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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선영 吳善映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모두의 내력』이 있음.

greenz45@naver.com

 

 

 

우리들의 낙원

 

 

1

 

퇴근 후, 남편은 작은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좋아하는 꼬막무침과 연근조림 앞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는 고시생처럼 입속에 음식을 밀어넣고는, ‘잘 먹었다’는 말도 없이 작은방으로 사라졌다. 내심 신경 써서 만든 반찬이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냉동식품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못 끝낸 잔업이 있는가 싶었다. 같은 부서의 사원 한명이 사표를 냈다고 했었다. 적은 임금과 고강도 업무, 경직된 사내 분위기에 자신의 미래와 비전을 걸 수 없다면서 말이다. 남편은 사원의 말에 동의하며 미래가 창창하니 진취적으로 앞날을 개척해나가라는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은 30대 초반의 미혼 남성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은 그렇게 사표를 쓸 일이 없다는 말을 각주처럼 덧붙였다. 남편의 조언은 훌륭했으나 과장과 사원으로 구성된 부서의 일은 모두 남편에게 돌아왔다. 그렇지만 잔업도 하루 이틀이지, 주중뿐 아니라 주말에도 작은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탁탁, 타닥타닥 …… 타타타탁탁. 탁!

빠르고 짧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뒤이은 정적.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의미없는 후크송처럼 반복되었다. 남편이 피시게임에 빠졌나 싶었다. 하지만 20대에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서 피시방 24시간 정액권을 끊을 때에도 무관심했던 남편이다. 뒤늦게 게임에 빠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윤후에게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조차 제한하는 남편이 저녁 내내 게임을 할 확률은 낮아 보였다.

“윤후 아빠, 요즘 작은방에서 뭐 해?”

“으응…… 뭐 좀 하느라고. 나중에 말해줄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뒤 윤후와 거실에서 스티커를 뗐다 붙였다 하며 놀고 있었다. 작은방 문이 활짝 열리고 남편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 마치 가정용 망원경으로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미확인 소행성을 찾은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우리 주택청약통장 있지?”

“응.”

“얼마나 됐지?”

“윤후 태어났을 때 들었으니 만 3년 좀 지났겠네.”

“300만원 만들어졌지?”

남편이 거듭 확인을 했다. 나는 대답을 하고 상어가족 스티커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상어, 엄마상어, 아기상어가 바닷속 용궁으로 유유히 들어가고 있었다. 윤후가 엠보싱이 들어간 폭신 스티커로 용궁의 외벽을 꾸몄다.

“오케이, 그거면 됐어!”

남편이 청소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다부지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기 온천장 일대랑 T아파트가 재개발된대. 삼성이랑 현대가 연합으로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다고 확정했다더라. 대기업 시공사에 상권이랑 교통까지 끝내줘서 당첨되면 바로 그날로 피(P) 붙을 거야. 거기가 치맛바람은 크게 없어도 전통적인 교육동네여서 학군까지 좋잖아. 윤후 학교 갔을 때를 생각해도 이득이지.”

윤후에게 불가사리 스티커를 쥐여주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막연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신문에 공고 다 난 거야.”

국회의원들만 알고 있다는 도로계획이나 도시재생사업, 그것도 아니면 아파트 통장만 돼도 미리 알 법한 도로포장공사 소식도 아니고. 신문, TV, 라디오 심지어 버스 옆면의 광고판까지 붙어 있는 정보를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말하고 있다니. 작은방에서 며칠을 끙끙거린 이유가 고작 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나 싶었다.

“그래, 근데 나처럼 투자가치를 정밀 분석한 사람도 없을 거야. 남들이 하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주변 시세랑 거래, 최근 3년 이내 매매 가격까지 진짜 면밀하고 꼼꼼하게 살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야. 회사에서 프로젝트 따낼 때보다 더 열심히 알아봤어. 그러니까……”

남편이 나와 윤후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건 당첨이 돼서 이사를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나는 파란색 아빠상어 머리에 황금 왕관을 붙이면서 남편의 입을 막았다.

