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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장편연재 3
싸이먼 그레이
4-7.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일년
· 싸이먼의 사후, 동명의 단편소설 「싸이먼 그레이」를 쓴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소 긴 분량의 ‘작가노트’를 남긴 바 있는데, 다음은 그 글의 일부분이다.
—(…) 나는 실제로 싸이먼과 각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각별함이 다 소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각별함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그에 대해서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의 노트북 속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에서 낯선 블로그의 주소를 발견하고 거기에 올라와 있는 글을 다 읽고 난 뒤의 일이었다. 2006년 처음 개설된 그 블로그의 주소는 ‘siren2006.egloos.com’, 바로 김주희의 개인 블로그였다. 싸이먼은 그 블로그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기 위해서 한국까지 오고, 또 더듬더듬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거겠지. 나는 싸이먼 그레이에 대해서 썼지만, 또 썼다고 믿었지만, 다 쓰고 보니 그건 이상하게도 김주희의 이야기로 읽혔다. 내가 뭘 잘못 썼나?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것처럼 의아했지만, 끝내 소설을 고치진 않았다. 그게 바로 싸이먼 그레이의 의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
· 기록에 의하면 김주희가 두바이를 경유해 아일랜드 더블린에 입국한 것은 2011년 1월 3일이었다고 한다. 더블린에서 다시 골웨이까지 버스로 이동해 GLS어학원에 등록을 마친 것은 1월 6일, 유학원에서 소개해준 시티 센터 인근 노부부가 운영하는 홈스테이에서 보름 가까이 머물다가 코리브강 근처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것은 1월 20일이었다고 한다.
· GLS어학원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김주희의 생년월일은 1980년 9월 27일, 출생지는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남구, 영어 이름은 ‘줄리 김’(Julie Kim)이었다고 한다. 그외 사항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 김주희가 세를 얻은 셰어하우스는 싸이먼이 살던 스튜디오와 직선거리로 1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노란색 삼각지붕을 얹은 삼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지은 지 삼십년도 더 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삼층 302호. 방 두칸에 작은 거실과 부엌, 욕실이 딸린 구조였으며, GLS어학원까지는 도보로 이십오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 처음 골웨이 시티 박물관에서 김주희를 본 이후, 싸이먼은 그해 1월 말부터 자전거로 출근하다가 종종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어학원 층계에서도 몇번 마주쳤고, 냉동피자를 사기 위해 들른 식료품점에서도 맥주나 생수 따위를 고르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코리브강에서도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고.
· 당시 김주희는 브라질 친구 두명, 이딸리아 친구 한명과 함께 지냈는데, 매일 밤 코리브강을 거닐다가 친구들이 잠들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2 그게 전부였다고 한다. 물론 싸이먼 그레이는 그 사실을 몰랐고.
· 싸이먼 그레이는 김주희에게 처음 말을 건넨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춥고 시린 밤, 한 여자가 자전거 전용도로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엔 반쯤 허물어져나간 낡고 녹슨 철제 난간이 있었고, 철제 난간 너머엔 떠내려온 나무둥치와 덩굴과 풀이 뒤섞인 수풀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뒤론 코리브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2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또도르는 한해 전에 태어난 막냇동생의 생일을 맞아 불가리아에 가고 없었다. 그는 한달 뒤에나 돌아온다고 했다. 유난히 잔물결이 많은 밤. 수온이 낮고 바람이 거세다면 어차피 민물장어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몸이 자꾸 앞뒤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술을 마신 것일까? 저러다가 난간 쪽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낚싯대를 내려놓고 천천히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매서운 강바람을 견디고 있는 가로등의 몸통에선 낮고 작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대기에선 이상하게도 박하 냄새가 났는데, 그래서인지 주변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는 계속 같은 자세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랐는데 작게,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내가 말을 걸자 그녀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올려다보았다. 며칠 전 한번 본 얼굴이었다.
“왜 그러시죠?”
“위험해 보여서요.”
“안 되나요, 여기 있으면?”
“아래가 꽤 깊거든요.”
그녀는 다시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돌아갈게요.”
