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현장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

 

 

김관욱 金官旭

의료인류학자, 가정의학전문의.

저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흡연자가 가장 궁금한 것들』 등이 있음.

kimkwanwook1224@gmail.com

 

 

1. 바이러스가 비춰준 콜센터 상담사의 현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할 때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전화주문과 각종 문의가 빗발칠 테고, 상담사의 업무는 폭주하겠다고 말이다. 공휴일에 밀려오는 ‘콜 쓰나미’처럼 상담사들이 이 혼란 속에 힘든 일상을 보내겠다고 걱정이 앞섰다. 3월 10일 아침 뉴스에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 28명 집단감염’ 소식이 나오고 나서야 그들이 코로나 사태의 직접적인 대규모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센터 연구자인 나조차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집단감염’을 단번에 연관 짓지 못한 것이다. 밀집된 공간에서 잦은 목감기로 고생하던 상담사들이 독감 유행 시기나 메르스 사태 때 “단체로 감염이 돼봐야 정신들을 차릴까”라며 자조 섞인 한탄을 하던 것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실제로 구로구 콜센터와 관련하여 3월 22일까지 관련된 확진자가 152명(콜센터 근무 직원 96명, 접촉자 56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한 사회의 초기 반응은 또다른 집단발병의 도화선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곧이어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잇따랐다. 왜 이미 인후통 등의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도 자가격리나 신고를 하지 않고, 위험하게 밀집된 공간에서 업무를 지속했느냐는 것이었다. 즉 당신들은 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느냐는 비난이었다. 특히 감염자들의 이동 범위가 인천, 경기도에 이른다고 공개되고 이들이 이용했던 대중교통 노선과 방문 장소들이 알려지면서 원망 섞인 비난이 증가했다.

한편으론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청되는 순간에도 구로 콜센터에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 증권가에 배즙 배달을 해야 했던 상담사가 있었다. 여기에 콜센터 집단발병 기사가 난 지 이틀이 지난 12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폭증한 배송 업무를 처리하던 40대 신입 ‘쿠팡맨’이 새벽배송 중 사망하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확진 판정을 받았던 구로 콜센터 여직원의 남편이 4월 7일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서울시의 첫번째 사망 사례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4월 10일 구로 콜센터 감염자에 대해서 코로나로 인한 제1호 산업재해 판정이 났다.

콜센터와 관련된 이 모든 일이 불과 한달 사이에 일어났다. 연구자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3월 11일 집단발병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 현장의 사진이 놀라웠다. 사오십명 취재기자들의 북적거리던 모습 때문이었다. 언제 언론이 이처럼 콜센터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예능프로의 소재로, 감정노동의 대표 예시 정도로 미디어에서 소비되어오던 콜센터에 플래시 세례라니. 코로나 집단발병 직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콜센터 사업장 예방지침’에는 ‘책임의 주체’가 없었다. 콜센터는 대부분 하청업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책임질 주체가 ‘원청’인지 ‘하청업체’인지 명시되어야만 한다. 전국에 1000여곳의 콜센터가, 그중 서울에만 520여곳이 있으며, 적어도 40만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전염병 발병 시 책임져줄 주체는 물론 함께 항의할 노동조합마저 지극히 부족하다. 노동조합의 경우 필자가 확인 가능한 곳이 4군데(다산콜센터, 경기콜센터, 텔레웍스, 텔레닉스)뿐이다. 겨우 0.004%다.

상담사의 몸은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가 되고 나서야 겨우 주목을 받았다. 소위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1인 셈이다. 존재 자체로 의미를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병이 깃든 생명체로서만 그 의미가 채워지는 존재 말이다. 즉 건강한 상담사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담사가 시민에 가까운 현실이다. 이 글은 이러한 상담사들의 현실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기대지 않고 말이다.

 

 

2. 담배 피우는 상담사

 

콜센터 상담사를 주제로 소설을 쓴다면 첫 장면은 무엇으로 시작할까? 감정노동을 대표하는 직업인 만큼 폭언 앞에 쩔쩔매고 있는 상담사를 묘사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김의경의 소설 『콜센터』(광화문글방 2018)는 어떤 장면으로 시작할까? 피자 프랜차이즈 콜센터에서 실제 상담사 일을 했던 작가가 고른 장면은 ‘담배연기로 자욱한 옥상’이었다.

