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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원평 孫元平
2017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아몬드』 『서른의 반격』 『프리즘』 등이 있음.
타인의 집
가늘게 뜬 눈 틈으로 빛을 바라본다. 벽면을 아름답게 수놓은 작은 세모 조각들이 바다에 비친 햇살처럼 현란하게 반짝인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온 햇살이 벽에 만들어낸 문양이다. 블라인드 자체는 빛바랜 푸른색으로, 낡고 허름해서 외면하기 십상이지만 한낮의 태양이 빚어내는 빛의 물결만은 언제고 나를 설레게 한다. 홀로 있는 낮 시간, 임동혁의 「라 발스」가 격정적으로 공간을 메운다. 3년 전 산 구형 스마트폰의 보잘것없는 스피커로도 그의 악마적인 재능과 굳이 겸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안다는 듯한 예술가적인 젊은 영혼을 숨기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새삼 감탄하며 커피를 들고 거실로 나간다. 환하디환한 햇살이 창밖으로 보이는 음울한 뒷산과 대조를 이뤄 광휘로 가득한 쓸쓸함을 빚어낸다. 풍경과 빛과 음악, 그리고 고독한 내 존재는 완벽을 이룬다. 절망과 비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도 있지만 어쩌면 삶이란 꽤 괜찮은 건지도……
머릿속의 생각을 맺기도 전, 두 귀가 쫑긋 선다. 반갑지 않은 소리가 한순간 모든 걸 망쳐놓는다. 아무리 큰 소음 속에서도, 건반을 강타하는 임동혁의 역동적인 선율 속에서도 영혼을 쪼개는 도어록의 날 선 금속성 소리는 기어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는 총성을 들은 한밤의 야생동물처럼 한달음에 달려 들어와 도어록이 해제되기 전 방문을 닫는 데 가까스로 성공한다. 사이칠, 팔오일, 이팔공일. 삼삼칠 박수처럼 간격을 띄는 걸 보면 이건 희진이다. 여덟번째 숫자가 들릴 때 나는 이미 방문에 등을 기대고 할딱대고 있다. 순식간에 내 공간은 집의 사분의 일만큼 줄어들었다. 오늘의 평화는 조금 더 길 줄 알았는데 완벽한 오산이었다. 희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으며 간간이 트림을 내뱉는 소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나는 가빠진 숨을 깊은 들숨으로 진정시켜본다.
화장실 밖으로 나온 희진이가 쿵쾅거리며 냉장고로 향한다. 사실 나는 희진이를 한번도 호칭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얹혀살던 백수 삼촌을 떠올리게 하는 희진이는 따지고 보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말을 덜 섞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서 그가 항상 ‘희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웹툰 작가인 그의 필명이 본명을 딴 ‘희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그는 그림보다는 소리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데 더 소질이 있는 듯, 상상력 빈곤 수준인 나 같은 사람조차 그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행동이 눈앞에 그려지듯 선명해진다. 그 장면들은 상쾌함과 정반대 지점에 있으며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가장 불쾌한 소리’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망라한다. 꽉 닫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는 가차 없다. 지금도 나는 그가 냉장고 속의 바나나를 꺼내 먹는 모습을 보지 않고도 본다. 바나나와 입안의 침이 빚어내는 진득한 점액질의 소리는 입을 클로즈업해 음량을 최대로 올린 것처럼 쓸데없이 실감난다. 이럴 때면 이 집이 오래된 집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겉은 번드르르해도 우리의 구획은 얇은 마분지로 나뉘어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그렇게 오후의 호사는 희진이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이제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있을 예정이다. 살짝 답답하긴 해도 내 방에 있을 건 다 있다. 책상, 미니 책장, 간이 옷장, 해가 드는 커다란 창과 빛을 허용하면서도 과한 햇살을 막아주는 블라인드, 무려 퀸 사이즈의 푹신한 침대와 그 곁의 협탁, 내가 가장 애정하는 ‘내돈내산’ 미니 냉장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망의 화장실까지. 물론 나는 행동과 소리에 조심한다. 이어폰을 빼고 음악을 듣는 건 집이 비었을 때뿐이고 화장실을 쓸 때도 물을 트는 건 필수다. 공동생활에서 종종 발생하는 난감한 일을 줄이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소리를 줄이고 존재를 최대한 감추는 거다. 그건 배려라기보단 이 집에 사는 이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저녁이 되자 또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문을 여닫는 느린 속도와 조심스럽지만 신경질적인 발걸음으로 냉장고로 직행하는 건 다름 아닌 재화언니다. 시민단체에서 일한다는 그녀와 몇마디 말을 나눈 적은 있지만 이 언니와도 친하다고 하긴 어렵다. 냉장고를 확인한 재화언니의 툴툴대는 소리가 이어질 때쯤 나는 지겨운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어이 언니가 어휴, 하고 숨을 뱉고 발걸음에 가속도가 콩콩콩 실리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심정으로 작은 전쟁의 시초를 예감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언니가 희진이의 방문을 두드리기 직전 에어팟을 두 귀에 꽂고 유튜브를 트는 데 성공한다. 예고편으로 됐으니 본편은 생략하기로 한다.