남편이 나와 윤후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늘어나는 생활비와 교육비를 걱정하고, 남은 정년과 퇴직금을 계산하면서 우리 가족의 미래와 노후를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성을 쏟고, 마음을 기울인다고 해서 밤하늘의 별 같은 이야기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남편이 말하는 미확인 소행성에 함께 열광하기엔 나는 육아와 집안일로 지쳐 있었다. 그가 찾은 별이 이미 오래전에 발견돼서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북극성이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사이 윤후는 용궁 입구에 해파리와 오징어, 문어, 조개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놨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용궁이 텔레비전과 미니책상, 타요 미끄럼틀, 뽀로로 붕붕카로 빼곡한 우리 집 거실 같았다. 나는 말없이 윤후가 붙여놓은 해파리, 오징어, 문어 스티커를 다 떼어냈다. 아이가 스티커를 달라고 졸랐지만 못 들은 척하면서 한 손으로 구겨버렸다. 남편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

 

남편이 말한 동네, 그러니까 T아파트와 온천장 일대에 나도 살았던 적이 있다. 내 손으로 부동산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 정보를 얻고 흥정을 하며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정해놓은 집에 쥬쥬 인형과 레고 블록을 챙겨 이사하면 되던 때에 말이다. 안방의 꽃무늬 벽지가 내 방의 별모양 스탠드보다 예쁘다는 것에 속상해하던, 벽지의 가격과 재질, 인테리어 시공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이직으로 그곳에 전학을 갔다. 열두살, 50명의 아이들이 100개의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김미연입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인사를 하고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얼굴이 까맣고 코가 납작한 남자애가 상체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롯데월드 가봤나?”

전학 온 학교에서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응.”

1991년의 일이었다. 88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에 생긴 롯데월드는 한국의 디즈니랜드를 표방하면서 서울 시내에 세워졌다. 실내, 실외로 구성된 놀이공원은 아이스링크와 민속박물관까지 있어서, 국민학생들에겐 꿈과 희망의 에덴동산과 다름없었다. 우리 집은 롯데월드로 가는 지하철 노선에서 먼 곳에 있었지만, 이사 오기 전 엄마를 졸라서 그곳에 놀러 갔었다.

“진짜 좋더나? 그럼 후룸라이드도 타봤나?”

다시 질문이 쏟아졌다. 반 아이들이 나와 남자애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최대한 친절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평범하지는 않게. 전학생에서 학급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후룸라이드 타봤는데, 그보단 월드모노레일 타고 매직아일랜드 가는 게 훨씬 좋더라. 밖으로 나가면 공기도 좋고, 석촌호수도 구경할 수 있구.”

“어? 그거 수빈이도 타봤다고 했는데.”

대화의 중심인물이 이동했다. 남자애는 검지로 옆 분단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나풀거리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얼굴이 하얀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작은 얼굴에 마른 체구, 쥬쥬 인형처럼 구불구불한 파마머리. 반 아이들이 명랑만화 속 조연이라면 이 아이만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장발장』을 읽던 여자아이는 우리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안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매직아일랜드 갔다가 63빌딩 아쿠아리움도 다녀왔어.”

수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63빌딩은 매직아일랜드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힘을 주어 발음했다. 50명의 학생 중 유일하게 롯데월드를 경험해본 이가 할 수 있는 표정과 태도로 말이다. 그러고는 두 사람만의 암호를 읊는 것처럼, ‘서울’의 특정 장소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암호 같기도, 기호 같기도 한 고유명사들의 향연에 반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시들해졌다. 지치지 않는 관심과 열정으로 문제를 내는 것은 수빈뿐이었다. 그 애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서울의 특정 장소인지, 그 장소를 아는 나인지, 아니면 그곳을 아는 자신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빈의 암호를 성실하게 풀었다. 그렇게 해야만 될 듯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열두살의 나는 은연중에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수빈에 대해서는 하굣길에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교문을 나오자 모서리가 반듯하게 각이 진 그랜저가 서 있었다.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 수빈을 정중하게 맞았다. 수빈이 차에 올라탔다.

“미연아, 얼른 타.”

짙게 썬팅된 유리문이 내려가더니 수빈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얼른 타, 얼른!”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조금은 머뭇거리는 척하면서 그 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수빈이 보이는 행동들이, 단순히 이곳 지리가 낯선 전학생에 대한 호의와 배려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버렸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 애 옆에 앉았다. 검은색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교문 앞을 벗어났다.

“집이 어디야?”

“T아파트 7동이야.”