 

5층짜리 (주)엔씨파워 건물 옥상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와 서너 개의 머리 위에서 흩어졌다. 삼삼오오 옥상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의 입에서 독한 연기와 함께 탄식이 흘러나왔다. (…) 주리가 (…) 힘들게 끊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 현아 실장이 뛰어 들어왔다. “빨리빨리 내려가. 민원 들어왔어. 담배 피우는 것들 다 고소한대.”(『콜센터』 7~8면)

 

소설의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옥상 흡연구역은 중요한 장소로 부각된다. 옥상은 상담사들의 도피처이자, “걱정과 분노로 가득한 장소”(225면)로 묘사된다. 이들에게 흡연은 악성 고객의 쓰나미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처럼 그려진다. “담배 안 피우면 이 일 못해요.”(8면) 이렇듯 담배는 힘든 감정노동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구체적 사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콜센터이기 때문에 여성의 흡연을 너무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힘들다고 담배를 권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남성 사이에는 흔히 통용되는 일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흡연에 대해 이만큼 관대한 곳은 드물다.

현실은 소설 속 현아 실장의 외침에 가깝다. 여성의 흡연은 ‘민원’의 대상이다. 간접흡연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담배연기가 ‘여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2012년 서울의 대규모 콜센터에 이동금연클리닉 상담사로서 방문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런 ‘민원’ 때문이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자녀들 교육에 좋지 않다고 여성상담사의 ‘공공연한’ ‘지나친’ 흡연에 대해 민원을 넣었고, 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인근 보건소를 통해 파견된 금연상담 의사였다. 주민들은 여성상담사들을 자녀들에게 올바르지 못한 행동(흡연)을 ‘전염’시키는 위험요소로 보았다. 당시 해당 업체에서 확인된 여성상담사 흡연율은 37%였고, 이는 비슷한 시기 일반 성인여성 흡연율 6.2%의 5배를 넘는 수치였다.2 필자는 단순히 콜센터 상담사의 높은 흡연율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왜 콜센터라는 공간이 유독 여성들의 ‘흡연천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는지에 집중한다.

『콜센터』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하루 종일 담배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건물은 전국에서 이 건물뿐일 거”(8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마치 콜센터 건물이 굴뚝을 지닌 공장처럼 하얀 연기를 쉼 없이 뿜어내는 모습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같은 표현을 전세계 콜센터 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도의 사례에서도 본 적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쉐자드 나딤(Shehzad Nadeem)은 인도 콜센터 현지조사를 통해 “인도 테크놀로지 파크에서 올라오는 얇은 담배연기 기둥들은 디지털혁명의 어두운 측면을 상징한다. 이것은 공장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구름들이 산업혁명의 폐해를 상징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3 인도의 상담사들은 까다로운 백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시차와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견뎌내야 했다. 나딤은 인도의 외국계 콜센터 기업들이 상담사들을 회유하고 붙잡아두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월급 외에도 담배, 술, 파티 등 인도에서, 특히 여성으로서 경험하기 어려운 서구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제공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담배연기 기둥의 의미를 공장굴뚝에 비유한 것이다.

김의경이 지독한 감정노동의 현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성상담사의 흡연 장면을 사용했다면, 사회학자 나딤은 산업혁명의 폐해에 견줄 만한 디지털혁명의 부작용을 입증할 증거로서 담배연기를 제시하고 있다. 나딤의 주장은 산업혁명의 발생지인 영국의 사례를 통해 뒷받침된다. 영국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Owen Jones)는 자신의 책 『차브』(Chavs)에서 다음과 같이 영국 콜센터 산업의 의미를 설명한다.

