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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정아 金正雅

소설집 『가시』 등이 있음.

padosoridul@gmail.com

 

 

 

유니크한 오브제

 

 

한옥 게스트하우스 경영이 보람씨의 로망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주말에 오갈 생각이었다. 그 마을은 인권활동가인 보람씨가 평화기행 때 알게 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의 주모자라고 옥고를 치르다가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영영 소식이 없었다는 항일운동가가 태어난 마을이었다. 보람씨가 얻은 집은 항일운동가의 집 바로 아래, 마당이 툭 트여 있고 서까래와 기둥이 반듯한 백년이 넘은 고택이었다. 무엇보다 남해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풍광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할머니와 살던 B시의 바다가 옛 친구 같아서 보람씨는 항상 바다를 그리워했다. 사업은 하기 싫었던 보람씨는 남편 오작가의 제안에 처음에는 질색을 했는데 매주 여행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구조라고 생각하니 슬슬 신이 났다. 설레는 마음이 처음엔 물방울처럼 맺히는가 싶더니 갈수록 통제할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 그녀를 장악했다. 결국 명품 쇼핑하듯 임대계약을 해버렸다. 결혼 무렵 아버지는 우편으로 통장과 도장을 보냈다. 단 한줄의 통장 내역, ‘축의금’이라고 인쇄된 그 글자를 보고 보람씨는 책상 서랍 깊숙이 통장을 넣어버렸다. 아버지는 끝내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옆을 그날만은 지켜줄 거라 기대한 자신에게 그녀는 가장 실망했다. 가족주의에 비판적인 평소 소신과 다른 이율배반. 비혼모의 딸이라는 게 뭐 그리 억울한 일이라고. 이 한옥을 임대할 때 보람씨는 그 통장을 비로소 꺼내보았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아버지 퇴직금의 일부라더니 퇴역 장군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참 대단하다 싶어 놀랐다. 집을 살 수도 있는 액수였지만 보람씨는 임대를 선택했다. 여태 그림만 그리고 산 남편이 사업에 성공할지 미심쩍었다. 남편이 긴장할 구실을 만들어두고 싶었던 거다. 빚이 있어야 사람은 게을러지지 않으니까. 공사비까지 다 지불해도 ‘축의금’의 반이 넘게 남았다. 남편에게 그 돈은 철저히 비밀이었다.

빈집이라서 손볼 곳이 많았고 게스트들이 공동으로 쓰는 별채도 만들어야 했다. 오작가가 알고 지내던 기술자에게 공사와 함께 빈티지한 소품까지 함께 발주했다. 오작가를 비롯해 미술가들이 그를 ‘기술자’라고 불렀다. 그는 인테리어 공사에 꼭 필요한 용접, 조적, 목수 일을 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인데 그중에도 철과 같은 금속을 잘 다루어서 금속 조각가들의 어시스트를 많이 했다. 용접 기술이 뛰어나 인근의 작가들이 그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미대를 나왔지만 가정을 가진 뒤로 그의 모든 재능은 돈과 교환하는 데만 쓰였다. 아내와 결혼을 할 때 밖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약속한 생활비는 꼭 책임지기로 했고, 그 약속이 결혼을 유지하는 철칙으로 공고해진 건 첫째 아이가 발달장애로 진단받은 후부터였다. 기술자는 장비와 함께 소품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난로를 하나 싣고 왔다. 철로 된 구형 LPG 가스통을 거꾸로 세워 주둥이가 장작을 태우는 직사각형의 화구로 연결되도록 했고 가스통 옆으로 구멍을 내 연통을 내고 위로는 닭갈빗집 주물 철판을 올려 음식을 조리하는 불판으로 쓰게 했다. 기술자는 T29라고 난로에 표지를 새겼다. 그는 물건을 완성하면 용접으로 그런 표지를 새겼는데 누가 물으면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니까 제품 번호”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수년 동안 창고에서 부식되고 있던 가스통 입장에서는 기술자에게 발탁되었을 때 소생의 기쁨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런 업사이클을 가스통은 기대하지 못했다. 그의 창고에는 가스통처럼 쓸모없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못하고 시간 속에서 서서히 삭아가는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매립지에 묻히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쓰임을 위해 태어났지만 쓰이지 못하고 그 상태로 멈춰버리는 것이 이런 물건들의 세계에서 가장 큰 저주다. 가스통은 하루라도 빨리 용광로로 들어가 순수한 철로 다시 환원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업사이클된 거다. 가스통은 불태우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지난 시절 인간을 위해 태우고 태웠던 많은 나날들을 돌이켜보니 다시 한번 의욕이 불타올랐다. 중국집에서 연료를 공급했을 때를 생각하면 자신은 이미 신화적인 존재가 아닌가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는 거니까. 이 나라 중국집의 번성은 가스 화력이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가스통은 믿고 있었다. 연탄화덕이나 석유풍로로는 중국 음식의 그 강한 불맛은 불가능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제 한층 품위있는 소품으로 다시 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은 마치 후방에서 전투를 지원하는 행정병과 같다.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판에 박힌 역할. 공무처럼 따분하다. 하지만 발화와 연소의 세계는 다르다. 상황을 판단해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필요할 때 가장 큰판을 벌여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예술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난로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온기는 인간의 큰 환대를 받아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난로는 영화나 소설에서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거기서 수많은 ‘로맨스’가 생성되었다. 난로는 그러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파주에서 남도의 끝까지 내려오면서 가스통은, 아니 T29로 다시 태어난 난로는 보람씨만큼이나 설렜다.