끄덕끄덕. 수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T아파트는 온천장과 M로터리 사이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였다.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변 환경이 좋아서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는 중이라고 들었다. 엄마는 T아파트가 이 지역에서는 서울의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해당한다며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이라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88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집값이 고공상승을 했다. 오래된 판잣집과 단독주택들이 도미노처럼 헐리고, 그 자리에 크고 깨끗한 아파트와 고급빌라가 들어섰다.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를 전전하던 우리 집은 끝내 치솟는 집값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방으로 이사를 했다. 아빠의 이직도 거기에 한몫했다. 엄마는 서울에서 쫓겨났다는 열패감과 함께 내 집을 갖게 되었다는 충만함과 기쁨에 휩싸여 있었다. 당연히 엄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에겐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우린 롯데월드와 가까운 강남 어디쯤에서 살다 이사 온, 깍쟁이 서울내기로 통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수빈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3

 

“가볼래?”

남편이 룸미러로 나를 흘낏거렸다. 목적어가 없어도 남편이 말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윤후는 카시트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파란색 운동화가 흙투성이였다. 가까운 시민공원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주차장 부족으로 날마다 몸살이었다. 이중주차는 필수에다 밤늦게 집에 올 때면 아파트 건너편 도로에 무단주차를 해야만 했다. 주차문제로 앞뒷집이 싸우는 일이 층간소음 못지않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반상회에서 주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내 놀이터였다. 아이들 수에 비해 놀이터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 놀이터가 필요하냐는 의문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정말로 놀이터가 사라졌다. 논바닥의 잡초처럼 그네와 미끄럼틀이 손쉽게 뽑혀나갔다. 나무 벤치와 철봉이 있던 자리에 시커먼 시멘트가 발리고, 흰색 주차선이 그어졌다. 대체공간을 만든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뿌리가 뽑힌 놀이터에 새잎이 돋아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놀이터를 찾아 주말이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골목에서 동네친구와 노는 일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내겐 익숙하고 당연했던 생활이 윤후에겐 이벤트로 바뀌어 있었다. 미끄럼틀 없는 아파트에 사는 일이 부모의 무능함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당신 거기서 몇년 살았지?”

“한 2년 살았나?”

“90년대에 그 동네 살았으면 자기네도 좀 넉넉했겠다. 그땐 장인어른 사업이 잘됐나봐.”

남편이 핸들을 돌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T아파트에선 2년을 살다 이사 갔다. 아빠는 집을 담보로 무리하게 투자를 했고, 엄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 정리를 했다. 엄마의 생애 첫 집이자 마지막 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삿날 엄마는 꽃무늬 벽지 앞에서 울고, 나는 별무늬 스탠드 앞에서 울었다. 아빠는 전학 가더라도 친구들에게 전화나 편지를 하면 된다고 나를 달랬다. 그러니까 아빠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다. 엄마와 나의 눈물이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리의 호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렇지, 그 이후론 이 모양 이 꼴이니.”

“에이, 그런 뜻은 아니고.”

남편이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신호등 앞에 차가 섰다. 초록색 도로표지판에 온천장과 T아파트 이름이 쓰여 있었다. T아파트가 가까워질수록 내 속의 무언가가 조금씩 비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감정들을 몰아내기 위해 자고 있는 윤후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빈과 나는 더 친해졌다. 수빈은 내게 담임의 패션센스와 시끄럽게 떠드는 반 아이들, 자신이 좋아하는 6학년 학생회장 오빠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주 집을 비우는 아빠와 그럴 때마다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에 대해서도. 그런 날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자주색 무선전화기를 들고 별모양 스탠드 앞에 앉아 수빈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가 잠든 밤, 노란 불빛 아래서 수빈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 안에 그 아이의 자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둘이 롯데월드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수빈은 롯데월드를 각자 경험한 것이 아쉬운지 자주 말을 꺼냈다. 자유이용권을 끊어서 하루 종일 나랑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그 애가 롯데월드의 구석구석을 마치 학교 운동장처럼 자세하게 말할 때면, 나는 한번 가본 그곳을 계속 떠올리며 이야기에 동참해야 했다. 타보지 못한 놀이기구를 타본 것처럼, 본 적 없는 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처럼, 먹은 적 없는 스낵코너의 츄러스와 슬러시를 여러번 맛본 것처럼. 그렇게 상상과 허상, 망상을 더해서 말하고 나면, 정말이지 내가 연간회원권을 들고 그곳을 여러번 방문한 것 같았다. 그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아서 수빈보다 더 큰 목소리로 롯데월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빈아, 우리 다음에 서울대공원 갈래? 롯데월드랑 가까운데 거기도 좋아.”

