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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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2007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일주일』 등이 있음.

 

 

 

기술자들

 

 

1

 

최가 가게를 떠나기 보름 전이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구인승 승합차에만 있었다. 인부는 더이상 태울 일이 없을 거였다. 그 때문에 뒷좌석들을 모두 없애고 생활공간으로 바꾸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바닥은 단열재와 합판을 판판하게 깐 뒤 마루무늬 장판을 덮어 마무리했다. 차창들에는 짙은 필름을 붙여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창이 큰 뒤쪽에는 차량용 커튼도 달았는데, 그만하면 캠핑카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아늑하지 싶었다. 최는 간단한 가재도구와 연장통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밥은 먹어야겠고, 연장통은 늘 함께한 일종의 반려공구였다. 그런데 막상 정리하다보니 챙길 것들이 제법 됐다. 쾌적하게 지내려면 공간 분배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최가 승합차에 열중일 때 욕실 누수 문의가 들어왔다. 마지막 일일 것이었다. 최가 연락받은 빌라로 가서 확인해보니 세면대 아래 바닥으로 물이 고여 있었다. 벽을 타고 내려온 물이었다. 매립된 배관에 문제가 있었다. 최는 장비를 챙겨 오마 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카트에 실었다. 이놈들이 노잣돈을 다 챙겨주네. 최가 카트를 끌고 가게 앞으로 나왔다. 그때 조가 다가왔다.

“혹시 사람 안 구하십니까?”

“그…… 뭐 할 줄 알아요?”

“잡일 보조는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거참…… 행색을 보아하니 긴 시간 떠돈 것 같았다.

“일단 이것부터 짐칸에 깔아요.”

조가 최에게서 받은 군용담요를 승합차 짐칸에 깔았다. 최가 장판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장비를 실었다. 그러고는 함께 현장으로 갔다. 공사는 최가 도맡았다. 아직 조의 실력을 몰랐다. 그러나 조가 화장실 입구에 방진용 비닐 막을 칠 때부터 괜히 덤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초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이 나머지 일도 잘했다. 대형 비닐을 각 잡고 펼쳐 말끔하게 설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조는 혼자서도 잘했다. 장비를 준비하거나 거드는 일도 매끈하게 소화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신속한 보조였다. 어려운 공사는 아니었다. 누수 원인이 명확해 작업도 수월했다. 집주인이 세면대 옆으로 선반을 달기 위해 드릴로 박은 나사가 온수 배관을 뚫었다. 샤워기 쪽으로 난 노후 배관이었다.

“아니, 배관이 이쪽으로 났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나 참……”

“집집마다 배관 위치가 조금씩 달라서 이런 사고가 종종 있습니다.”

성능 좋은 가정용 연장이 많아지면서 자가 설치나 시공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대개는 그럭저럭 잘하는데, 이 집처럼 잘못 손댔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경험이니 그리 민망해할 일은 아니었다. 최가 벽을 뜯고 손상된 부위의 배관을 잘라낸 뒤 새 배관으로 연결했다.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붙여 마무리하기까지 순조로웠다. 뜯어낸 김에 배관 청소까지 했는데도 얼마 안 걸린 느낌이었다. 못내 서운한 공사였다. 정리하자고. 예. 최는 가게로 돌아와 조와 함께 삼겹살을 구웠다. 조의 일당도 여느 인부처럼 챙겼다.

“저는 한 것도 별로 없는데……”

“그게 한 거야. 많이 먹어.”

 

 

2

 

배관공. 최가 어릴 적에 큰아버지가 용돈벌이나 하라고 넣어준 현장이었다. 얼굴명함 덕에 귀염도 받았고, 일당 받는 맛에 여러 현장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평생 직업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므로 때때로 현장을 빠져나오기도 했었다. 젊기에 즐기기도 했고 더 나아 보이는 일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랬음에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현장이었다. 첫발의 무서움이었다. 경험이 경험을 연장시키고 확대시켰다. 배관은 시작이었다. 현장에서는 배관뿐 아니라 다른 일도 해야 했다. 더 잘하는 건 둘째 치고 못하는 것은 없어야 하는 곳이 현장이었다. 흙밥 십년이면 웬만한 집 한채는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까닭이었다. 어느덧 종합설비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최 역시 그러했다. 좋으니 싫으니 하는 동안 현장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남의 흙밥 먹는 것이 슬슬 질려가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던 최에게 마침 기회가 왔다. 일을 배울 때부터 인연 깊은 옛 팀장 박이 제 가게를 최에게 넘기고자 했다. 간단한 설치나 수리로 버티는 영세한 배관설비 가게였다. 최는 오랜만에 박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가게에 인삼 달인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인삼 냄새는 오묘했다. 젊은이에게서 나면 건강함이 부각되고, 노인에게서 나면 노쇠함이 더 부각됐다. 최는 몇년 전 박의 호출로 제법 규모있는 공사를 함께하고 그뒤로는 연락만 하고 지냈었다. 이년쯤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몰라보게 쇠약해져 있었다. 이젠 가게도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손끝이 죽었어. 안 돼 이제……”