기술자의 일정에 맞추다보니 공사를 장마에 시작하게 되었다. 일은 거기서부터 틀어진 게 아닌가 보람씨는 나중에 원인을 곱씹었다. 비가 퍼붓기 시작하자 한옥 마당은 진창이 되어버렸다. 마사토가 곱게 깔려 있어야 제맛인 한옥 마당은 오랜 풍화에 황토밭이 되었다. 중력을 실감하고 싶다면 비 오는 날 이 집 마당을 걸어보면 된다. 누군가 밑에서 일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여실히 느낄 테니. 기술자는 빗속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날짜에 공사를 마쳐야 했다. 비가 오더라도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장담했던 것이다. 기술자는 매달 부인과 약속한 생활비만큼을 자신의 인건비로 계산하고 이 공사를 맡았다. 그런데 보람씨가 이런 공사에 어울리지 않게 ‘턴키’ 발주하겠다고 했다. 공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맡긴다는 그 말을 오작가가 추가비용은 절대 없다는 것으로 엉뚱하게 해석해 기술자에게 종용하는 바람에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쳐야 했다. 기술자가 이처럼 흐리멍덩한 계산법으로 인부도 없이 혼자 이 공사를 맡은 건 오작가가 바쁠 때는 ‘데모도’를 쳐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오너가 직접 거들면 공사비도 절감하고 공기(工期)도 단축하고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게다가 공사를 제시간에 끝내는 건 기술자뿐 아니라 오작가에게도 중요했다. 하지만 오작가는 삼복더위를 이겨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분투할 만큼 치열하게 삶을 전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픈 전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야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오작가는 그런 점에 안달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으로 흐르도록 배선되어 있었다.

비가 기세를 꺾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세게 내리꽂히던 날이었다. 기술자는 집 뒤 대밭과 밭둑에 박혀 있는 돌을 옮겨서 계단과 경계석을 쌓아갔다. 비는 사람의 실루엣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억수같이 퍼부었다. 빗속에서 움직이는 기술자의 실루엣이 고독해 보이지만 근사했다. 여기 온 이후로 광 앞에 부려져 꼼짝 못하고 있는 T29에게도 빗속에서 돌로 계단을 만들고 있는 기술자의 모습은 근사해 보였다. 저런 인간의 의지가 수많은 도시 탄생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근사함은 존재의 미덕 아니겠는가. T29는 의연함으로 버려진 듯 방치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오작가는 돌을 옮기는 것을 좀 돕다가 전화가 와서 대청마루에 앉더니 얼마 안 되어 잠이 들어버렸다. 비와 함께 무겁게 내려앉은 집의 분위기는 한 사람이 찾아온 덕에 달라졌다. 마을의 부녀회장이 노란 비옷을 입고 폭우를 뚫고 왔다. 그녀는 대청마루에 가지고 온 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당에 불 좀 켜시요, 공사 안 하고 다 도망간 줄 알았네.”

오작가와 기술자를 며칠 전에 불러 저녁을 먹이더니 또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걸 보자 침침하고 무겁게 눌려 있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달라졌다.

“진호야, 이거 어디서 구워야 제맛이냐?”

오작가가 기술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다정하게 물었다.

“오작가, 오늘 난로에 불 좀 넣어보자.”

“아 그놈 말이지, T29!”

그렇게 해서 난로에 첫 불이 들어가게 되었다. 오작가와 기술자는 T29를 금이 간 커다란 독이 가득 들어차 있는 광에 넣어두고 거의 잊고 있었다. 오작가는 난로를 보고 빨리 불 한번 넣어보고 싶었지만 공사 일정에 쫓기는 기술자는 그런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예상치 못했던 고기 파티로 의기투합해 난로 주위에다 술판을 벌였다. 난로는 습한 계절 제대로 관리가 안 된 탓에 옴에 벗겨진 살갗처럼 전체가 녹으로 시뻘겋게 덮여버렸다. 기술자가 신문지를 구겨 넣고 가스총 불을 댕길 때 그의 손이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T29는 세례에 임하는 경건한 신자처럼 불을 받았다. 파지를 엄청나게 태운 뒤 간신히 불이 붙었다. 희미하게 연기가 오르면서 삭정이에 불이 옮겨붙었다. 순간 T29는 어금니가 뻐근할 정도로 신침이 고이듯 몸 전체에 퍼져나가는 아찔함을 느꼈다. 의심할 바 없이 불이 타오르자 기술자는 둥치가 제법인 장작을 화구에 집어넣었다. 화구 안이 불땀으로 꽉 차올랐다. 타오르는 열기가 몸통 전체로 돌았다. 벌겋게 피어난 녹들이 너울거리는 불기에 낙하했다. 난로는 공기를 더 세게 빨아들여 더 크고 센 불을 일으켰다. 녹이 불기에 가벼워져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녹이 떨어지고 나면 더 붉어지고 더 단단해질 거다.”

