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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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李冕雨

1951년 대전 출생. 시집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등이 있음. dolbuchei@daum.net

 

 

 

십일월을 만지다

 

 

남쪽으로 갈 때, 나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고 싶습니다 내내 햇빛 비치는 곳에서 당신을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가지에서 가지로 쉼없이 건너다니는 수마트라섬 긴팔원숭이의 기쁨도 따라올 겁니다 십일월에 남쪽으로 갈 때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아, 뻘을 서로 발라주며 깔깔대다 웅덩이로 풍덩 뛰어들어 물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충분(充分)을 넌지시 웃게 될 겁니다 햇빛 속 맑은 물렁뼈 같은 냉기를 따라가며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즐기는 일에 취해 끝없이 자맥질하는 먼바다 아기고래의 몸짓을 떠올릴 겁니다 솟구치거나 가라앉거나 여전히 바다며 고래이듯 한 삶이 그토록 오래 그리워한 건 바로 삶 자체라는 것, 스르르 펼쳐진 손바닥 어디께쯤 슬몃 와닿는 그것, 그게 실은 막 물을 가장 높이 뿜어올린 고래를 만진 일임을 알게 해준 십일월의 날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간직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남쪽으로 가도록 허락된다면, 당신을 처음 만진 기쁨을 맨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고 싶습니다.

 

 

 

단수 통보의 날들

 

 

선로와 관로는 함께, 가는 길입니다 기차선로에 역이 섰듯 급수관로엔 여닫는 문이 있습니다 단수(斷水) 통보는 그 역까지 가는 운임을 누군가, 지불하지 못했으므로 물을 실은 기차를 보내지 말라는 고지입니다 그러나 늙은 배관공은 옛 철길로 기차가 지나게 합니다 관로 문을 아주 조금 열어, 잊혀지지 않을 만큼 느릿느릿 가게 합니다 이것은 운행시간표 없는 간이역에서 하루 한번 멈추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관로에 귀를 대고 아득히 다가오는 물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덜커덩, 덜커덩, 선로를 구르는 바퀴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회덕, 매포, 부강, 내판 같은 간이역을 지나 오요요, 녹물 든 강아지풀이 침목을 덮는 한낮과 물 먹는 소의 목에 할머니 손등 얹혀지는 저녁을 통과해 수세식 변기 물탱크에, 욕조에 쫄쫄쫄대며 불편(不便)을 채우는 밤이 계속될 겁니다.

 

벽 너머에서, 지금 애써 귀를 열고 있는 당신은 그 소리가 정말 불편해지기 시작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