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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갑상 曺甲相

1949년 경남 의령 출생.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 편찬약사』,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등이 있음.

ksc29911@gmail.com

 

 

 

현수의 하루

 

 

중문을 열자 TV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 왔습니다.”

현수는 거실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부친은 소파에 앉아 있고 보호사 허선생은 부엌에 서 있었다. 현수는 그녀에게 다시 인사했다.

“수고하십니다.”

“빨리 오셨네요.”

현수는 소파 앞 탁자에서 리모컨을 집어 소리를 낮추었다.

“아버지, 병원 가시게 옷 입으셔야죠.”

부친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선걸음에 가나.”

“빨리 가야지요.”

부친이 벽에 세워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방으로 갔다.

“아버님은 요즘 어떠십니까?”

그가 허선생에게 말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부친에게는 목소리를 높이고 허선생에게는 낮춘다고 하지만 기계처럼 조절되는 건 아닐 것이었다.

“잘 지내십니다. 식사도 잘하시고 기침도 덜 하시고.”

“이번 약은 잘 맞는 것 같죠? 그래, 기억력은 어떻습니까?”

“표 나게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네에……”

그도 전화상으로나 휴일에 한번씩 와서 관찰하고 있는 바였다.

그때 점퍼를 입은 부친이 마스크를 쓰고 거실로 나왔다.

“지금 택시 부릅니다.”

“오늘도 차를 안 갖고 왔나?”

현수는 순간적으로 속이 뒤틀렸지만, 숨을 가다듬고 “네”라고 답했다.

택시 배차 문자가 뜨고 현수가 신발을 신는데 부친이 호흡용 휴대 산소캔을 내밀었다. 방과 거실에 산소호흡기가 한대씩 있지만 외출용도 사두고 있었다.

“무겁도 않은데 가져가자.”

현수는 말없이 캔을 받아 손가방에 넣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한동안 사용한 적이 없어 잊었는데 이번에도 부친이 챙긴 것이다.

 

택시가 제때 왔다. 문을 여닫고 내리는 데 편하도록 부친을 뒷자리에 앉히고 그는 앞에 탔다. “백병원 갑니다.” 현수는 호출할 때 밝혔던 행선지를 기사에게 다시 알렸다. 부친은 폐에 물이 차고 호흡 곤란이 있어 몇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 중인데 의사가 바뀌고는 증세가 안정되고 있었다. 두달에 한번씩 검사를 하고 약을 타는 것만으로도 현수는 감지덕지였다. 신호에 차가 멈추었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들이쳤다. 부친이 창문을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고 있었다. 백미러로 지켜보던 기사가 눈웃음을 지었다. 현수는 웃을 수도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실내 환기를 시키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마는 유난스럽게 보이긴 했다. 민망한 그의 심정이라도 읽었는지 기사가 먼저 말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방역수칙을 더 잘 지킵니다.”

“네에. 하긴 하루 종일 뉴스 방송만 보시니까.”

좋은 일이지요,라고 넘어가면 될 걸 그는 핀잔주듯 말하고 말았다. 정말 민망해진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친을 대할 때마다 자신을 탓할 일이 잦아 괴로웠다. 그는 거리를 보고 상가 간판들에 몰입했다. 해결책이 없으니 생각하기도 싫어지고 있었다.

택시는 출입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정차했다. 한쪽 문만 사용하다보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줄지어 선 사람들 뒤에 붙어 서서 바닥에 벌겋게 붙여놓은 신발 그림과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부친은 부축하지 않아도 곧잘 걸으시는 편이었다. 아들은 부친의 뒷모습을 살폈다. 지팡이를 쥔 오른쪽 어깨가 좀 처졌지만 등도 많이 굽지 않고 걸음도 바른 편이었다. 이 모든 게 혼자 지내실 수 있다는 판단을 주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체온 체크 등 절차를 밟은 뒤 로비에 들어섰다. 그는 모친이 돌아가신 뒤 동생들과 부친을 어떻게 모실까 의논하던 기억을 지우며 말했다.

“이층으로 갑시다. 채혈실로.”

“오늘도 사람이 많네.”

“네에.”