내가 먼저 수빈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그 애의 관심과 흥미를 끌면서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곳. 서울과 관련된 장소들은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

“그래, 너는 서울에서 살다 왔으니까 잘 알겠다. 우리 꼭 같이 가자.”

수빈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으쓱해져서, 가본 적 없는 서울대공원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우린 너무 잘 맞는 것 같아, 너 전학 안 왔으면 나는 어쩔 뻔했지?”

자동차 뒷좌석에서 수빈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영혼의 단짝이 있다면 우리 같은 사이일 거야, 우리 우정 포에버’와 같은 열두살 소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찬사와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우정 팔찌를 나눠 차고, 비밀일기장을 만들어 서로의 속내를 공유하자고 했다.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용감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빈은 아름다웠다. 그 애가 흑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 팔짱을 낄 때면, 나는 수빈의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황홀해지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수빈이 하는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 애가 발음하기도 어려운 어떤 장소들을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수빈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롯데월드를 놀이터처럼 방문했으며, 63빌딩 아쿠아리움과 올림픽공원을 다녀온 아이가 되어 있었다. 반에서 오직 수빈만이 경험했던 어떤 것들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수빈의 유일한 친구로 말이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다는 우월함과 동질감이 수빈과 나 사이를 공고하게 다져주었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우정의 최곳값이라 생각했다. 나는 수빈의 친구이고 싶었으며, 친구로서의 시간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그게 아니라면 그 시절 내가 했던 행동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터에 주차를 했다.

“엄마, 포클레인이 이렇게 이렇게 땅을 파고 있어.”

중장비를 좋아하는 윤후가 대형 포클레인을 보면서 흉내 냈다.

“이야, 대형 건설사라 그런지 작업 속도 한번 빠르네. 아직 청약당첨 발표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터 닦기를 하고.”

남편의 목소리가 윤후보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거대한 굴착기가 3층짜리 건물을 허물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과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 휘어진 철근이 덤프트럭에 실려 갔다. 시멘트 건물이 무너지면서 뽀얗게 먼지가 날렸다. 노란 안전모를 쓴 인부가 소방호스 같은 굵은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안전제일’ ‘정확한 시공’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곧 무너질 담벼락에는 붉은 글씨로 ‘공가’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쪽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이 남아 있었다. 거기엔 공가, 빈집이란 말 대신 재개발건축을 반대한다는 의미의 빨간 깃발들이 부표처럼 떠다녔다.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지금의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기억 속의 온천장과 다른 모습이었다. 스멀스멀, 당시의 거리와 상가, 사람들이 형태를 갖추면서 다가왔다. 어떤 이름들이 명확해지고, 누군가의 얼굴이 명징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아주 먼 곳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어떤 기억들을 자꾸만 밀쳐내고 있었다. 초조해지려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싶었다.

온천거리에 접어들자 몇개의 온천탕이 보였다. 열개가 넘었던 목욕탕들이 두세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노래방, 술집 간판 때문에 밤에도 낮처럼 환하던 곳이 낮에도 밤인 것처럼 어두웠다. 촬영이 끝난 영화세트장처럼 도로는 음산하고 조용했다. 꼬리가 뭉툭하게 잘린 고양이들이 건물 뒤로 사라졌다. 쌍둥이처럼 똑 닮은 건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내가 알고 있던 상호명과 다른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건물은 낙원탕과 낙원장으로 보였다.

 

 

4

 

수빈은 온천장에서 제일 큰 ‘낙원탕’의 외동딸이었다. 낙원탕의 천연암반수 온탕에 몸을 누이면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피부병마저 깨끗이 낫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처럼 낙원탕 옆에는 쌍둥이 건물인 낙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온천장의 상징인 낙원빌딩들. 낙원탕, 낙원장의 뾰족한 지붕은 중세 유럽의 성처럼 보였는데, 그건 공주 이야기를 좋아하는 수빈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첨탑 아래, 낙원장의 맨 위층은 수빈이네 집이었고 수빈은 그곳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라푼젤처럼 자랐다.

