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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이 있음.

brokenname@empas.com

 

 

 

좋은 이웃

 

 

일요일 아침, 초인종 소리에 놀라 인터폰을 확인하니 흐린 화면 속에 웬 젊은 남녀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 다 마스크를 써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가에 분명 웃음이 서려 있었다.

—누구세요?

저쪽에서 뭐라 높은 소리를 냈는데 발음 탓인지 마스크 때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망설이다 “잠깐만요” 소리친 뒤 마스크를 쓰고 현관으로 나갔다. 잠금장치를 푸는 동안 옅은 불안이 일었지만 집에 남편이 있는데다 방문자가 외판원이나 종교인으로 보이지 않아 마음을 놨다. 현관 걸쇠 사이로 빠끔 얼굴을 내밀자 두 사람이 재빨리 목 인사를 건넸다. 휴일인데도 둘 다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머리 만진 티가 났다. 무슨 일이냐는 듯 내가 마스크 위 눈을 크게 뜨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저희 901호 들어올 부부인데요.

살짝 긴장한 듯했지만 자신감이랄까 여유도 눈에 띄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서로를 보는 눈에 피로나 권태가 담기지 않아 딱 봐도 신혼부부 같았다. ‘밝은 사람끼리 만났구나’ 혼자 짐작하는 사이 남자가 말을 이었다. ‘곧 윗집으로 이사 오는데 입주 전 한달간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 한다’고, ‘그런데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해 각 집을 돌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걸쇠를 풀고 문밖으로 상체를 반쯤 내밀었다.

—한달이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미안한 듯 고개 숙였다. 아마 우리 집 현관에 붙은 독서교실 현판을 본 모양이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내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흐리자 남자는 반응을 예상했는지 연신 ‘죄송하다’며 ‘소음이 큰 철거 작업은 공사 초반에만 잠깐 이뤄질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게다가 주말에는 공사가 없을 거’라고. 그런 뒤 “다른 집에서는 대부분 동의해주셨는데, 저희가 최대한 주의할 테니 어떻게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 물었다. ‘가장 피해받는 집이 동의를 안 하겠다는데 다른 집 서명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짧은 침묵으로 대신했다. 나는 한숨을 쉰 뒤 ‘그럼 수요일과 목요일만이라도 큰 공사는 좀 피해달라’고 부탁했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딱 두시간만이라도 소음을 줄여달라’고, ‘혹 시간을 외우기 어려우면 문자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남자는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응했다.

—네, 꼭 그렇게 말씀드려놓겠습니다.

마지못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서둘러 뭔가 내밀었다. 상대가 서명하기 좋게 동의서와 볼펜을 두꺼운 클립보드에 고정시킨 거였다. 서류에는 이미 다른 입주민들의 호수와 이름,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낯선 이에게 개인정보를 넘기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무심한 척 서명한 뒤 서류를 돌려줬다. 그제야 두 사람은 비로소 한시름 놓은 듯 활짝 웃었다. 서명을 마치고 곧장 문을 닫으려는데 여자가 황급히 작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약소하지만 감사의 뜻’이라 했다. 가만 보니 남자 손에 큰 쇼핑백이 들렸고, 그 안에 마분지 소재의 작은 가방이 여럿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마스크를 벗으며 거실로 들어서자, 남편 호준이 까치집 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음…… 휴대용 손 소독제랑 과자네?

—뭐가?

—윗집. 새로 이사 온다는데. 한달간 인테리어 공사한다며 동의서 받아 갔어.

남편이 눈썹을 치켜뜨며 ‘쯧’ 소리를 냈다.

—한동안 골치 아프겠네.

그러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컵에 따르며 물었다.

—괜찮겠어? 당신 수업?

—안 그래도 말해놨어.

남편이 천천히 생수를 들이켜며 내 표정을 살폈다. 이웃 부부와 헤어진 뒤 계속 석연찮은 기분인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대다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

—자기들이 산 건 아니겠지?

—뭘?

—저 집 말이야. 둘 다 넉넉잡아도 삼십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던데. 우리도 그렇지만 저 나이에는 절대 못 살 액수잖아? 요즘 같은 때.

남편이 잠시 침묵하다 대꾸했다.

—부모가 해줬나보지. ……인상은 어때?

나는 허공을 향해 두 눈을 깜빡였다.

—아직 사회 때 덜 묻고…… 주류로 오래 살아온 인상?

그런 뒤 종이가방 입구를 벌려 그 안의 어둠을 빤히 응시하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이거, 세계과자점에서 이천 얼마면 사는 거네. 다 합쳐도 스물몇가구인데, 자기들 집값에 비해 너무 약소한 거 아니야?

 