본편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기 짝이 없다. 둘의 언쟁은 주로 희진이가 단초를 제공하고 재화언니가 반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장소는 희진이의 방 앞, 내용은 대부분 냉장고 음식의 배분이나 화장실 청결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다다다 쏘아붙인 재화언니가 희진이의 방을 마주 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 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오늘은 아까 희진이가 먹은 재화언니의 바나나가 이유였을 것이다.
둘을 보면 뭘 저런 걸로 싸우나 싶다가도 대학 졸업 후 지냈던 고시텔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이해 불가한 일도 아니다. 나도 문간방에 살았다면 똑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 거다. 새삼 내 방 안의 미니 냉장고가 든든하고 기특해진다. 부대껴 산다는 점에서는 고시텔과 다를 바 없어 보여도 이 방 안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치상 안방인 내 방은 ‘마주 보는 문간방 형국’인 희진이와 재화언니의 방과는 격 자체가 다르단 말씀이다. 그러니 지금 내 마음의 여유는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격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더 맞으려나.
재화언니마저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그머니 나온다. 거실 냉장고에 있는 미니 무화과파이를 옮겨놓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재화언니처럼 떡하니 보이는 곳에 음식을 놔두고선 그걸 건드리는 사람을 탓하는 건 안일하다. 조용히 득을 취하는 게 진정 현명한 판단이거늘. 고추장통 뒤에 숨겨놓은 내 무화과파이는 검은 비닐로 싸여 있어 엄마가 보내준 오래된 강된장쯤으로 인식된다. 파이를 소중히 들고서 새삼 거실의 기괴한 풍경을 한번 바라본다. 냉장고 옆으로는 테이블이 하나 있고 소파가 있을 자리엔 작은 망이 쳐져 있다. 그곳이 쾌조씨, 내가 집세를 지불하는 사람의 공간이다.
쾌조씨의 본명은 재욱이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된 아이디인 쾌조씨라고 칭한다. 쾌조씨는 뭐랄까, 설명하기 복잡한 인물이다.
파이를 들고 돌아선 순간 테이블 밑에서 툭 튀어나온 팔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팔이 꿈틀거리더니 테이블 밑에서 나온 쾌조씨가 한잠 푹 잤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종일 집을 비운 줄 알았는데 내내 여기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임동혁의 「라 발스」와 그 음률을 따라 하는 내 허밍을, 문 닫지 않고 내린 변기물의 소리를 이 사람과 공유했다는 말인가. 온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던 그 순간, 시의적절하게 터진 쿠쿠 밥솥의 증기 내뿜는 소리가 나 대신 맘껏 비명을 질러주었다.
쾌조씨를 처음 본 자리는 기괴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 내게 일어난 일들이 하나같이 기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팩트만 요약하면 애꿎은 한줄이라, 애인과는 파토 나고 회사에선 잘리고 살던 집에선 월세 인상에 못 이겨 쫓겨났다는 정도. 그때 겪은 감정의 나락을 복기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요약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
어쨌든 곡절과 방황의 소용돌이 끝에 내가 서 있던 장소는 집 구하기 앱에 올라온 글이 안내해준 시내의 스타벅스였다. 글이 풍기는 냄새는 적잖이 수상쩍었지만 집의 상태가 너무도 탐나 이끌리듯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미팅 비용은 오천원. 집 정보를 받는다는 이유로 내 쪽에서 지불해야 하는 돈이었다. 내 앞엔 대기자들이 네명이나 됐는데 글을 올린 이는 나와 등지고 앉아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는 면접자들의 얼굴은 모두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으며 그들도 그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면접 자체는 평범했다. 신상에 대한 간단한 구술과 통장의 잔액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쾌조씨는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스마트폰에 간단하게 메모했고 확인사항이었던 통장잔액도 액정 너머 슬쩍 확인했을 뿐이었으므로 개인정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은 안심이 됐다. 이 말도 안 되는 만남에 사람이 몰린 이유는 쾌조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이 싼값으로 시내 아파트에서 살 사람을 구하는 일종의 세입자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30년 된 아파트였지만 내부는 몹시 깨끗했고 도심 한중간에 위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인 걸 넘어 터무니없이 싼 쪽에 가까웠다. 설명에는 수익을 위함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품격 있는 공동체 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라는 말과 원래 살던 사람 중 한명이 나가게 돼서 충원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높은 경쟁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방을 직접 볼 수는 없나요.
—1차 면접에 통과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용기 내 물은 질문에 대한 쾌조씨의 답은 차갑지만 쾌활했다. 먼저 신상을 확인하고 집을 보여주겠다는 게 이 면접의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그에게선 아쉬울 것 없다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그는 왜소한 몸에 갈색 체크무늬 바지와 회색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신경질적으로 얇은 손가락은 시력 나쁜 마녀를 속이려 헨젤이 쇠창살 너머 내민 꼬챙이를 연상시켰다.