최에게 맞춤한 가게이기도 했다. 인부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연락할 인맥이 있었고, 보통 때는 직원 하나 두고 차분히 꾸릴 수 있을 거였다. 최도 마침 제 가게를 갖고 싶었으니 서로 운때가 맞기도 했다. 박은 명목상에 지나지 않는, 최가 감당할 수준의 금액으로 가게를 넘겼다.

“삼년은 빚이다 생각하고 버티게.”

“예. 집에만 계시지 말고 종종 나오세요.”

박은 다음 해에 죽었다. 예상했지만 너무 빨리 무심하게 떠났다.

 

삼년은 빚이고 그뒤부터가 진짜라고 했다. 최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굵직한 건설사의 협력사나 하청업체가 아니면 일을 따내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랬기에 동네 일이나 빼앗기지 않으면서 밥값이나 벌면서 살 요량이었다. 배포가 작다면 작고 현실적이라면 또 현실적이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개업 운이든 인맥 덕이든 어지간한 공사가 제법 이어졌었다. 삼년고개 따위 가뿐하게 넘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계량기 하나를 교체하더라도 우선 검색부터 하는, 이른바 검색의 시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된 내에서도 눈에 띄어야 선택됐다. 우리 동네 기술자라는 소개만으로는 힘들었다. 최에게는 다른 업체에서 내건 최첨단 장비와 특허공법, 자격증, 설비면허등록업체 등등의 문구가 없었다. 물론 꼭 그런 문제만은 아니었겠으나, 여하튼 삼년고개 겨우 넘었더니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하나 있는 직원 김마저 내보내야 할 실정이었다. 최는 살고 있는 집 보증금을 빼서 그의 밀린 임금 지불에 사용했다. 살림은 가게 창고로 옮겼다. 가게에는 박의 인삼 냄새 대신 최의 김치찌개 냄새가 배었다. 최는 늘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를 들통으로 끓였다. 그것으로 밥을 먹고 그것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얄궂은 세상이었다. 가게 하나 가졌을 뿐인데 돈은 점점 줄고 빚은 복리로 늘어났다. 최는 동네에 정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졸졸 새는 수도꼭지를 갈아주고,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 배관을 손봐주고, 누수 위치를 찾아주며 느리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삼년, 삼년, 또 삼년이 지나면서 그것이 욕심임을 깨달았다. 가게가 자꾸 무언가를 갚도록 만들었다. 그중 지독한 것이 월세였다. 다른 빚들은 여하튼 끝이라도 있었지만, 월세는 끝과 시작이 맞물렸다. 밀린 세를 업고 다시 시작되는 원점. 숨이 막혔다. 가게만 아니면 어디에서라도 살 것 같았다. 최는 알음알음의 인맥을 통해 가게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사람은 함께 일했던 김이었다.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최는 밀린 월세를 대신 지불하는 조건으로 가게를 넘겼다. 약간의 권리금으로는 은행에 남은 대출을 정리했다. 최의 몫은 구인승 승합차 한대뿐이었다.

 

 

3

 

최가 가게를 나가기 전까지는 조도 그곳에 머물렀다. 함께 지내면서 최가 들통에 끓인 김치찌개로 식사하며 소주를 마셨다. 최는 휴대전화와 은행계좌 하나 없이 떠도는 조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이이는 어디까지 내려간 것인가. 수배여? 아닙니다. 보름을 함께 지내면서 세면대 교체 공사를 한번 더 했다. 이번에는 안 주셔도 됩니다. 가지고 있어. 그것이 다였는데 조는 최와 함께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승합차의 한자리를 달라는 것인데, 마치 의리로 인한 동행 같은 뉘앙스였다. 저나 잘할 것이지.