수빈은 자신의 집으로 나를 자주 초대했다. 엄마는 내가 수빈과 친구가 된 것을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수빈의 이름을 언급하며 잘 놀다 오라고 했다. 그 애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고 신경 써서 옷을 입혔고, 삐삐머리를 풀어 손이 많이 가는 디스코머리를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엄마는 여유가 있고 너그러운 중산층 사모님 같았다. 내 머리방울과 원피스, 구두를 골라주던 엄마에게선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났다. 엄마는 내 집을 소유한, 집주인에게 걸맞은 품위와 인격을 연습했던 것일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와 안식이 저도 모르게 몸 밖으로 흘러넘쳤던 것일까. T아파트를 떠날 때의 안타까움에는 상냥하고 친절했던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수빈이 옷차림을 따지는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두번 세번 거울을 보았다.

낙원장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내게 알은체하며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나는 무심하게 대답하곤 계단을 올라갔다.

“여관 입구로 들어오는 거 너무 싫어. 내가 계속 말하니까 아빠가 중학생 되기 전에 이사하자고 하셨어. 너랑 같은 아파트로 이사 가면 좋겠다.”

수빈이 아이보리색 소파 위에 앉아서 말했다. 성 모양의 지붕과 빨간 창문이 마음에 들어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낙원장 간판 아래로 들어오는 게 너무 싫다고 말이다. 한낮에도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뭐라고 쑥덕거리는지 알고 있다면서.

“나도 매일 여관으로 들어오는 건 진짜 싫을 것 같아.”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나는 수빈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고 여관에 들어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더 크게 반응했다. 빨리 이곳을 탈출하길 바란다는 위로까지 했다.

거실 한쪽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와 대형 텔레비전, 커다란 스피커가 달린 전축이 보였다. 실내용 골프대와 냉장고에 붙은 세계 각국의 기념자석, 유리장 가득 진열된 수입 양주병도 보았다. 수빈이 방의 캐노피 침대와 연분홍색 화장대, 알록달록한 향수병까지. 백화점에서 보았던 비싸고 화려한 물건들이 집 안을 채우고 있었다. 수빈은 악의 없이 천진한 얼굴로 이 모든 것들이 싫증 난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진짜로 싫어? 이제껏 묻지 못했던 물음들이 목구멍에서 간질거렸다.

“미연아, 나 주말에 서울대공원 갈 건데. 놀이기구 좀 추천해줘.”

수빈이 아몬드가 통째로 박힌 수제쿠키를 먹으면서 말했다.

아삭아삭. 수빈이 입을 움직일 때마다 아몬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몬드는 볶은 땅콩과는 또다른 맛이었다. 달콤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했는데,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질감도 달랐다. 수빈은 수제쿠키 속의 아몬드만 뽑아 먹고는 다른 부분을 접시에 뱉어버렸다.

추천이라…… 잠시 고민하는 사이 수빈이 쿠키를 더 가지러 주방으로 갔다. 탁자 위에는 『수도권 관광안내』 책이 놓여 있었다. 나는 수빈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책을 펼쳤다. 롯데월드, 63빌딩, 용인민속촌, 용인자연농원과 함께 ‘서울대공원’에 노란색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수빈의 버킷리스트인 듯했다. 서울대공원 정보를 빠르게 훑다 어느 구절에서 멈추었다.

 

1984년에 개장한 서울대공원은 서울 창경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창경궁의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하면서 개원하였습니다.

 

한번 읽고, 두번 읽고, 세번을 읽었다. 롯데월드랑 가깝다고 했던 서울대공원은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우쭐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수빈이 주방에서 쿠키 봉지를 들고 거실로 오고 있었다. 나는 입을 우물거리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재빨리 고쳤다.

“어, 어! 그거 우리 엄마가 보는 거야!”

수빈이 내 손에 들린 관광책을 보면서 서둘러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수빈이 알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짧은 순간,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황급히 다음 말을 꺼낸 수빈의 태도를 보면서 깨닫고 말았다.

그 애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내 입은 수빈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신나게 떠들고 있었지만, 내 표정과 눈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뜨거워졌다.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서 침조차 삼킬 수 없었다. 수빈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서울대공원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을까, 사실은 그게 아니라며 고해성사하듯 고백해야 했을까.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수빈의 집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온천장에서 T아파트까지 걸었다. 재개발 건축허가가 나자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가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했다. 남편 말대로 교통, 학군, 상권까지 좋은, 그러나 지금은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으로 이루어진 동네는 투기꾼들과 건설사의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T아파트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황량한 공터뿐이었다. 전쟁이 나서 폭탄이 떨어지거나 흉흉한 전염병이 돌아서 마을이 폐허가 된 게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섹스를 하고, 공부를 하던 공간이 이렇게 간단히 삭제돼버릴 줄이야. 분홍색 벽지와 주황색 알전구, 체크무늬 타일이 뭉텅뭉텅 뜯겨나갔다.