며칠 뒤 재활용품 배출일이 돌아와 폐지상자를 안고 승강기 앞에 섰다. 남편과 ‘내년 봄, 이사 전까지 살림을 간소화하자’ 약속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미 출퇴근 시간만 세시간 가까이 드는 남편에게 ‘여기서 좀더 멀리 나가자’ 권하기도 어려웠지만, 간다 해도 지금보다 작은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세매물도 드물고, 최근 급격히 오른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미 이 집에 들어올 때 얻은 빚이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우리도 이제 미니멀리스트로 살자’ 했다. 나는 그 말이 ‘선택’이 아닌 ‘포기’처럼 느껴져 불편했지만, 남편이 결혼 후 지난 십년간 모은 브랜드별 맥주잔을 동네 중고마켓에 통째로 내놓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게 또 너무 헐값에 팔리는 걸 보고도. 우리는 이사 전 거실을 가득 채운 책장도 미리 정리하기로 했다. 두차례 유산 후 원래 다니던 학습지회사를 그만두고 독서지도사로 오년 가까이 일한 동안 집에 책이 계속 늘었다. 그중 우리는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너무 낡은 책, 어쩌다 두권 생긴 책, 당시에는 좋았지만 더는 안 볼 것 같은 책들을 처분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어디 기부했을 텐데, 집값 폭등 후 갑자기 마음이 인색해진 남편은 ‘한푼이라도 아껴야 된다’며 중고서점에 내놓을 책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중고서점의 매입가로는 최근 화제작이 일순위고, 그다음이 스테디셀러, 절판된 지 오래라 고가에 거래되는 책 순서였다. 물론 개중에는 최근작이라도 중고로조차 받아주지 않는 책도 있었다. 그런 건 대개 폐지상자에 들어갔다. 상자 속 책을 보며 내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남편은 ‘앞으로도 책이 꾸준히 늘 텐데 사람 대신 짐이 집을 차지하게 둬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새삼 책을 ‘짐’으로 표현한 남편 얼굴이 낯설어 흘깃댔다. 신혼 초 ‘우리의 시작을 이웃과 함께 하자’며 유니세프 정기후원을 먼저 권한 남편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주말마다 조금씩 책 정리를 하기로 했다. 이번 주에는 철학과 역사를 버리고, 다음 주에는 시와 소설을, 다음에는 자연과학을 추리는 식이었다. 양이 적지 않은 만큼 파지값을 높게 받아서인지 책은 내놓는 족족 금세 사라졌다. 그저 책을 버릴 뿐인데 누군가에게 무언가 ‘베푼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속도였다.

책이 담긴 폐지상자를 들고 승강기 앞에 서 있자니 그간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신문에 연일 갱신되는 숫자와 그래프를 보고 불안해하다 종내 입을 다물지 못한 몇몇 순간과 한동안 넋이 나간 얼굴로 출근 버스에 오른 남편 모습도. 이윽고 승강기 문이 열리고 여느 때처럼 무심히 안으로 들어서다 처음 보는 광경에 멈칫했다. 승강기 내부가 두꺼운 잿빛 부직포로 온통 감싸져 있어서였다. 문득 며칠 전 만난 윗집 부부가 떠올라 ‘이제 시작인가보다……’ 한숨 쉬었다. 그러곤 검지를 구부려 1층 단추를 누르다 낯선 게시물을 발견했다. 가만 보니 901호 부부가 관리사무소에서 준 양식에 따라 직접 작성한 듯했다. 부부는 “주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공지 기간에 맞춰 공사를 마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끝내기 허전했는지 한마디 덧붙였는데,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그런지 내게는 그게 몹시 생경하게 다가왔다.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양팔로 폐지상자를 안고 그 문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땡!’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대형 쓰레기통과 음식물 쓰레기통, 재활용품 수거함이 한데 모인 어둑한 장소로 걸어가며 두달 전 집주인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만일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보다 일년 넘게 이어진 이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그사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지 않고, 노동가치니 화폐가치니 하는 것들이 이렇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저 윗집 부부처럼 밝은 얼굴로 이웃을 환대할 수 있었을까? 하고.

 

*

 

두달 전 식탁에서 교재를 연구하다 집주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년 전 전세계약 갱신 때를 제외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성인이 된 뒤 이십여년간 십여차례 이사를 다니고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되었는데도 휴대전화에 집주인 이름이 뜨면 여전히 긴장됐다. 깊은숨을 쉰 뒤 통화 단추를 누르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가 “여보세요”라고 하자 집주인이 밝게 안부를 건넸다. 그러곤 몇마디 더 보태다 ‘갑자기 집을 팔게 됐다’며 ‘남은 기간까지 두분 사시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 했다. 다만 ‘계약기간 이후에는 새 집주인이 들어가 살려는 것 같다’라고.

 

다음 날 동네 부동산중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인분과 통화하신 걸로 안다’며 ‘매입을 희망하시는 분이 그래도 도장 찍기 전 집을 한번 보고 싶다는데, 방문 가능하냐’는 거였다. 수화기 너머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는 사년 전 이 집을 계약할 때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에게 꽤 친절했는데, 기분 탓인지 태도가 살짝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약속 당일, 왜 그랬는지 우리 부부는 청소를 참 열심히 했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우리 집’도 아니고 누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집 안 곳곳을 정성스레 쓸고 닦았다. 이런 식으로 집과 헤어지는 게 억울하고 서운하면서도, 이 이십년 넘은 아파트를 우리가 얼마나 공들여 가꾸고 깨끗이 사용했는지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초인종이 울리고 새 집주인 될 부부가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들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랐다. 공인중개사 포함 모두 마스크를 쓴 상태였지만 이 집을 구매하기로 한 부부가 딱 내 또래로 보인 까닭이었다. 왜 그런지 내 머릿속에 ‘집주인’은 늘 노인이었다. 대부분 육십대 이상, 못해도 오십대 중반의 혈색 좋고 깐깐한 이들이었다. 당장 이 집 주인만 해도 그랬다. 그는 큰 공기업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은퇴한 칠십대 남성이었다.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로부터 그가 이 집 말고도 다른 지역에 아파트를 세채나 더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기억이 났다. 방문객을 보고 내가 뒤로 물러서자 그들은 신을 벗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며 “실례합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이 자리에 식탁 놓으면 되겠다” “이 방은 소윤이 주면 되겠네”라는 식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뒤 공인중개사의 안내에 따라 베란다를 살펴보고, 욕실 물을 틀어보고, 천장 벽 모서리에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나 꼼꼼히 확인했다. 한두번 겪은 일도 아닌데, 나조차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한 적 있는데, 그걸 보자 지난 시간 우리가 겪은 과정이, 그 모든 노출과 공개가 부당하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대여 혹은 매매 의사만 있으면 누구든 실거주자 집에 들어와 모든 걸 살펴볼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우리가 사회초년생도 신혼부부도 아닌, ‘성장’과 ‘단계’를 조금이나마 맛본, 이제 중년에 접어든 부부라 그런지 몰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걸 막 깨달은 사십대라서. 그래서일까? 친구라도 초대한 양 온종일 집을 쓸고 닦았으면서 막상 그들 부부가 떠났을 때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인테리어 공사 후 첫 수요일이 다가왔을 때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위층에서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진동과 굉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공사 소음은 하루 종일 이어지다 독서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4시에 이르러 더 커졌다. 거실 형광등이 조각나 사방에 튀지 않을까 싶은 강도였다. 얼마 뒤 현관에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탁자에 둘러앉았을 때 나는 상황을 최대한 잘 설명하려 애썼다. 긴장한 나와 달리 아이들은 다행히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하지만 수업이 이어지는 내내 나는 잘 집중하지 못했다. 소음도 소음이거니와 학부모로부터 항의와 환불 요구를 받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결국 아이들에게 짧은 읽기 과제를 준 뒤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계단을 이용해 위층으로 성큼 올라가니 현관문이 활짝 열린 901호에서 방금 전보다 더 큰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슬쩍 상체를 기울여 안을 들여다봤다. 안전화 신은 인부들이 벽지와 바닥이 다 뜯긴 곳을 바삐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아침부터 나를 괴롭힌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집 바닥이 우리 천장인데. 온종일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9층까지 올라가놓고 안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내다 마침 마대자루를 들고 나오는 인부에게 ‘혹시 여기 책임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남자가 피로한 듯 경계 어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 누군가와 눈을 맞췄다. 곧이어 작고 다부진 체구의 한 사내가 내게 걸어왔다. 그는 무슨 일이냐는 듯 마스크 위 가느다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얼마 전 이웃 남자와 협의한 내용을 비롯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내는 별 미동 없이 ‘우리도 정해진 일정이 있고, 일이란 게 뭐 그렇게 반찬처럼 아껴 먹고 쟁여두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해명인지 통보인지 모를 말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신다고……