T29는 그게 우주에서 가장 나중에 생성된 원소답게 지난 세월을 사려 깊고 의젓하게 기다려온 결과일 거라고 고취되었다. 나팔 축음기나 언더우드 타자기처럼 고급 숙박시설의 장식품으로 투숙객에게 매력을 발산하는 존재가 되어보고 싶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우아함을 한껏 발휘하면서도 사진에서만 레트로한 멋을 발산하는 정물이 아니라, 게스트의 언 몸을 녹이고 공간을 훈훈하게 데울 줄 아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존재 말이다.

기술자가 목에 둘렀던 수건을 나무 막대기에 단단히 감고 열기가 닿지 않은 다리며 연통 끝까지 꼼꼼히 손질했다. 자신이 만든 물건에 대한 마지막 의례일까. 기술자의 손을 떠나 오작가의 소유가 되는 진정한 순간이었다. 오작가가 ‘고시래’라고 외치며 소주 한잔을 불판에 끼얹었다. 소주가 불판에 닿는 즉시 순식간에 기체가 되어 날아갔다.

“이건 참 희한하게 생겼소잉. 누가 만들었소? 작가님이?”

부녀회장이 기술자가 녹을 닦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물었다. 기술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오작가가 대답했다.

“회장님도 참, 그게 뭐가 중요해요. 자, 빨리 고기부터 올립시다.”

오작가는 그런 질문에 절대 직접화법으로 응하지 않는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들었을 거라고 터무니없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오작가는 그런 순간 늘 애매하게 넘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날 밤 누가 난로를 만들었는지 부녀회장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난로의 화력이 남다르다는 것은 모두 인정했다. 눅눅하고 꿉꿉하던 습기를 날리면서 그들은 밤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고기 불판 하나는 정말 최고라고 오작가는 여러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기술자는 은근히 미소만 지었다.

며칠 후 서울에서 보람씨가 왔다. 그녀는 오자마자 공사 진행부터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직 배관도 묻지 못한 진척 상태에 보람씨는 부아가 치미는데 활짝 열린 광 문 앞에 서 있는 T29가 눈에 딱 들어왔다.

“저기 저건 뭐야?”

“난로야. 가서 봐, 진짜 끝내준다. 진호가 저것도 만들어왔어.”

오작가는 친구에게 새로 산 축구화를 자랑하는 사내아이처럼 말했다. 부인의 눈빛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T29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인상을 써대는 저 비쩍 마른 여자가 자신에게 일절 관심 갖지 않기 바랐으나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숨을 한번 내뱉더니 이내 난로 쪽으로 직진했다. 그녀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분노로 땅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이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것도 다 견적에 들어간 거야?”

그녀는 장화 신은 발로 난로를 탕탕 치며 말했다. 벌건 진흙이 여기저기 막 튀었다.

“한번 겨울이 되면 인제 당신도 이놈의 진가를 알게 될 거다, 히힛.”

오작가는 안경에 진흙이 튄 것도 모르고 실실거렸다.

“겨울까지 이 공사가 끝날지 나는 그게 의문이다!”

“배관만 끝나면 금방 마감 시작되니까 너무 조바심 내고 그러지 마. 이 장마에 이만큼 해낸 걸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오자마자 당신이 뭐 십장이야? 검사야? 그만 조져대.”

오작가는 부인에게 제법 항변했다. 사실 그는 부인이 오기만을 고대했다. 보람씨는 공사비를 자신이 직접 관리했고 3차 기성으로 주겠다고 기술자와 계약을 했다. 하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기술자는 자재비 핑계를 대며 공사비를 다 달라고 오작가를 압박하고 있었고, 오작가는 부인이 와서 채무관계로 변하고 있는 이 상황을 빨리 종료시켜주길 바라고 있었다. 보람씨는 결혼 무렵 “이건 정말 결혼이 아니라 입양하는 거 같아”라고 자주 토로했다. 오작가는 경제 운영이 매우 산만하고 토대가 부실했다. 자유로운 영혼답게 동가식서가숙에 익숙해 그의 차에는 숙식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짐이 실려 있었다. 자신과 같은 미술가만이 아니라 무용, 음악, 영화 심지어 마임까지, 전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친구이고 선배였다. 한마디로 보헤미안. 보람씨 역시 인권운동가로서 자유로운 영혼이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녀의 삶은 ‘정주(定住)’에 가까웠다. 결혼은 결국 정주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하니 결혼에 있어 보람씨의 역할이 더 컸다. 역할이 큰 사람에게 책임은 기운다.

“이건 다 뭘로 만든 거야? 가스통에다가 토 박 이 종 갓 집? 이거 닭갈빗집 후라이판이지? 이거 뭐 금속 패치워크야? 하, 바퀴를 달았어야지 무거워서 이동할 수 있겠어? 누가 쓰레기를 넣고 태워도 모르겠네. 장작 타는 게 안 보이잖아. 불멍도 못하겠네, 못하겠어. 불멍도 못하는 난로가 난로야?”