 

지금(2011년—필자 주)은 거의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콜센터에서 일하며,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이는 1940년대 석탄 산업의 절정기에 약 1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탄광으로 내려간 것과 비슷하다. 광부들이 전후 영국 산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면, 오늘날은 콜센터 상담원만큼 노동계급을 제대로 대표할 만한 존재는 없다.4

 

존스가 묘사한 영국의 풍경은 제조업이 몰락한 후 텅 빈 공장 부지에 그 지역의 값싼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하며 들어선 콜센터들이었다. 그곳에서 여성상담사들은 상시적인 통제와 감시에 노출되고, 짧은 휴식 시간과 낮은 월급, 그리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파견근무 혹은 파트타임 노동이라는 현실에 처해 있었다. 이것은 영국이 산업근대화 이후 마주한 현실 중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대표적 묘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존스의 이같은 영국 현실 묘사가 낯설지 않다. 이는 필자가 2014년부터 1년간 현지조사를 시행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대표 수출산업공단이던 구로공단은 산업전사라 불리던 젊은 여공들이 섬유 및 전자기기 공장에서 ‘타이밍’이라는 고카페인 각성제를 복용해가며 밤샘 작업을 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첨단화 계획’에 의해 거대한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안에 다수의 콜센터 업체들이 입주했다. 콜센터 산업이 과거 공장의 대치라면, 여성상담사는 여공을 대신하는 노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순이’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름만 변했을 뿐, 쉽게 뽑고(학력 및 자격조건 낮음), 쓰고 버려지는(비정규직 하청 직원) 존재이니 말이다. 그 둘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운 노동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 증거가 ‘타이밍’(수면주기 극복)과 ‘담배’(감정의 한계 극복)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과거 여공들이 섬유 먼지 속에서 집단으로 과로하며 폐결핵에 걸렸다면, 오늘날 여성상담사들은 끊이지 않는 콜 속에서 밀집된 공간에 모여 쉼 없이 상담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집단 노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3. 닭장으로 비유되는 지독한 공간

 

콜센터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닭장. 참으로 지독한 표현이다. 규격화된 공간에 동일한 도구들(모니터, 키보드, 헤드셋)을 이용하며 네모난 격자 속에 갇힌 듯 일하는 모습을 두고 한 말일 테다. 외국의 학자들 또한 양계장 같은 “대량사육 농장”(battery farms), 20세기형 “노동착취공장”(sweatshop), “현대판 어두운 악마 같은 공장”(tomorrow’s dark satanic mills), “커뮤니케이션 공장”(communication factories) 같은 표현으로 콜센터의 물리적 구조와 노동의 형태를 묘사한다. 그렇지만 콜센터 환경에 대한 아래의 상담사 인터뷰 내용은 ‘닭장’이 그저 외형적 비유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K콜센터는 지금 4월인데 에어컨을 켠다. 어느 날 점심 후에 스산했다. 봤더니 에어컨을 켰더라. 그래서 난 에어컨 가동 시험 중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졸지 못하게 하는 거다. 팀장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많아서 저쪽이 덥다고 그래서 켰단다. 덥기는 무슨. 요즘 봄이라서 나른해서 졸지 말라고 켠 거다. 요즘 아주 약하게 맨날 틀고 있다. 쌀쌀해서 상담사들이 4월인데 목도리, 카디건 두르고 일한다. (…) 그리고 K콜센터는 창을 가린다. 햇빛이 없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린다. 왜? 콜만 열심히 하면 되지 창밖을 볼 필요 없다는 거다. 멍하니 시간 보내고 있지 말고 일하라는 거다. “너는 콜순이,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보는 거다.(50대 후반 여성, 카드회사 아웃바운드 상담사)5

 

위의 진술에서 보이듯 콜센터는 상담사들의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에어컨을 가동한다. 또한 단 몇초라도 외부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보통은 상담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 변명하지만) 창문을 가린다. 달력과 시계마저 일부러 배치하지 않은 곳도 있으며, 직접적 감시가 편리하게 실장의 자리를 정중앙 약간 높은 단상 위에 배치하거나 이석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휴게실 길목에 실장의 자리를 배치한 곳도 있다. 상담사들이 빠르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흡연실을 옥상이 아닌 상담실 바로 옆 테라스에 배치한 곳도 있다. 또한 실장은 수시로 휴게실, 화장실을 체크하며 이석한 상담사들을 제자리로 몰아간다.