—누가요?

—이 집 주인이……

사내가 팔짱 끼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전혀 못 들었는데?

 

결국 아이들과 수업을 어렵게 마치고 이웃 남자에게 연락했다.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차례 더 전화를 걸어보다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한참 뒤 남자에게서 예의 바른 답장이 왔다.

—분명 미리 언질 드렸는데 이상하네요. 제가 한번 더 부탁드려놓겠습니다.

 

*

 

작년 겨울, 아파트 거실을 개조해 독서교실로 꾸몄다. 거실 벽면을 책장으로 채우고 대형 탁자와 의자, 칠판 등을 들였다. 안방 또한 놀이도구와 매트, 좌식책상을 두어 보조교실로 바꿨다. 처음에는 당연히 작은방을 쓸 생각이었는데 남편이 ‘안방으로 하라’며 강하게 권했다. 그뒤 개인과외교습자 신고와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회원을 모집했다. 하지만 문의를 해오는 이는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등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프리로 전향하면 교재 연구부터 회원 관리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해 무척 고되다’는 주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나은 수입을 바라며 시작했는데. 빚도 빚이지만 안방까지 내준 남편에게 미안했다. 전염병 시기라 새 회원을 기대하거나 부업을 뛰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애써 들인 가구를 다시 내다 팔 수는 없었다. 초조하고 암울한 한해를 보내다 올해 점차 백신접종률이 높아지고 대면수업이 본격화되면서 하나둘 수업 문의가 들어왔다. 원격수업 기간 내내 육아와 돌봄에 지친 부모들이 숨 쉴 시간을 찾는 덕분이었다. 물론 첫 회원은 한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한명에게 최선을 다했다. 차츰 입소문이 나면 곧 다섯모둠 정도는 꾸릴 테고, 그럼 우리 생활도 나아지리라 믿었다. 다행히 최근 회원이 아홉명으로 늘어 모둠을 두개로 나눴다. 지역 맘카페에 평판도 괜찮게 도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의 아파트 매매 통보와 더불어 위층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된 거였다.

 

토요일 오후, 검정색 나일론 가방에 교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방문교사 일을 관둔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까지 내가 유일하게 가르치는 학생이 있어서였다. 시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일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하다 휠체어를 타고 집에 돌아온 아이였다. 그뒤 일반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링과 과외로 학업을 이어나가다, 독서지도업체를 통해 나를 만났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재활 의지가 강했다는데, 어느 순간 어떤 벽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나 이따금 시우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며 그 벽을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시우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좋아 중등 독서프로그램 과정을 순조롭게 따라왔다. 어느 때는 나조차 생각 못한 신선한 시선으로 글을 풀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다 내가 개인사업자로 돌아서며 다른 선생님을 소개했는데, 한달도 되지 않아 시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우 어머니는 내게 ‘전처럼 시우를 맡아주실 수 없는지’ 물었다. 의사를 묻는 게 아닌 간청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전 직장과 새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 완곡히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시우 어머니는 시급 이만원 인상을 제시했다.

—시급이 문제가 아니고요……

—알아요,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시라는 거. 그렇지만 어떻게든 부탁드리고 싶어요.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 주저하는 사이 시우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그렇게 가신 뒤로 시우가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요. 좀 도와주세요.

나는 고민 후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내리고 있었다. 뿌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교양팔이나 입시장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나는 휴대전화를 쥔 채 동네 사거리에 먹먹한 얼굴로 한참 서 있었다. 그날 밤 시우 어머니에게 전화해 ‘다음 주부터 같은 시간에 가겠다’ 했다. ‘시급은 이전 그대로 하겠다’면서. 수화기 너머로 시우 어머니의 침묵이 이어졌다. 시우 어머니는 ‘선생님 뜻이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린 스스로가 고마웠다.

