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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방위비분담금, 무엇이 문제인가

 

 

박기학 朴琦鶴

평화통일연구소 소장. 저서 『트럼프 시대, 방위비분담금 바로 알기』 『한반도 평화협정』(공저) 등이 있음.

pgh21@korea.com

 

 

지난 4월 5일 제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하 10차 협정)이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발효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올해 1조 389억원을 미국에 지급해야 한다. 이는 47만 3천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 모두에게 22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액수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경제를 위해 써야 할 소중한 국민 세금이 뭉텅이로 날아간 셈이다. 10차 협정은 역대 최악의 굴욕적인 협정으로 평가된다. 방위비분담금 증가율이 평화 정세임에도 불구하고 유례없이 높은 8.2%에 달하고 여러 삭감 요인이 무시되었으며 많은 독소조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10차 협정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한미군이 사용한 화장실 청소비나 세탁·목욕·폐기물처리 용역비를 대주는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 공공요금이 방위비분담 항목으로 신설되었고, 방위비분담금 지급 범위가 해외 주둔 미군 및 사드(THAAD) 운영·유지비에도 쓰일 수 있게 넓어져서 분담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굴욕적인 방위비분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가? 1991년 시작되어 올해로 29년째를 맞는 방위비분담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 글은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방위비분담의 실상을 살펴보고 10차 협정이 최악의 협정이 된 배경도 살펴볼 것이다. 방위비분담은 주한미군의 장래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남북 및 북미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이런 한반도의 정세 변화 속에서 주한미군의 장래를 전망하며 방위비분담의 폐기 필요성을 알아볼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 제5조와 미군 주둔비 분담 원칙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거해 주둔한다. 그런데 미군의 주둔비용 분담 등에 관한 사항은 1967년 발표된 주한미군지위협정(한미SOFA)에 나와 있다. 한미SOFA 제5조 2항을 보면 한국(주둔국)은 시설과 구역(부지)을 제공하는 책임만 진다. 그밖의 모든 주한미군 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제5조 1항). 한미SOFA 체결 협상 때 한국은 미국에 시설과 구역의 사용료(또는 임대료)를 낼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공동방위를 하는 만큼 주둔국도 기여가 있어야 한다면서 한국정부가 부지 제공의 책임을 지도록 요구했고 한국이 이를 수락했다. 즉 한미SOFA 제5조는 주한미군 주둔경비 분담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한국은 시설과 구역을 책임지고 나머지 미군 유지비는 모두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1991년에 한국과 미국은 한미SOFA 제5조에 대한 특별협정을 체결했다. 이로부터 이른바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어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한국이 지원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제1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제1조에 한국은 주한미군지위협정 “제5조 제2항에 규정된 경비에 추가하여 주한미군의 한국인 고용원의 고용을 위한 경비와 주한미군 주둔에 관련된 다른 경비의 공정한 부분을”(강조는 필자)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결국 미국 자신이 부담하기로 했던 미군 유지비의 일부를 한국에 떠넘긴 것이다. 그렇기에 방위비분담은 출발부터 불평등성을 안고 있었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불법부당성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의 일부만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1차 협정(1991~93년)은 한국이 주한미군 고용 한국인 노동자의 인건비 가운데 14%를 부담한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2차 협정(1994~95년)은 한국이 주한미군 현역 및 군속의 인건비를 제외한 현지발생 비용(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원화로 지출하는 비용)의 3분의 1을 부담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번 10차 협정에 와서는 미국이 원하면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전액을 방위비분담금으로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1991년 30억원에 그쳤던 군사건설비는 2018년 4,442억원으로 늘었고 37억원이었던 군수지원비는 1,62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미국의 국방예산에 편성된 주한미군의 군사건설비는 2018년 583억원에 불과하다. 방위비분담이 주한미군 주둔경비의 일부가 아니라 그 대부분을 부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이므로 한시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1991년부터 2019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한미SOFA 제5조를 대체하는 일반법(영구법) 구실을 하고 있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미SOFA 제5조의 적용을 정지시키는 특단의 조치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방위비분담금으로 교회, 교회 부속 교육시설, 세차시설, 용산 고가도로, 유아보육센터, 호화 미군주택 등 편의시설 또는 주한미군의 임무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설들이 지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조차도 방위비분담금이 미2사단 박물관 건립이나 식당 인테리어 등에 쓰이는 등 ‘공돈’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1 이러한 낭비에서 한미동맹을 통해 굳어진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국익을 최대화하려는 미국의 발상을 엿볼 수 있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그 적용이 주한미군 경비의 일부에 한정되고 시한도 임시적이어야 한다는 특별법으로서의 법적 요건을 무시한 불법부당한 협정이다.