만약 가스통에게 의사결정권이 있었다면 ‘토박이종갓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닭갈빗집 주물철판은 못 올리게 했을 거다. 출처가 명백한 소품은 신비감이 떨어진다. 예술의 기본 아닌가. 매혹적인 이야기가 숨겨진 물건도 아니고 누가 봐도 닭갈빗집 불판인 것이다. 기술자가 그걸 용접할 때 가스통은 처음으로 이 업사이클이 탐탁지 않았다. 구조의 비선형성이라고 우길 수도 없고. 예술은 관두고 기술을 택한 그에게 무얼 더 바라겠는가.

보람씨는 가스통과 화구, 연통 그리고 불판을 정말 ‘검사’의 눈으로 살피는 거 같았다.

“여기다 삼겹살 구워봤는데 정말 끝내주더라. 여보, 오늘 한잔할까?”

한잔이라는 말에서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오작가는 숨길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한잔이라는 말과 맞부딪힐 때마다 강한 충격파를 일으켰는데 이렇게 부인에게 몰리는 상황에서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삼겹살 사다둔 거 있어?”

난로는 이제 오작가가 인상을 박박 긁고 있는 저 여자에게 오지게 당할 거라 예상하고 완전히 긴장하고 있었는데 여자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람 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없어, 다 먹었어.”

“농협마트 가서 좀 사 와. 비도 오는데 나도 한잔해야 돼.”

여자는 여전한 ‘검사’의 태도로 명을 내렸다.

오작가는 부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자그마치 15킬로미터나 떨어진 하나로마트로 가기 위해 채비를 했다. 남편이 자기 말 한마디에 마음이 너무 가벼워진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된 모양인지 고기 사러 가는 그를 보람씨가 불러 세웠다.

“내가 이제까지 겪은 당신은 말이야…… 뭐랄까…… 위기를 몰라. 위기의식이 없다는 거지…… 차마고도의 마방이 말이야, 차마고도 알지?”

오작가는 영문을 몰라 눈이 동그래졌다.

“티베트의 고원이잖아. 그 마방에서 말이야, 야크에 물건을 싣고 협곡을 건너갈 때 그걸 소풍이라고 생각하겠어? 당신이 한번 대답해봐, 어서?”

“당신도 참 뭐라고. 그래 얘기 한번 들어보자, 말해봐.”

그는 주눅 들거나 노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되받아친다.

“그래, 그럼 내가 얘기해줄게 잘 들어. 외줄 하나에 의지해서 천길 낭떠러지를 물건을 양쪽에, 그야말로 달고 있는 야크랑 사람이 함께 건너는 거야, 모든 걸음에 목숨이 달려 있다구. 이 한옥, 우리 집 아니라는 거 명심해. 여기 연세(年稅)가 얼마인지 당신도 알지? 다 대출한 거야.”

“알았어, 인제 불 준비할 생각이나 하세요. 금방 갔다 와. 사랑해, 여보.”

오작가는 보람씨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한번 꾹 찍었다. 그는 오늘 받아야 할 벌을 다 받은 듯 조금 전보다 더 가벼운 마음이 된 거 같았다. 어떤 교훈적 이야기라도 그의 뇌 배선이 상승나선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거다. 한마디로 타고난 낙천주의자였다.

“고기 구우려면 저기 불 좀 넣을까?”

마트에 다녀온 작가에게 기술자가 말했다. 그는 보람씨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하루 종일 이 연장 저 연장으로 분주히 오가며 공사에 박차를 가했다. 비가 오락가락해도 그라인더로 철근을 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집 뒤 대밭에서 나오는 몸집이 크고 검은 모기들로 기술자의 종아리는 벌집이 되었다. 그가 오늘 쓴 벌레기피제만 도합 세개가 넘었다. 그는 오늘 보여준 성실한 일꾼의 모습이면 저녁 만찬에 동참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평가한 듯 양손에 장작을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아뇨, 여기서 숯으로 할 거예요.”

보람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쌀쌀맞고 정나미 떨어진다. 그녀는 그새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방의 습기도 날리고 숯도 쓸 생각인 거다. 기술자와 오작가는 시도하다 그만둔 아궁이 불을 보람씨는 잘도 지폈다. 불 다루는 솜씨가 있었다. 사람에게도 저런 친화력을 보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글렀다. 보람씨의 냉정한 말 한마디에 기술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양손에 든 장작을 난로 불판 위에 올렸다.

‘장작을 화구에 넣어요, 불을 넣어줘요.’

순간 멈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술자에게 T29는 어떤 동료애 같은 것을 느꼈다. 그가 걸음을 멈추지 말고 하던 짓을 계속하기를, 다시 뜨거운 불 한번 불어 넣어주기를. 하지만 그는 양손에 들고 온 장작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코로 길게 연기가 나왔다. 난로는 저도 같이 긴 연기를 피워올리고 싶었지만 장작이 눅눅해질 때까지 기술자는 담배만 빨았다. 목석처럼 서 있지만 그의 관절과 근육은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아주 아우성이다. 기술자는 한동안 난로에 기대서서 그것들의 지껄임을 조용히 다독이고 있었다.