 

이년 전 시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시우의 총명하고 올곧은 면에 끌렸다. 특히 사회문제를 토론할 때 드러나는 이완된 듯 날카로운 면이 좋았다. 시우는 생활 글을 쓸 때도 어떤 교훈이나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펼쳤다. ‘인권감수성’을 주제어로 내줬을 때, 시우는 가족과 외식 나갔다 ‘휠체어는 입장이 어렵다’며 퇴짜 맞은 경험과 그날 그 업소에 별점 테러 가한 내용을 썼다. 그 글에서 시우는 ‘인권감수성이 낮고, 돈밖에 모르는 점주는 결국 돈으로 혼내는 수밖에 없다’ 결론 내렸다. 평소 가족이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 ‘일말의 울분 없이 아주 차가운 마음으로 한 복수’였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나는 웃음을 참으며 “이 과제의 목표는 이런 게 아닌데……” 하고 말끝을 흐리다 시우가 참고할 만한 청소년 권장도서를 자세히 일러줬다. “시우 너, 이러면 논술시험에서 좋은 점수 못 받는다”면서.

 

시우네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버스로 약 삼십분 거리에 있었다. 서울 변두리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지은 지 삼십년 된 아파트였다. 일자형 복도식 아파트 네동이 옹기종기 모인 단지 주변에는 키 크고 오래된 나무가 제법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나는 시우 집에 갈 때마다 그 거대한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좋아했다. 과시적이지도 방어적이지도 않은 공간이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맞아주는 것 같아서였다. 아파트단지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세탁소와 빵집, 미용실, 편의점 등이 즐비했고, 거기서 조금만 나가면 규모가 꽤 큰 시장도 접할 수 있었다. 시우 부모님은 바로 그 시장에서 일했다.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언덕까지 내리 걸은 뒤 정상에 도착해 숨을 골랐다. 높은 곳에 서서 가을바람을 맞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또다른 산등성이를 따라 아파트와 또 아파트가 겹겹의 동심원을 그리며 비죽비죽 솟아난 게 보였다. 더불어 인근 아파트 공사 현장에 ‘무사고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위험! 추락주의’ 등의 글자가 보였다. 시우네 아파트 공동현관에는 별다른 보안 시스템 없이 경비원 아저씨가 매번 자리를 지켰는데, 오래전 얼굴을 튼 터라 나는 간단히 묵례만 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수업 십분 전, 아파트 승강기 앞에 섰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니 엄마였다. 약속시간이 밭아 망설이다 혹 고향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내게 잠시 통화 가능한지 물은 뒤 ‘월요일에 김치를 좀 보내려는데, 다음 날 집에 있을 거냐’ 물었다. ‘받자마자 냉장고에 넣어야 맛있는데, 사람 없으면 다른 날 보내겠다’고. ‘사실 당일 도착만 가능하면 여기서 갓 잡은 생선이랑 밭에서 금방 딴 상추도 보내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이럴 때 차 있으면 좋은데.

환승 과정이 복잡하고 버스 배차도 줄어 고향 가는 게 점점 ‘일’이 돼버린 내가 엄마 말에 호응하자 엄마는 “그러게 왜 산다, 산다 하며 안 사느냐”며 “정서방도 너도 둘 다 차 없으면 불편하지 않아?” 하고 물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이 생기면 사자고 했다 이렇게 늦어졌지 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친정집 작은방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내며 연신 눈물 흘리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주희야.

—어? 엄마, 나 지금 들어가봐야 해. 급한 거 아니면 이따 통화해도 되지?

눈앞에서 승강기 문이 열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승강기에 올라 12층 단추를 누르다 낯선 게시물 하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직접 문서작업 후 출력해 붙인 게시물이었다. 대충 보니 ‘너무 고통스럽다. 관리사무소에 몇번을 제보해도 바뀌는 게 없다. 제발 베란다나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군가 빨간색 볼펜으로 낙서하듯 적어놓은 문장이 보였다.

—억울하면 비싼 아파트 살아라. 내가 내 돈 주고 산 내 집에서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냐.

승강기 도착을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야외에 반쯤 노출된 긴 복도를 지나,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철문 앞에 섰다. 자세를 가다듬고 지그시 초인종을 누르자 저쪽에서 “누구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선생님이야.

 

*

 

일요일 저녁,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침 배달앱에 오늘까지만 쓸 수 있는 할인쿠폰이 떠 오랜만에 배달음식을 시켰다.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서자 남편이 휴대전화 속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요즘 즐겨 보는 ‘20년 된 아파트 셀프 리모델링’ ‘5천만원 농가 개조’ ‘교외에 2억으로 집짓기’ 유의 동영상이었다. 독서교실을 열며 거실 소파를 없앤 뒤 남편은 쉬는 날이면 거의 침대에 머물렀다. 내가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사이 남편이 싱거운 말을 했다.

—우리도 귀향이나 할까?

나는 한숨 쉬듯 작게 웃었다.

—당신 고향은 서울이잖아.

스무살 때 상경한 나와 달리 남편은 서울 토박이였다. 그런데 몇년 새 본가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친구들도 하나둘 서울을 떠나 남편은 외출하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피자 시켰어?

—어.

—왜 안 오지?

—장사 잘되나보지.

 

휴대전화로 배달 현황을 확인하니 ‘도착 예정’이라는 문구가 떴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도착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가? 갸웃대다 허기와 기다림에 지쳐 결국 피자가게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저 삼십분 전부터 ‘배달 중’이라 뜨는데 음식이 안 오네요?

수화기 너머 사내가 이미 그런 전화를 많이 받은 듯 익숙한 투로, 그러나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지금 출발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했다.

—지금이요?

황당한 듯 반문하자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애써 삼키며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갖다드리겠습니다.

 

공동현관에서 호출이 와 ‘열림’ 단추를 눌렀다. 잠시 후 현관문 노크 소리가 들려 큰 소리로 “문 앞에 놔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런데 저쪽에서 “잠깐만요” 하고 누군가 나와주길 바라는 기척을 냈다. 할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나가자 한 중년 남자가 빗물에 살짝 젖은 피자상자와 비닐봉투를 건넸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 네.

