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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하석 李夏錫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 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녹』 『것들』 『상응』 『연애 間』 『천둥의 뿌리』 등이 있음. hslee0124@hanmail.net
방천시장
집집마다 화분들, 내놓고, 키운다. 온통, 그런 화분들 열 지은 골목. 이 동네 주민들의 구름생각의 가장자리인 셈이다.
홍초꽃이 깜짝, 핀다. 저를 내놓은 집의 구름의 역사를 밖으로 되지피듯이 붉다. 그게, 너무 밝으면 궁금한 색이다. 때로 고추꽃이 저를 키우는 집 안의 어둠을 닦는 전구처럼 바깥으로만 희다. 수줍고 눈부시게 흔들리는 바람의 표정들이다.
그리고 불쑥, 불쑥, 피어나 다리를 거는 꽃,
꽃 핀 지 오래되면 영수증이 되어 펄럭거리는 것들 사이에서
이 골목과 함께 늙은 노인들의 들쭉날쭉한 시간들도 계속 바깥으로 봉오리를 맺는다, 다른 꽃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그, 서로 내놓은 흐린 날의 꽃시계들로 맞추어지는 시절이 점점 더 많아진다.
당연히, 시장이라 해도 이런 것들까지 내놓고 팔진 않는다.
골목의 시
휘어 도는 길의 바깥이 바다로 쏟아지는 비탈이어서 위험하다고 시멘트 담으로 가렸다
그래도 뉘든 발뒤꿈치 들면 내다볼 수 있다
거기 뉘엿뉘엿, 빛 찬란한 파도이랑이 붐빈다
그러나 시멘트 담장 안 켠 쌓인 먼지에 민들레가 가까스로 뿌리 내렸다
너무 낮고 앉은 자리라 바다를 볼 수 없어서
바람에 소식 묻느라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래, 그래, 먼바다 그리듯 담 밖 절벽에 생을 걸친 꽃들과도 통화를 시도하는가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의 동네가
뜻밖에도 화안하게 피어 고개 쳐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