나는 그녀의 태도에 조금 무안해져 터벅터벅 다시 낚싯대가 놓여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왜 화를 내지? 나는 낚싯대를 들어 새로 캐스팅을 하며 어두운 코리브강을 노려보았다. 괜한 짓을 했군. 한참을 그렇게 찌만 바라보고 있다가 퍼뜩 내 머리 위 헤드랜턴이 계속 켜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놀라서 다시 그녀가 앉아 있던 쪽을 바라보았으나,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3
· 김주희는 그 만남에 대해서 따로 기록해두진 않았다고 한다. 그 만남뿐만 아니라 그해 3월 중순까지도 그녀의 블로그엔 싸이먼의 이름 자체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2월 하순에 올라온 글 중 ‘여기 이 나라에도 이상한 인간은 많다. 어딜 가나 다 똑같겠지’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소설가 이기호는 그 ‘이상한 인간’ 중 한명이 바로 싸이먼 그레이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 어학원에서 김주희의 담당 교사를 맡았던 마이클 맥거번은 그녀에 대해 ‘읽기와 듣기는 어느 정도 되는 거 같았는데 말하기와 쓰기는 잘 안 되는 학생’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4 그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다섯시간씩 강의를 들었는데 주간 테스트를 빼먹기 일쑤였고, 일대일 스피킹 테스트 또한 계속 시간 약속을 어겼다고 한다. 특히 과정이 끝나는 마지막 한달은 아예 어학원에 나타나질 않았다고 한다.
· 그해 초부터 GLS어학원에서는 매월 첫째주 목요일 오후 다섯시부터 ‘국제학생교류의 밤’ 행사를 개최했는데, 학원 강사들과 수강생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 대해 좀더 폭넓은 이해의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고 한다.5 말하자면 어학원 야외 주차장에 모두 모여 시종일관 빠르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채 술 마시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둠칫둠칫 몸을 흔드는 시간이었단 소리다. 어학원 원장인 토빈 히스는 행사 중간에 수강생들 한명 한명을 가운데 작은 원형 무대에 올라서게 한 후 스탠드 마이크에 대고 짤막한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고 한다. 물론 영어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몸을 배배 꼬면서 짧게 인사를 한 후, 다른 친구들의 환호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물론 시키지 않았는데도 웃통을 모두 벗어버린 채 춤부터 춘 브라질 남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런 애들은 세계 공통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 싸이먼은 그날 처음으로 김주희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기네스 병맥주를 왼손에 든 채 무대에 오른 김주희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은 한국에서 왔으며, 여기엔 한국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좋다고 조금 쑥스럽게, 그러나 분명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래를 불렀는데 조금 느리고 슬픈 한국 노래였다고 한다.6 그 노래를 하도 열심히 불러대는 통에 그곳의 분위기를 일순 태풍 전야의 해수욕장 주차장처럼 만들어버렸다고 한다.7
· 행사 내내 고기만 구웠던 싸이먼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김주희를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혼자 걸어가고 있었고, 얼굴의 반을 머플러로 친친 감고 있었다고 한다. 양손에는 털실로 뜬 보라색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었다고 한다. 싸이먼은 자전거에서 내려 그녀와 두걸음쯤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도 싸이먼은 자세히 기록해두었다.
—“지난번엔 미안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가요?”
나는 대답 대신 메고 있던 백팩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이마에 썼다.
“이거.”
그녀는 불 켜진 헤드랜턴을 슬쩍 한번 바라보곤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까 맥주병을 들고 있던 모습과 달리 다시 화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보도블록만 내려다보면서 느릿느릿 걸었다.
“나는 싸이먼이라고 해요. 싸이먼 그레이.”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 몸에선 고기 냄새와 숯 냄새가 났다.
“한국은 어떤가요? 나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나도 잘 몰라요, 한국.”
그녀는 멈춰 서서 머플러를 풀고 담뱃불을 붙였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안개가 많이 끼고 또 습도도 높았지만, 대기는 깨끗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구두를 신고 코트까지 차려입은 십대 남자아이들 세명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숍 스트리트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들어가실래요?”
그녀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
“저는 더 있다가 들어가려구요.”
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에 또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갔다. 스튜디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차가운 라디에이터와 우울한 회색빛 커튼과 읽다 만 책이 놓여 있는 방. 내가 잠시 들렀다가 다시 낚싯대를 챙겨 나올 방.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도 여전히 변함없을 방.
