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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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 張喆文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가 있음. damsan@hanmail.net

 

 

 

그 앵두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그 앵두나무가

수돗가

확독 옆에 그 앵두나무

셋째형이 뒷골 샘터에서 캐다 심은 새끼나무

다음해 입술을 깨물게 하던 앵두 세개를 맺은 그 나무

우리 집 유일한 여자인 엄마가

참 예쁘다이

손을 뻗어 앵두 옆의 잎을 쓰다듬던 그 나무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 나무가

복분자 덩굴은 마당에서 놀고

땅이 차라리 편하다고 내려앉은 지붕

그 앵두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겉보리 익어가는 유월

햇살 맑은 날 가려

딸아이 데리고 간

뒤란

그 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거나한 아버지가 가까이 콧김 내뿜으며

우듬지 쓰다듬으며

허허허 웃던

그 밤

그 앵두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서른해 전에 떠나고

그다음 해 아버지가 두고 떠난

뒤란

머윗대나 몇가닥 베고

남의 담 타고 오디나 한 됫박 따고

나서는 동구 밖

아버지 묏자리는

누가 콩을 심어 먹는 건넛밭

그 곁에 어머니 자리

어디로 갔을까, 그 앵두나무가

일부러 들고 나선 바구니 끼고 서서

하하하, 웃는

딸아이 목젖이 들여다보이는 동구 밖

 

 

 

팔대산같이

 

 

구례에서 주천까지 눈이 온다

팔대산같이 눈이 온다

 

할머니,

눈이 와요

수묵(水墨)의 댓잎이

수백(水白)이네요

 

육모정에 눈이 온다

넘을 수 없는 벽소령에 눈이 온다

 

할머니,

구룡계곡 눈발 너머

갈 수 없는

그곳에도 눈발 치나요

그쪽 갈대꽃술에도 송이눈이 얹히나요

 

주천 이백 요천에 눈이 온다

남원 장수에 눈이 온다

 

할머니 증손주가

눈발처럼 춤을 추네요

그곳에서도

섬들島平 화전놀이

춤사위에 미영수건 휘날리나요

 

산동 번암 아영 인월에 눈이 온다

하동 산청까지

페이스북에 눈이 온다

 

할머니,

등성이 잔솔밭에 눈발이 쳐요

그쪽에도 영산홍 꽃눈 위에

미영꽃이 피나요

다른 하늘과도 카카오톡이 되나요

 

요천강에 눈이 온다

광한루 만복사지 만인의총에 눈이 온다

 

할머니,

팔대산같이 눈이 와요

가슴패기 열린 분지에 눈이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