며칠 뒤 전화를 받고 다시 그를 만난 곳은 아파트 입구였다.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막상 연락을 받았을 때 의외이기도 했거니와 정식 경로를 통하지 않은 집 구하기가 되려 껄끄러워 나가기를 망설였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하철을 나서 아파트로 향하는 길에 이미 내 생각은 바뀌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끝도 없이 올라가야 한다는 걸 빼면 아파트는 역에서도 가까운데다 대단지라 관리도 잘되고 있었고 스타벅스와 멀티플렉스마저 도보로 이용 가능한 역세권, 스세권, 슬세권에 속했다. 단지에 들어서는 순간 두근거리기 시작한 내 마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703호의 문을 여는 순간, 결혼을 앞둔 신부처럼 벅차올랐다. 나에 앞서 안으로 직행한 쾌조씨가 5성급 호텔의 프런트를 열어주는 숙련된 벨보이처럼 안방 문을 활짝 젖히며 몸을 비켰다.
안방은 창가에 붙은 거대한 침대를 제외하곤 텅 비어 있었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화장실 앞까지 뻗쳐 들어왔고 그 덕분에 화장실은 물기 하나 없이 빛났다. 방이 비어 있으면 다른 동거인들이 화장실을 쓸 법도 한데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다 변기 물마저 얕게 말라 있었다.
—이 화장실은 아무도 안 쓰나봐요?
—그건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의 계약사항엔 포함이 안 돼 있어서요. 아시죠, 자본주의.
쾌조씨가 웃었다. 미소와 대비되는 ‘아시죠, 자본주의’의 말투가 서늘했지만 환한 햇살이 그 느낌을 무마해주었다. 본인에게조차 그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는 게 의외긴 했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을 보자 내 마음은 봄눈 녹듯 말랑하고 촉촉해졌다. 아름다운 벚꽃 잎이 나풀나풀 흩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꽃길을 걸으려면 꽃길 안에 있어야 한다! 그 목소리의 잔음이 사라지기 전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장 가계약금 50만원을 카뱅으로 입금하려는데 쾌조씨가 턱을 쓰다듬으며 마침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참,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이 방에서 직전에 사시던 세입자 말이죠. 이사 갔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실은, 자살했습니다.
네? 하고 되묻지도 못한 채 나는 송금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러나 내 당황한 눈빛을 눈치챈 듯했음에도 쾌조씨의 태도는 오히려 거만한 쪽에 가까웠다.
—사실 말씀 안 드려도 상관없는 일이긴 해요. 이 방‘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거든요. 이 방에 ‘사시던’ 분이 고향집에 내려가서 그렇게 되신 거죠. 단지 안에 구급차 한대 안 들어왔어요. 그래도 혹시 나중에라도 아시게 되면 찝찝하실까봐 말씀드립니다.
—아, 네……
—고민이 필요하시면 시간을 좀 드릴까요?
나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쾌조씨는 5분 만에 돌아와 결정을 했냐고 물었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맘에 안 드시면 다음 분한테 연락드리면 되니까요.
나는 궁지에 몰린 걸 티내지도 못한 채 방을 둘러봤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부동산은 심리라더니 갑자기 이 정도 가격에 이 위치, 이런 급의 방을 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어엿한 아파트, 게다가 나만이 쓸 수 있는 화장실까지 딸리지 않았는가. 베란다 창문 밖으로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의 소음마저 생동감 넘쳤다. 창문으로 넘나들면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세탁까지 완료할 수 있는 완벽한 프라이빗 공간, 게다가 시세에 비하면 핫딜이나 다름없는 월세, 이 방은 그런 곳이었다.
—할게요!
나는 도박꾼의 심정으로 외치며 송금 버튼을 눌렀다. 쾌조씨가 내게 동거인들의 신상과 특징, 공동생활에서의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내가 저지른 모험에 가슴이 계속 두근댔다. 집에서 나가기 직전 그에게 물었다.
—근데 어느 방에서 지내세요?
쾌조씨는 말을 약간 끌며 대답했다.
—저는, 거실이랑 베란다요. 베란다 가운데는 중문으로 막혀 있어서 프라이버시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방에 정신을 빼앗겨 제대로 보지 못한 거실과 베란다를 떠올렸다. 거기가 누군가의 단독 주거공간으로 쓰일 만큼 넓었던가. 내 생각을 몰아내듯 쾌조씨는 비밀스럽게 마지막 주의사항을 말했다.
—동거인들한테 집세 얘기는 하지 마세요. 방은 제일 넓은데 값은 제일 싸거든요. 아무리 미신의 영향이라 치더라도 이건 자본의 생리에도 인간의 심리에도 맞지 않는 처사니까요.
어쭙잖은 단어를 곁들여가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쾌조씨의 말끝에서 아까 들은 ‘아시죠, 자본주의’가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했다. 나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그는 내가 집세를 지불해야 할 사람이었다.
나는 대체로 이 집에서의 생활에 만족했다. 친구 집에 얹혀 눈치 보며 살던 때나 고시텔에서의 생활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질적으로는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좁은 공간은 인간을 좀먹는다. 사방의 벽들이 가운데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방 안에서 느껴지는 옥죄는 고립감은 중력보다 무겁게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대화의 기능을 상실한 입은 무언가를 먹으려 할 때만 제구실을 했고 그건 나 스스로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허기의 냄새가 내 인생의 냄새 같았다.