나는 100미터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다가 다시 핸들을 돌려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산책하다가 지루하면 같이 낚시하지 않을래요? 언제든 하고 싶으면 말해요. 언제든.”
나는 빠르게 그 말을 하고 서둘러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그러다가 쿵, 그만 보도의 경계석에 부딪혀 자빠지고 말았다. 나는 아픈 것도 모르고 다시 자전거를 일으켜 재빨리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도 다 봤겠지. 다 봤을 거야. 나는 스튜디오로 돌아와서도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고, 그때마다 퉁퉁 침대 헤드에 뒤통수를 박아댔다.8
· 비슷한 시기, 싸이먼은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윌리엄 캐리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윌리엄 캐리 교수는 싸이먼에게 그해 6월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 Dublin)에서 개최되는 ‘아일랜드 소설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존 맥가헌 소설에 나타난 공간과 장소’를 주제로 한편의 논문을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렵게 만들어낸 기회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싸이먼은 답장에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으나, 그후 일주일 동안 아무런 이메일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열흘 정도 지난 후 도착한 윌리엄 캐리 교수의 이메일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싸이먼, 너에게 정말 실망했어.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언제까지 그딴 어학원이나 다니고 있을 생각이지? 그게 네 문학과 학문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거지? 너는 문학을 해야 하는 사람이잖아? 거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얼마 되지 않는 주급 말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이라구.
· 싸이먼 그레이는 윌리엄 캐리 교수에게 답장을 보내는 대신, 클리프덴 공립학교 교사인 키어런 제퍼슨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 사실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병원비 때문에 진 빚도 다 갚았고 이제 신경 쓸 일도 별로 없거든요. 어학원 일은 지루하고 또 때때로 끔찍할 때도 많아요. 여기 학생들이 쓴 문장들을 읽다보면 제 머릿속 신경들이 마치 함부로 풀려나간 낚싯줄처럼 서로 막 엉키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한데 또 그걸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재미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제 일이니까요. 얼마 전엔 노트북도 새것으로 장만했고, 일인용 소파도 하나 들여놨어요. 거기 앉아서 예전에 읽었던 스위프트나 브론테의 책을 다시 읽기도 해요. 밤마다 코리브강에 나가 낚시를 하는 것은 여전한데, 민물장어는 거의 잡히질 않아요. 이따금 소설을 다시 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실 노트북도 그것 때문에 새로 산 거구요. 하지만 그건 당장은 좀 어려울 거 같아요. 자신이 없기도 하고, 또 그래선 안 될 거 같기도 해서요… 어쨌든 저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조용하고 진지하고, 사실을 말하자면 별다른 감정이나 긴장도 느끼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어요. 그게 좋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겠죠? 그러면 또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지, 마음속으론 계속 그렇게 다짐하곤 하는데 낚시를 하다보면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낚시라도 안 하면 그 마음이 더 커지겠죠?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선생님도 자주 불안하고 미안하고 그러신가요?9
· 싸이먼 그레이의 할머니인 제럴딘 셰이스 그레이가 골웨이 국립대학교 부속병원에 들른 것도 그해 2월 중순의 일이었다고 한다. 제럴딘 셰이스 그레이는 그곳에서 MRI 촬영과 당뇨, 고혈압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3개월 치 혈관약을 처방받은 게 전부였다고 한다. 제럴딘 셰이스 그레이는 그날 오후 늦게 싸이먼의 스튜디오에 들러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잠시 쉬었다고 한다. 그러곤 다시 오후 7시에 출발하는 클리프덴행 막차를 타기 위해 그곳을 나섰다고 한다. 싸이먼이 하루 주무시고 가라고 말렸지만, 제럴딘 셰이스 그레이는 거절했다고 한다. “여긴 침대가 하나뿐이지 않니? 네 침대를 뺏기 싫구나.” 할머니는 그 말을 한 후 싸이먼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싸이먼, 싸이먼…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싸이먼은 할머니의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한다.