윤후가 공터 주위를 뛰어다녔다. 아이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아파트 입구니까 1동 자리고, 그 옆에 아파트 상가가 있었겠구나. 상가 2층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랑 만화책을 자주 빌렸는데. 연체기간이 지나서 몰래 반납통에 넣고 도망치기도 하고. 음…… 저기가 7동이면 그 앞이 코끼리 놀이터 자리네. 코끼리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자주 탔지. 이곳과 관련된 기억들을 강제로 밀쳐버리려고 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나는 너무 쉽게 T아파트를 떠올리며 추억하고 있었다. 열두살의 내가, 공터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그 미끄럼틀 앞으로 수빈이 나를 찾아왔었다. 검은 자동차 없이 뚜벅뚜벅 걸어서 내 앞에 섰다.

“갑자기 네가 가버려서 놀랐어.”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프게 웃었다. 다시 탑 속에 유폐될 자신이 두려운 듯, 밧줄처럼 땋은 제 머리칼을 타고 첨탑에서 탈출했다.

수빈은 책가방 속에서 아몬드가 박힌 수제쿠키와 초콜릿 한통을 꺼내주었다. 엄마가 유럽 여행길에 사온 스위스 초콜릿이라며 진짜 맛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평소의 나라면 수빈이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다 좋다고 이야기했을 터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으로 모래만 찼다. 발길질을 세게 할수록 누런 흙먼지가 날렸다. 그때마다 수빈의 빨간 구두에 모래가 들러붙었다. 그 애는 미동 없이 서서 모래바람을 맞았다. 수빈은 이제 알았을까. 내겐 롯데월드의 후룸라이드보다 코끼리 놀이터의 미끄럼틀이 더 익숙하다는 걸.

수빈이 떠나고, 미끄럼틀 꼭대기에 앉아 초콜릿 통을 열었다. ‘스위스 밀크 초콜릿.’ 하얀 초콜릿은 입안에 넣자마자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초콜릿답지 않게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수빈은 이걸 매일 먹겠지. 그 애와 나의 거리가 63빌딩 높이만큼 멀었다는 걸,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그 거리와 간격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생각을 할수록 초콜릿이 쓰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로 수빈은 몇번 더 나를 찾아왔다. 코끼리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에 앉았다. 손바닥이 빨갛게 되도록 철봉에 매달렸다. 쇠 냄새가 나는 손바닥을 바지춤에 비볐다. 그 애가 싫어하는 불결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수빈이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먼저 인사할 때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크게 싸우거나 다른 친구가 생겨서도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레,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우리는 멀어져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다.

“어릴 때 살았던 동네가 없어져서 섭섭해?”

남편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이곳에 오기를 그토록 주저했는데, T아파트 이름만 나와도 못 들은 척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다 사라져버렸을 줄이야. 가슴 저 밑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조금씩 퍼져나갔다. 물기를 먹은 감정들이 나를 휘어 감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나는 두 손으로 눈을 세게 비볐다. 손끝이 차가웠다.

 

 

5

 

모델하우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기침체와 대출규제 등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났다지만, 대형 건설사가 짓는 교통요지의 아파트는 여전히 호황이었다. 윤후는 내레이터 모델이 준 노란 풍선을 들었다. 남편이 라운지에서 받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이 손을 잡고 걸었다.

“아빠, 여기 진짜 좋아요!”

윤후가 전시된 침대 위에 앉으며 소리쳤다.

제 방이라도 되는 양 작은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즐거워했다. 책상 의자에 앉아 진열된 나무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남편이 윤후 사진을 찍으며 기꺼워했다. 덩달아 내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갔다.

31a평형은 기존의 같은 평수에 비해 실내가 넓고 구조가 좋았다. 작은방에는 특별히 서비스 면적이 더 들어가서 아이 방으로 제격이었다. 창이 크고 많아서 남향집의 장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수납장이 많은 주방과 고급스러운 드레스룸도 마음에 들었다.

“와보길 잘했지?”