보람씨는 아궁이에서 숯을 퍼내 화로에 담았다. 그녀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화로를 광에서 찾아냈다. 오작가는 이런 게 있었다면 번거롭게 난로에 불을 때고 불판에 고기를 굽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저건’ 괜히 불판을 용접해버려서 뒷정리가 번거롭다고 무슨 큰 결함을 발견한 엔지니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란 저렇게 쉽게 배신을 일삼는다. 기술자는 묵묵히 고기와 술을 먹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떠들고 있는 오작가를 볼 때는 독이 잔뜩 올라 보였다.

비가 그치고 여름 해가 달아오르는 날이 이어졌다. 인간은 온도에 민감하다. 그들의 체온은 36.5도에 안정적으로 맞춰져 있는데 위아래로 약간의 오차만 생겨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술자와 오작가는 자주 부딪쳤다. 그들은 마지막 기성으로 옥신각신했다. 보람씨는 공사가 다 끝나는 날 지불하겠다고 했고 기술자는 당장 주지 않으면 더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별채에 문제가 생겼다. 주방 겸 공용공간으로 안채 옆에 별채를 만들었는데 스틸 프레임에 유리로 사방을 마감해 유리 별채라고 불렀다. 누군가 그걸 불법건축물이라고 신고한 거다. 보람씨가 집주인에게 알아보니 그 집은 군에서 지정한 고택으로 함부로 개축이나 보수를 하거나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오작가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보람씨는 이 새로운 난관 앞에서 괴로워했는데 그건 자신이 사업을 위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과 자신은 전혀 다른 부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간 살아왔던 방식에서 단 한발짝 멀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불법건축물이나 몰래 짓는 장사꾼이 되어버렸다.

결벽증에 대한 번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기술자가 결국 공사를 다 끝내지 않고 떠나버린 거다. 마지막 기성을 다 달라고 하면서 마감을 미루며 일을 안 하더니 어디서 술을 억병으로 마시고 온 다음 날 기술자는 연장을 트럭에 실었다. 무책임한 놈이라는 오작가의 비난도 오늘 당장 공사비를 다 지불하겠다는 보람씨의 무마도 다 소용없었다. 부녀회장이 그를 위로하며 다정하게 배웅했다. 기술자 역시 그녀에게 사근사근하고 나긋나긋했다. 호칭은 이미 ‘누님’으로 변해 있었다. 누가 봐도 어젯밤에 둘이 술을 마신 것 같았지만 보람씨는 내색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자신은 자유주의자니까. 하지만 볼썽사나운 꼴이라고 속에서 인상에 인상을 더하고 있는 것은 멈추지 못했다. 무의식이 나대도 자유주의는 허용해야 하니까. 만류와 사과, 협박에도 기어코 기술자는 가버렸다. 떠나기 전 한마디 내뱉는 건 잊지 않았다.

“오작가 이 새끼 데모도도 안 쳐주고, 나쁜 놈아!”

군청을 어떻게든 설득하겠다는 오작가를 뿌리치고 보람씨는 결벽증의 지시대로 유리 별채를 철거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숙박시설로 등록하고 에어비앤비에 올리는 수많은 절차와 협의 앞에 보람씨는 결국 질려버렸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는 이 부부에게 오픈도 하기 전에 엎어진 프로젝트가 되었다. 숙박시설의 자랑스러운 소품이 되어 보겠다는 T29의 꿈도 게스트 한명 받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었고. 매년 며칠씩 그 집을 무상으로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집주인과 협의해 간신히 연세를 일부 돌려받은 뒤에 두 사람은 서울로 올라왔다. T29는 그후 2년 동안 어느 창고에 처박혀 지내야 했다. 무용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품격있는 오브제로 자신의 가치를 드높여 보겠다는 꿈은 접었다. 다시 순수한 철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기도만이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작가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2년 동안 보람씨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까페 창업을 준비 중이었다. 이번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까페의 주테마였다.

“인테리어는 그렇다 하고 주메뉴가 뭐야?”

그쪽으로만 힘을 쏟고 있는 오작가에게 보람씨가 물었지만 그는 커피만 좋으면 되는 거라고, 이미 홍대에서 로스팅으로 검증된 후배에게 받아오기로 했단다.

“그럼 예상 매출은 얼마로 잡고 있어?”

“팔아봐야 알지? 그래도 하루 50만원은 넘을 거야.”

“50만원이면 하루에 아메리카노 200잔 팔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

“커피만 파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싸게 팔아. 여긴 커피도 커피지만 공간에 대한 비용도 생각해야 해.”

“다른 까페도 다 공간을 쓰는 거야, 안 그래?”

“여긴 다르지. 당신 그러려면 여기 나오지 마. 나 혼자 다 알아서 해.”