통제와 감시는 이렇게 물리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담사들은 ‘자동전화분배기’(Automatic Call Distributor)라 불리는 기계를 통해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콜이 자동으로 배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장들은 ‘콜은 언제나 밀린다’라고 외치며 통화를 재촉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콜 연결에 대해 한 상담사는 과거 여공처럼 “전화기로 미싱하는 듯하다”고 표현하며 자신을 ‘콜공장’에서 일하는 ‘콜순이’로 불렀다. 한편 콜 내용 역시 실시간 녹취되며 평가가 이루어지고, 화장실과 휴게실 혹은 흡연실 이용을 위한 이석 시간도 초단위로 모니터링된다. 특히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화장실 이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통제였다.

 

집중시간이 하루 두 번 있다. 이석 금지시키는 시간이다. 오전 9시부터 10시, 오후 4시부터 6시 3분까지다. 이때는 화장실 가려면 팀장한테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집중시간이 끝나면 화장실이든 어디든 갈 수가 있는데 무조건 한번에 한명씩만 이석해서 갔다 올 수가 있다. 한 팀당 한 12명 정도이다. 단체 메신저에 화장실을 갈 거면 이석할 거라고 올리고 간다. 급하면 미리 부탁하는 글을 올린다. 즉, 메신저 창에 “손” 또는 “ㅅ”만 쓰면 된다. 화장실 가려고 손 들었다는 의미다.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내림” 또는 “ㄴㄹ”이라고 메신저 창에 올린다. (…) 그런데 휴식 시간은 하루 총 20분밖에 없다. 그것도 총합이다.(20대 중반 여성, 휴대폰 서비스센터 인바운드 상담사)6

 

<그림 1> 한 콜센터에서 강한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 가림막을 한 사진 (필자 촬영).

한 콜센터에서 강한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 가림막을 한 사진 (필자 촬영).

 

과거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직접 손을 들거나 자신의 자리에 푯말을 꽂아놓아야 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을 자주 마시지 말라고 지시하거나 아예 정수기를 멀리 치우는 경우도 있었다. 앞의 인터뷰를 한 상담사는 화장실 이용을 위해 성인으로서 허락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 수치스럽다고, “이젠 초등학생도 이러진 않는다”고 격분하며 이야기했다. 즉 화장실 이용을 위한 손들기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지시와도 같은 셈이다.

앞서 끊이지 않는 자동 콜 배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자들은 이것을 ‘테일러리즘’(Taylorism)의 일환으로 분석하며 소위 ‘전자식 파놉티콘’(Electronic Panopticon)이라 표현하기도 한다.7 그런데 테일러리즘의 핵심은 작업공정의 단순화에 의한 속도 개선에 있지 않다. 그 진정한 목표는 바로 노동자가 ‘실적에 따른 월급 상승’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 주어진 단순공정을 빠르게 반복시킴으로써 더 많은 작업량을 달성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콜센터는 이같은 측면에 있어서는 최적화되어 있다. 일일 통화량 및 통화품질에 대한 평가를 통해 매달 개별 상담사마다 등급을 ‘찍어’([그림 2] 참조) 월급을 차등지급한다.

 

<그림 2> 콜센터 내부 서열 도표

콜센터 내부 서열 도표

 

S등급이 25등까지이고 27만원을 인센티브를 준다. A등급은 22만원, B등급은 15-16만원, C등급은 10만원, D등급은 5만원이다. (…) 사실 난 이렇게 등급을 매기는 것도 싫고 내가 54등인 것도 서글프다. 내가 더 빨리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보다 못할까 싶다. 그래서 기분이 우울하다. 기분이 다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울하지만 더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나보다 밑에 있는 사람들 생각하면 더 우울하다. (…) 평가에서 참여도(칭찬)가 있다. 이건 상담이 끝날 때 ‘너무, 진짜, 정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추가로 점수가 얻는 것이다. (…) 칭찬의 경우 한번에 0. 3점 가산이다. (…) 그리고 평가 기준 중에 CPD(call per day)가 35점/100점으로 가장 크다. 그래서 무조건 콜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 많이 물어보면 짜증난다. 나중에 통화 끊고 ‘아이, **같은 **가 왜 이 **!!!’이라고 욕도 한다. 예전에 CPD는 굉장히 심했다. 정말 콜 수를 실시간으로 쪽지를 계속 보냈다. 콜 많이 받으라는 등 정말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는 콜 수가 차지 않으면 퇴근도 못했다. 이때 하던 이야기가 ‘친절, 정확, 신속’이었다.(40대 중반 여성, 공공기관 인바운드 상담사)8