남편이 내 기분을 살피며 물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에게 괜한 핀잔을 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저희 아파트의 핵심 콘셉트는 바로 ‘아이가 살기 좋은 아파트’입니다. 키즈까페나 근처 공원을 갈 필요 없이, 아파트 안에서 다 해결할 수가 있는데요, 단지 내 주민복합센터에는 아동들을 위한 키즈까페와 어린이도서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독서실과 스터디룸이 마련됩니다. 아파트 주민이라면 누구나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용할 수 있고, 이용료는 관리비에 청구되니 따로 결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히 친환경놀이터와 운동장이 주요 스팟마다 마련되구요, 여름에는 특별히 분수광장을 개방해서 물놀이까지 할 수 있습니다.”

대형 브라운관에 완공될 아파트의 설계도와 모형도가 떴다. 친환경소재로 만든 미끄럼틀과 시소, 모래놀이터, 그리고 물놀이 시설까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을 빼앗기기 충분했다. 남편과 나는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스마트폰에 핵심내용을 메모했다. 설명을 듣다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어, 죄송합니다.”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내 발을 밟고 나서 말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설명회장이 승객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 같았다. 여자는 나를 보지 않은 채,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람 많은 곳에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붉은 숄더백을 멘 여자가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나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옆얼굴을 보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었다. 내가 아는 그 애와 닮은 듯하면서 다른 사람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그때 얼굴이 남아 있겠어, 하면서도 나는 붉은 숄더백을 눈으로 계속 따라갔다. 여자가 인파 속에 묻혀 사라지자, 열두살의 수빈이 슬그머니 소환되었다.

수빈의 소식은 지역뉴스를 통해 들었다. IMF와 경기침체로 관광산업이 위축되면서 온천거리의 손님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그즈음 늘어나기 시작한 찜질방과 대형 스파도 목욕탕 손님이 줄어들게 된 요인이라고 했다. 낙원탕은 찜질방을 갖춘 ‘파라다이스 스파’로 증축되었다. 구청장과 시의원이 개업식에 참석해 리본을 커팅하는 모습이 기사에 나왔다. 하지만 무리했던 투자에 비해 매출이 오르지 않았고 결국 파라다이스 스파는 매각되고 말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 수빈에게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애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풍경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수빈은 언제 온천장을 떠났을까, 바라던 서울 시민이 되었을까. 폐허가 된 지금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그 시절의 온천장과 T아파트를 아는 이가 있다면 누구에게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꼬리잡기하듯 모델하우스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 내 물음에 답해줄 이는 없을 것 같았다.

“엄마, 우리 언제 이사 와요?”

모델하우스를 나오며 윤후가 말했다.

스크린에 떠 있던 모형도가 떠올랐다. 대형 놀이터와 키즈까페, 물놀이 시설에서 해맑게 노는 윤후의 모습이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까르륵, 웃으면서 머리카락이 땀에 젖을 정도로 신나게 뛰어놀았다. 윤후만큼은 그런 곳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청약일이 일주일 뒤고, 삼일 뒤에 발표가 난대. 그러고 나면 계약금을 내야 하는데, 우리 적금 만기일이 언제지? 그거 다 깨면 계약금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남편은 당첨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다음 계획을 꺼냈다.

그러게, 당첨이 되면 이후가 더 문제네. 계약금에 중도금, 잔금까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마음들이 현실적인 금액 앞에서 픽픽 터져버렸다. 모델하우스에 온 사람들은 전부 그 돈을 가지고 있을까. 은행대출을 받는다 해도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닌데. 그럼 수빈은? 그 애도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까. 아이보리색 소파 위에서 궁전 같은 집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던 수빈의 모습이 겹쳐져,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애가 은행융자금과 대출금 이자로 고민한다니, 줄을 서서 31a평형 견본주택을 살펴본다니.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입안이 텁텁해지면서 쓴맛이 올라왔다. 스위스 밀크 초콜릿을 먹었을 때처럼 쓴맛은 점점 강해졌다. 시큼하고, 씁쓸하고, 불쾌한 맛들이 입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나는 침을 가득 모아서 퉷, 하고 뱉었다.

저 멀리 대형 크레인이 보였다. 크레인 유리창에 햇살이 부딪쳐 퍼져나갔다. 레미콘들이 부지런히 통을 굴리며 움직였다. 노란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지게차를 몰아 공사장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다. 깨끗하고 미끈하게 태어날 그곳을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