“제가 바깥 생활은 잘합니다.”

“그러면 있다가 갈 때 되면 가.”

조가 가게의 실리콘들을 승합차에 잔뜩 실었다.

“그것들은 왜 챙기나?”

“일할 겁니다.”

실리콘 건과 각종 노즐, 히팅 건과 연장 콘센트 따위들도 챙겼다. 짐칸을 자재와 공구, 가재도구와 생필품 등으로 나누어 차곡차곡 정리했다. 남은 공간이라야 둘이 앉아 식사하고 한 사람 겨우 누울 정도였다. 그마저도 떠나는 순간까지 조가 뭔가를 챙긴 바람에 더 협소해졌다. 승합차가 출발하기 전, 조가 접이식 사다리를 짐 사이로 밀어넣었다. 최가 시동을 걸었다. 그냥 있다가는 가게가 통째 승합차로 들어올지도 몰랐다. 조가 보조석으로 올라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든 가야겠지.”

 

최는 곧 자기 신세가 될 것 같은 조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푼 거였다. 더 잃거나 얻을 것이 없는 가게 수준만큼의 인심이었다. 그랬음에도 조는 가게 밖으로 나가는 최를 홀로 보내지 않았다. 더부살이가 아닌 것이, 실제로 길에서의 삶은 조가 노련했다. 노상에서 가능한 일거리를 마련해 나온 이 역시 조였다. 실리콘 시공. 간단한 재료와 기술만 있으면 가능했다. 조는 최가 세면대를 교체하면서 테두리에 두른 실리콘을 유심히 봤었다. 좋은 솜씨였다. 단지 설치·수리가 주였던 최가 실리콘 작업은 부차적인 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맨손의 노상 기술자에게 부차적인 일이란 없었다. 당장의 일이 곧 본업이었다. 적당한 재료와 좋은 기술자. 미리 낙담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게를 떠나던 날, 최가 무심코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막막한 길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도로에서 갈 곳이 없었다. 답사하듯 옛적에 일했던 현장들이나 다녀볼까 싶기도 했었다. 허나 모두 옛일이고 헛일이었다. 그때의 고생이 무상할 만큼 현재가 너무 비루했다. 목적지 없이 그저 달리던 최의 눈에 휴게소 알림 표지판이 들어왔다. 아침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목적지가 생겼다는 것에 잠깐이라도 좋았었다. 휴게소에서 최가 주문한 국밥을 천천히 먹었다. 부족하면 다른 거 더 먹어. 배부릅니다. 물 좀 사야겠지? 물병 가져왔어요. 저기서 받으면 됩니다. 최는 벌써 휴게소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갈 곳 없는 고속도로를 어쩔 수 없이 시속 백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꼴이 처량하기만 했다. 저 집 커피 맛있겠네. 편의점에 잘 나온 게 있습니다. 최가 먼저 차로 가고, 조가 편의점에서 페트병에 든 커피를 사서 돌아왔다. 조가 스텐 컵에 커피를 따라 최에게 내밀었다. 최가 한모금 마셨다. 맛있네. 최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통장지갑을 꺼내 조에게 내밀었다. 통장과 카드가 함께 있었다.

“들고 있어봐야 남이 다 쓰더라고. 어디 자네가 들고 나한테 좀 써봐.”

“그래도……”

“너무 적지?”

“괜찮습니다.”

“됐어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

“……차박 할 수 있는 무료 노지 캠핑장이 있습니다.”

조는 잔고가 얼마라도 괜찮았다. 0을 시작으로 나온 길이었으므로 얼마였든 상관없었다. 그러니까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나 벌써 손을 대면 안 됐다. 조가 당장의 거처를 서울 근교의 한 노지 캠핑장으로 정한 이유였다. 취사가 가능했고 공중화장실이 있어 자동차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제법 알려진 곳이었다. 여관은 신중하게 묵어야 했다. 막연히 길로 나온 사람들은 잘 곳부터 챙기지만, 길에서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먹거리가 우선이었다. 곡기가 끊기면 잠자리에 허비한 돈을 가장 후회했다. 조가 최의 의중을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사람아, 내가 흙밥만 삼십년이야.”

 

 

4

 

실리콘 시공으로 첫 문의를 받았을 때, 최가 허허 웃었다. 전단지 작업을 하고 꼭 삼주 만이었다. 일도 일이지만 조의 전략이 통했다는 것도 우스웠다. 복사지로 만든 조잡한 전단이었다. 심지어 복사지 하나로 네장을 만들었으니 크기도 손바닥만 했다.