병원이니까,라는 말이 싱거워 입에 삼키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현수는 부친의 왼쪽 팔목을 힘주어 붙잡고는 “자, 이번에 탑니다”라면서 발을 얹었다. 부친도 제때 같은 칸에 올랐다. 채혈실 앞 대기의자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는 대기표 뽑는 기기로 가면서 “아버지, 저기 빈자리에 앉아 계세요”라고 말했다. 표를 뽑아 화면에 떠오른 순번을 보니 40번이나 간격이 떴다. 부친 옆에 앉으려는데 부친이 먼저 일어났다. “화장실 갈란다.” 그러고 보니 그도 요의가 느껴졌다. 부자는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그는 입구에서 멈춰 섰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나오셔도 됩니다.” 요즘 들어 요의는 있어도 그때마다 오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줌을 누지 못하고 나오는 일도 심심찮게 겪고 있었다. 부친과 나란히 소변기 앞에 섰다가 오줌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도 낭패였다.

얼마 뒤 부자는 채혈실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다 207번 번호가 뜬 자리로 갔다.

검사의뢰서와 번호표를 내밀자 간호사가 물었다. “할아버지, 성함하고 출생연도가 어떻게 되세요?” 현수가 얼른 대답했다.

옆자리 젊은 여자가 부친의 출생연도를 들었는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소매 걷고 팔 주세요.”

점퍼를 미리 벗었음에도 옷이 겹겹이었다. 더디게 남방셔츠 단추를 풀고서야 팔을 내밀 수 있었다. 간호사가 팔뚝 위를 고무 밴드로 묶는데 허물한 살이 흔들렸다. 검버섯 딱지가 덮은 팔뚝에서 혈관을 찾은 간호사가 바늘을 찔렀다. “따끔합니다.” 이내 검붉은 피가 주사기로 흘러들었다. 현수는 부친의 채혈 모습을 지켜보며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떠올렸다. 이년째 입원 중인 아내는 약한 피부에 혈관까지 잘 나오지 않아 주사 맞는 걸 힘들어했다. 눈앞에 퉁퉁 부어오른 아내의 혈관자리가 떠올라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삼분간 꼭 누르고 계세요.” 반창고를 붙이며 간호사가 말했다.

현수는 부친을 모시고 엑스레이 촬영실로 갔다. 의사는 폐에 물이 차는 게 기침의 원인이라고 했다.

사진을 찍고 아들과 아버지는 순환기내과로 갔다. 현수가 접수대로 가서 부친 이름을 밝히고 나오는데 핸드폰에서 재난문자 알람이 울렸다. 이제 시작이구나. 어제 발생한 환자 수가 구청별로 나왔다. 일주일째 요양병원 발생은 없었다. 이번엔 벨이 울렸다. 서울 사는 아우였다.

“형님, 접니다. 병원이십니까?”

“그래, 검사 마치고 내과로 왔다.”

“날씨도 찬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요즘 아버님 목소리가 한결 수월해 보입디다.”

“그래, 다행이지.”

“그럼요. 저.”

동생이 머뭇댔다.

“강수가 어제 전화했습니다. 오늘 형님하고 의논한다면서……”

동생이 다시 망설여 그가 말했다.

“그래, 오늘 내가 아버님 집에 간다니까 지가 오겠다더라. 아버지께도 이야기를 다 알리고 답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거 아니겠나. 기다려보자.”

“예, 알겠습니다.”

동생이 또 숨을 멈춘 뒤 말했다.

“각서, 그거 아무 소용 없답니다.”

현수는 여동생 말을 떠올렸다. “오빠, 나중에 셋만 못 나눕니다.” 뒷날 부친 집을 정리할 때 막내에게 얼마라도 또 주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래, 알겠다. 들어가거라.”

“참, 형수님은?”

“그만하다.”

그가 먼저 전화기를 껐다. 그는 부친 쪽을 한번 살핀 뒤 창가로 다가가 전화기를 다시 켰다. 신호가 가고 한참 걸려 목소리가 들렸다.

“508호 고진희 보호잡니다.”

“네, 기다리세요.”