현재 35개 이상의 나라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하지만 특별협정을 맺어서 방위비분담금(미군 주둔경비 지원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과 동맹을 맺는 한 방위비분담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더군다나 일본과 한국은 경우가 다르다. 1952년 체결된 (구)미일행정협정은 매년 주일미군 주둔경비의 50%(1억 5천5백 달러)를 일본이 부담한다고 규정했다. 이 돈을 가리켜 ‘방위분담금’이라 불렀다. 일본의 방위분담금은 일본을 점령통치한 주일미군에 대해 지불했던 점령비가 이름을 바꾼 것이다. 1960년 미일행정협정 개정 때 이 방위비분담 조항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1987년 일본에 주일미군 경비분담에 관한 특별협정 체결을 강요함으로써 방위분담금은 부활했다. 미국의 강압이 주요한 역할을 했으나 일본의 경우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편승해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자발적으로 응한 측면도 있다. 2015년 미군 주둔경비를 비교하면 한국은 6조 4천억원이고 일본은 6조 8천억원이다. GDP에서 미군 주둔경비가 차지하는 비율(경제적 지불 능력)로 보면 한국은 0.4%로 일본의 0.136%에 비해 약 3배나 많다. 한국은 일본처럼 패전국이 아니고 경제적인 지불 능력에서 여유가 적은데도 방위비분담 정도가 큰 것은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더 불평등하다는 방증이다.

 

 

터무니없는 안보 무임승차론

 

작년 10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 때문에 돈을 벌고 있다. 한국에 3만 2천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지만 그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이제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방위비분담금은 9,602억원이었다. 주한미군(2018년 9월 기준 25,877명) 한명당 약 3,711만원이 돌아가는 규모다. 주한미군 각자에게 우리의 1인당 GDP(3,452만원)를 훨씬 넘는 액수를 지원하는데 한국이 돈을 내지 않는다니 우리 국민을 ‘봉’으로 여기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방위비분담금이 전부가 아니다.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크게 직접지원과 간접지원으로 나뉘는데, 직접지원은 방위비분담이나 카투사 병력지원같이 국가예산에서 지출되는 지원이고 간접지원은 부지임대료 면제나 세금 또는 요금의 감면을 말한다. 국방부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 부담의 미군 주둔경비는 5조 5천억원이다. 이 중 방위비분담금 9,320억원 미군기지 이전비 7,253억원 등을 포함하여 직접지원이 4조 5천억원이다. 간접지원은 무상공여토지 임대료 평가 7,105억원을 포함해 약 1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국방부 집계에서 빠졌거나 저평가된 부분도 있어 실상을 정확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용산미군기지 81만평의 임대료를 최소 1조 7천억원, 최대 4조 4천억원으로 평가했다(2018.5.31). 미군에게 공여된 부지면적은 2015년 기준 3030만평이다. 국방부가 용산의 37배나 되는 전체 미군공여부지의 임대료를 7,105억원으로 계산한 것은 지나치게 낮다. 부지 임대료를 재평가하고 국방부 집계에 누락되어 있는 미군 탄약저장시설비를 포함하면 한국 부담은 6조 4천억원에 이른다.

한편 2015년 기준으로 미국 부담의 주한미군 총 주둔비용은 3조 1천억원이고 여기서 미군의 급여를 제외한 주둔비용은 1조 1천억원이다. 주한미군의 총 주둔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미국의 1.8배, 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의 5배를 부담한다. 이 수치만 봐도 안보 무임승차라는 트럼프의 주장은 적반하장이다.