이곳은 달랐다. 여긴 숙소가 아니라 엄연한 ‘집’이었다. 고시텔 벽 너머의 소음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민폐지만 한 집 안에서 나는 소음은 생활의 소리다. 부딪히기 싫어 후다닥 문을 닫기는 해도 나는 고립감을 막아줄 최소한 온기나 소리, 탐탁지 않을지언정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에 소속돼 있었다. 도심지, 넓은 방,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편의시설들은 되새길수록 뿌듯했다. 음산했던 날들은 안녕. 집. 나는 비로소 집에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남자친구와 파혼한 이유도 집 때문이었다. 그가 지방으로 발령 나면서 롱디 커플이 된 우리는 2년간 누구보다 애틋한 연애를 지속했다. 갈등은 장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곳이 없어서 생겼다. 하늘 아래 어느 집도 우리의 예산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고 번뇌에 휩싸여 입술을 쥐어뜯는 동안 매주 치솟는 집값에 우린 꿈꿨던 곳에서 한 구역씩 밀려나고 있었다. 더이상 밀려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남자친구는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잠깐이야, 처음 몇년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시작이 될 수 없었다. 편입과 적응 그리고 순응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에 내 삶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논쟁은 점차 본질에서 벗어났고 세상은 우리의 시선을 조금씩 비틀어놓더니 종내는 서로를 끝 간 데까지 이기적인 요즘 여자와 시대에 뒤떨어진 한심한 한국남자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우린 그렇게 남남이 됐다. 표면적으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자존심을 할퀴어서였지만 실상은 어지러울 만큼 환하고 삭막한 도시의 야경 속에 우리를 품어줄 곳이 한칸도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씁쓸한 과거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물론 접고 접어서 전체 크기의 사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꿈이 다시 피어나고 뻗어나가기엔 충분한 공간이다. 이 집에 살게 된 후 내겐 다시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생겼다. 언젠가는 온전하게 이런 집에 살고 싶다. 반의반만큼 접힌 집이 아닌, 나만을 위해, 내 가치만큼 존재해줄 집 말이다.
가끔 이 방에 살던 사람을 떠올려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몇이었고 하던 일은 뭐였는지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오히려 쾌조씨에게 절대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구체적인 연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괜스레 나와 공통점을 발견해 센티해지기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리는 날, 혹은 깊고 적막한 밤이면 이 방에 머물던 영혼을 불현듯 떠올린다. 그 사람의 혼령이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럴 때면 두려움이 온몸으로 퍼지기 전에 얼른 마음을 다잡는다. 어차피 우린 남의 무덤 위를 밟고 서 있는 것뿐이라고, 지구 자체가 거대한 공동묘지이며 삶은 그 공동묘지 위를 끊임없이 순환해 생겨난 결과일 뿐이라고 위안하며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 위에 발을 디디는 게 인생이라면 그 죽음이 얼마 전 나와 같은 공간에 머물던 사람에게 닥쳤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기위안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정확히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일상으로 느껴질 때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화언니와 희진이의 특징을 낱낱이 파악하고 그들의 껄끄러운 관계를 알아버린 후에도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그들의 행동 패턴과 시간을 파악한 나였으니까. 하지만 엮이지 않는 데엔 한계가 있었고 그건 어느 날 재화언니가 내 방문을 두드리면서 곤란한 부탁을 하는 것으로 촉발됐다.
통통하지만 거친 얼굴에 어정쩡한 미소를 지은 재화언니의 손엔 마른 쿠키를 담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하필 당이 떨어진 무방비 상태의 오후라 그랬을까. 어느새 재화언니와 나는 내 방 안에 마주 앉아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의미 없는 수다가 신상파악인 것을, 친절한 시선이 내 방을 탐색하는 눈길이었음을 더 예리하게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리하여 맥주까지 두 캔 비워지고 난 뒤에도 나는 언니의 진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가 말을 할 때까지.
—있잖아, 할 말이 있는데……
—뭔데요, 언니?
—화장실 좀 써도 될까?
—그럼요. 다녀오세요.
그러나 웬일인지 언니는 움직이지 않고 내 눈만 뚫어지게 바라봤고 그제야 나는 언니의 질문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길어지는 침묵 속에 언니는 호소력을 담은 눈빛으로 그윽하게 내게 무언가를 청하고 있었다.
난감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희진이와 쾌조씨와 함께 쓰는 화장실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재화언니와 개인적인 접촉을 피했던 이유도 바로 오늘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나는 내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른 채 입부터 열었다.
—저기 언니.
하지만 재화언니도 꽤 오래 준비한 멘트였음에 분명했다. 승기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급히 내 말허리를 챘다.
—곤란한 건 알아. 저 화장실이 시연씨 단독 계약조건인 것도 알고. 근데 남자랑 같이 화장실 쓰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상상해봤어? 나 아침마다 관리사무소까지 내려가서 거기 화장실 쓴다?
언니가 코를 한번 훌쩍거렸다. 나는 공감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냉정히 말해 그건 재화언니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언니가 코를 한번 더 훌쩍였다. 다행히 눈물 섞인 코가 아니라 단순히 콧물을 들이켜는 행위였다.
—대신 값은 줄게. 한번 사용할 때마다 50원. 샤워는 시간당으로 하고, 아니면 아예 월로 끊어도 돼.