 

엄밀히 말하자면 닭장과 콜센터는 정반대이다. 닭은 철조망 속에 갇힌 채 강제로 묶여 있지만, 콜센터는 철조망도 없고 가두기는커녕 붙잡지도 않는 곳(“가만히 앉아서 전화만 받는 게 힘들어요? 힘들면 당장 나가요. 마트나 공장으로 가세요”, 『콜센터』 101면)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떠날 수 없는 곳이다. 콜센터는 특별한 경력이 없거나 단절된 여성에게 ‘면접 기회라도’ 주어지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다른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콜센터에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악성 고객으로 인해 상처받고, 몸과 마음이 조금씩 힘들어지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상담사들이 많았지만 이들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그럼에도 막상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다. 스스로의 이런 처지를 “값싼 일회용 배터리” “불판 위 마른 오징어”와 같은 은유적 표현으로 빗댄 상담사도 있었다. 능력이 소진되면 언제든 버려질지 모르는 수많은 구직 여성 중 한명. 고개를 들고 부당한 업무 지시와 강요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는 위축된 여성. 닭장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지독해 보이지만, 그 밖 역시 지독히도 ‘살아남기’ 어려운 정글처럼 여기고 있었다.

 

 

4. 머리 검은 짐승이 사람대접받는 콜센터

 

콜센터 하면 가장 먼저 ‘감정노동’과 ‘악성 고객’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것이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폭언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으로 약물치료까지 받고 있는 상담사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현지조사를 통해 상담사들이 고객 이외에도 팀장 및 실장과 같은 직장상사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도 모욕스러운 경험을 견뎌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고객의 경우부터 보자. 상담사들이 고객들의 가시 섞인 말투나 비아냥대는 지적들에도 항상 ‘미소 띤 음성’을 발화하도록 강요받고 있음을 우리는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인터뷰를 했던 일부 상담사는 평소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일상에서도 말투가 상냥해져서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콜센터 근무 이후 평소 말투가 오히려 거칠어졌다는 이야기를 훨씬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카드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여성의 경우 자신의 “입이 더러워진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녀는 입사 시에는 욕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는 성격이 예민해지고 감정이 소진되어 퇴근 후 가족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나 원래 안 그랬는데 우울하다”와 같이 느끼면서 더 큰 자괴감에 빠져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담사들은 근무 중에는 고객들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노출되고, 퇴근 후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노출되어야 하는 두겹의 폭력을 마주한다. 탈진되고 거칠어진 마음을 달래는 가장 흔한 개인적 해결책은 바로 폭식이었다. 필자가 인터뷰한 상담사 중 8개월 만에 15킬로그램, 1년 만에 15킬로그램이 증가한 이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체형의 변화는 또다시 자존감 하락으로 연결되었다. 그 최종 결과 스스로를 혐오하고 욕하는 상태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다. 고객에게서 시작된 욕설이 상담사의 가족과 주변인으로,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로 전파된 셈이다.

그런 한편 상담사들은 고객한테서 받는 스트레스와 모욕보다 직장상사인 팀장과 실장으로부터 받는 고통이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고객은 비대면 상태이지만, 상사는 대면한 상태에서 상시적으로 지적을 하기 때문이다. 8년 경력의 우수 상담사인 50대 여성은 오랜 경력과 뛰어난 상담 능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하루살이 인생’, 스무살이나 어린 팀장은 ‘교주’라 칭했다. 퇴사하는 팀장에게 ‘황산이라도 뿌리고 싶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팀장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모욕의 기술은 여러 상담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실수를 언급하고 꾸짖는 것이었다. 이같은 모욕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수치스럽다고 한다. 특히 콜센터에 입사한 초기 시절에 경험한 일들은 더욱 잊히지 않는 고통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아래에 소개할 내용은 필자가 현지조사 중 알게 된 40대 중반의 여성 상담사가 2017년 3월 출근길에 특성화고 3학년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 기사를 접하면서 느낀 감정이다. 그 학생은 현장실습생으로 5개월간 통신사 콜센터 해지 방지 부서에서 일했다고 알려졌다.