 

 

10차 협정이 역대 최악인 까닭

 

10차 협정은 여러 면에서 최악인데 첫째, 남북관계가 평화적으로 전환되고 한미연합훈련이 축소·중단되었음에도 2019년 방위비분담 증가율이 8.2%(787억원)로 유례없이 높았다. 이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2.5%(8차) 및 5.8%(9차)를 훨씬 능가한다.

둘째, 많은 삭감요인이 무시되었다. 10차 협정 유효기간(2014~18년) 집행되지 않은 방위비분담금이 매년 1~2천억원에 이른다. 또 누적된 미집행금액이 2조원 가까이 된다(2018년 12월 기준). 이는 방위비분담금이 소화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전기·천연가스·상하수도 요금 및 위생·목욕·세탁·폐기물처리 용역 항목이 신설되었다. 미 동맹국 중에서 자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공공요금을 대신 지불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이제 그 대열에 합류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도 내지 않는 미군 화장실의 청소나 세탁물, 폐기물 처리 용역비까지 내게 되었다.

넷째, 10차 협정 협상 때 미국은 ‘작전지원’(미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순환배치, 작전준비태세) 항목의 신설을 요구했다. 그런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상시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에 한미연합훈련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들르는 해외주둔 미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3년 9차 협정 협상 때도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비용을 분담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당시 박근혜정부는 전략자산 전개가 ‘주둔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작전지원’ 항목 신설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위배되고 한미SOFA 제5조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10차 협정의 부속문서인 이행약정(그중 군수지원 부분)에 ‘주한미군의 일시적인 주둔 지원’이 포함되었다. 이는 해외주둔 미군에까지 방위비분담금 지급을 넓히기 위해서 고안해낸 꼼수다. ‘작전지원’이 별도 독립적 항목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지만 군수지원에 포함됨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불법부당한 요구가 수용되었다.

다섯째, 10차 협정 제7조는 “이 협정은 당사자의 상호 서면합의에 의해 연장되지 않는 한, 2019년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는 이른바 ‘연장조항’을 담고 있다. 만약 한미가 10차 협정을 연장하기로 합의하면 위의 독소조항들도 자동으로 연장된다. 그런데 외교부의 해석에 따르면 방위비분담금액은 연장되지 않고 추후 미국과 협상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이는 미국에게 방위비분담금 증액의 길을 터주기 위한 배려라 할 수 있다.

 

 

불평등 협정의 배경: 저자세 외교와 협상전략 실패

 

10차 협정 협상의 마지막 회의가 결렬된 것은 2018년 12월 14일의 일이다. 얼마 뒤인 12월 26일 해리스(H. Harris) 주한미국대사는 청와대를 방문해 ‘방위비분담금 최소 10억 달러, 유효기간 1년’이 최종안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한국은 비건(S. Biegun)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019년 2월 6일 북미정상회담 협의차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안에서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어 2월 10일 한미는 방위비분담금 1조 389억원과 유효기간 1년을 핵심으로 하는 10차 협정에 서명했다. 청와대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제안을 미국이 수용하길 기대하면서 미국의 최후통첩안을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제안은 미국에 수용되지 않았고 미국의 방위비분담 요구만 한국이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방위비분담은 남북 경제협력과는 별개의 문제로 같이 연계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남북경제협력 승인을 위해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방위비분담에 대한 미국의 부당한 요구가 정당화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차 협정이 타결된 다음 날 “한국이 어제 5억 달러를 더 지불하기로 동의했다. 전화 몇통에 5억 달러”라면서 “(방위비분담금이) 더 올라가야 한다. 앞으로 몇년간 계속 오를 것”이라고 의기양양해했다. 미국의 환심을 사서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려는 문재인정부의 태도가 압박전술을 통해 방위비분담 인상을 극대화하려는 트럼프의 오만과 횡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면에서 보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 남북경제협력을 추진하려는 문재인정부의 저자세는 자승자박이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 이른바 빅딜(CVID)을 단번에 이뤄내겠다는 선 비핵화 후 대북제재 해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남북 및 북미 정상 합의의 동시병행적이고 단계적인 이행에 배치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대북제재 정책을 순순히 따라가는 것은 남북관계를 한미동맹의 틀 속에 종속시킴으로써 남북관계의 자주적 발전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합의 이행에 대한 현재의 교착국면을 풀고 다시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트럼프정부의 선 비핵화 후 대북제재 해제라는 일방적인 전략을 바꿔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트럼프정부의 시혜에 기대서 대북제재를 회피해보려는 태도는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배치되지만 트럼프정부의 일방주의적 대북 접근법을 바꿔내야 할 한국정부의 역할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10차 협정이 역대 최악의 굴욕적 협정이 된 또다른 배경에는 트럼프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위협이 있었다. 이전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 때도 번번이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또는 철수)을 협상전략으로 구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강도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불허의 성격인데다 청와대를 방문한 해리스 대사의 최후통첩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미국 뜻대로 올려주지 않아서 주한미군이 철수한 적은 한번도 없다. 주한미군 감축은 1971년, 1991년, 2004~2005년 등 몇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닉슨독트린(1969), 냉전 종식(1990), 해외 미군재배치 계획(2003) 같은 국제정세 변화나 미국 군사전략 변화에 따른 것이다.

