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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희수 朴熙秀
1986년 인천 출생. 2008년 제7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yupscp@gmail.com
오프닝
꿈속에서 우리는
징병문서를 들고
나무가 많이 난 언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가면 성이 있고
성에는 영주가 있었다
영주는 지팡이를 휘둘러 우리를 축복하고
우리를 전쟁터로 보냈다 허나
꿈에서도
전쟁터까지는 도보로 며칠
창을 들고 열을 따라가며
세상을 다 모르고 죽는 일은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다
카드처럼 회전했다 까마귀가
창을 든 병사들 곁에서
빙글빙글
까마귀를 다 모르고 죽는 일도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웃다
번역원 수업 쉬는 시간에 홀로 저녁을 먹고 나왔다
자획처럼 햇살이 풀어지고
강변의 사람들은 서로 호(呼)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다리의 부수(部首)는 나무이지만 건넘의 부수는 물 수임을 생각도 하면서
그래 계단을 통해 강에 더 가까이 다가갔던 것인데
물살은 끊임없이 얼굴을 지우고 있었다
네 점 찍힌 없을 무의 바닥으로
새들은 가까이 왔다가 능선의 빌라 쪽으로 풀어지며
시원한 집(集)과 산(散)을 보여준다
문득
얼굴이 낯설고
아까 먹은 국물의 온기가 쓸쓸하지만
그래 저녁놀에 강물은 마치 따스하게 부풀기도 하는 것인데
흰 추리닝이 휙 지나친다, 입김을 뿜으며
삽살개가 네 다리로 바닥에 그림자를 찍고 함께 뛰어간다
까마득한 바람을 받는다
오후에 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