· 싸이먼이 코리브강 자전거 전용도로 앞 철제 난간에서 다시 김주희의 모습을 본 것은 2월 20일 전후였다고 한다. 밤 열시가 막 넘었을 때였는데 누군가 강물을 향해 계속 돌멩이를 던져 바라보니 거기 김주희가 서 있었다고 한다. 김주희는 브라운 계열의 방울털모자와 검은색 롱코트,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에 발목부츠를 신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철제 난간 사이에 조성해놓은 화단에서 돌멩이를 주워 계속 강물 쪽으로 던졌다고 한다. 처음엔 띄엄띄엄 던지더니 이내 싸이먼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10 씩씩 숨을 내쉬고 때론 몸을 휘청거리면서,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돌을 던졌다고 한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기도 했고, 그냥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는데, 그건 주변에 나와 있던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날은 하필 한달에 두세번쯤 나와 연어 낚시를 하는 백발의 노인도 싸이먼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고 한다. 말려야 할까? 싸이먼은 망설였지만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이십대 커플은 마치 무슨 버스킹을 구경하듯 서로 부둥켜안은 채 그녀의 뒤편에 서 있었다고 한다. 몇번을 그렇게 더 돌을 던지다가 그만 그녀의 방울털모자가 강물 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의 짧고 검은 머리칼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 불빛을 본 고양이처럼 멍하니 서 있던 김주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 그날 싸이먼은 뜰채와 낚싯대를 이용해 강물에 빠진 김주희의 방울털모자를 건져 올렸다고 한다. 다행히 모자가 덩굴에 걸려 강물에 떠내려가진 않았다고 한다. 뜰채를 아무리 길게 늘어뜨려도 방울털모자에까지 닿질 않아, 싸이먼은 다시 뜰채 손잡이에 낚싯대를 끈으로 감아 연결했다고 한다. 뜰채가 길어진 만큼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아 싸이먼은 삼십분도 넘게 끙끙 그 자리에서 애를 썼다고 한다. 김주희의 뒤에 서 있던 이십대 커플도 어느새 싸이먼의 옆으로 다가와 “왼쪽으로! 왼쪽으로! 조금만 더!” 하면서 참견했다고 한다. 정작 김주희만 그들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고 한다. 싸이먼이 이십대 커플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방울털모자를 건져내고, 물이 뚝뚝 흐르는 그 모자를 손에 쥔 채 주위를 둘러봤을 땐, 이미 김주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어 낚시를 하던 백발의 노인만 싸이먼을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 김주희가 낚시를 하고 있는 싸이먼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은 그로부터 다시 사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때 김주희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 싸이먼은 그날의 김주희에 대해서도 따로 기록해두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녀는 파카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잠깐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낚시의자에서 일어나 펼치지 않은 낚싯대 하나에 봉돌을 매달고 염장한 고등어 미끼를 루어에 꿰었다. 장갑을 벗고 했는데도 자꾸 바늘을 꿰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녀는 툭툭 운동화로 철제 난간을 건드리며 서 있었다. 운동화가 생각보다 컸다. 초릿대 끝에 초록색 형광 케미라이트까지 매단 후, 내 낚싯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캐스팅을 했다.
“자요.”
나는 그녀에게 낚싯대를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어정쩡하게 그립을 잡은 채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엔요?”
그녀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기다리는 거죠. 가만히.”
“가만히?”
“초릿대 끝을 보면서 가만히.”
나는 내 낚싯대를 잡고 그녀의 옆에 섰다.
“불빛이 예쁘네요.”
그녀는 케미라이트를 보면서 말했다. 어두운 강엔 두개의 녹색 불빛이 나란히 떠 있었다. 일렁이는 강물에 반사된 그 불빛은 마치 천천히 용해되고 있는 각설탕 가루처럼 보였다.