면회도 안 되는데다 아내는 지난해 연말부터 전화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관 삽관을 한데다 의식마저 불안정했다. 목소리가 바뀌고 그가 다시 말했다.

“고진희씨 보호잡니다. 어떻습니까?”

“네,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열이 조금 오르내린 정돕니다.”

병원에서 듣는 소리는 거의 한결같았다. 그런 말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프고 어떨 때는 복장이 터졌다. 그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요양병원으로까지 가게 되었다.

그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부친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화장실 갔다 올게요.”

“응, 화장실? 같이 가자.”

부친이 자동 반사하듯 몸을 일으켰다.

“전화가 왔더나?”

눈길을 주었는지 부친이 말을 건넸다.

“예, 서울 동생입니다.”

“집에도 전화 자주 온다.”

“그래야지요.”

바로 아래 동생은 사는 형편도 가장 낫고, 조카들도 번듯하게 잘살며 부친에게 증손자들까지 보여드렸다. 화장실 앞이었다. 현수는 요의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현수는 부친을 다시 대기실에 앉혀놓은 뒤 화장실을 찾아 힘들게 오줌을 누었다.

돌아와 앉았을 때 부친이 말했다.

“막내 말이다. 얼마 전에 무슨 소리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더라.”

부친은 그 말뿐이었다.

“이따가 집에 오기로 했습니다.”

현수도 그 말만 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럴 자리였다.

“온다고?”

“네.”

현수는 사남매의 맏이고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 사남매인데 자신 외에는 모두 외지에 살았다. 가족이 다 모였을 때는 삼년 전 모친 장례식과 작년 1월 누이동생 딸 결혼식 때였다.

“성규는 잘 있나?”

성규는 부친에겐 큰손자다.

“네, 잘 있습니다.”

“사귀는 아가씨가 있다 안 했나?”

“네에……”

오래전에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설 전에 하면 안 될까.”

“네? 힘들지요.”

한달 뒤가 설이었다.

“직장 있을 때 결혼은 안 하고 무슨 공부고.”

사귀는 아가씨를 지금도 만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건 맞았다. 부친은 아들에게 송금할 일만 환기시켜주고는 입을 닫았다. 현수는 결혼한 딸 얘기를 꺼냈다.

“은지는 잘 삽니다.”

“결혼했제?”

부친은 손녀 이름을 스스로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말이 나오면 간단한 기억은 곧잘 했다.

“애기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혼인을 했다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말을 꺼냈지만 아이 얘기 앞에서 막혔다.

“결혼하몬 애부터 낳아야지 요새는 와 그렇노.”

“그래 말입니다……”

그는 세상이 예전하고 다르다는 말까지 하기는 싫었고 부친도 말이 없었다. 손자는 물론 손녀 이야기까지 나왔으면 며느리 생각도 날 테지만 부친은 입을 열지 않았다. 현수가 먼저 처 얘기를 꺼내지 않은 지도 오래였다. 집사람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걸 처음 알렸을 때 부친은 탈기가 되어 말했다. “무슨 일이 이런 일이 있노! 에미가 우짜다가 거기까지 갔노? 내가 가도 모자랄 낀데…… 아이구.” 그러곤 안부를 묻는 횟수가 시나브로 줄더니 언제부턴가 입에 올리지 않았다. 현수는 내가 가도 모자랄걸,이라는 탄식대로 안타까움과 미안한 심사가 작용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했다. 거기다 기억장애까지 더해졌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현수가 힘든 건, 이해는 하면서도 때때로 부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 자기 자신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까지 아들과 아버지는 말을 섞지 않았다. 부친도 그렇지만 현수 자신도 누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고도 그냥 오래 지낼 수 있었다.

한참 뒤 그들은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모니터와 현수 부친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어떠세요?”

“기침도 별로 안 하고 괜찮습니다.”

“네에. 물 차는 것도 그만하고 신장에 아직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으니 약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의사가 처방약을 바꾸면서 신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할 때 현수는 기침 잡고 숨만 덜 차면 무조건 좋습니다,라는 말을 꾹 참았다. 그로선 한밤중에 전화기 너머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만 듣지 않는 걸로 만사가 다 좋았다.

