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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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河在姸

1975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으로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이 있음. hahayoun@gmail.com

 

 

 

폴라리스

 

 

혀끝에 남은 말들이 하나씩 공중에 올라

검은 구멍들을 형성한다

이것은

낯익지 않은 어둠

 

나의 귀가

나의 것이기만 했다면

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폭죽처럼 떠올랐다 사라지는

 

어떤 생들이 겪는

추위의 이상함

서울, 베이징, 나하, 밤거리의 불빛들,

복수(複數)로만 환기되는 삶들,

보도블록 아래로 흘러가 바깥에 이르는 도시의 이물질들

 

우리 자신의 밝기를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우리는 그것을 증가시킬 수도 없다

 

우리는 우리를 되비추는 종족으로서

잊은 생이 되살아나기를 꿈꾸었으나

하늘에는

0개의 시간 속에 튕겨져 나온 그림자들

 

지구에 뚫린 하나의 구멍 위에

두 다리만 기대고 서서

다음 목적지를 잊고서

다만 빛나고 있음을 알 뿐인

 

 

 

또다른 해

 

 

내게 주어진 식물에게서

너의 계절의 냄새가 나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가진 흙의 구멍을 파는 법을 상상한다

 

지구가 아닌 행성에서

살아가는 아주 많이 다른

생물의 생김새를 눈뜨고 그리는 법과도 같이

 

하나의 말이 끝나면

또 하나의 말이 뒤따르지만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말

 

한가지를 생각해내기 위해

이곳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다

 

내가 잠을 자고 다시 깨는 동안

나의 잠에 동참하지 않은

모든 생명체들이

느리고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가 본 적 없는

표정을 오늘 아침에 고안해낸 너의 얼굴

 

빛의 차양을 간직하고 있다가

내 눈을 멀게 하는

단 하나의 장면 또는

틈 사이로 솟아오른 시간

 

다시는 살아보지 않게 될

또다른 해와 같이

너의 얼굴이 내 뒤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