나는 언니의 말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장면화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재화언니를 위해 시간마다 문을 열어주며 그녀가 내민 백원짜리 동전에 짤랑거리며 거스름돈을 내줄 용기가, 그 행위를 위해 미리 동전을 구비해놓거나 모인 금액을 ‘화장실 사용비’라는 명목으로 송금 받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러기 싫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요 언니. 제가 사실 병이 있어요.
—무슨 병?
급하디급한 내 말에 언니는 당황한 듯 물었지만 내 표정에서 벌써 읽은 것 같았다. 언니랑 화장실 같이 쓰기 싫은 병이요,라고 말하는 내 눈빛을. 더는 말이 오가지 않았고 긴 침묵과 함께 그날의 다과는 어색하게 끝났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나. 다음 날 방문 앞엔 레몬청이 한 병 놓여 있었다. 소화와 원기회복에 좋다는 메모도 함께였다. 난 레몬청의 무게만큼 무거워진 마음으로 그걸 언니의 방 앞에 돌려놓았다. 이런 쪽지도 붙여서 말이다.
언니 미안해요. 어제 병이 있다고 한 건 거짓말이에요. 상처가 되겠지만 거짓으로 속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요. 언니, 전 제 권리만큼 살고 싶어요. 제가 지불한 만큼, 제가 누리기로 약속받은 만큼요. 그 사실에 대해 죄스러운 느낌을 느끼기도 싫고, 가식으로 가리고 싶지도 않아요. 미안하다고 썼고 정말 미안한데 미안하지만 미안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언니.
마지막 문장인 ‘미안해요 언니’는 지웠다. 그리고 앞 문장들을 새 포스트잇에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갔다. 새 포스트잇은 처음 포스트잇보다 크기가 작아 문장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차례 같은 내용을 적다보니 최종적으로 내가 언니의 문 앞에 붙인 쪽지는 최근 내가 쓴 것 중 가장 예쁜 손글씨로 적힌 메모가 됐다. 우리 사이엔 더이상 불편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다시는 다과나 레몬청 따위가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희진이와 재화언니의 전쟁이 시작되자 나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됐다. 위생(변기 뚜껑에 묻은 오물)과 영역(택배 상자의 위치), 식품관리법 위반(김치 뚜껑을 열어둠)을 주제로 번져나간 싸움은 그날따라 끈질기고 격렬했다. 쾅. 희진이가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잠시 틈을 둔 후 저녁으로 먹을 냉동 파스타를 데우기 위해 살금살금 문을 열었다. 아까부터 꼬르륵거리는 배를 어서 빨리 진정시키고 싶었다. 한데 부엌엔 뜻밖에도 재화언니가 서 있었다. 나를 쏘아보는 백만 볼트짜리 눈빛에 난 전기구이 통닭이 된 기분으로 얼어붙었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그녀의 입에서 씨발, 더러워서 못살겠네,라는 말을 분명 들은 것 같았다. 그녀가 부서질 듯 방문을 닫고 들어간 후에도 나는 냉동 파스타를 두 손으로 꽉 그러잡은 채 이 사달에 내 기여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뻘쭘하게 가늠하고 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사는 게 그런 거니까. 각자도생이죠.
허공을 울린 목소리가 내 마음에서 새어나온 소리 같아서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쾌조씨가 거실 구석에 앉아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말을 낭랑히 뱉었다고 보기엔 그가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잠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린 쾌조씨의 얼굴은 노트북에서 나오는 빛과 형광등의 영향으로 한쪽은 벌겠고 반대쪽은 창백했다.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블랜딩 인 될 필요 없다고요. 결국 마이웨이로 사는 사람이 살아남아요.
그가 마치 재화언니와 나 사이의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쾌조씨에 대해 내가 아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비전이 보이지 않아 집에서 매일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는 전업투자자로 전향했다는 것,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삶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는 오로지 아끼고 버는 거라는 점, 그래서 여름엔 베란다에 천막을 치고 겨울엔 테이블 밑을 잠자리로 삼는 사람이라는 게 전부였다. 차트의 색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그의 눈은 늘 빨갛게 충혈돼 있었고 입술은 푸르스름했다.
쾌조씨는 원래 사촌형과 돈을 보태 이 집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주인은 들어와 살 생각이 없었고 애초에 6년 이상 길게 전세를 살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형이 고향집으로 내려가게 되자 빈집을 활용할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남아도는 방들에 싼값으로 세입자를 들여 수익을 내는 거였다. 그렇게 세입자의 세입자가 생기게 됐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법이 정해놓은 선을 따라 걷기에 세상이 허용한 범위는 너무 좁았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나와 재화언니, 희진이는 이 묘한 경계와 테두리에 웅크려 앉아 온기를 얻어야 하는 신세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투자적 관점에서 이 시스템을 만든 쾌조씨에게 협조하고 협력해야 했다.
—잘돼가요?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 건성으로 물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목표가 있으니까.
—목표요?
—네, 이런 집을 사는 거요.