 

약국까지 들러 집에 오자 한시였다. 허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험공단에서 지정받은 시간 외 추가비용을 따로 지불하고 있었다.

“가셔도 되는데…… 아버님은 그만하시고 약도 그대롭니다.”

“다행이네요.”

허선생이 떠난 뒤 부자는 그녀가 차려놓은 식탁에 가 앉았다. 반찬은 물김치와 배추김치, 김, 종지에 담긴 깨와 참기름이 동동 뜨는 간장, 된장국과 어묵탕이었다. 모두가 부친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계란만 한번씩 더해지는 식단이라 보호사 허선생도 장만하는 데 부담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식사를 했다. 부친은 보통 때보다 늦은 시간이고 아들은 이른 아침을 두유와 빵 한조각으로 때웠기에 더 맛있게 밥 한그릇씩을 비웠다.

현수는 반찬통들을 플라스틱 쟁반 두곳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저녁에 부친이 그대로 꺼내 잡술 것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마른 수건에 손을 닦는데 전화가 왔다. 몸을 돌려 식탁에 놓인 핸드폰을 드는 사이 부친이 장에서 과자 봉지를 꺼내 소파로 가고 있었다.

“형님, 접니다.”

막냇동생이었다.

“병원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집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전 지금 부산에 막 들어왔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오너라.”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부친에게 말했다.

“아버지, 포항 동생이 지금 오고 있답니다.”

부친이 과자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잠시 들었지만 말씀은 없었다. 어느새 TV도 켜져 있었다. 현수는 동생이 도착하기 전에 부친에게 미리 귀띔을 해야 할지 말지를 생각하며 커피를 준비했다.

“아버지, 커피 한잔 하실랍니까?”

“아니다.”

부친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걸 깜박한 것이다. 부친은 커피부터 끊더니 요즘에는 밀가루 음식이 위에 좋지 않다고 빵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난감한 것은 택시 창문을 열었을 때처럼 건강을 고려한 선택을 두고 부친 연세를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물이 막 끓어올랐다. 그는 포트 주둥이로 솟아오르는 김에 쫓겨 잔을 내고 믹스커피 봉지를 찾았다. 부친은 다른 주전부리는 몰라도 과자만은 유난히 즐겨 본인이 직접 사기도 하고 오늘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 아들도 빠지지 않고 사 왔다. 탁자에는 과자 봉지와 큼직한 플라스틱 통, 그리고 가위가 놓여 있다. 부친은 언제부터 과자를 한통에 모두 모아놓고 드셨다. 과자가 섞이는 건 그렇다 쳐도 밑에 놓인 것이 그대로 남아 눅눅한데도 고집을 피웠다. 거기다 봉지를 손으로 뜯는 게 힘들다고 가위를 사용하는 것도 신경 쓰였다. 부친이 열린 과자 봉지를 거꾸로 들어 내용물을 통에 부었다. 탁자와 마루로 가루가 막 날렸다.

“아버지!”

현수는 뜨거운 물을 잔에 붓다 말고 소리쳤다. TV 볼륨이 높아서인지 부친은 아들을 보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쏟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루가 떨어질 뿐인데 현수는 마음이 급해지고 화가 났다. 그는 탁자에서 리모컨을 쥐고 TV 소리를 낮추었다.

“아버지!”

그는 걸레를 찾으면서 고함을 치고, 그때서야 부친이 고개를 들었다.

“와아?”

“닦아야지요. 그냥 잡수면 되지!”

“주라. 내가 닦으께.”

아들은 허리를 숙이고 걸레를 내밀다 주춤 멈추었다.

“아닙니다. 그냥 계세요.”

아들은 이러면 안 된다고 자책하며 주저앉고 부친은 봉지와 과자 통을 양손에 들고 반쯤 일어났다. 그는 부친 바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고 탁자와 바닥을 닦았다. 자신의 양말에도 가루가 몇점 앉아 있었다.