 

신입상담사에게 콜 수를 채우는 일은 벌받는 느낌이다. K콜센터는 나이 40에 처음 들어간 콜센터였다. 검색능력도, 타자도 느린 신입은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상담석에 홀로 앉아 시간당 13콜이라는 콜 수를 채우기 위해 전화를 받고 오늘 몇 콜을 받았는지, 상담완료 콜은 몇개였는지 일일상담일지에 남기고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퇴근을 해야 했다. 자괴감과 모멸감과 허탈함과 ‘나는 무능력한 인간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던 퇴근길을 6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신입 시절이 생생히 기억났다. (…) 이제 그 악몽은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기사의 헤드라인 “콜 수 못 채웠어”에 소름끼치는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타인과 비교되는 무능력함,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드는 모멸적인 시스템, 퇴근 후 홀로 시행한 ‘나머지’ 콜상담 경험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온몸으로 기억하는 소름끼치는 기억들이었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상담실은 아마도 다른 동료들과 무능력한 자신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또 하나의 모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동료 상담사들이 주는 모욕이다. 콜센터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놓치는 대목이지만 매달 등급제 평가를 통해 상담사 간 순위가 매겨지고 이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하는 콜센터의 임금체계를 고려해본다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특히 ‘경주마’(열심히 실적만 보고 선두에서 달리는 상담사)로 불리는 우수상담사의 경우 쉽게 다른 상담사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필자는 카드회사에서 신규고객 유치에 있어 훌륭한 능력을 지녔던 50대 상담사를 통해 콜센터 내 동료 간 왕따 문화, 끼리끼리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A콜센터를 그만둔 이유는 지속적 왕따 때문이다. (…) 사실 팀장은 같은 팀원 사이에 경쟁을 붙인다. 근데 이게 너무 심해. 그래서 상담원들이 끼리끼리 뭉친다. 그래서 또 희생양을 찾는다. 뒷담화를 위해. 그러니 적당히 어울리고, 음담패설을 하고, 팀장도 같이 욕하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그걸 안 한 게 문제였다. 그런데 나 역시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B라고 있다. 입원도 하고 울기도 하고. 3일 동안 접수가 한 건도 없던 때가 있었다. 집안일도 얽히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엄청 많았다. 접수가 빵, 빵, 빵 이렇게 연달아 없었다. 그러면 스스로 물러나든지 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니깐 나한테 접근을 한 거다. 그런데 난 안다.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고! 왜냐하면 결국 내 경쟁자가 될 거니깐. 그리고 한 명 더, 술 먹고 차에 돌진해서 치여 죽은 남편이 있는 여자가 있었다. 나는 얘가 불쌍해서 가르쳐 줬는데 어느 순간 나보다 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그 애가 싫어졌다. 하하하. 그래서 알게 됐다. 나도 똑같았구나 하고.”9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팀장으로 인해 팀원 사이에서 희생양을 찾게 만드는 끼리끼리 문화. 앞의 인터뷰는 상담사들이 어느 순간 마치 ‘머리 검은 짐승’처럼 약육강식의 순위경쟁에서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상담사들은 매일 아침 업무 시작 전에 팀장한테 ‘빵셔틀’ ‘커피셔틀’ ‘과일셔틀’과 같이 나름의 상납을 경쟁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좋은 고객 데이터를 받기 위해 팀장한테 출근과 함께 눈도장을 찍는 셈이다. 그렇게 받은 리스트를 통해 상담사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한달에 약 15만원 안팎의 월급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정말로 마치 경마경기처럼 ‘스폿 프로모션’이라는 이벤트를 열어 상담사 간 실적 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것은 적당한 상금(천원에서 삼천원가량)을 넣은 편지봉투를 창문에 붙여놓고 접수를 성공하는 상담사 순으로 봉투를 떼어가게끔 하는 것이다. 돈 봉투 대신 과자를 걸어놓고 할 때도 있다. 상담사들이 헤드셋을 ‘투구’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이 과장이 아닌 듯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기를 부추기는 속에서 고객, 팀장, 동료 그 어디에도 쉽게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이 바로 콜센터의 현실이다.

