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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상국 李相國
1946년 강원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 등이 있음. bawoo8586@hanmail.net
강변역
강변역 물품보관소 옆 벽에는
밤눈* 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
추운 노천역에서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의 바깥이 되어주고 싶다는 시다
나는 그 시 때문에 볼일이 없는데도 더러 거기로 갔다
바깥이란 말 때문이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 시의 바깥에 오래 서 있고는 했다
--
*김광규의 시
Jangajji Road
강변역을 떠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낙타를 갈아탄다
이 길은 천리 밖 동해를 떠난 내가
月谷에 깻잎장아찌를 전해주는 길
실크로드의 어딘가에 敦煌이 있었던 것처럼
낡은 벽화로 가득한 이 동굴에서
나는 대개 경전을 읽거나
눈을 감고 면벽한다
月谷에는 자식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故國이다
스쳐가는 역마다 지푸라기 같은 사내들과
아이를 못 낳는 계집들과
핸드폰을 든 행자들이
티끌처럼 아우성을 친다
험준한 산악을 넘어 여기까지 오는 데만
예순해가 더 걸렸다
月谷은 西에 있고
동쪽에서 살던 일을 다 잊지는 않았으나
月谷에 이르면 나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은 발굴될 것이다
나는 고단한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해 지는 풍경을 보고 싶었으나
주린 낙타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막무가내
사막의 풍진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경전을 덮고 月谷을 향하여
지금 미아역을 지난다고 문자를 날리는데
스크린 도어가 닫히고
언뜻언뜻 맞은편 동굴 벽에
그림자 같은 내 모습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