그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하는 순간 내 몸엔 가벼운 소름이 돋아났다. 그의 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가 절대 목표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동시에 나를 향한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모든 게 쾌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해내지 못할 걸 나라고 이룰 수 있을까. 그의 모니터를 수놓은 파고의 색과 물결을 보자 아득해졌다. 비트로 환속된 돈이 넘실거리며 만들어대는 푸른 물결과 붉은 태양 아래 표류하거나 난파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을까. 실패의 끝엔 짧디짧은 성공이, 그뒤엔 영원하고 끝없는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뒤 생활은 한동안 조용했다. 희진이와 재화언니는 완전히 거리를 뒀고 내 화장실은 나만의 공간으로 온전했다. 이 불편함은 달리 말하면 편리했다. 그러나 영어유치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며 임용고시 준비를 하던 나는 더이상의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국제적인 전염병이 돌아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대형 체인 어학원의 힘인지 내 업무는 지속됐고 월급은 약간씩 밀리긴 해도 깎이거나 줄지 않았다. 주변의 악랄한 사례들을 보면 선방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나는 현실에서 조금씩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텅 빈 학원에서 수화기 너머로 종일 환불이며 온라인 수업에 대한 상담을 하고 나면 내 생활이 몸을 아등바등 갈아 넣어 겨우 얻어낸 힘겨운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만하면 만족한다고 위안하다가도, 발밑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해 제자리걸음은 곧 퇴보라는 불안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럴 때면 모든 게 갖춰진 내 방의 벽도 여전히 벽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나는 조금이라도 도약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좀먹혀가며 월세를 납입하고 있던 어느 주말 아침, 쾌조씨가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중요. 보일러 교체 건으로 주인 방문예정. 전체 회의 요청드립니다.
—얼마 전부터 보일러가 말썽이었잖아요. 집주인한테 연락했더니 고치는 건 상관없는데 내일 한번 집을 방문하겠다고 하네요.
테이블에 모인 우리에게 쾌조씨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합법적이지 않은 틈새시장에 세 들어 사는 걸 숨겨야 했다. 문제는 주인이 왔을 때 보게 될 집의 내부가 남자 두명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집주인의 방문에 앞서 대책이 필요했다.
논의 끝에 우리가 짠 시나리오는 이랬다.
고향에 내려간 형 대신 쾌조씨는 친누나인 재화언니와 함께 살게 됐으며, 희진이의 방은 창고로 쓰이고 있다. 안방은 쾌조씨의 방으로 한다. 그에 맞게 가구들을 배치한 후 당일 쾌조씨를 남기고 우리 셋은 자리를 비운다.
이 연극에서 쾌조씨의 누나가 될 재화언니의 방엔 아무 이슈가 없었다. 희진이의 방도 창고로 변형시키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처음 들어가본 그의 방은 초미니멀리스트의 방처럼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전부였고 그 흔한 만화책조차 몇권 눈에 띄지 않았다.
—전엔 온갖 게 다 있었죠. 쓸데없는 것도 많이 모았고요. 다 부질없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화할 수 있는 걸 제외하곤 다 버렸죠. 지금도 하루에 다섯가지씩 무언가를 버리는 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루틴이에요. 언제든 이 한 몸뚱이만 떠나도 아무 상관 없게 살려고요.
자신의 방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말하는 희진이의 목소리가 공간을 왕왕 울렸다. 핵심은 내 방, 즉 공식적으로 쾌조씨의 방이어야 할 안방이었다. 누가 봐도 내 방은 여자가 사는 방으로 보였고 게다가 야금야금 사들인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야심 차게 산 로즈골드색 미니 냉장고와 선반에 늘어선 텀블러들, 여기저기서 얻은 온갖 종류의 굿즈들을 본 희진이가 핀잔을 줬다.
—살림을 차리셨네요. 예쁜 쓰레기도 많고.
아예 버리는 거라면 모를까, 짐을 빼서 옮기고 구조를 바꾸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고 낮에 시작한 일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나와 쾌조씨 그리고 희진이가 물건을 옮기는 동안 재화언니는 팔짱을 끼고 자신의 방 문간에 기대서 있었다. 인과응보라는 표정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이 굴욕은 딱 하루뿐이라는 일념으로 수모를 견뎠다. 그러나 내 물건은 생각보다 많았고 아무리 용을 써도 그중 일부는 희진이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참에 정리 좀 해요, 버릴 거 버리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재화씨 방 안에 하루만 넣어두시든지.
희진이가 귀찮다는 듯 말하자 재화언니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답했다.
—아, 그건 곤란!
그녀의 입가에 띈 ‘이 얌체야 맛 좀 봐라’ 하는 미소를 무시하며 나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입장 바꿔 생각해서 화장실 사건을 염두에 두면 그렇게 가혹한 처사도 아니었다. 다만 희진이의 말과 달리 내 눈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는 남의 눈엔 잡동사니지만 나에게는 힘겹게 모은 자산인 물건들을 라면 박스에 하나하나 넣었다. 나의 유일한 사치품인 스타벅스 리미티드 텀블러 스무개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곤 박스를 1층, 생활가전을 버리는 곳에 옮겨뒀다.
—도와주고 싶긴 한데 괜히 나섰다가 흠집이라도 나면 피차 책임 묻게 되고 복잡해지니까 그냥 혼자 해요.
