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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영중 朱榮中
1968년 서울 출생. 2007년 현대시로 등단.
whitebirch68@hanmail.net
구름의 묵시록
용서하라, 끔찍한 나비를
가장 난폭한 날갯짓을
붉게 충혈된 두눈조차
당신이 사색하고 있다
내가 가장 평온한 집으로 돌아와 정적 속에 잠길 때
내 눈 바깥 어디쯤, 가깝고도 먼 곳에서
당신은 빈 원처럼 눈을 뜨고 극점에 대해 말한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담겨보세요
다시 시작하세요 공포는 이제 끝났으니
멀리 구름으로 흘러흘러 흐르더라도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오는 것처럼
수화기에 담긴 마지막 빗소리를 잊지 마세요
단 한번도 든 적 없는 가장 캄캄한 암흑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세요
끔찍한 꽃들이 오르고
끔찍한 강아지들이 젖은 채 뛰어가고 있다
물 밖의 일은 물 밖의 일, 나는 겨우 잠수 중
스치는 가슴처럼 유연해지고
부풀어오르는 밤이다
겨우 평화에 정박해 있던 밤
반칙 반칙 휘슬이 울리고 경고음이 울리고
평화를 빙자한 성스러운 거짓말
매일 밤 시달리는 여인들을 느낀다는 건 견디기 힘들죠
비가 와서 나는 괴로운데, 통통통 불이 굴러오는 밤
증오의 눈으로 그렇게 쿵쿵거리며 뛰어오지 마라
달걀 속 노른자가 흔들리는 봄밤
저기 잔디밭 너머에서 그림자가 일어난다
살과 살이 다르다는 것을 습기로 아는 밤
괴물이 괴물이 되어간 내력을 아세요?
바깥의 주름, 허공의 살갗
그곳의 가녀린 떨림, 용서할 수 없어요
이 사각거리는 언어조차
노노녹킹온헤븐스도어 녹녹녹……
문이 삐걱이고 무릎뼈가 삐걱이고 자동차가 삐걱이고
우리들이 삐걱이고 두려움이 삐걱이고
수화기를 넘는 말이 목처럼 꺾이고
전쟁 같은 목소리 내 턱이 탈구되고 말이 혀가 꼬이고
젖은 회색 그림자들이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어요
오선지 마지막 줄의 다음 줄
그 빈 줄에서 울리는 무음처럼
달콤한 빵 냄새를 지우고 번화한 거리와 건물을 지우고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영원히 떠나가고
칫솔통에 달그락거리던 색색의 칫솔들이 하염없는데
그렇습니다, 해골과 해골의 입맞춤
칫솔모와 칫솔모의 입맞춤,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들은, 포도송이들처럼 흩어져 떨어지고
그렇습니다
뼈를 바꾸고 있는 중!
성형 중독자를 이해하는 날들
돌연변이처럼 절연을 배웁니다
길고 긴 육신의 역사,
전통사극 속 길고 긴 역사를 지나
여인과 사내의 몸은 오늘에 이르고
여전히 인간은 인간이고
내 눈밖에 내 눈 바깥으로 당신이 있으니
내 눈이 돌아간다 내 눈이 점점 돌아가고 있다
저 많은 비들은 어디서 온 걸까
혀의 물, 피의 물, 뼈의 물
여장의사와 에로비디오
구기와 북악, 북악과 구기를 관통하면서
라이트를 켰다 껐다 켰다 껐다
긴 내장에 깃든 불안에 대해 말한다
밤과 냉기만이 흐르는 여장의사의 집
그녀의 집에는 관이 즐비하고
주검 앞, 비오는 밤
트럭 위에서는 에로틱한 장면이 흐른다
칠흑 같은 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돼지의 죽음 앞에서 절을 하고
남녀는 옆방으로 들어가
더 큰 엑스터시의 상태 속에 접어들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사랑을 부르는
죽음, 드라큘라가 깨어나고
매일 죽는 드라큘라가
신선한 피로 깨어나고 미녀에게서 다시 태어나고
관의 냄새는 신선하다
죽은 지 얼마 안된 생나무 관의 냄새를 분별하지 못하고
우리는 그렇게 죽음과 대화를,
저기 저 육신을 피워올리며 꿈틀거리는
눈 감은 어둠, 마법 같은 연기
흰 뱀의 어지러운 비상
생나무 냄새와 니스 냄새가 뒤섞이는 곳에서
오동나무 관과 죽을 때까지 대화,
괴멸되어가는 해골에
새겨지는 우울과 욕망의 아라베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