비닐봉투 안에서 식욕을 돋우는 기름 냄새와 따뜻한 김이 무럭 올라왔다.

—갑자기 배달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대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죄송해서 서비스로 닭날개구이 몇개 넣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묵례한 뒤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남자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정중하고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가게 평점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실로 돌아와 탁자에 배달 꾸러미를 올렸다. 그사이 얼음과 유리잔, 앞접시를 준비한 남편이 내 쪽을 흘끔거렸다.

—뭐야?

나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닭날개. 사장님이 직접 오신 것 같은데 늦어서 미안하다고 서비스 줬어.

남편이 유리잔에 콜라를 채워 넣으며 말했다.

—오히려 잘됐네.

 

남편과 티브이를 보며 어쩌다 야식이 돼버린 저녁을 들었다. 뉴스에서 마침 부동산 소식이 흘러나왔다. 남편이 피자를 씹다 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때 대출받아서라도 이 집을 샀어야 했는데.

남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사년 전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전세계약서를 꼼꼼하게 읽는 우리를 보며 집주인이 가볍게 설득하듯 말했었다.

—조금 더 보태서 사지 그래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무리해야 가능한 액수였지만 우리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직 그럴 상황이 안 된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하락세가 점쳐졌고, ‘지금 집 사는 건 미친 짓’이라는 말이 돌 때였다. 그런데도 마치 그때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 같은,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년 봄, 이곳을 떠나 이사할 생각을 하니 더 그랬다. 근 일년간 부동산 기사 댓글 창에는 집값이 안정되길 바라는 무주택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매일 아침 한강을 건너 출근하는 남편은 “요즘은 풍경이 다 돈으로 보인다”며 뉴스를 보다 말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됐어, 다 똑같은 놈들이야”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왠지 그 말이 듣기 싫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쥔 게 있는 세대잖아. 감사하며 살자.

남편이 선량한 듯 서글픈 얼굴로 대꾸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 결국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이렇게’가 뭔데?

—……

—일년 넘게 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지방 청년들이나 사회 초년생들한테는 다 딴 세상 이야기라 하더라. 전세금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편은 잠시 침묵하다 “내가 탐욕을 부리거나 투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저 좀 생존하겠다는 건데. 가진 사람들은 세금 몇푼에도 펄쩍 뛰고 피해자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 정작 사다리에서 튕겨나간 나는 좀 속상해하면 안 돼?” 항변했다. 젊었을 때라면 나도 “우리가 아닌 사다리를 의심해야지”라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 말이 입에서 차마 안 나와 남편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돼. 그래도 어디 가서 그러지 마. 특히 회사 신입들 앞에서는.

그러자 남편이 허탈하게 웃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 신입이 나보다 부자인데?

우리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밤 11시 무렵, 빗줄기가 약해져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날 음식물쓰레기는 가능한 한 그날 버리는 게 내 습관이었다. 개수대가 깨끗한 상태로 있을 때 드는 안정감이 좋아서였다. 마스크를 쓰고 승강기 앞에 서서 습관적으로 천장을 흘끔거렸다. 낮의 소란과 달리 밤의 복도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윗집 부부는 상황을 개선시키겠다 약속했지만 변한 건 없었다. 남자는 내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현장 책임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공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승강기를 타고 1층에 도착해 종종걸음으로 쓰레기장까지 걸어갔다. 그러곤 숨을 참은 채 재빨리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승강기에 올랐다. 손끝으로 8층을 누른 뒤 승강기 단추에 손댄 게 왠지 찝찝해, 철제 손잡이에 설치된 펌프형 소독제 머리 부분을 꾹 눌렀다. 손바닥에 투명하고 무거운 제형의 소독액이 왈칵 쏟아졌다. 멍한 얼굴로 승강기가 이동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문득 익숙한 게시물 앞에 시선이 멈췄다.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삼주 전 901호 부부가 직접 붙인 글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곤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을 살짝 비비며 손바닥에 남은 소독액의 양을 확인했다. 이윽고 ‘땡’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가며 축축한 손바닥을 게시물 위로 스치듯 스윽 문질렀다. 문득 알코올에 젖은 종이가 울고 글씨가 번지는 게 상상됐지만 고개 돌려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

 

시우와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소설을 읽었다. 독서교사들이 ‘공동체’나 ‘공동선’을 가르칠 때 자주 쓰는 교재였다. 시우는 그간 말이 고팠는지 토론 중 자주 샛길로 빠졌다. 주인공 혼자 물고기를 잡는 장면에서 갑자기 대기업에 다니는 자기 삼촌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최근 삼촌 회사에 높은 분이 전염병 확진자로 판정돼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집 열대어를 끔찍하게 아낀다고. 그래서 삼촌이 퇴근 후 매일 그 빈집에 물고기 밥 주러 간다는 얘기였다. 문득 넓은 거실에 놓인 대형 수조와 그 안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떠올랐지만 나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니야?

시우가 그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좀 재밌기도 한가봐요, 남의 집 구경하는 게.

