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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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高炯烈

1954년 강원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청봉 수박밭』 『해청』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유리체를 통과하다』 등이 있음. sipyung2000@hanmail.net

 

 

 

날개/옷걸이

 

 

신간은 출간되지 않는다

새로운 언어와 음울함과 서사와 메타포

시행 자체가 사랑의 핏줄이던 시절은

다시 제본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장에도 유혹되지 않는다

서로 붙지 않으려는 접착제처럼

아무도 죽지 않는 시단에서

난조(亂調)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황사바람의 어둠 속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언제나 못난 자들이 주인이 된다

피도 꿈도 절규도 없는 죽음의 암실에서

파괴된 아뜰리에, 시인은 사라졌다

옷걸이에서 시가 죽는다

 

 

 

()는 죽었다

 

 

말과 함께 줄기차게 뛰어가다 돌아본다

암석 동굴의 도시 뒤쪽,

우리가 뛰어온 곳은 앞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는 죽어서 살아간다

도시는 죽어서 사는 곳이라고 문장을 수정한다

그들은 시의 종말이 없다고 믿는다

종언만 있을 뿐

 

모든 말은 죽음 속에 모인다

끝이 늦게 온 시인과 끝이 빨리 온 시인

자기 역에 도착 못한 시인은 불행해 보인다

 

그들의 시는 파괴되어간다

그래서 역은 모든 시간을 사유화한다

단단한 이 첫번째 베드에서 나의 꿈은 잠든다

더이상 시를 배회하지 않는다

 

모든 시가 죽기 전에 나의 시가 죽는다

죽음의 거리, 시는 책 속에서 절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