“이걸 왜 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기다리기만?”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니까요.”11
· 첫 낚시에서 김주희는 민물장어 대신 연어 한마리를 낚아 올렸다고 한다. 김주희가 들고 있던 낚싯대의 초릿대가 흔들려 싸이먼이 대신 챔질을 해주었고, 릴링은 김주희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 바람에 둘은 잠시 동안 한 낚싯대를 붙잡고 서 있었다고 한다. 올라온 연어는 30센티미터가 조금 안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주희는 릴링을 하는 동안엔 놀란 표정으로 계속 알 수 없는 한국말을 내뱉었지만, 막상 연어가 올라오자 다시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싸이먼은 재빨리 루어에서 연어를 빼내 다시 코리브강으로 돌려보내주었다고 한다. “이건 우리가 기다리던 게 아니니까요.” 싸이먼은 김주희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여간 싸이먼은 꼭 그런 식으로 중요한 순간, 갑자기 진지 모드로 변했다고 한다. 그냥 ‘이건 씨알이 작아서 놔주는 게 나을 거 같아요’라고 하면 될 것을. 김주희는 연어를 놔준 곳을 한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런 김주희에게 다시 캐스팅을 한 낚싯대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 그날 싸이먼과 김주희는 새벽 다섯시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낚시 장비를 모두 거둔 후, 싸이먼은 자전거를 끌고 김주희와 나란히 걸었다고 한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는데 가로등만 먼저 꺼져 주변은 더 컴컴했다고 한다. 도로는 모두 반들반들하게 젖어 있었고, 안개 입자 같은 보슬비가 계속 내렸다고 한다. “매일 나오나요?” 김주희가 묻자 싸이먼은 “태풍이 올 땐 안 나와요”라고 말한 후, 혼자 작게 웃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바로 그게 싸이먼의 유머였다. 아아, 싸이먼… 둘은 말없이 걸었다고 한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오래된 나무에선 푸드덕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셰어하우스 근처에서 김주희는 멈춰 섰다고 한다. 그러곤 또다시 싸이먼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배를 한대 들어올려 보였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제야 백팩에서 주섬주섬 김주희의 방울털모자를 꺼냈다고 한다. 김주희는 그 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바로 머리에 썼다고 한다. “다음에 또 봐요.” 김주희가 인사하자 싸이먼도 한 손을 들어올려 인사했다고 한다. “네, 곧 또 만나요.”
· 그해 2월 초 불가리아에 갔다가 예정보다 일주일 늦은 3월 10일 다시 골웨이로 돌아온 또도르 보두로프는 그사이 자신의 낚시의자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 또도르는 최영근 교수에게 이렇게 답했다.
문: 당신은 김주희를 만난 적 있었나요?
답: 그녀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 당신이 보기에 싸이먼과 김주희의 관계는 어땠나요?
답: 그들은 함께 낚시를 하는 사이였습니다.
문: 당신과 김주희는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답: 나는 싸이먼의 왼편, 그녀는 싸이먼의 오른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문: 당신이 본 김주희의 특이한 점은?
답: 그녀는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낚시를 했습니다.
문: 그게 전부입니까?
답: 그게 전부입니다.
· 김주희의 블로그에 싸이먼이 처음 언급된 것은 3월 18일,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다음 날의 일이었다고 한다. 김주희는 이렇게 썼다.
—어제는 하루 종일 골웨이가 시끄러웠다. 오전 내내 시티 센터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내 방 창문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다. 초록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 사람들, 퇴역 군인들도 있었고, 수산물 가공회사 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커다란 세잎 클로버 모형을 든 아이들도 있었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알리아가 함께 숍 스트리트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쪽에서 어학원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어느새 내게 웃는 건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알리아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알리아는 좋은 친구이다. 그녀는 어학원에 등록하자마자 미친 듯이 이 가게 저 가게에 CV를 돌려댄 덕에 지금은 오전에 네시간씩 에어스퀘어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로마에 사귄 지 이년이 넘은 남자친구가 있다는데, 어학원 과정이 모두 끝나면 함께 캐나다로 가서 살기로 했다고 한다.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알게 됐지? 알리아는 처음 며칠 동안 나에게 계속 말하고, 또 말을 걸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녀는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남자친구와 통화했고, 그때마다 가끔 울기도 했다. 담배 냄새를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방에선 피우지 않으니까. 내가 피우고 들어오면 잠깐 미간을 찌푸리는 정도. 그게 전부다. 코를 좀 골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알리아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나는 깨어 있으니까. 그녀에게 별다른 불만은 없다. 하긴, 그건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지. 모두 나에게 불만을 가질 뿐.