“현관문에 작게 붙여놓은 열쇳집 스티커 보세요. 필요하면 다 연락합니다.”

“……자네 전에는 무슨 일 했었나?”

“이것저것 했습니다.”

욕실 베란다 실리콘 시공 전문. 연중무휴. 24시 상담 가능. 전단은 서울 경기 일대 구시가지나 오래된 아파트 단지 위주로 돌렸다. 신도시나 새 아파트는 실리콘이 노후됐을 가능성이 적었다. 최는 큰 기대는 없었으나 조가 하자고 하니 열심히 돌리기는 했다. 그러고 받은 일이어서 좋으면서도 멋쩍었다. 첫 고객은 베란다 창틀 실리콘을 다시 하려는 고객이었다. 우리 방수 실리콘이 있나? 예. 실리콘 시공업자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조가 베란다 창문 블라인드를 떼어내고 화분이나 탁자 등을 한쪽으로 옮겼다. 기존 실리콘 제거는 조가 더 잘했다. 커터 칼과 끌로 깔끔하게 제거했다. 재밌는 친구네. 여하튼, 그날 최는 사다리를 밟고 창틀에 실리콘을 쏘며 그것이 본업이 됐음을 실감했다. 베란다 배수 배관이 밑으로 살짝 내려앉아 천장 쪽으로 물이 샌 흔적이 보였다. 물자국 따라 곰팡이도 끼었다. 위층에서 물을 쓸 때마다 조금씩 샐 거였다. 배관을 조금 올려서 고정하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고, 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실리콘만 시공했을 뿐이었다.

 

일이 자리 잡힐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소규모 단일 업종으로 일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목표가 아사하지 않을 정도여서 간간이 이어지는 일에도 만족할 수 있었다. 어느 노점상은 떡볶이를 팔아 건물주가 되었다지만, 최와 조는 시설 좋은 유료 캠핑장에라도 묵으면 다행이었다. 그동안 서울 경기 인근의 여러 노지 캠핑장을 전전했다. 계절에 따라 유료로 바뀌는 곳도 있었고, 환경 문제로 갑자기 폐쇄되는 곳도 있었다. 하룻밤 자고 떠날 거라면 인적 드문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최와 조는 가능한 한 오래 머물러야 했기에 캠핑장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놀러 온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사람들. 때로는 북적이고 때로는 적막한 곳. 옆 차 커다란 텐트에서 파티 같은 식사를 할 때, 최와 조는 승합차 꽁무니에 친 작은 도킹텐트에서 간소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라면 좀 끓일까? 제가 할게요. 왜? 자꾸 흘리시잖아요. 주변에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으면 라면이 아니라네.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고, 떠나면서 손대지 않은 식재료나 연료를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최와 조는 언 손으로 전단을 오렸다. 최는 유하면서 강했고, 조는 강하면서 유했다. 우선순위만 다를 뿐 자질의 합은 같았다. 조가 최의 블로그도 손봤다. 가게 할 당시에 직원 김이 관리하며 배관 정보를 올렸던 블로그였다. 조가 옛 자료를 지우고 실리콘 시공 관련한 블로그로 바꿨다. 30년 경력자 상시 대기.

“나?”

“그때부터 누가 안 시켰을까요?”

“그런 것도 같고. 나도 언제부터 쐈는지를 모르겠네.”

“그때부터 하긴 했을 거예요.”

 

 

5

 

일은 불규칙했지만 대략 한달 평균 수입은 일정해졌다. 평균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매주 화요일만큼은 여관에서 묵었다. 떠돌면서 알아낸 허름하고 값싼 여관이었다. 그곳에서 승합차를 청소하고 자재와 공구도 정리했다. 빨래를 하고 세간을 닦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단골이 되니 여관 주인 황이 싼 방을 더 싸게 내줬고, 여관의 세탁기나 세제도 쓰게 해주었다. 최도 틈틈이 여관 창틀이나 객실 화장실의 들뜬 실리콘을 보수해주고는 했다. 전달에 일이 적었다 싶으면 몇주 건너서 묵기도 했다. 그러면 눈치 빠른 황이 농을 건네곤 했다.

“어디 다른 데 가? 왜 이렇게 뜸해?”