미니 냉장고를 옮기는 내게 쾌조씨가 약 올리는 건지 진지한 건지 모를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혼자서 냉장고까지 낑낑대며 옮겨놓은 나는 뻐근한 허리를 손으로 짚으며 경비 아저씨를 찾아가 수거 스티커는 내일 붙일 테니 일단 손대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박카스를 한 박스 건네며 내일 교대 근무할 경비 아저씨에게도 대신 전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다음 날 집주인이 돌아가는 대로 다시 가지러 오면 그만이었다.
미리 고생을 한 덕에 주인이 오기로 한 당일은 할 일이 없었다. 우린 아침부터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고 재화언니는 여기저기 페브리즈를 뿌려댔다. 이제 몸을 피해주면 남은 일은 쾌조씨가 알아서 해줄 터였다. 문제는 집주인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는 거였다. 점심이 지나서 오후에 온다더니 초인종이 울린 시간은 고작 열두시 반이었다. 쾌조씨가 방마다 노크를 하며 속삭였다.
—거실로 집합! 막 놀러 온 것처럼 합시다, 친구인 것처럼.
우리가 후다닥 거실로 모인 직후,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집주인 남자가 부산한 공기를 이끌고 문턱을 넘었다. 우리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남자에게 쾌조씨가 침착하게 말했다.
—여긴 제 누나고, 여긴 누나 친구들이에요.
졸지에 쾌조씨의 친누나가 된 재화언니와 재화언니의 친구가 된 나와 희진이는 억지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돌렸다. 남자는 귤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내려놓더니 쾌조씨와 부엌 베란다로 넘어가 보일러를 살폈다. 흔쾌히 고쳐주겠노라는 말투는 너그러웠고 대화는 금세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용건이 끝난 뒤에도 왠지 남자는 나갈 생각을 앉은 채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간만이니 집 좀 둘러보겠습니다.
쾌조씨가 고갤 끄덕이자 남자는 탐문관이라도 된 듯 집 안 곳곳을 세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희진이의 방에 들어서서는 창고가 생각보다 깨끗하다며 급조된 창고의 디테일을 간접적으로 지적했고 내 방, 그러니까 안방에서는 한참 킁킁대더니 향수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가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건지 우리의 성급한 구조 변경이 조악한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예상치 못한 상황에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요새 같은 때 친구들끼리 이렇게 모여서 놀기도 하고 참 좋아 보이네요. 뭐 불편한 건 없어요?
테이블로 다가온 남자가 봉지를 뒤적여 귤을 집어 들며 말했다. 물론 그의 질문은 오로지 그가 아는 정식 세입자인 쾌조씨에게 향해 있었다. 예 뭐, 하며 평소답지 않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쾌조씨에게선 평소에 볼 수 없는 세입자의 겸양이 읽혔다. 남자는 건성으로 폰을 한번 휙 들여다보고는 입을 뗐다.
—저, 미리 말을 했어야 됐는데……
그가 말을 맺기도 전 초인종이 울렸다. 남자는 버선발로 뛰어가다시피 문을 열었고 곧이어 중년의 여자 한명과 부부로 보이는 30대의 남녀가 들어섰다. 순식간에 집은 여덟 사람으로 꽉 찼다.
—하이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알았으면 나중에 올 걸 그랬네.
마스크를 쓴 50대 아주머니가 생글거리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뒤따른 부부는 문지방을 넘는 순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의 목적을 깨닫는 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불청객들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주머니가 마치 자신의 집처럼 공간의 세세한 장점을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쾌조씨를 구석으로 불러 맺지 못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미리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집을 내놓게 됐어요.
—예?
쾌조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물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항변을 짙게 눌러 담은 ‘예?’였다.
—마침 보일러 고쳐달라고 할 때 잘됐다 싶었죠. 요새 집을 잘 안 보여주는 세입자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겸사겸사 두가지 일을 해버리면 좋으니까요. 세 끼고 내놓은 거라 계약기간까지 편하게 사시면 됩니다. 연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걱정 마세요.
남자는 쾌조씨의 어깨를 툭 치더니 부동산 아주머니와 손님들에게 다가가 집의 채광이 예술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 팀이 떠나고 남자가 세번째 귤을 까먹을 무렵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고 두번째 팀이 들어왔다.
—세입자가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집을 굉장히 깨끗하게 썼네.
두번째 팀의 부동산 아주머니가 물꼬를 트더니 이어서 달변을 펼쳤다.
—결혼 안 한 젊은 사람들이 세 들어 있는 집이 좋아요. 개 있는 집, 아기 있는 집은 골 아파. 개가 벽지 다 긁어놓고 애가 벽에 낙서해놓고 아주 가관이에요. 여긴 그럴 일 없지. 그럼 다음번 전세 구할 때도 수리해줄 필요가 없으니까 금액적으로 유리한 거예요.
남자는 이 집을 산 뒤로 좋은 일만 생겼다는 MSG 가득한 멘트와 함께 첫번째 팀이 집을 좋게 봤다고 심리전을 펼쳤고 처음 들어올 때 시큰둥한 표정이던 신혼부부는 그 말을 듣더니 혹한 듯 눈빛이 빠릿해졌다.