밤엔 또 코리브강에 나가 낚시를 했다. 과연 이걸 낚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낚시가 맞긴 한 걸까? 물고기는 거의 잡히지 않고 가만히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는 것, 그러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철수하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싸이먼과 또도르는 성 패트릭 데이인데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낚시만 했다. 싸이먼이나 또도르는 말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다. 가끔 농담을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게 농담인지 아닌지 제대로 못 알아듣고 넘어갈 때가 많다. 싸이먼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의 뱀을 모두 바다에 빠뜨려버려서, 그래서 이 나라엔 뱀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잡는 게 그 뱀의 후손이라고 했다. 그러곤 혼자 짧게 웃었다. 나나 또도르는 웃지 않았다. 어제는 싸이먼이 커다란 바구니에 맥주와 아이리시 머핀을 싸오기도 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낚시를 했다. 나만 혼자 네병을 마셨고, 싸이먼과 또도르는 한병씩만 마셨다. 아이리시 머핀은 먹지 않았다. 밤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낚싯대 끝에 매달린 초록색 불빛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싸이먼이나 또도르도 그래서 낚시를 하는 거겠지. 마음이 편해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래도 되나? 내가 편해져도 되나? 그러지 못할 건 또 뭐야? 나는 이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내 성격이 뭐 책임인가? 내 취향이 뭐 책임이냐고? 책임 따윈 다 강물에 빠져버리라고 그래. 그딴 건 다시 마주치고 싶지도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 싸이먼은 김주희가 나타나지 않은 날에도 그녀 몫의 낚싯대를 펼쳐놓았고, 낚시의자도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 후에 싸이먼 그레이는 빛고을타임즈에 이렇게 쓴 바 있다.
—(…) 그녀가 나오지 않는 밤도 많았다. 그럴 때면 밤이 평소보다 깊고 느리게 흘러갔다. 안개는 안개대로 가로등은 가로등대로, 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붙잡아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리는 또 어떤가? 강물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결들이 서로 다투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냈다. 중간에 커다란 바위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나면 강물의 결들이 확 위치를 뒤바꾸는데, 그때마다 속울음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곤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낚시는 때때로 고통스러웠다. 그러지 않을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떨리고, 발이 시리고, 귓불의 감각이 모두 사라지고, 대신 쩡쩡 얼음 깨지는 소리만 들리던 밤들. 나는 몇번을 철수할까, 마음먹었다가도 다시 제자리에 앉기를 반복했다. 예전 그녀는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강가에 나온 적도 있었다. 마치 이제 막 저녁을 먹고 나온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낚시의자에 앉아 케미라이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늦었네요, 물어볼 수도 없었다.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밤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었으니까. 하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밤이 더 많았다. 그 밤들을 지나오면서 나는 내 마음들을 더 정직하게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확인되는 법이니까. 사랑이 언제나 사후적인 것처럼.12
· 그해 3월 11일에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해 이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진도 9.0에 달하는 지진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특히 10미터도 넘는 해일과 쓰나미가 일어 토오호꾸 지방과 칸또오 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어학원 휴게실에 달린 TV를 통해 지진 속보와 후꾸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소식을 접한 수강생들은 김주희를 볼 때마다 아는 척을 하고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13 그에 대해 김주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 김주희가 어학원 리셉션에서 담당 매니저와 언쟁을 벌인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3월 21일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토오호꾸 지방에선 계속 여진이 일어나고 있었고, 김주희는 매니저의 호출을 받고 강의 시작 전 그와 마주 앉았다고 한다. 매니저의 이름은 셰인 더피(Shane Duffy)로 그는 어학원에서 수강생들의 각종 서류 대행 및 상담과 출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김주희에게 한장의 종이를 보여주며 ‘너의 어학원 출석률은 55%가 안 된다. 출석률이 60% 미만이면 우리는 규정에 따라 너를 이민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라고 먼저 운을 뗀 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너의 처지를 이해한다.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사유서 한장을 써주면 바로 출석률 재조정에 반영하겠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김주희는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셰인 더피가 다시 ‘왜 그러느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 네가 잘 기억하지 못하나본데, 우리는 어학원 수속을 진행할 때 너에게 분명히 설명해주었다. 이민국에 신고가 들어가면 너는 이 나라에서 추방될 수도 있고, 차후에 다시 이 나라로 들어올 때 입국이 거절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서 사유서를…’이라고 말했을 때, 김주희가 말을 끊었다고 한다. ‘무슨 처지?’ 김주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셰인 더피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무슨 처지를 이해하는데?’ 김주희가 다시 조금 큰 목소리로 묻자 셰인 더피는 음음, 거리면서 말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지진도 일어나고… 하지만 네가 원치 않는다면… 우리도 원칙대로 진행하겠다.’ 하지만 김주희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고 한다. ‘자꾸 무슨 처지를 이해한다고 그러는 건데! 말해봐! 뭘 아는데! 뭘 이해하는데!’ 김주희가 거의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자 강의 중이던 마이클 맥거번과 원장실에 있던 토빈 히스가 동시에 리셉션 데스크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김주희는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네가 뭘 이해하는데!’ 셰인 더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난 후, 난처한 표정으로 토빈 히스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 공교롭게도 그날은 어학원에서 분기에 한번씩 실시하는 화재대피훈련이 있는 날이었다고 한다. 오후 네시 정각, 사이렌이 울리면 모두 학원 건물 밖 주차장으로 대피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간단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학원 강사들은 형광 조끼를 착용한 후, 수강생들을 계단으로 인솔해 밖으로 나와야 했는데, 마이클 맥거번만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훈련이 거의 끝날 때쯤 주차장으로 나온 마이클 맥거번은 토빈 히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줄리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토빈 히스가 이유를 묻자 마이클 맥거번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몰라요. 계속 아무 말 안 하고 책상에 앉아 울고만 있어요.’