“바빠가지고……”

최와 동갑인데 난데없이 ‘빠른’ 카드를 내밀어 형님이 된 황이었다. 황은 술 마시는 재미로 최와 조를 기다렸다. 왜 이제 와, 메기매운탕 했다. 중년의 세 남자가 창구 소파에 앉아 취할 때까지 마셨다. 배관 했구먼. 이 나라 건물들은 내가 다 했지. 그럼 우리 여관은 왜 이렇게 했냐? 툭하면 뭐가 터져. 여기는 내가 안 했지. 왜? 나는 호텔만 했어. 이놈아, 나도 곧 호텔 짓는다. 조야, 내가 못 지을 것 같냐? 지을 것 같습니다. 옳지, 그럼 너는 총지배인 맡아라. 우리도 곧 건설사 세울 겁니다. 이거는 뭐 하다가 온 놈인데 주둥이만 살았어. 그냥 이것저것 했어요. 염병하네. 최와 조는 가능한 한 이 패턴을 유지했다. 또다시 일주일을 견디려면 지난 일주일을 씻어낼 휴식이 필요했다. 하루는 황이 술 한잔 마시고 진지하게 말했다. 한달에 네번 올 돈만 받을 테니 달방으로 쓰라고.

“고시원 돈도 안 되는데, 염치없이 그게 되나.”

“더 받으면 그리로 가겠지. 대신 창고 옆방 써. 좀 작아.”

한번은 최가 예의상 사양했고, 두번째에는 조가 넙죽 받았다. 잘 쓰겠습니다. 대승여관. 그때부터 최와 조도 대승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어디에 등록하거나 신고한 것은 아니나 최가 그러자고 했다. 대승시공. 거리로 나온 지 두해 만에 얻은 방이었다. 누가 안부를 물으면 잘 지낸다고는 했으나 노지 생활이 잘 지낼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감수하는 동안 익숙해졌을 뿐이다. 물론 여관도 다시 나갈 수 있었다. 다만, 길에서 허송세월은 하지 않은 것 같아 달방 입성의 의미를 조금 뿌듯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어.”

“예, 첫인상부터 좋았어요.”

“나는 어땠나?”

“대뜸 담요를 주셔서 변탠 줄 알았어요. 차에 커튼까지……”

 

 

6

 

그런 공사가 있다. 다 마음에 드는데 유독 어느 한곳만 부족한. 그 때문에 더 눈에 띄는. 부부의 신혼집이 꼭 그랬다. 오래된 아파트였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방문들도 하얗게 도색한 까닭에 새 아파트처럼 깨끗했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집주인이 교체해주지 않는 한 누런 세면대와 욕조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끔찍한 것은 테두리의 실리콘이었다. 묵은 때와 곰팡이로 누렇고 거뭇거뭇했다. 부부는 인테리어 업자에게 모든 공사를 맡기면서 당연 실리콘도 함께 주문했었다. 세면대와 욕조는 차치하더라도 실리콘만은 깨끗한 화장실을 쓰고 싶었다. 업자가 실리콘은 서비스 차원으로 싸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나마 기분 좋게 맡겼더랬다. 그랬는데 하필 화장실 실리콘만 엉망이었다. 울퉁불퉁한 결하며, 두텁게 덧발린 이음새며, 세면대 아래쪽에는 실리콘이 달팽이 뿔처럼 늘어져 있었다. 사실 부부는 욕실 거울 테두리에 발라진 얇은 실리콘도 같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비스라는 말에 은근슬쩍 끼워 넣는 속물처럼 보일까봐 추가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손 안 댄 거울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부부는 시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결혼식 전후로 신경 쓸 다른 일이 많았다. 당장은 보수 약속만 받아둘밖에 방법이 없었다. 살림을 꾸리고 식을 올리고 여행을 다녀왔다. 거슬리나 급한 일은 아닌 까닭에 회사를 다니는 동안 보수가 계속 미뤄졌다. 업자와 일정을 상의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주중에는 맞벌이인 부부가 낮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주말에는 업자가 일을 쉬었다. 소음이 발생하는 시공이 아니니 평일 늦은 시간도 괜찮지 않겠느냐 읍소해봐도 소용없었다.

“그 시간에 누가 일해요. 우리도 함부로 못 시킵니다.”