오작가는 인테리어가 매출을 보장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람씨는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축의금’ 통장의 돈을 모두 들여서 까페를 오픈하도록 했다. 남은 돈을 전부 오작가에게 이체하면서 보람씨는 참 이상한 위로를 했다. 실패하려면 하루라도 젊었을 때 해보는 게 더 낫다고.

오작가는 까페에 T29를 들이지 않았다. 까페는 중세의 고성에나 어울릴 철문 앞으로 테라스가 널따랗게 배치되어 있었다. 앞에서는 꽤 웅장하게 보였지만, 테라스가 ㄴ자로 꺾인 다음은 달랐다. 후미진 골목과 닿아 있는 그곳을 흡연공간으로 조성했는데 자금이 바닥 나 거기까지 그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방식으로 다 꾸미지 못했다. 오작가는 거기다 난로를 놓아두었다. 까페 안에 제자리를 찾으면 이동할 거라고 난로는 기대하고 있었지만 오픈하고 한참을 지나도 오작가는 그걸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는 그래도 혼자는 아니다. 오작가는 난로의 좌우로 의자를 하나씩 놓아두었다. 오른쪽에는 치펀데일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의자가 그리고 왼쪽에는 에그체어가 있었다. 셋은 때에 전 시멘트 담벼락을 등지고 있었는데 그놈은 흉물스럽게도 높았고 낡은 전신주가 바짝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동네에서 쓰레기 버리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치펀데일 스타일 의자는 좌판과 등받이 패브릭이 삭아서 누가 앉으면 옷에 다 묻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에그체어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노란색 레자는 피부가 여기저기 벗겨졌고 오염되어 더러웠다. 중심축이 고장 난 것이 가장 문제였다. 그 딱한 물건은 사람이 앉는 건 고사하고 바람만 불어도 과분수의 몸통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 쏠리고 저리 흔들렸다. 그 물건은 길 건너편에서 건너왔다. 거기서도 매장 밖에 있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중고 수입가구점을 하는 이가 이런 작품은 작가에게나 어울리는 거라며 큰 선심이나 쓰듯 주었다. 짝퉁은 발에 걸리도록 많지만 아르네 야콥센의 진품은 정말 귀하다고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진품은 아닌 거 같은데 오작가는 좋아했다. 에그체어는 까페 안으로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중심축이 고장 나 밖으로 나왔다. 세 오브제는 한 조를 이루어 마치 혁명을 피해 농가로 숨어든 러시아 왕족들처럼 담벼락에 붙어 앉아 있었다. 그것들의 일이라고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들 수 없는 세상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사실 오작가가 무슨 심산으로 앉지도 못하는 가구를 버리지 않고 비바람을 맞히는지 알 수 없었다. 풍화되고 산화되면서 시간의 흐름은 그들을 갈수록 고물이 되게 했다. 영업이 끝나고 인적이 뜸해지면 여기서 소주 한병씩을 마시고 가는 술꾼이 하나 있다. 눈비가 와도 거르지 않았고 삼일절 같은 공휴일에도 늦은 밤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는 매일 소주를 들이켰는데 먹고 난 소주병은 항상 불판 위에 올려두었다. 등반가들이 정상에 깃발을 꽂는 것처럼 그러는 거 같았다. 그가 언젠가 치펀데일 스타일 의자에 오줌을 눈 적이 있다. 아무리 물건이지만 존재 대 존재의 도리가 있는데 그 치욕을 견디어내는 의자가 난로는 너무 안쓰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화구에 집어넣고 활활 태워 빨리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아르네 야콥센이니 치펀데일이니 명품 흉내 낸 명성이야 다들 있었겠지만 이제는 취객의 린치에 속수무책인 채 담벼락에 붙어 앉아 있는 신세인 거다.

어느날 까페를 방문한 여자로 인해 난로는 한때 고무되기도 했었다. 여자는 누구나 그러듯이 불판에 담뱃재를 털었다. 거긴 고기를 굽기 좋을 뿐 아니라 담뱃재를 털고, 비비고, 눌러서 끄기에도 아주 제격이다. 그녀는 색다른 냄새를 풍겼다. 화장품 향에 눌려 있는 그 냄새는 먼바다의 소식을 전해주는 듯했다. 여자는 남원에 북스테이를 짓고 있는데 오작가의 까페가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유명하다기에 들러본 거다.

“작가님은 흡연공간도 완전 포스트모던하네요. 빈티지숍이 따로 없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둘 다 명품이에요. 고쳐서 안으로 다시 들일 거예요.”

오작가는 에그체어의 자세를 고치면서 말했는데 그 딱한 물건은 린댄스를 추는 마이클 잭슨처럼 위태롭게 앞으로 쏠려 있었다. 저러다 언젠가 오뚜기가 엎어지는 처참한 장면을 보게 되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작가님, 혹시 저 의자를 치펀데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에이 아니에요, 그냥 앤틱가구. 치펀데일은 발 모양이 달라. 그냥 흔한 바로크가구, 고급 중식당에서 쓰는 다이닝체어예요. 패브릭도 다 해어져서 완전 고물이네, 뭐. 에그체어도 진품이면 벌써 손 탔어요.”

