 박화성 강경애 백신애 최정희부터 한무숙 강신재 박경리 한말숙 정연희에 이르는 여성작가들을 아우르고 있다. 작가 구성에서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등 근대 초기 작가를 제외한 점도 특징적이다.
  7. 여성문학전집을 포함하여 1960~70년대 출간된 문학전집의 구성을 분석하는 학술적 논의들은 근대문학의 기원과 계보 찾기, 정전 계보 작성하기의 전략과 의도를 주목한다. 편집자와 출판사마다 선별 기준과 상업적 논리가 개입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문학장과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고찰로 의의를 지닐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문학작품의 향유 양상을 출판사, 문학제도, 편집전략, 국가적 기획을 비판하기 위해 특정한 문화정치의 코드로 한정하는 비슷한 논의로 귀결된다. 관련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 김양선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정전 만들기와 번역: 새로운 여성문학 선집 발간을 위한 시론」, 『비교한국학』 21권 2호(2013); 김은석 「‘한국여류문학전집’의 편집 전략: ‘여성 편집자-작가’와 편집 체계를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69집(2017.12).
  8. 이봉지, 앞의 글 191면.
  9. 김양선 「탈근대·탈민족 담론과 페미니즘(문학)연구: 경합과 교섭에 대한 비판적 읽기」, 『민족문학사연구』 33권(2007.4). 이 글이 비평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다. 김철·신형기 외 『문학 속의 파시즘』, 삼인 2001; 최경희 「친일문학의 또다른 층위: 젠더와 「야국초」, 김일영 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 책세상 2006; 일레인 김·최정무 엮음 『위험한 여성: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 박은미 옮김, 삼인 2001.
  10. 이선옥 「페미니즘 소설의 감정지도 그리기」, 『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328~29면.
  11. 이항대립적 구도를 경계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민족문학사는 민족이라는 동일성의 판타지를 추구”한다는 진단이나, “민족민중문학의 동일성 주체”에 대한 전제를 공유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선옥, 같은 글 327~29면.
  12. 김영희 「페미니즘과 근대성」, 『이중과제론』, 창비 2009, 135면 참고.
  13. 이중과제론에 대한 논의는 백낙청 「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같은 책) 참고.
  14. 소영현 「문학사의 젠더」, 『민족문학사연구』 56호(2014.11), 80면.
  15. 같은 글 81면.
  16. 이러한 대안문학사의 제안은 현대문학사의 해체 혹은 재구성을 기획하는 일련의 작업들로 이어진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천정환 외, 푸른역사 2013),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천정환, 천년의상상 2012), 『1970 박정희 모더니즘』(권보드래 외, 천년의상상 2015)이 그 예이다.
  17. 오혜진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서문을 대신하여」,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민음사 2018, 7~ 17면.
  18. 관련된 수록 평문으로 권보드래 「평민의 딸, 길 위에 서다: 신소설의 성(性)·계층·민족」; 정미지 「불온한 ‘문학소녀’들과 ‘여학생 문학’의 좌표: 1960년대 독서의 성별화와 교양의 위계」.
  19. 이진경 「섹슈얼리티의 프롤레타리아화: 1970년대 문학과 대중문화의 성노동 재현」,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7~17면.
  20. 강지윤 「감수성의 혁명과 반(反)혁명: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여성이라는 암호」, 같은 책 190~ 91면.
  21. 관련 논의로 졸고 「4·19혁명과 젠더 평등의 의미: 강신재와 박경리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2권 3호(2018.9), 94~95면.
  22. 분단체제와 정동의 관련성을 분석한 글로는 김성경 「분단체제에서 ‘사회’ 만들기」,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42면 참고, 필자는 여기서 분단적 현실이 주체와 타자 사이의 적절한 관계 맺기를 어렵게 하는 특유의 뒤틀린 분열적 다중성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분단분열증’을 설명하고 있다.
  23. 이선옥은 정치적 올바름과 문학적 도식성의 양갈래 속에 놓인 페미니즘 작품을 읽는 코드로서 감정의 공유텍스트적 성격을 들고 있다. 그가 『82년생 김지영』이 독자와 호응하는 이유를 분석할 때 ‘쿨함’이라는 감정적 특징을 지닌 포스트페미니즘의 칙릿 캐릭터의 진화 양상과 연결지어 해석한 지점은 이 작품을 두고 문학성과 정치성을 대비시키는 반복적 구도를 돌파하는 흥미로운 지점으로 다가온다. 이선옥, 앞의 글 341~42면.
  24. 프랜시스 멀헌 「비평혁명의 정치사」, 김영희 옮김, 『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301~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