10차 협정이 타결되기 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58.7%가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또 52%는 설사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감축)를 단행한다 해도 미국의 인상 요구를 수용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중앙일보 2019.1.28).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희생을 강요하는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에 대해 우리 국민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증거다. 문재인정부가 주한미군 철수 위협에 굴복해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수용한 것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조치였다.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이 목적이 될 수 없는 까닭

 

정부는 방위비분담의 취지가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보장”2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주한미군의 주둔이 그 자체가 목적이며 현재 정세와도 무관한 듯이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전쟁이 법적으로 종식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된다면 주한미군이 한국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정치회담(평화협정 회담)을 열어 모든 외국 군대의 한반도 철수를 협의하도록 건의한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외국군의 철수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필수 요건임을 확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부(곧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한국 영역 방위를 규정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평화협정과 상호방위조약이 별개가 아닌 이유다.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보장’이 방위비분담의 목적이라는 정부의 주장 속에는 주한미군이 대북 방어의 핵심전력이며 대북 (핵)전쟁 억제력이라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장비 가치로 보자면 주한미군의 핵심전력은 정보전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독자적으로 대북 방어작전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정보전력을 갖추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가 매년 펴내는 『밀리터리 밸런스』(The Military Balance) 2018년판을 보면 남한은 영상정보 수집기 24대, 신호정보수집기 6대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정찰기가 한대도 없다. 남한은 비단 정보전력만이 아니라 재래식 전력 전반에서 북한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 남한 단독으로도 대북 방어가 충분하다. 대북 방어 측면에서 주한미군은 그야말로 ‘잉여전력’이다.

또한 미국의 대북 전쟁억제(맞춤형 억제) 전략은 대북 (핵)공격 위협 전략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행동에 대한 두려움 때문”3이라는 미국 연구기관의 지적처럼 미국의 대북 핵억제 전략은 북한의 핵보유를 촉발하는 등 한반도를 끊임없는 핵전쟁 위기로 몰아넣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기가 멈추게 된 것은 미국이 대북 핵공격 위협인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하는 등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대신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로 합의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무기도 폐기되어야 하지만 미국의 핵억제 전략도 포기되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을 위해 한국군의 자주적인 방어력 건설이 저해된다면 그것은 본말전도다. 1991~2019년 지급된 방위비분담금은 19조원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장비 가치 100억 달러(11조 2천억원)의 1.7배에 달한다. 방위비분담금액을 장비 확보에 돌렸다면 미군 장비를 대체하고도 남았고 그만큼 주한미군 의존도도 낮출 수 있었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순환배치와 방위비분담의 불법부당성

 

