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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제니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가 있음. funnypen@hanmail.net
개미의 심장
개미의 심장이 버섯 위에 놓여 있다
버섯은 백색 송로버섯이다
정오의 태양
나는 배가 고프다
배고픔의 미래
배고픔의 밀실
배고픔이 개미를 떠밀고
나를 송로버섯 쪽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끌리고 나는 밀린다
밀리고 끌리다가 허리가 부러진 사람
송로버섯 곁에는 개미의 심장이
개미의 심장 곁에는 어제의 황혼이
부러진 뼈의 단면엔 검은 구멍이 있다
구멍은 빛나고 창은 열린다
열린 창 너머론 기약 없는 계절들
계절들 너머론 확신할 수 없는 이름들
다리가 있어도 갈 수 없는 밤
나는 누워 있고 개미는 멀어진다
밤의 창에 어리는 얼굴들 몇개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송로버섯 뒤에는 무한한 송로버섯
무한한 송로버섯 뒤에는 희고 희미한
심장 없이 희망 없이 멀어지는 밤
가만히 누운 채로 미끄러지는 밤
양치식물의 얼굴로 봄이 오고 있었다
간신히 흐릿하게 개미의 심장 곁으로
물의 치유
눈을 감았다
두번 다시 뜨지 못할 것처럼
흰빛과 좁고 긴 복도와
울음과 먼지와 곧고 가는 세로의 꿈
지속되는 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연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흐르고 멈추다 사라지는 꿈
사라지고 맺히다 떠오르는 꿈
직선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나를 데려간다
차갑고 따뜻하고 멀리에서부터 오는 물
새들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다
고백의 음조로 흔들리던 눈빛이 있었다
언제나 보아왔던
내가 잘 아는 처음 보는 얼굴
보고서도 보지 못한 표정이 찾아올 때
듣고서도 듣지 못한 목소리가 두드릴 때
몸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물
그 모든 가장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물
눈을 뜨자 눈물 같은 얼룩이 있었다
처음으로 너를 나라고 부르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