 

영 볼품없는 실리콘은 볼 때마다 짜증 났다. 부부는 마음먹고 다시 보수 일정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건비를 다시 내라고 했다. 삼개월 이상 지났으니 재시공이라나. 다만 초기 마감이 미흡했던 관계로 재료비는 빼주겠다고 했다. 부부가 발끈했다. 인건비를 다시 낼 거면 밑천이 드러난 곳에 맡길 이유가 없었다. 부부가 검색을 통해 재료비를 알아보니 업자가 전에 말한 금액보다 훨씬 저렴했다.

“차라리 우리가 하자.”

“그럴까?”

누구는 DIY로 헌집도 새집으로 바꾼다던데 실리콘쯤 못할 것도 없었다. 부부는 곧 유튜브로 실리콘 시공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전문가들의 솜씨는 정교하고 깔끔했다. 저런 맛에 사람을 쓰는 것 아닌가. 비전문가들을 위한 시공 팁 영상도 꽤 많았다. 그만하면 부부도 할 만하다 싶었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실리콘 색도 바꾸기로 했다. 전문가들도 초보에게는 흰색을 권하지 않았다. 흰색은 실수가 눈에 잘 띄어 전문가들도 신중하게 시공한다고 했다. 부부는 여러 조언과 취향을 고려해 화사한 은색 펄 실리콘으로 결정했다. 시공 팁 영상들을 보며 어느새 준전문가가 되어 공구와 재료들도 꼼꼼하게 챙겼다. 실리콘 제거기, 실리콘 건, 마스킹테이프, 헤라, 노즐, 은색 펄 바이오실리콘 등등. 시공일도 자신들이 편한 주말로 정했다. 일정에 구속받지 않는 것도 DIY의 매력이었다. 시공 당일. 부부는 노트북에 시공 영상을 띄웠다. 그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이참에 거울 테두리도 손보기로 했다. 매우 얇아서 그나마 덜 흉했지만, 덜 흉하다는 것은 결국 흉하다는 거였다. 화장실 콘셉트는 펄 그레이. 부부가 제거기를 쥐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날이 V자 모양인 제거기가 마치 커다란 조각칼 같았다. 우선 남편이 욕조를, 아내가 세면대를 맡았다. 아내의 작업은 시작부터 고역이었다. 수전과 벽 사이로 제거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날이 얇은 칼이 필요했다. 아내가 곧 문구용 커터 칼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날이 너무 연약해 실리콘에 깊게 박히지 않았다. 자꾸 똑똑 부러져서 위험하기까지 했다. 뜯다보니 기존 실리콘을 제거하지 않고 덧바른 시공이어서 더 두껍고 단단했다. 어느 영상의 전문가는 공업용 커터 칼로 홈을 따라 V자로 도려내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남편이 현재 영상의 전문가를 더 신뢰했다. 그는 제거기를 소개하며 초보들은 전용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전용도구라도 그에 따른 요령과 기술이 있어야 했다. 아내가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이게 이렇게 한번에 싹 떼어진다고?”

그때 남편이 제거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가서 칼 사 올게. 진짜 더럽게 안 된다.”

 

영상으로 배운 것의 한계였다. 영상에서는 제거가 작업의 구할이라고 했다. 아니었다. 제거, 테이핑, 시공, 마무리가 각각의 구할이었다. 제거는 각종 도구와 힘으로 어쨌든 해냈다. 그러나 곧 이어진 테이핑 보양 작업에서부터 절망이 시작됐다. 부부가 개중 만만하게 본 작업이었는데, 점성, 폭과 간격, 수평과 곡선 등등을 고려하면서 붙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떼었다 붙였다 수없이 반복했다. 이쯤 되니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괜히 했나봐.”

“다 됐어, 실리콘만 잘 쏘면 돼.”

그러나 부부에게는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실전기술이 없었으므로 실리콘 도포 또한 잘될 리 없었다. 영상 속 그들은 실리콘을 죽 쏘고 헤라로 슥 다듬으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쉬운 거야. 당신도 할 수 있어. 시범에 군더더기가 없어 짐짓 쉬워 보였으나, 실상은 전문가인 그들에게나 쉬운 일이었다. 실리콘은 멋대로 쏘아졌고, 결은 헤라로 다듬을수록 엉망이 됐고, 심지어 푹푹 파였다. 완성도 따위는 포기했다. 끝내는 것이 곧 완성이었다.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제거할 때는 드디어 욕이 나왔다. 테이프에 실리콘이 함께 떼어진 곳은 우둘투둘한 돌기가 생겼고, 실리콘이 벌써 마르기 시작한 곳은 잘 떼어지지도 않았다. 억지로 테이프를 떼다가는 선도 망치고 너저분해졌다. 부부는 그제야 깨달았다. 업자가 대단히 잘한 것은 아니었으나 재시공할 만큼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둘걸. 화장실을 볼 때마다 후회했다. 거기에는 무언가에 우롱당한 것 같은 불쾌함까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먼저 퇴근한 남편이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전단지 하나를 내밀었다. 욕실 베란다 실리콘 시공 전문. 연중무휴. 24시 상담 가능. 대승시공.