10차 협정 협상 때 미국이 항목 신설을 요구한 ‘작전지원’에는 ‘주한미군 순환배치’가 포함되어 있다.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정당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SOFA 위반이다. 주한미군은 주둔 형태가 붙박이 군대에서 순환배치로 바뀌고 있다. 미2사단 예하 기갑전투여단은 2015년부터,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2사단 아파치헬기부대(소속 1개 대대)는 2009년부터 순환배치로 바뀌었다. 주한미공군 F-16(총 60대) 12대도 순환배치되고 있다. 한국에 순환배치되는 미군은 언제든지 철수나 해외 이동이 가능해 유사시 아시아태평양 어느 지역에나 파견될 수 있는 신속기동군 역할을 한다. 아태기동군으로서 주한미군은 주요 임무가 한국 영역을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는 주한미군 기지재편과 쌍을 이룬다. 최근 건설이 마무리된 평택 미군기지는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로 북한을 넘어 동북아시아지역, 특히 중국을 겨냥한다. 주한미군은 경북 성주 사드 배치로 미국 및 일본으로 향하는 중국과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조기탐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한미군기지로 향하는 중국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추게 되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도 점차 중국을 견제하는 미 해군기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주한미군의 순환배치는 주한미군의 임무가 대북 전쟁억제에서 중국과 러시아 견제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 견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는 한국 영역 방어로 지리적 적용범위를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이다. 또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는 한반도를 대중국 전초기지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평화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일부에서는 주한미군이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므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및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은 동북아시아 균형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균형의 유지자는 어느 특정한 나라나 동맹의 정책에 영원히 동조하지 않는다. 그 체제 내에서 균형의 유지자가 갖는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그 체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4이기 때문이다. 세력균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력의 우위를 통해서, 즉 상대의 안보를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안보를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군비경쟁을 초래하고 전쟁위험을 높이는바 배척되어야 할 안보전략이다. 동북아 지역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대안은 상대를 적으로 보는 세력균형 방식이 아닌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과 비군사적 방식을 수단으로 하는 다자 공동안보기구가 되어야 한다.

 

 

글을 맺으며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11차 협정 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트럼프정부는 ‘주한미군 경비+50%’를 새로운 방위비분담금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 기준을 주장한다면 2020년 방위비분담금은 2019년보다 2~3배 인상된다. 이런 터무니없는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 정부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임한다면 방위비분담금 삭감도, 독소조항 삭제도 충분히 가능하다. 방위비분담금은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미군기지 이전비로의 전용, 이자 수취 등 집행상에서 각종 불법이 행해지는 등 증액 요구에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위비분담금이 삭감된 사례(6차 협정)도 있다.

이렇게 되려면 문재인정부는 10차 협정 협상 때 범했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정부의 승인을 얻어서, 즉 환심을 사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 주한미군 철수를 앞세운 트럼프정부의 강압전략에 좀더 당당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분담에 대한 미국의 불법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것은 한미동맹의 불평등성을 바로잡기 위한 일이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대등한 한미관계로 바꿔내려는 노력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방위비분담의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과 한미동맹의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고 해서, 주한미군이 주둔한다고 해서 반드시 방위비분담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군사주권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정부의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의 명실상부한 환수는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및 군축 합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또 한미동맹의 대중국 견제 동맹으로의 전환과 한국 방어와 무관한 미국 무기구매를 강요하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을 맞아 정부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관성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남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군사적 신뢰구축 및 단계적 군축에 합의했으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북미도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또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남한)은 무엇보다 미국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미국의 선 북한 비핵화 방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바, 이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미국의 허락에 맡기는 꼴이다. 정부는 선 북한 비핵화 방침이 싱가포르성명에 배치되고 결국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 미국의 입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을 대등한 주권국이 아닌 종속국 취급하면서 미국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미국의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 또 새로운 북미관계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미가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한미동맹을 계속 고수한다면 판문점선언도 평양선언도 이행될 수 없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지위를 바꿔 평화유지군으로 계속 주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주한미군은 한국전쟁의 교전 당사자이기 때문에 평화유지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동북아균형자론도 북한을 대신하여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으로 하는 한·미·일 동맹을 정당화하기 위한 미국의 주장일 뿐이다.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하게 되면 동북아에서 신냉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평화협정으로 되찾은 한반도 평화조차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한국 안보의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요소로 보는 관성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할 때다.

 

 

  1. 국회입법조사처 「미 상원 군사위원회 해외기지 주둔비용 보고서 분석」 3면 참조, 2013.6.11.
  2. 국방부 『국방백서 2018』 128면.
  3. 미국 대서양협의회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및 안보 구상」, 2007.4.
  4. 한스 모겐소 『현대국제정치론』, 이호재 옮김, 법문사 1987, 2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