—……

—선생님은 남의 집 많이 가봤죠? 어때요? 다 다르죠? 정말 그 집이 행복한지 아닌지 다 보여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한편으로는 시우가 나 역시 자기 집을 평가한다 여길까 염려됐다. 평가까지는 아니어도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였다. 시우 집은 지은 지 오래돼 현관과 베란다 벽에 실금이 보였다. 아마 처음에는 무척 아름다웠을 천장에는 로코코인지 바로크인지 모를 양식의 조명 틀이 둥글게 파였고, 샹들리에가 있었음직한 자리에는 크리스털 장식 대신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한 형광등이 엑스 자 모양으로 박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초라하기보다 내가 자란 우리 고향 집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집주인이 아무리 깔끔해도 수납공간이 적으면 장식장 위에 김치통과 애들 상장을 동시에 올려둘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래도 여기 화장실에 가는 일만은 여전히 좀 어색했다. 화장실 바닥에 항상 시우 것으로 짐작되는 플라스틱 소변통이 놓여 있어서였다. 그중 어느 것은 소변이 가득하고, 어느 것은 반쯤 차 있었다. 또 몇개는 깨끗하게 물로 부셔놓은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시우 부모님은 하루 대부분 정육점에 나가 매번 그걸 치우는 일이 쉽지 않은 듯했다. 수업 전,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을 때마다 ‘시우 부모님이 많이 바쁘신가보다’ 싶으면서도 세면대의 누런 물때를 볼 때면 ‘나라면 이렇게 안 살 텐데’ 주제넘은 걱정이 들었다. 최근 우리 집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면서 그랬다. 집주인과 통화 후 남편과 나는 집을 가꾸고 살피는 데 부쩍 소홀해졌다. 방에 형광등이 하나 나가도 교체하려 하지 않았고, 욕실 타일에 곰팡이가 올라와도 전처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내게 ‘남의 집에 갈 때마다 행복이 보이냐’고 묻다니. 나는 최대한 담백하게 답했다.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 그냥 가서 열심히 일하다 오는 거지.

물론 동네마다 아파트 입구부터 다르고, 나오는 간식이 다르고, 부모 말투가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시우에게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러곤 아무래도 분위기를 환기해야 할 것 같아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자, 그럼 마저 수업할까?

방금 전 시우와 함께 정독한 단편을 다시 펼쳤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조난당한 여성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모든 연락이 끊겨 회사도 국가도 포기한 사람을 인근 섬사람들이 힘을 합쳐 구하는 이야기. 바다에 깨처럼 뿌려진 작은 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힘을 발하는 우화. 시우가 수업 중 새삼 열대어 얘기를 꺼낸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해당 단편의 주제와 배경을 설명한 뒤 공동체, 이웃, 연대 등 핵심단어를 추려 수업을 이어나갔다. 시우 또래를 가르치며 지금까지 백번도 더 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즈음 시우가 물었다.

—선생님은 다 믿어요?

—뭘?

—이 책에 있는 말들.

잠시 갈등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 앞에서는 일단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요?

시우의 입에서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나와 나는 좀 당황했다.

—응?

시우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그게 잘 안 돼서요. 그런 걸 믿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선생님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저도 가르쳐주세요.

—……

나는 잠시 침묵하다 수업 중 곤란할 때 쓰는 카드를 꺼냈다.

—음, 오늘은 시간 다 됐으니까 선생님도 좋은 답을 고민해본 뒤 다음 주에 알려줄게. 혹시 선생님이 다음 주에 안 오면 숙제 다 못해서 못 온 걸로 이해해.

농담하는 나와 달리 시우 낯빛이 옅게 어두워졌다. 괜히 안 온다는 표현을 쓴 건가? 시우 책상 옆에 놓인 휠체어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시우야.

—네?

—전염병이 길어져서 힘들지?

—아니요.

—응?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세웠다.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뭐?

—다들 밖에 못 나가니까.

—……

시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 찰나 현관에서 문 열리는 소리와 인기척이 났다. 시우와 나는 그쪽으로 동시에 고개 돌렸다. 시우 어머니가 양손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바구니 위로 대파며 미나리가 비죽 솟아 있었다. 시우 어머니는 나를 보고 메마른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방문 안으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며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혹 수업 끝나고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나는 시우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다 답했다.

—그럼요.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학부모로부터 ‘사정상 수업을 줄여야 하니 이번 달까지만 나오시라’는 말을 자주 들은 까닭이었다. 내게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수업 후 부엌 한쪽에서 시우 어머니를 마주했다. 시우 어머니가 옥색 싱크대 문을 열며 막 찻잔을 꺼내려 해 금방 가봐야 한다며 사양했다. 불편한 대화가 오갈지 모르는데, 자리가 길어져봤자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형편상 과외를 끊기로’ 한다면 최대한 그 뜻을 존중할 마음이었다. 동시에 ‘시우만 괜찮다면 수업료와 무관하게 독서수업을 계속 진행하고 싶습니다’ 얘기해볼 생각이었다. 내게는 이 일이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시우 어머니가 식탁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다 결심한 듯 입을 떼었다.

—선생님, 저희가 다음 달에 이사를 가게 됐어요.

—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 누구보다 시우네 사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때라면 학부모에게 잘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요즘 같은 때 집 구하기 어려운데, 고생하셨겠어요.

시우 어머니가 그런 나를 멀뚱 바라보다 약간 수줍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고 저희가 저기 옆 동네에 새로 생긴 아파트에 들어가게 됐어요.

—아……

내 입에서 방금 전과 전혀 다른 의미의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어쩌면 시우가 제 방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을지 몰라 최대한 품위를 지키려 했다.

—정말 잘됐네요.

시우 어머니의 입가에 다시 쑥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항상 시우에게 미안했는데, 더 넓은 곳으로 가게 돼 마음이 놓여요. 이제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고.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새집 마련이라는 사실에 나는 한번 더 놀랐지만 그런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정말 축하드려요.

어느정도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시우 어머니가 신뢰와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네.

—우리 애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 말 잘 안 하는 애인데. 선생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나는 시선을 부엌 한구석으로 돌렸다. 부엌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별말씀을요. 다 시우가 잘 따라와준 덕이죠.