그는 빈 봉지까지 들고 주방으로 갔다. 전에도 있던 일이었다. 개수대에서 걸레를 빨며 그는 후회했다. 부친의 심기를 언짢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한번씩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그때마다 마음에 가장 걸리는 건 아내였다. 입원한 아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문제는 아내와 부친을 견줄 때가 있다는 거였다. 그는 백수를 바라보는 부친은 건재한데 마누라는 왜 요양병원이냐는, 못난 심사가 없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 가슴이라도 쿵쿵 치고 싶었다.

얼마 뒤, 부친이 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그는 베란다로 나갔다. 모친이 돌아가시고 집에는 꽃이 핀 식물이 없어졌다. 드는 볕에 물만 제때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니 모친의 빈자리는 넘치고도 넘쳤다. 그는 햇살 퍼진 밖을 보았다. 주차장과 그 너머 테니스장의 움직이는 사람들, 더 멀리 공사 중인 건물, 그리고 다시 눈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나무들. 부모님이 삼십년 넘게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이 본격화되면서 값이 크게 오르고 있었다. 동생이 오는 이유도 집 때문이었다.

 

동생이 왔다. 그때까지 부친은 방에 누워 있었다. 동생 손을 잡고 거실로 나온 부친이 소파에 앉자 동생은 큰절을 올렸다.

“바쁠 긴데 우찌 왔노? 여 와서 앉아라.”

“네, 추석 때 못 뵈었으니 인사드리고 의논도 드릴 겸 왔습니다.”

현수는 식탁 의자 두개를 소파 맞은편에 놓았다.

“형님은 소파에 앉으시지요.”

“아니다. 점심은 먹었나?”

“네.”

“그럼 커피나 한잔해라.”

현수가 엉덩이를 드는데 동생이 먼저 일어났다.

“아닙니다. 찬물 마실랍니다.”

물통을 찾는지 동생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더니 식탁 위의 생수를 잔에 부어 마셨다.

“제가 속이 탑니다.”

현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동생에게 눈길을 두고 있는 사이에 부친이 과자 통을 열어두고 있었다.

“급히 온다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동생이 감자칩을 하나 집었다.

“아까, 네 작은형이 전화해서는 각서 얘길 하더라.”

현수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낫다 싶어 입을 열었다.

“예, 큰형님께 드릴 건 가져왔습니다.”

동생이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잠깐. 지금 아버지 앞에서 그거까지 보여야겠나?”

부친이 아들 둘을 번갈아 보았다.

“어쨌든 다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될 거 아닙니까.”

동생이 봉투를 탁자 위 과자 통 옆에 놓으며 완강하게 말했다.

결혼하고 동생은 포항에서 살았다. 직장도 처가도 그곳이었는데 중도에 퇴사를 하고 장사를 했다. 그만하게 사는가 싶더니 작년 가을부터 형제들에게 돈 이야기를 꺼냈는데 부친 집을 팔았을 때의 자기 몫을 당겨 달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니 각서는 자신의 뜻을 명백히 하는 물증이었다.

“뭐꼬?”

부친 말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다 동생이 나섰다. 동생이 몇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부친이 허, 허, 하며 신음했다. 현수는 재빨리 소파 옆에 놓인 산소호흡기를 작동시키고 줄을 부친에게 건넸다.

“나는 어데 가노?”

부친이 코 줄을 손에 쥔 채 분명하게 물었다.

“여기 그대로 사십니다.”

동생이 재빨리 답했다. 부친이 큰아들을 보았다.

“은행에 아파트를 저당해서 대출을 받자는 겁니다.”

“너거들 다?”

형제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현수가 말했다.

“아닙니다. 강수 혼자 몫인데 지금 의논 중입니다.”

“큰형님! 이자는 대출금에서 이년 치를 제하겠습니다. 제발 일이 되게 해주십시오.”

동생이 그에게 고개를 깊이, 한참 동안 숙였다. 그 모습이 하도 강렬해서 현수는 놀랐다. 자기 손이라도 붙잡고 울 수도 있고 그대로 주저앉아 부친께 했듯 절을 할 것같이도 보였다.

“강수야, 아버님 앞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동생을 살폈다.

“예. 압니다.”

동생이 고개를 드는데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어제 서울 형하고 대전 누나한테 전화하고 각서를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래. 또 이야기해보자. 아버지?”