콜센터라는 전쟁터에서 매일 싸워나가면서 많은 상담사들이 크고 작은 내상/부상을 입는다. 두통, 만성피로, 불면증, 청력손실, 위장장애, 피부질환, 그리고 각종 근골격계 통증을 거의 “일종의 의무”처럼 당연스레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했듯 폭식에 의한 급격한 체중 증가, 이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과 생리불순을 겪는 경우도 잦았다. 이러한 일상적 아픔들 이외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안면마비가 생기거나 공황장애 등을 앓는 상담사들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들여다볼 때 서두에서 언급한 “담배 없이는 이 일 못한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 당장의 성과가 중요한 콜센터에서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는 흡연의 폐해를 걱정하고 있을 여지란 없을지 모른다.

콜센터 내부에서 경쟁은 개인 상담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방문했던 400명 넘는 규모의 콜센터는 하나의 원청회사에 보통 3개 정도의 하청업체가 입주해서 함께 근무하는 구조였다. 매일 각각의 하청업체는 서로 실적 경쟁을 했다. 개개인의 상담사에서 시작해 하청업체에 이르는 다단계의 경쟁구도([그림 2] 참조)야말로 밖에서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어도 제대로 된 방역대책과 예방수칙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든 근본적 원인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지는 불분명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집단의 목소리로 저항을 한다는 것이 또다시 얼마나 많은 모욕들을 견뎌내야 하는 일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필자가 한국 내 최초의 콜센터 노동조합을 결성한 곳에서 현지조사를 시행한 결과 노동조합을 결성한 집행부원들이 회사 측으로부터 극심한 ‘직장 내 따돌림’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10 공개적 혹은 개인적 ‘비아냥’과 ‘노골적인 비하’는 물론이고 비조합원 상담사들로부터 물리적으로 고립되었다고 한다.

 

 

5. 코로나 이후에는 덜 아프기 위하여

 

코로나 사태로 콜센터 상담사의 열악한 현실이 일순간 주목받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관심의 결과 마련된 지침들은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실제 현장에서는 무의미한 경우가 많았다. 구로 콜센터 코로나 집단감염에 모인 사회적 주목도 상담사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주된 이유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혹시 이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콜센터라는 경계선을 벗어나는 것이 더욱 두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의문이 든다. 이러한 회의감은 단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신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 2014년 한 콜센터 업체에서 30대 남성이 부당한 노동 강요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3년 뒤 바로 그 콜센터에서 3학년 여고생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동일한 콜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동안 콜센터는 마치 사회와 격리된 공간인 듯 주목받지 못해왔다. 그렇게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상담사들은 무관심 속에 아파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토록 쉽게 콜센터라는 경계선을 넘어 들어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왜 그동안 인권은 그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했을까. 코로나 사태 이후를 준비하며 한국사회가 다시금 진지하게 그 답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1. Adriana Petryna, “Biological citizenship: The science and politics of Chernobyl-exposed populations,” Osiris (19), 2031, 250~65면. 인류학자 페트리나는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을 조사했다. 그녀는 당시 피해자인 시민들이 의학적으로 손상을 입은 자신의 몸을 입증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이렇게 의학적 권위에 의해 인정받은 병든 몸만이 시민권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생물학적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2. 김관욱 「‘오염’된 공간과 몸 만들기: 콜센터의 노동통제 및 여성흡연자의 낙인형성과정」, 『한국문화인류학』 48 (2), 2015.
  3. Shehzad Nadeem, Dead ringers: How outsourcing is changing the way Indians understand themselv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48~49면.
  4. 오언 존스 『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이세영·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2014, 215면.
  5. 김관욱 「‘미소 띤 ARS’: 메를로퐁티의 몸 현상학으로 본 콜센터 여성상담사의 감정 ‘이상의’ 노동」, 『한국문화인류학』 51 (1), 2018, 63면에서 재인용.
  6. 같은 글 64~65면에서 재인용.
  7. Sue Fernie and David Metcalf, ( Not) Hanging on the Telephone: Payment Systems in the New Sweatshops: Centre for Economic Performanc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1998.
  8. 김관욱, 앞의 글 66~67면에서 재인용.
  9. 같은 글 77면에서 재인용.
  10. 김관욱 「저항의 무게: 콜센터 여성상담사의 노동조합 형성에 대한 몸의 현상학」, 『한국문화인류학』 51 (3), 2018.

김관욱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