내 말에 시우 어머니는 비로소 용기를 얻은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혹시 저희 새로 이사하는 집에도 계속 와주실 수 있나요? 여기서 약간 더 멀어져 말씀 여쭈기 죄송한데, 그래도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가뜩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다는 건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시우에게 좋은 일이잖아. 좀더 나은 일. 그런데도 시우 어머니가 ‘새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느냐’ 물었을 때 나는 왜 흔쾌히 대답 못한 걸까? 지금보다 십오분 더 멀어져서? 정말 그것 때문에? 순간 손에 쥔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올 때 편의점에서 맥주 좀 사다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정류장을 한참 지나 있었다. 내년 봄, 남편과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기서 얼마나 더 멀어지는 걸까? ‘옮기시는 곳이 어디든 4월까지는 과외를 하겠다’고 말해야 했던 게 아닐까?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큼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원 더 올려 받을걸…… 누가 누굴 걱정한 건가? 나는 발길을 돌려 정류장 쪽으로 돌아갈지 이대로 그냥 좀 걸을지 고민했다.

 

—봉투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가져갈게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가방에 넣고 아파트단지로 걸어갔다. 멀리 경비실 근처에 십여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경비원 아저씨와 낯선 중년 남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자는 목이 둥글게 파인 나일론 소재의 붉은 티셔츠를 입었고, 남자는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에 등산화 차림이었다.

—잠깐 보기만 한다고요. 아저씨도 애가 있을 거 아니야?

남자의 말에 경비아저씨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애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며칠째 사경을 헤매는데. 아직 군대도 안 갔다 온 아이 몸이 그렇게 망가졌는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걸 안 보여줘요? 그 일이분도 안 되는 영상 쪼가리를.

경비아저씨에게 다가가는 여자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울분과 억울함, 슬픔과 분노가 엉겨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여자가 다가온 거리만큼 뒤로 물러나는 경비아저씨 얼굴에 옅은 피로와 짜증, 안타까움이 배어나왔다.

—씨씨티브이 그거, 오래전에 죽었다니까요. 지난봄에 고장 난 거 한번에 싹 교체한다고 미루다 지금까지 온 건데. 몇번을 말씀드려야 아시겠어요. 우리가 대체 뭘 숨긴다 그래.

그러자 거기 선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자기보다 체구가 큰 여자의 팔뚝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관둬, 누나. 보험사랑 짜고 우리 속여먹는 거라고. 경찰에 우리한테 불리한 말 한 놈도 저 사람이라니까.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목에 핏대를 세우는 남자의 목덜미 뒤로 네모난 파스자국이 보였다. 순간 경비아저씨도 모욕감을 느꼈는지 언성을 높였다.

—속이기는 뭘 속여요. 내가 직접 봤으니까 본 대로 얘기한 건데. 빗길에 그 배달 오토바이가 역주행하다 저기 주차장에서 나오는 우리 입주민 차를 들이받았다니까. 그분도 피해자라고요!

경비아저씨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말하듯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경찰에 신고한 것도 나지만 사고 즉시 119 부른 것도 나라고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아줌마 아이가 병원에 일분이라도 빨리 갈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됐고, 더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여기 말고 관리사무소 가서 하세요. 아니면 그 피자가게 가서 따지든가.

경비아저씨 말에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팔짱을 끼거나 뒷짐 진 구경꾼의 모습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갔는데 거기도 똑같은 말만 하니까 여기로 온 거 아니에요. 우리 애가 여기서 다쳤으니까, 여기가 현장이니까……

갑자기 마스크를 벗고 크게 소리치는 여자 목소리에 어느새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걸 본 구경꾼 십여명이 일제히 뒷걸음질 쳤다. 그들을 뒤로하고 천천히 공동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나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세번 다시 누른 후에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신을 벗고 멍하니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앞 작은 공간에 낯익은 상자 하나가 보였다. 스무권가량의 책이 무질서하게 담겨 있었다. 순간 부엌에서 내 쪽으로 고개 내민 남편이 외쳤다.

—어, 그거 버릴 거야. 내가 모레 출근하면서 내다놓을게.

—어.

남편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 덧붙였다.

—당신이 한번 확인해보든가. 내 책 위주로 뽑았는데 그래도 혹시 자기 필요한 거 있으면 골라내.

나는 별 대꾸 없이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화장실 문밖에 잠시 내려놓은 내 가방을 들고 부엌에 가자 식탁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남편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맥주 사 왔어?

가방에서 맥주를 꺼내 세캔은 냉장고에 집어넣고 나머지 한캔을 조용히 남편 앞에 놓았다.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디 아파?

—아니. 좀 피곤해서.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남편과 간단히 저녁을 먹고, 뜨거운 물로 오래 씻었다. 욕실 타일 사이에 곰팡이가 몹시 거슬렸지만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침실에 들어오니 남편이 침대에 모로 누워 휴대전화로 부동산 정보를 살피고 있었다. 침실 등 하나가 나간 지 오래라 주위가 어둑하고 초라해 보였다.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에 천천히 스킨을 발랐다.

남편이 잠시 휴대전화를 옆으로 치우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골치 아프네.

—매물 없지?

—매물은 있지. 돈이 없어 그렇지.

—……

거울 너머로 남편이 내 얼굴을 흘깃 살피는 게 보였다.

—아직도 몸 안 좋아?

—아니.

순간 내 앞에 젖은 솜 개수를 보고 내가 스킨을 얼굴에 두번 발랐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무슨 일 있어?

나는 망설이다 짧게 대꾸했다.

—시우네 새집으로 이사 간대.

남편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시우? 아, 그 장애 있는 애? 잘됐네.

—응. 그런데 나한테 그리로도 계속 올 수 있냐고 묻더라고.

—어디 멀리 간대?

—아니, 바로 옆 동네야.

평소 내가 시우네 가는 걸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아는 남편이 나 대신 안도하듯 답했다.

—그럼 뭐 문제없네.

“그런데…… 그만둘까 해”라고 대꾸하려다 가까스로 꾹 삼켰다. 남편이 “왜? 옆 동네라며?”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였다.

—자가래?