· 싸이먼 그레이는 그 모든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야 코리브강에 나타났다. 살이 빠지거나 아파 보이진 않았지만, 마치 발목 인대를 다친 사람처럼 어쩐지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옆 낚시의자에 앉았다.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고, 또도르도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일주일 동안 나는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마치 폐병을 앓는 것처럼 뛰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숨이 가쁘고 갑갑해지는 일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앞으로 수그린 채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의 낚싯대 끝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그녀가 잔뜩 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추방될 수도 있는 거예요? 사유서를 안 쓰면 쫓겨나는 게 맞아요?”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그 말을 들었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란 말인가?
“나는 여기에서 쫓겨나면 안 되거든요.”
그녀는 그 말을 한 후 자신의 무릎 위에 이마를 갖다 댔다. 그 상태 그대로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3월이었지만 여전히 골웨이의 칼바람은 날이 서 있었고, 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녀는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 티셔츠에 카디건 차림이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어학원 일인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한번 알아볼게요.”
그 말에도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깨를 잔뜩 수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날은 또도르의 낚싯대에 입질이 잦았다. 민물장어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연어와 홍치가 종종 루어를 물었다. 한번은 60센티미터가 넘는 연어가 올라와 내가 대신 뜰채를 잡아주기도 했다. 루어에서 연어를 빼내던 또도르가 고갯짓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나는 그제야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까 모습 그대로 상체를 숙이고 있었지만, 오한이라도 난 듯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얼핏 드러난 귓불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기요.”
나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또도르도 내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또도르가 슬쩍 그녀의 어깨를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얼른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쳤다. 그녀의 눈꺼풀은 경련이 일어나면서 자꾸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녀의 흰자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기요! 저기요! 정신 차려요!”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내 두 손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 있기만 했다. 또도르와 내 두 눈이 마주쳤다.14
· 그날 싸이먼과 또도르는 김주희를 싸이먼의 스튜디오로 옮겼다고 한다. 싸이먼은 바로 병원으로 가려 했지만, 또도르가 말렸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응급실에 가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또도르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이미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간이었다고 한다. 싸이먼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녀를 업은 채 스튜디오 쪽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 뒤를 또도르가 백팩을 메고 자전거를 끌며 따라왔다고 한다. 싸이먼은 스튜디오에 도착하기 전까지 딱 세번 멈춰 숨을 골랐는데, 그때마다 뜨끈뜨끈한 그녀의 신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한다. 싸이먼은 다시 최선을 다해 뛰었다고 한다.
· 또도르에 따르면 그녀는 독감이 분명했다고 한다. 또도르는 싸이먼의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이마에 식초를 묻힌 수건을 얹어주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미지근한 물에 후추와 소금을 섞어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입안으로 흘려 넣어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동네에선 다 이렇게 한다며, 이렇게 며칠 앓고 나면 일어날 거라고, 싸이먼을 보며 말했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녀에게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었으며, 그녀가 잠들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또도르가 다시 코리브 빌리지로 돌아가고, 새벽 다섯시 무렵 싸이먼은 그제야 일인용 소파에 앉아 쉴 수 있었다고 한다. 몸은 하루 종일 토탄을 깬 것처럼 노곤하고 얼굴엔 계속 열이 올랐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 싸이먼은 계속 침대 옆에 놓인 김주희의 운동화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조금 커 보이는 운동화, 발에 맞지 않은 운동화를.
