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생의 온기는 금이 간 날개 위에
기준영 장편 『와일드 펀치』
강지희 姜知希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동물성을 가진 ‘식물-되기’」 「장르의 표면장력 위로 질주하는 소설들」 등이 있음. iskyyou@hanmail.net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 Williams)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가 감동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빛나게 성공적인 결혼이나 완전히 실패한 결혼이 아니라, 투쟁과 사소한 타협이 날마다 일어나지만 그런대로 무난한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준영(奇俊英)이 그간 단편들을 통해 적시해왔던 것은 바로 얼마나 위대하든 비루하든 모든 인생은 그 세부를 들여다보면 사소한 행운과 불운과 그에 대한 의미 부여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기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미 해체되었거나 분리를 겪는 중인 가족이었다. 이합집산하는 가족을 쉽게 연민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순진한 낙관으로 일관하지도 않는 작가의 어떤 단단함은 이번 『와일드 펀치』(창비 2012)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 소설 제목과 같은 ‘거친 한 방’은 모든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연기(演技)하는 인물들로 인해 무한정 연기(延期)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모두 불행의 격랑 속에서도 감정을 미끄러뜨리고, 추궁하는 대신 흘러가게 두기 위해 노력한다. 현자는 ‘냉정한 집주인’ 시늉을 하고, 갈 곳이 없어 현자의 집에 머물고 있는 미라는 ‘뻔뻔한 부랑자’처럼, 태경은 ‘자기 불행을 전시하려는 사람’처럼 군다. 우영의 엄마 역시 어디서 맞고 도망온 여자가 집으로 뛰어들어와도, 붓고 멍이 든 아들의 얼굴을 봤을 때도 놀란 내색 없이 가만히 그 얼굴을 눈길로만 더듬는다. 인물들 간의 이런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서로의 생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명확히 직시하는 데서 온다. “누가 누굴 어떻게 할 수 있겠냐”(83면)라거나 “아니, 나도 뭐 널 못 도와”(91면)라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냉소적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심을 담아 무미건조하게 말해짐으로써 때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우애나 사랑으로도 상대방의 인생에 기적의 메시아로 도래할 수 없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서로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자신의 삶만을 산다.
그렇다면 엇갈리는 감정과 무력감을 뚫고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설은 인물들이 아무 말 없이, 다만 나란히 앉거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장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함께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거나 창문 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불행을 향해 고단하게 질주하던 삶은 잠시 멈춰 무심한 고요의 순간을 살아낸다. 즉각적인 의미 전달을 지연시키며 존재하는 이 여백의 시간은 인물들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면서, 막연한 생의 온기를 담아낸다.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근엄한 진술을 반복하는 대신 따뜻한 공감의 매순간을 현시하는 소설인 『와일드 펀치』는 무심한 듯한 공기 속에 더 깊이 깃드는 이해를 보여주기 위해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려고 애씀으로써, 때로 부자연스러워지곤 한다. 짧은 단문으로 일관하며 말을 아끼는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를 복제한 것처럼 너무 닮아 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방식은 다소 산만하게 주의를 분산시킨다. 타인에 대한 절대적 환대의 불가능성과 그럼에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3인칭으로 진행되던 소설에서 ‘Intro’와 ‘Outro’에서만 굳이 현자의 시선을 개입시키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다중의 목소리를 한 목소리의 우위나 집중 속에 엮어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Outro’ 바깥,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상상의 안식일」은 언제나 모든 시간이 지나고 사후적으로만 도달하는 행복과 평화에 대해 잔잔하게 전달한다. 소설의 시작에서 비가 퍼붓던 날 갈 곳 없이 젖어 있던 인물들은, 「상상의 안식일」에서 출렁이는 물살 위로 배를 타고 항해하는 미라의 꿈 이야기에 안겨 고즈넉하게 함께한다. 여기에는 오직 함께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에 대한 지각을 기반으로 한 우애가 있다. 이것이 친족관계와는 무관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내며, 각각의 적막했던 과거로 소급해들어가 그들의 생을 충만하게 한다.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행복을 ‘총체적으로 사멸해가는 속세적인 것의 리듬, 메시아적 자연의 리듬’에서 발견했다. 사멸해가는 무상함은 대개 회한과 비애의 감정을 창출시키지만, 동시에 현재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던져준다. 작품 속 인물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미완성인 상태에 놓여 있지만, 각각의 삶이 함께하는 순간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자리를 구성하며 이 미완성을 완성으로 열어놓는다. 이는 우영의 집 후추통 위에 올려진, 날개 한쪽에 약간 금이 가 있는 쎄라믹 천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 통속적이고 키치적인 이미지이지만, 여하튼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끌어안는 사소하지만 묵직한 긍정이 이 금이 간 날개에 스며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