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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기인 李起仁
1967년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가 있음. leegiin@hanmail.net
영양
영양의 걸음걸이 무사히 쉽사리 강물을 건너는
늘어나는 호흡 이야기로 영과 양으로 물의 자국을 걷는
수면의 빛이 되돌아오는 뿔의 검은 두 날씨를 거기에
어느 걸음이 울음이 하나라고 길 잃은 영양을 데리고 돌아오는
벌어진 바위와 산 위의 나무가 아직 한마리로 봉합되지 않은
뿌리로 오래된 수염을 그리는 무언가에 빠져 있는 나무들
엉키지 않는 나무를 핥아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람
조금 더 흐리게 높아지는 벼랑을 아시다시피 올라가는 걸음
능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영양이 떨어뜨린 눈썹 없는 뒷모습
어려운 어둠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며 추방되는
내가 쓰는 시인 듯 부러진 다리에 힘을 주어보다 구부러지는
다르지 않은 언어로 빚어보는 여러해의 질병을 앓아보는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의 테두리를 극소의 빛으로 뛰어가는
벗어놓은 외투의 소음을 지나치는 걸어오는 영양 발자국
저녁은 횟수를 모르는 모두의 가느다란 걸음들
간단히 지워져야 하는지도 모르는 두 눈의 귀는 얼마나
어려운 중심을 쏟아내는 진짜 잘 웃어주는 우물물
다른 책에서 같은 집으로 모이는 등장인물 호주머니 먼지
비슷해지는 걸음이 차갑고 가렵고 이상한 별을 떨어뜨리는
걸어가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많아지는 번역이 되려는 빛
지우거나 말거나 쉽사리 무사히 건너서 부서지는
강아지
날아간 공을 기웃거리는 꽃나무 아래
오늘의 강아지 예감을 데리고 놀아요
언젠가 당신이 데리고 온 이름을 물어요
공을 좋아하는 사람의 농담은 공처럼 땅을 짚고
휘어지는 구면의 병명을 알아보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잃어버리는 거리까지 굴러가보는
공을 붙잡으려고 강아지는 종소리로 울어요
흩어지려고 이제 막 사라진 슬픈 일을 보고
모르는 말을 꺼내려고요 일어나요
공과 얼굴과 놀이를 바라보면 나도 좋아할래
저녁에는 공의 이야기를 강아지처럼
꽃나무 곁에 한마리 골똘히 내려놓아요
침이 묻은 집으로 눈이 지워진 물고기처럼 찾아와요
닫히지 않는 밥그릇을 엉망진창으로 들여다보아요
어떤 영혼의 꼬리는 늙은 현기증을 멈추고
두마리의 허공과 다섯마리의 강아지를 풀어요
푸석한 하늘의 털을 버무린 등에서 흘러나오는
감기와 같은 몸에서 몸을 두드리는 신음들
낙천적으로 오늘을 놀아서 앞의 발이 더러워요
더러워져서 돌아오는 모자는 꽃나무 아래서
강아지 뱃가죽을 주무르며 나도 좋아해
날아간 공이 멎은 하늘과 강아지를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