남편 말에 나도 모르게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별말 아닌데 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응. 더 넓은 데로 간대.

남편이 잠시 아무 말 않다 다시 휴대전화를 켰다. 그러곤 보다 만 동영상 목록을 훑으며 말했다.

—요새 짓는 집은 웬만한 게 다 원격으로 조종되네. 무슨 정교한 생물 같아. 세상 참 빠르지?

거울 너머로 남편을 바라보며 힘없이 대꾸했다.

—응. 이제 타임머신만 나오면 될 것 같아.

‘……그러면 씨씨티브이 같은 것도 필요 없겠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여보.

나는 남편을 나지막이 불렀다. 내 속에 중요한 무언가를 같이 나누고 싶었지만 그것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결코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술이 발달해서 정말 그런 기계가 나오면, 원하는 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그야 당연히……

남편이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뭘 그리 빤한 걸 묻느냐는 듯 대꾸했다.

—당연히?

—이 집 계약할 때지.

—……

—왜 그때 집주인이 우리한테 조금 더 대출받아 이 집 사라 했을 때.

—………

—아니, 비트코인이나 주식이 훨씬 나았으려나?

 

*

 

자정 무렵, 잠이 오지 않아 침실을 빠져나왔다. 깜빡하고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둘. 하나는 친정 엄마, 하나는 시우 어머니였다. 휴대전화를 다시 같은 자리에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캔맥주를 꺼냈다. 부엌 보조등 하나만 켜고 식탁에 앉아 우리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배색과 배열을 계산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잡다한 물건들이 두서없이 늘어선 게 눈에 띄었다. 그나마 아이들 교실 쪽은 덜했지만 그마저도 가구에서 싸구려 느낌이 났다. 그래도 이제 집 같은 집에 산다는 기쁨에 날마다 쓸고 닦으며, 좋은 기억으로 채운 공간이었다. 캔맥주를 따 입에 대며 다시 거실을 둘러보다 시선이 문득 천장에서 멈췄다. 그러자 얼마 전 윗집 드릴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기억이 났다. 그간 잘 참았는데. 이제 공사도 다 끝나가는데. 그날만은 이상하게 살짝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윗집 내부가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를 잡아갈수록 우리 생활은 천천히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 같아서였다. 참다못해 아이들에게 글쓰기 시간을 준 뒤 윗집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흥분한 채 901호로 들어선 나는 눈앞 광경에 넋을 잃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투명한 창문과 헤링본 패턴의 마루, 고풍스러운 원목장과 수입 조명, 금속 손잡이마저 우아한 수전과 백자같이 흰 변기까지…… 한번쯤 내가 갖고 싶었고 또 가지려 한 것들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지? 아직 식사 때가 아닌데. 모두 담배라도 피우러 나간 걸까? 그러면 그 소음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분명 방금 전 드릴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텅 빈 남의 집 거실에서 홀로 혼란스러워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공사가 끝나면 윗집 부부가 이사 올 테지. 어쩌면 승강기에서 몇번 인사를 나누게 될지도. 하지만 몸을 돌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겠지. 그것도 기껏해야 두세번 정도밖에 되지 않으리라. 얼마 뒤 우리는 또다른 장소에 가 있을 테니까.

 

맥주를 몇번 홀짝이다 결국 다 못 마시고 개수대에 쏟아버렸다. 빈 맥주캔을 손으로 찌그러트린 뒤 베란다로 가 재활용품함에 넣었다. 그러고는 거실로 무심히 돌아서는데 저기 베란다 창 너머로 경비아저씨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아저씨는 경비실 앞에서 기지개를 켜며 잠을 쫓고 있었다. 그걸 보니 새삼 아까 경비실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 중년 남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 뭔가 생각하다 베란다 아래로 고개 숙여 그들이 섰던 지점을 오래 바라봤다. 가로등 아래 청결하고 고요하게 빛나는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속에 금세 그늘이 졌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요새 비가 온 날은 많았잖아? 이 단지 주위만 해도 피자가게가 다섯군데도 넘는걸.’ 그런데 순간 이상하게 ‘선생님은 여기 나온 말을 다 믿느냐’고 묻던 시우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앞에서 주저하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내 모습도. 이제 그 아이를 못 본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내 가슴속을 채운 상실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건 어떤 상실이었을까? 나는 거실에 서 한참 창밖을 바라보다, 억지로라도 잠들 차비를 위해 걸음을 돌렸다.

침실로 들어서다 현관 앞에 놓인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현관 센서등에 기대 무심히 상자 안을 살폈다. ‘남편은 또 무얼 버리려는 걸까?’ 그런데 거기 뜻밖의 책이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실수로 잘못 들어간 건가?’ 싶은 책이었다. 수북이 쌓인 책들 가운데 표지가 가장 누런 그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문득 어느 한 문단 앞에 멈췄다. 이십여년 전 남편이 연필로 약하게 밑줄 그어놓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을 확인하려는 순간 센서등이 꺼지며 마치 누군가 입김으로 초를 불어 끈 것처럼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허공에 팔을 저으며 센서등이 켜지길 기다렸다. 잠시 후 주위에 노란 불빛이 비쳤다. 나는 그 빛에 의지해 남편이 밑줄 그은 문장을 눈으로 천천히 따라 읽었다.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이상하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스무살 무렵에 남편이 조심스레 밑줄 친 부분을 가만 쳐다봤다. 내 배우자가 오늘 폐지상자에 넣은, 나 역시 한때 사랑해 마지않은, 1970년대 한 작가가 슬픈 마음으로 쓴 소설을. 그러자 내 안에서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런 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은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자 한동안 피하고 싶었던 무겁고 부담스러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

 

주위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폐지상자를 가만 내려다봤다. 집 우(宇), 집 주(宙).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지.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번 돌아왔었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 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간다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내 손에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계속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감 앞에서 나는 손에 든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