 

 

7

 

최가 부부의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전화로 이미 전해 들은 터였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이런 손을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전문가를 쓰는 것이 상책이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는 매우 나쁜. 속상했겠네. 최와 조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최가 욕조 실리콘을 제거하는 동안, 조가 거울과 세면대 실리콘을 제거했다. 최와 조는 얇은 날과 굵은 날의 커터 칼을 번갈아 사용했다. 이들의 작업이 수월했던 것은 부부가 힘든 작업을 앞서 해버린 때문이었다. 오래돼서 단단하게 굳은 실리콘은 누구라도 제거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부부가 다 한 셈이니 이쪽에서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조가 백시멘트를 물에 갰다. 그런 뒤 그것을 한쪽에 두고 긁어낸 실리콘들을 마대자루에 쓸어 담았다. 최가 개어놓은 백시멘트로 욕조와 바닥 사이의 틈을 메웠다. 남편이 물었다.

“거기는 실리콘으로 안 하십니까?”

“바닥 쪽은 물이 많이 닿아서 실리콘이 잘 떨어져요. 그러면 욕조 밑으로 물이 들어가는데, 잘못하면 아래층으로 누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욕조 밑은 방수 처리를 잘 안 하거든요. 이따가 좀 마르면 코팅해드릴게요. 코팅제 색은 실리콘하고 맞췄습니다.”

최가 남은 백시멘트를 들고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았다. 변기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백시멘트가 군데군데 깨져서 지저분했다. 최가 끌로 테두리를 다듬고 새 백시멘트를 깨끗하게 둘렀다. 화장실을 살필 때부터 눈에 밟혔고 백시멘트도 남았으니 하는 김에 하는 거였다.

“그건 말씀 안 드린 건데.”

“남아서 그냥 하는 겁니다.”

시멘트를 다 바른 최가 실리콘 건을 들고 천장 몰딩 쪽을 살폈다. 실리콘 작업을 한 흔적이 없었다. 몰딩과 벽 틈으로 수증기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구정물 자국이 생긴다. 높아서 청소하기도 힘들 것이다. 최가 부부에게 대략 설명하고 결정을 기다렸다.

“하면 좋은데, 말씀드리기가 죄송스러워서……”

“하고 싶은 곳 다 말씀하세요. 그거 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쪽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는 테이핑 작업 없이도 일정한 굵기와 매끈한 결을 완성했다. 얇게 발라 은색 액자틀처럼 완성한 거울 테두리 실리콘은 과연 예술이었다. 최가 모든 실리콘 시공을 마치고 조에게 실리콘 건을 넘겼다. 조가 실리콘 건을 받은 뒤 들고 있던 종이컵을 내밀었다. 백시멘트에 덧바를 코팅제였다. 액체 상태로 바르면 마르면서 플라스틱처럼 굳는 성질의 약제였다. 이것을 발라두면 시멘트가 떨어지거나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고, 물때와 곰팡이도 잘 끼지 않아 관리가 편했다. 고객들의 하소연을 흘려듣지 않은 최만의 비책이었다. 여긴 왜 이렇게 빨리 떨어져요? 곰팡이 방지용으로 해도 소용없더라고요. 물때도 잘 끼고 잘 안 닦여요. 시멘트가 왜 이렇게 금방 닳아요? 그러니까 백시멘트와 코팅제로 바닥 쪽을 마감하는 것은 최의 오랜 현장 노하우로 찾아낸 나름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최가 시멘트 표면이 말랐는지 확인하고 코팅제를 발랐다. 변기 테두리에도 꼼꼼하게 발랐다. 서비스라고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비스는 앞선 어떤 일에 대한 보답이었다. 성의 없는 보답은 아니함만 못했다. 코팅제가 유리처럼 반들반들 빛났다.

“저거 생각보다 괜찮네요.”