부친은 시선을 반쯤 천장에 두고 있었다.

“아버님이 동생 일로 이 아파트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다음 말을 찾았다. 아버지 뜻이 어떠냐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부친을 난처하게 할 수 있으면서 발언의 유효성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싶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희들 의논이 모이면 그때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부친은 자세도 바꾸지 않고 말도 없었다. 동생이 말했다.

“아버지! 제가 사정이 딱합니다. 이런 말씀 안 드릴라 했지만, 고소까지 당해 있습니다.”

“아이구, 이놈아!”

부친이 탄식했다.

“막내 살려주신다 여기시고 대출받게 해주십시오!”

부친은 다시 침묵했다.

“강수야, 오늘은 가거라. 내일 내가 둘한테 연락해볼게. 아버지 생각을 하자.”

동생이 부친의 시선을 찾았다. 부친은 입을 다물고 자식들을 외면했다.

얼마 뒤 동생이 일어나고 그도 따라 일어섰다. 봉투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동생이 부친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에게도 인사했다. 동생이 중문을 여는데 뒤따르던 그의 시선이 아우의 바짓단 아래 양말에 갔다.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현관문에서 동생을 보냈다. 문이 닫히자 기다리고 있은 듯이 ‘사등분’을 강조하던 동생 말이 떠올랐다. 모친상을 치른 뒤 형제들이 부친 거취를 의논했다. 지금처럼 이 집에서 그대로 사는 것과 현수와의 합가가 선택지였다. 현수가 결혼했을 당시 집에는 동생 둘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자연스레 따로 나와 살았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표현은 달라도 동생들 모두 합가에는 반대였다. 부친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했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환경 변화가 좋지 않다는 것도 상식이지만 동생들의 반대에는 재산 문제가 깔려 있었다.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없는 문제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부친의 생활비와 간병비용까지 얘기한 뒤 막내가 웃으면서 “그럼, 아버님 이 집은 딱 사등분입니다”라고 했다. 모친은 수하시다가 크게 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가셨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호상이었다. 장례도 잘 치르고 부친을 모시는 방법까지 정리되었으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누이동생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강수 니가 먼저 했다”라고 거들어 함께 웃기도 했다. 헤어진 뒤, 현수도 마음 한쪽이 찜찜했는데 그의 처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합가하면 이등분이다, 셋이서 계산을 그리 한 거지.”

현수는 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동생을 주차장까지 배웅하지 않은 건 똑같은 하소연을 듣기도 힘들었지만 구멍 난 양발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정말 왜 그때 시선이 그리로 갔는지, 그는 우울했다. 그런 답답한 심사로 저녁까지 같이 먹으며 부친 집에 머물 순 없었다. 그는 동생이 놓고 간 봉투를 산소캔을 담았던 가방에 넣고 네시쯤 일어났다. 새벽같이 일어나 엄청 힘든 일을 하고 귀가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어정쩡한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다. 그는 한시간이나 걸리는 지하철에서 바둑 유튜브에 열중했다. 고지대로 오르는 버스에서는 공영주차장을 보았다. 관광버스 수백대가 일년간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처음에는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지만 언제부턴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일상도 멈추어 섰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는 곧 주차장을 외면했다. 마침 돔 체육관 지붕처럼 넓게 펼쳐진 버스 지붕들이 햇빛에 번쩍이며 눈을 찔렀다. 그보다는, 그는 알고 있었다. 아우의 다급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것을. 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지랄 같은 마음까지 달려들어 그는 외쳤다. 오, 하느님.

 

“사장님. 제때 오셨습니다!”

기원에 들어서자 원장이 손을 들며 반겼다. 현수는 입구 책상 위에 펼쳐진 출입자명부에 전화번호와 시간을 적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방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훌라패들도 모인 모양이었다.

“여기서 두시죠.”

법사와 대국 중이던 원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원장은 현수에게 자기 자리를 넘기고 어서 카드게임을 하고 싶은 것이다. 관전하던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이 판은 나누어 먹고, 사장님이랑 새로 시작하시죠.”