호호호 웃던 여자가 T29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근데 이건 뭐예요? 굉장히 견고한데요, 한 백년은 가겠어요. 이거 가스통 아니에요. 오우, 시크하다! 안에 있는 반작가 난로랑은 완전 다른데, 이것도 꽤 매력적이네요. 옆에 있는 이것들만 없으면 더 돋보일 텐데.”

까페 안에는 유명한 난로 작가가 만든 작품이 몇점 있다. 작가의 까페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으로 소문난 것도 육중한 철제난로 조각품 덕이 컸다. 개업 초기 그로 인해 손님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기능이 정지된 전시용이라는 점에서 T29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모양을 비교하며 그 난로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자는 그러지 않았다. 느닷없이 찬사를 들으니 아주 납작하게 찌그러진 난로의 ‘자기확신’이 직립을 시작하려고 꿈틀댔다. 여자는 기술자가 그랬던 것처럼 녹이 핀 난로를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본다. 이제 정말 임자 만난 건가?

“꽃도 예쁘게 폈네요, 좋다. 빈티지숍 아무리 뒤져도 이런 거 없어요. 작가님이 만드신 거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직답을 피하고 싶을 때 하는 말버릇이 또 나온다.

“중요하지 않더라도 알고 싶기는 하지요. 별로 기능적이지는 않은데 너무 유니크하잖아요.”

“필요하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오작가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대표님 공간에 잘 어울릴 겁니다. 화력 좋고 고기를 구워도 되고 고구마를 구워도 되고 실용성까지 겸비!”

인간에게 물건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오작가에게 그것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한 도구다. 관계 맺음에는 항상 물건이 매개된다. 아니, 관계 그 자체라고도 보인다. 그의 행태는 이렇다. 소개받은 영화감독에게 까페 한쪽에 밀어두었던 바스툴을 선물로 주면서 금세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된다. 게스트하우스 공사를 하고 남은 자재 중에 전선이 꽤 많이 있었는데 잊을 만하면 들러서 원두를 사 가는 조각가에게 그거 한묶음을 준 후로는 점심시간에 무시로 들러 자장면을 먹고 가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만 아니라 동물도 그렇다. 길고양이가 ‘몽’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관계 목록에 들어가게 된 건 재활용 수거스티커가 붙어 있음에도 주워온 이케아 체스트로 몽이 가족의 집을 만들어준 이후다. 단골의 반려견 셰퍼드를 위해 손잡이가 없어져 쓰기 불편하지만 티타늄 재질이라 버리기 아까운 스노우피크 컵을 선물로 주고 난 후에는 어렵지 않게 하이파이브하는 친구가 되는 식이다. 줄 뿐 아니라 받기도 한다. 오작가의 까페가 인근에 힙한 빈티지 인테리어로 소문이 나자 버리기 아깝다고 잡다한 물건을 들고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 색유리로 만든 코끼리와 하마, 금박을 두른 칵테일 잔 다섯개, 자개가 여기저기 빠진 좌식 화장대, 진짜 과일잼이 들어 있는 미니어처 열두 피스, 바퀴가 고장 난 스토케 유모차 등 집에 두기 번거로워진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오작가는 어떤 물건이든 환대했다. 가져온 이에게 커피 한잔 공짜로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주는 이와 받는 이는 이제 반가운 지인이 된다. 갈수록 까페는 잡다한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가고 있었고, 그런 물건이 쌓이는 것과 비례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매출은 갈수록 줄었다. “커피는 다 관두고 그냥 ‘토토의 오래된 물건’으로 업종 바꿔, 알지? 딱지나 구슬 같은 옛날 물건 파는 가게.” 참다못한 보람씨가 이러는 걸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제주에서 온 여자는 오작가의 기습적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육지에서 가져갈 것을 다 모아서 한번에 선적하려고 하니 그때 가져가겠다고 했다. 제주, 제주라고? 그래 제주란다! 될 일은 언젠가 되고야 마는구나! 에메랄드빛 바다와 검은 돌들의 땅이라는 그곳으로 갈 줄이야. 몰락한 왕족들 사이에서 재떨이로 존재의 소용이 다하나 했는데 말이다. T29는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여자가 돌아가고 술꾼의 시간이 온 후에도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막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까페 앞에는 샛강이 흐르고 있었고 청둥오리 무리가 왜가리와 함께 노닐고 있지 않은가. 검푸른 하늘에는 노랗게 빛나는 별들의 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또다른 사람이 왔다. 회색의 구레나룻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그는 모슬포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있다고 했다. 구레나룻은 집을 짓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툴툴댔다.

“며칠 전에 준공 났다. 내가 건설회사 다닐 때 아파트 준공은 무지막지하게 해봤는데 내 집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한달만 더 끌었으면 새집으로 못 들어가고 병원으로 갈 뻔했다.”

오작가는 까페를 구경시킨 후 그를 이리로 데려왔다. 구레나룻도 그 여자처럼 난로를 보고 반색했다. 게스트하우스 셰어룸에 이놈이 들어가면 다른 인테리어는 필요 없을 거라고 했다.