“예. 이런 성질로 된 줄눈 메지도 있으니까 알아보세요. 많이 파였네요. 물은 되도록 내일 저녁때까지는 닿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내가 폰뱅킹으로 최의 계좌에 시공료를 입금했다. 약속한 금액보다 조금 더 얹은 액수였다. 최와 조가 주말에도 와준 것이 고마웠고, 시공 또한 마음에 들었으며, 낡은 변기까지 손봐준 배려에 대한 감사였다. 최와 조가 집을 나설 때, 남편이 최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에는 새 실리콘과 각종 노즐, 마스킹테이프 등속이 들어 있었다. 자신들은 절대 쓸 일이 없으니 필요한 최가 쓰라는 거였다. 조가 냅다 받았다. 고맙습니다. 뜻하지 않은 주말 수당과 덤으로 받은 자재들로 조가 대놓고 좋아했다. 최가 머쓱하게 허허 웃었다.

 

주말에는 여관에 손님이 많아 주차장이 꽉 찼다. 그 때문에 여관 길목에 주차해야 했다. 조는 최를 먼저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남아 짐칸을 살폈다. 부부에게서 받은 자재들도 종류별로 분류했다. 일이 많든 적든 자재가 점점 늘었다. 어떤 일을 오래 하면 연관 자재가 관록처럼 쌓이게 마련이었다. 다만, 승합차 짐칸에는 연관 자재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였다. 조는 누가 무엇을 주든 마다 않고 챙겼다. 그게 들어가? 넣으면 들어가요. 어느 도배사에게서 얻은 자투리 도배지 두 롤이 듀얼 머플러처럼 박혀 있는 이유였다. 조가 정리를 마치고 승합차 문을 닫았다. 오늘만 같아라.

 

 

8

 

조가 재단기로 전단을 잘랐다. 최와 조는 전단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검색으로 선택받는 블로그도 중요하지만, 선제적으로 자신들을 알리는 것도 중요했다. 최가 조가 자른 전단지를 백장씩 추려 고무줄로 묶었다. 일이 없는 날의 소일거리였다. 그때 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최가 전화를 받았다.

“예, 대승시공입니다.”

“지난번에 욕실 실리콘 시공한 집인데요.”

“네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게 아니라, 그때 사장님이 타일 줄눈 말씀하셨잖아요. 알아보니까 꽤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사장님 혹시 줄눈 시공도 하시나요?”

“아, 줄눈 시공 그거는 저희가……”

조가 최의 팔을 툭 쳤다. 그러더니 입모양으로 저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자네가? 네. 최가 담당 직원을 바꿔주겠노라 하고 조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조가 상담했다. 네, 색상 맞출 수 있습니다. 주말 됩니다. 최가 가만히 들었다. 일반적으로 줄눈 시공이라 하면 각종 테두리와 줄눈 작업을 함께 말했다. 다만 테두리제가 살짝 되직해서 다루기 수월한 면이 있었다. 묽은 약제를 얇은 선에 채우는 줄눈 작업은 좀더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조가 줄눈을 할 줄 안다면 당연 테두리도 할 줄 알 거였다. 그런데 왜 그동안은 보고만 있었나. 조가 전화를 끊었다. 욕실 전체와 현관을 맡았다고 최에게 보고했다. 최가 조에게 정말 잘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전에 그쪽 일 좀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하는 건 왜 보기만 했나?”

“묻지 않으셨고, 잘하시기에 보조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장비는?”

“대충 있어요. 약제하고 필요한 몇가지만 더 구입하면 됩니다.”

그렇군. 최는 문득 조의 ‘이것저것’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지금의 일들도 이미 그의 이것저것 속에 포함됐을 거였다. 그렇긴 하지, 하고 최가 빠르게 수긍했다. 얼마나 모호하고도 적확한 표현인가. 완곡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꾸밈없이 그러모은 말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돌아보면 최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조의 이것저것들은 못내 무용지물 같으면서도 동시에 잡스러운 든든함이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조를 보조하며 일을 배워야 했다. 현장 일을 하면 당연 또다른 현장 일을 배우게 된다. 불끈 솟는 만학도의 의욕이 자못 좋았다. 틈새 시공업자.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쑥 조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도배도 하나?”

“못합니다. 왜……”

“……아냐.”

최가 대답하고 애써 고무줄로 묶은 전단을 풀었다. 줄눈 시공 전문. 당장은 수기로라도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 일 없는 날 하기에 꼭 맞춤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