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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규관 黃圭官
1968년 전북 전주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등이 있음. grleaf@hanmail.net
새로움이 우리를 가두었다
새로움이, 새로움이
우리를 가두었다
촛불이 우리를 가두었다
미래가 우리를 가두었다
언어는
파도의 끝자락을 모르는 모래가 되었고
당신의 긴 머릿단은
내 뺨을 떠나
광고판 안에서 혼자 출렁이고 있다
사막처럼 웃고만 있다
노래가 우리를
폴리스라인 안으로 몰아내었다
우리의 질주를
우리의 광기를 막아버렸다
새로움이
평화가
첨단이 우리를, 피의 색깔을, 옹이 닮은 눈빛을, 하현 같은 손가락을
가두어버렸다
우리 안에 우리를 가두어버렸다
꽃잎으로부터
강기슭으로부터
황야로부터
폭풍우로부터
개기일식으로부터
밀양의 아침
밀양의 아침은
기도처럼
온다
먼 별이
깜깜한 세계를 향해
미소를 짓듯
은총처럼
평화처럼
밀양의 아침은 온다
서리 가득한 마당에서
탁 탁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밀양의 아침은
긍정으로만 온다
거대한 송전탑과
파란 하늘을 어지럽히는
헬리콥터의 굉음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날의 붉은 달처럼 온다
차라리 얼굴을 묻고 울던
기적소리처럼
밀양의 아침은
폭력이 아니라
파괴가 아니라
분열이 아니라
절멸이 아니라
찔레꽃 닮은
오랜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냥 농사짓고 살다 죽게
좀 놔두면 안되나!
그 무심한
그 한적한
그 사소한
강물소리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