“탄탄하네, 어디서 온 거야? 재활용 제대로 했네. 오픈파티 때 환경단체에서 오기로 했는데 이거 딱이다.”

제주에서 두 사람이 왔다 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주 여자는 1차 선적에 물건이 너무 많아 난로를 가져가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갈수록 강화되자 2차 선적은 힘들어졌다. 난로 하나 정도는 그녀에게 아주 쉽게 잊혀지는 것이었다. 생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구레나룻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작가와 서로 안부를 확인할 때 난로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모두 역병이 가라앉기만을 고대하며 섬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오작가의 까페였다. 까페는 코로나19의 대유행과 함께 폐허처럼 변해갔다. 아무리 힙한 인테리어를 하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이라 해도 손님이 없으면 황량한 폐허가 된다. 영업장은 팔고 사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순환되어야 한다. 잘 돌아간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거다. 오작가의 까페는 이제 아예 안 돌아갔다. 보람씨가 먼저 폐업을 종용했다.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낙천적인 오작가는 말이 없어지고 낯빛은 어둡게 굳어져갔다. 하루 종일 꼼짝 안 하고 스마트폰만 보았다. 마치 까페에 진열된 석상 같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쥐들이 H빔을 타고 돌아다녔다. 어느날 건물주는 더이상 보증금도 남아 있지 않다고 통보했다. 그런 통보를 받고도 오작가는 전시된 오브제처럼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보람씨가 아주 무시무시한 말로 작가의 코마를 깨웠다.

“내가 당신을 도와서 이 까페를 한 건 말이지…… 난 장사는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어. 그러니까 이런 뜻이야. 소인국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잠시 도와주겠다는 선한 마음, 선하지만 현실은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선택. 근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소인국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한데 내가 그 나라 풍토병에 걸려서 발목을 잘라야 하는 거야. 소인국에서 나는 신처럼 전지전능한 줄 알았는데 병에 걸려 신체 일부를 잘라야 한다구.”

작가는 결국 폐업에 동의했다. 철거할 게 많았다. 오작가는 얄궂게도 기술자를 불렀다. 까페의 많은 물건과 철거 후 나오는 자재를 기술자가 다 가져가고 철거비는 거의 받지 않는 방식으로 딜을 한 것이다. 비위 좋은 오작가는 게스트하우스 공사를 끝내지 않고 달아난 기술자와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해했지만 보람씨는 그렇지 않다. 한동안 안 나타나던 보람씨가 하필 기술자가 온 날 까페에 와서 그와 마주쳤다. 그녀는 오작가의 설명을 들어볼 여지도 없이 가혹한 말로 기술자를 쫓아내버렸다. 보람씨의 결벽증과 자존심은 안되는 사업을 더 빨리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철거비까지 물어야 했고 결국 경제적 손실은 모두 보람씨의 몫이 되었다. 차라리 그때 집을 샀더라면 지금 집은 남아 있을 것이다. 보람씨는 폐기물을 실어 가는 트럭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입이 아주 썼다.

보람씨에게 쫓겨난 며칠 후 기술자는 다시 까페에 나타났다. 매일 오는 술꾼도 왔다 간 아주 늦은 저녁이었다. 그는 준비해온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난로, T29가 있는 테라스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화구를 열고 뭔가 한가득 집어넣고는 불을 붙였다. T29에게 두번째 불이었다. 두번 다 기술자가 넣은 것이다. 못 쓰게 된 기계가 갑자기 돌아가는 것처럼 난로는 깜짝 놀랐다. 화구 안에 불이 타오르자 역겨운 냄새가 느껴졌다. 아주 지독한 냄새였다. 그건 나무나 종이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기술자는 비닐 쓰레기에 불을 붙이고 고무 재질의 카펫을 화구 안으로 밀어넣었다. 독성의 냄새는 연통을 타고 동네에 번졌다. 난로는 정말 죽고 싶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치욕은 어떤 것일까! 난로는 양자이동이 왜 미시세계에서만 가능한지 우주의 법칙을 원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이동해 은하계 밖 저 멀리 외계행성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동네 사람들의 항의를 받고 집에서 뛰어나온 오작가와 보람씨가 119를 불러 그 지독한 소동을 끝낼 수 있었다.

며칠 후 자장면을 자주 먹고 가는 조각가가 찾아왔다. 난로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불도 못 때는 폐기물이 되었다고 보람씨가 고개를 저었다.

“요렇게 가스통은 오려내고 이 몸통만 쓸 거야. 이번 전시 오브제로 활용하면 딱 좋을 거 같아. 이 위에 조화를 올리고 말이지. 냄새? 괜찮아 환경이 테마니까. 고약한 냄새가 오히려 상징적이지 않아?”

보람씨와 오작가는 조각가의 설명이 그럴 듯해서 눈을 반짝였지만 난로, 아니 가스통은 아니었다. 다시 음습한 곳에서 정지된 시간을 견딜 수는 없었다. 용광로보다 수백배 더 뜨거운 곳, 태양의 코로나 열기 속으로 사라져 우주 먼지가 되기를. 간절하게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가스통은 이제 더는 지구의 생을 바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