· 싸이먼은 그 운동화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사랑해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
- www.facebook.com/antigiho ↩
- 그녀는 이딸리아 친구와 같은 방을 썼는데, 방 구조상 같은 침대에서 자야만 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siren2011.egloos.com) 참조. 후에 싸이먼 그레이는 김주희와의 이 첫 만남을 광주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시와삶』에 발표한 에세이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하는데, 그 내용은 조금 달랐다. “(…) 저기요. 내가 말을 걸자 그제야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몇초간 말없이 서 있었다. 작은 눈에 까만 눈동자, 숱 많은 눈썹, 그리고 조금 튀어나온 광대뼈와 작은 보조개, 얇은 입술까지. 주위는 어두웠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왜 그러시죠?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심하시라구요. 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었지만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몸 전체가 마치 바람을 맞고 선 가로등이 된 듯 어디선가 계속 텅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인사했다. 나는 다시 천천히 낚싯대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뭐지, 이게? 나는 찌를 바라본 채 생각했다. 왜 갑자기 주위 공기가 바뀐 거지? 나는 찌를 더 집중해서 바라보려고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 그녀가 쪼그려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싸이먼 그레이 「내게서 사라진 모든 것」, 『시와삶』 2016년 가을호). ↩
- 마이클 맥거번이 만난 첫번째 한국 학생이 바로 김주희였다고 한다. 그래서 명확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김주희는 그해 3월 어학원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킨 바 있는데, 마이클 맥거번은 그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했다고 한다. ↩
- 수강생들은 그냥 편하게 ‘BBQ파티’라고 불렀다. ↩
- 싸이먼이 나중에 알게 된 그 노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였다고 한다. ↩
- 김주희가 ‘국제학생교류의 밤’에 참석한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 참조. ↩
- 키어런 제퍼슨은 답장에서 ‘싸이먼, 선생이라는 자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지 않는 게 좋아. 그 인간들은 버릇처럼 불안한 거하고 무서운 거를 막 뒤섞어버린단다. 그래야 학생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싸이먼,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가 그 증거잖니!’라고 말했다. ↩
- 후에 싸이먼은 소설가 이기호에게 그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그 뜻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Ssi… Ssi… Ssipal? Jo, Jo… Jokara?’ 그 말을 들은 소설가 이기호는 팔짱을 낀 채 한동안 싸이먼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 참조. ↩
- 싸이먼 그레이 「밤낚시」, 빛고을타임즈 2017.1.18. 빛고을타임즈 경영진들은 이 칼럼을 읽곤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나도 이게 뭔지 안다. 내가 군대 있을 때 보초를 서면 딱 이런 마음이었다’라고 제작이사가 말하자 ‘뻥 좀 치지 마라. PX병이 무슨 보초를 서고 누굴 기다리고 그러냐? 기껏해야 라면 박스나 날랐겠지’라고 총무이사가 비아냥댔고, 그러자 다시 제작이사가 ‘너 동사무소 방위 출신이라서 그런 거 잘 모르지? PX병도 본부중대 소속인 거 잘 모르지? PX병도 밤이면 똑같이 불침번 서고 경계근무 나가고, 그러는 거 잘 모르잖아?’라고 발끈했다고 한다. 둘 사이를 말리고 나선 것은 편집국장이라고 한다. ‘자자, 그러지 말고 언제 한번 시간 내서 다 같이 완도에 가서 바다낚시나 한번 하죠. 거기 벵에돔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러자 홍보이사가 ‘그럼 그건 회사에서 비용처리 해주나?’라고 경리를 맡고 있던 송모씨를 보면서 물었고, 그에 대해 송모씨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집에 돌아갈 때 꽁치 통조림 하나 사서 김치찌개나 해드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
- 어학원 사람들 중 대다수는 김주희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민물장어낚시』, 서안출판사 2018, 8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