원장이 막 시작한 판을 거두며 현수를 기준으로 치수를 알려주었다.

“강사장님과 법사님과는 두점, 대우사장님과는 정선입니다. 맞지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원장은 판돈 이만원 중 만원을 들고 일어났다.

“새 손님 모시고 분위기 한번 바꾸어보자.”

강사장이 먼저 오천원을 냈다. 현수는 지갑을 꺼냈을 때 아들에게 송금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법사가 판돈을 자기 앞의 바둑통 밑에 묻고 대우사장이 바둑판 옆에 놓인 화투 넉장을 엎었다. 목단 피를 잡은 현수는 목단 열을 잡은 법사와 대국을 하게 됐다. 첫판에서 이기면 결승에 올라 이만원을 쥘 수도 있고 좀 전의 원장이 했던 대로 만원을 딸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장이니까 그렇지 대부분은 승자독식이었다. 거기다 패자 둘이 따로 내기를 할 수도 있으니 바둑 두판에 만원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현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흑 두점을 대각선 화점 자리에 깔았다. 법사가 자기 쪽 화점에 첫수를 두면서 대국이 시작되었다. 말이 많아서 법사라고 불리는 그는 머리숱이 적고 너른 이마며 얼굴이 기름 친 듯 미끈해서 가물치를 연상시켰다. 초반부터 현수의 10여점이 미생으로 몰려 그걸 살리려다 돌들이 더 무거워졌다. “사장님, 아픈 다리는 절면 절수록 좋다, 그 소리 나올 타이밍입니다!” 법사가 한소리 했다. 현수도 수를 궁리하면서 대꾸했다. “법사님, 묵언합시다.”

“사장님, 잘 두이소. 초반에 작살나는 수가 있습니다.”

법사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상대방을 자극한다. 현수도 대거리를 한다.

“작살 잘못 쏘면 지가 작살나지.”

현수는 어쨌거나 사장 소리를 듣는 지금이 좋았다. 기원에서 양현수는 전직 교사도, 일흔 줄에 앉아 손자도 보지 못한 덜떨어진 늙은이도 아니었다. 거기다 아내도 잊고 부친과 그 부친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형제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잠시 뒤 재난문자 알람이 실내를 울렸다. 아무도 핸드폰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법사를 시작으로 마스크 뒤에 입을 숨기고 있던 옆자리 두사람도 한마디씩 했다.

“확진자는 멀리 우승상금은 가까이!”

“이번엔 어느 식당, 어느 여탕, 어느 교회고?”

“요양병원이 빠졌네. 재난 정치를 한다니까. 겁도 주고 지원금도 찔끔 주고. 백신은 또……”

현수는 흠칫했지만 고개도 들지 않고 입도 열지 않았다. 바둑에만 열중해서 한판이라도 이기는 데 목숨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석점도 놓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누구에게 조롱거리인 확진자 발표가 누군가에겐 가슴이 타는 일이었다. 핸드폰을 열 때마다 현수의 손끝에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 이름이 뜨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는 다섯판을 두어 결승에 한번 올랐지만 우승상금을 쥐어보지는 못했다. 요양병원을 들먹인 강사장에게는 다 이긴 바둑을 실수로 지기도 했다.

 

그는 집까지 택시를 탔다. 걸어도 십여분이지만 피곤했다. 거기다 교통사고를 낸 집 앞의 삼거리에서 허기지고 기운 빠진 개처럼 멈춰 서 있기도 싫었다. 재작년 겨울에 비보호 좌회전을 하다 직진하는 차와 충돌했다. 순전히 그의 부주의였다. 그는 찰과상에 그쳤지만 아내는 목과 대퇴부를 크게 다쳤다. 그리고 입원 석달째에는 뜻밖에도 백혈병까지 발견되었다.

우편함에 서류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통신교리를 신청한 데 대한 답장이었다. 아까 기원에서 또 어느 교회에 집단감염이 발생했냐는 힐난조의 말에 놀란 것도 얼마 전에 종교를 갖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날, 아내가 그에게 자기가 퇴원하면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아내는 짝교우로 지내다 근래에는 냉담 중이었다. 간절해도 그만큼 간절한 당부가 없기에 그는 아내의 여윈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내가 이끌 때도 걸음을 못했으니 혼자 문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아 차일피일이었다. 늦게나마 이렇게 비대면 통신교리 수강을 알아본 것은 면회를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같이 반복되는 부친에 대한 불효부터 모두 죄짓는 일뿐이었다.