마지막 방문자는 이십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지방에 있는 부모님을 대신해 왔다며 영상통화로 집의 내부를 꼼꼼히 비췄다. 부모에게 집의 상태를 보고하는 그의 폰 각도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빛을 비춘 바퀴벌레처럼 이쪽 벽에 붙었다가 저쪽 벽으로 달아났다가 해야 했다.
세 팀이 모두 빠져나가자 나른한 고요가 찾아왔다. 공기에 떠다니는 낯선 부유물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집주인 남자는 우리를 돌아보더니 예고도 없이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러곤 묻지도 않은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집 사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야 해서 처음엔 반대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모험이었죠. 와이프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에요. 이 집으로 모은 종잣돈에 대출 일으켜서 이번에 새 아파트에 입주하거든요. 한번도 여기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생각날 때마다 이쪽을 향해서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고갤 숙일 겁니다.
남자는 감격에 겨운 듯 말을 이었다. 우리의 냉담한 표정 같은 건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무언가를 더 얘기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는 예예, 하며 허공을 보고 몇차례 허리를 숙이더니 돌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머리를 긁적였다. 가격 네고가 얼마나 가능하냐는 연락이었다. 이어서 다른 부동산 두군데에서도 연락이 왔고 남자의 목소리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보아하니 세 팀 간에 비딩이 붙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화기 너머로 던진 말은 당장 계좌번호를 주긴 곤란하며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금액을 높여야겠다는 거였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경쟁, 말하자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일 따위는 우리와 하등 상관이 없는 세계의 것이었다.
—정리는 내일 할까요.
희진이가 의욕 없이 물었다. 귤껍질이 테이블 위에 널려 있었고 텁텁한 공기에서 낯선 이들의 발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반대했다. 기를 써서라도 모든 걸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했다. 제자리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했던 무용한 노동의 흔적이 지워질 수 있었다. 창고방을 채웠던 물건들을 옮기고 풀며 방에서 방으로 이사하듯 짐정리를 한 뒤 나는 텀블러 박스와 미니 냉장고를 가지러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내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깨진 거울이 달린 낡은 옷장만 한쪽 문이 열린 채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경비실로 달려가 냉장고의 행방을 묻자 아저씨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거 누가 가지고 갔어. 어쩐지 버리기엔 너무 좋다 싶었는데, 누가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내가 얼른 가져가라고 했죠. 옆에 상자도 열어보더니 쓸 만한 컵들이 많다고 몽땅 가져가던데?
—뭐라고요? 몇호에 사는 사람인데요?
—그야 모르지. 남자였나 여자였나,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데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도 잘 못 봤어. 아가씨도 스티커값 아끼고 잘됐지, 뭐. 덕분에 박카스까지 잘 먹고 고맙네.
난 따질 힘도 없어 황망하게 한숨을 쉬었고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 집 안으로 들어왔다. CCTV를 확인해서라도 물건을 돌려받겠다는 의지도 모두 내일의 할 일로 미뤘다. 모두가 방문을 닫은 채 고요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도모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거실에는 쾌조씨가 혼자 앉아 쩝쩝대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산더미 같은 귤껍질이 쌓여 있었다.
—맛있어요?
전혀 심리적인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맥없이 말을 던졌다.
—아뇨. 더럽게 맛없어요. 근데 귤 상태가 애매해서 썩기 전에 먹으려고요. 두면 썩지만 배에 들어가면 영양분이 되니, 비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미래를 위해서.
그의 미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고집을 한심하게 여기는 순간 갑자기 가슴에 쨍하고 느낌표가 새겨졌다. 상하기 직전의 귤로 배를 채우는 걸 단순히 무식하고 미련한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내일이 되면, 정말 배를 곯게 되는 어떤 날이 온다면 이 장면을 되돌아보며 쾌조씨의 인생관이 현명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서둘러 내 방으로 돌아왔다. 줄 끝에 매달린 인형처럼 인생은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계약서에 명시된 쾌조씨의 전세기간은 넉달 후에 종료였다. 장기 전세가 가능하다는 말만 철썩 믿고 들어왔지만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제 새로운 집주인이라는 이름으로 그 줄을 쥔 자가 내 운명을 결정할 차례였다. 계속 여기 살 수 있을까. 때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있긴 했어도 쫓겨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문득 어깨가 무거워지는 게 이 방에서 살던 사람의 발이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았다. 성별도 나이도, 살아온 인생의 한조각도 알지 못하는 그가 머리를 숙여 내 눈앞에 시커먼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창에 기대서자 어둠에 묻힌 풀숲 뒤로 멀리 촘촘한 불빛들이 보였다. 풍경 속의 집들은 언제나 차고 넘치도록 많고 각자 빛을 뿜는다. 나는 사슬처럼 엮인 타인들 간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 어디쯤에 위치해야 하는지 잠깐 머리도 굴려봤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이 순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먼 과거가 되길 바라며 하염없이 서 있는 것뿐이었다. 내 어깨 위의 무게감이 다만 근육의 피로감이기를,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덮치지 않기를, 불행과 우울의 악취가 스며들지 않기를, 집주인의 말대로 이 집에 온 뒤로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