그는 씻고 늦은 식사를 간단히 했다. 혼자가 된 뒤 집에서의 생활반경은 거실로 좁혀졌다. 그는 거실 책상 앞에 앉았다. 우편물 속에는 안내문과 교재, 그리고 첫번째 문제지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안내문을 찬찬히 읽은 다음 작성할 서류는 미루고 문제지부터 펼쳤다. 문제 유형은 다양했지만 모두 진도에 따라 교재를 읽어야 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덤벙대는 아이처럼 첫 문제부터 보았다. 다음 문제를 읽고 괄호 안에 옳으면 ○표, 틀리면 ×표를 하시오. 1. 과학은 인간의 본질과 죽음에 대한 물음을 해결해줄 수 있다. 교재를 펼칠 필요도 없이 엑스였다. 볼펜을 드는데 전화가 울렸다. 반갑게도 딸아이였다.

“은지구나!”

“응, 잘 지내세요? 거기도 날씨가 춥지?”

경기도 화성에 사는 딸은 그의 건강을 염려한 뒤 제 엄마 안부를 물었다.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딸 앞이라 갑자기 기운이 빠졌다. 그는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냥 그렇다. 더 나빠지지는 않으니 다행으로 여기자.”

“얼굴도 못 보고 어째……”

딸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뭘? 누구나 겪는데. 은지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좋은 날이 오겠지.”

잠시 딸이 호흡을 멈추었다.

“엄마한테 얘기하고 싶었는데……”

딸이 느리게 말을 뺐다.

“나, 아이 가졌어요.”

“응? 와아!”

현수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 병원 옮기고 많이 생각하다, 갖기로 의논했어.”

“그래야지. 정말 잘했다.”

“엄마를 무어로 위로하겠어.”

“그래 맞다. 엄마 땜에……”

그는 방금 읽었던 문제에 눈길이 가면서도 신앙을 가지려 한다는 말은 못했다.

“축하한다! 당장 엄마한테 알려야지.”

눈물이 번져나는 눈을 들어 그는 아내를 찾았다. 오디오가 놓인 장식장 맨 위칸에 아내와 둘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전화를 끊고 의자를 뒤로 미는데 교리책과 문제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왜, 나도 네 엄마와 약속한 대로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면서 딸과 기쁨을 나누지 못했을까. 자식에게 하는 고백이 쑥스럽고, 끝맺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을 것이었다. 거기다 기도가 간절한 이 시절에 종교가 외면받는 아이러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언젠가 봄나들이 가서 상반신을 크게 하고 찍은 사진이라 얼굴이 선명했다.

“여보.”

그는 환하게 웃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은지가 아이를 가졌대, 우리 손주.”

가슴에 액자를 품었다 놓으며 시계를 보니 열시가 수월하게 지나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당장 간호사에게 소식을 전해달라 하고 싶으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고도 싶었다. 가장 원하는 바는 아내를 보면서 직접 전하는 것이었다. 그게 불가능한 만큼이나 간호사나 간병인을 통한 전달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그는 주방 찬장에서 소주병을 찾아 물컵에 가득 부어 한잔 마셨다. 기쁨 속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제 엄마를 무엇으로 위로하겠냐던 딸의 말이 회오리처럼 일면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그는 눈을 떴다. 아내를 만났던지 눈가가 젖어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핸드폰 소리는 방 밖에서 울렸다. 벽에 걸린 시계가 네시인 걸 확인하면서 핸드폰을 거실 상 위에 두었다는 걸 알았다. 부친일 것이었다. 한번도 이 시각에 아내가 있는 병원에서 전화가 온 적은 없었다. 거실로 나가며 그래도? 알 수 없지,라는 생각도 나서 오싹 몸이 떨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기는 계속 울리고 그의 걸음은 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