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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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崔正禮

1955년 경기 화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가 있음. ch2222ch@hanmail.net

 

 

 

영혼 박물관

 

 

낯선 건물 앞에 영혼 박물관이라고 씌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려고 노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면서 그들을 끌고 거기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설명서는 없나요, 물었으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영혼을 전시한단 말인가? 궁금하여 들어가고 싶었으나 입장료가 너무 비쌌다. 더구나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 크기만 한 병 안의 액체를 흡입하기 위해 할증 요금을 내려고 또다시 줄을 서고 있었다. 다행히 I 센터에 가서 할인 쿠폰을 구입해오면 50%를 할인해준다는 것이다. 날도 저물고 시간도 촉박하여 할인권을 사서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한낮인데도 이 도시는 어둑했다. 노인들이 전철에서 졸고 있었다. 잿빛 모자를 쓴 노인, 검은 외투에 빨간 스타킹, 빨간 목도리를 한 여자, 떨어지는 구름 같은 표정으로 앉아 몸을 긁고 있었다. 이 지하철 전체가 영혼 박물관 가려는 사람들로 채워진 것 같았다. 영혼 박물관에 있는 것들을 상상해보려했으나 도대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첫 방에는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 앤디 워홀의 작품이라고 했다. 진흙밭을 그린 것 같은 추상화 몇점, 그다음 방에는 작은 병의 액체들, 신비로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술잔과 술병들, 바의 의자들, ONE SUMMER OF HAPPINESS라는 영화 장면, 야외에서 나체로 누운 어느 여배우의 젖꼭지, 몽환 속에서 속삭이는 사랑의 말들, 좁은 침상에 누워 빙글 돌아가는 천장의 얼굴을 향해 술꾼이 되어 중얼거리는 장치도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 영혼들, 몇개의 어두운 방을 지나 나체로 뛰어다니며 털 마이크를 들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올까봐 도망쳐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와 친구에게 전화했다. 영혼 박물관이라는 곳에 갔었다고, 친구는 깔깔 웃으며 이 나라에서 spirit이란 알코올을 의미하며 영혼이라는 뜻 따위는 없다고, 그러고 보니 sprit이라고 sp 다음에 철자 i가 빠져 있었다. 술 취해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본 것도 같았다. 술 취해 귀가했을 때 현관에 벗어놓은 아내의 구두를 보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한 영혼을.

 

 

 

양초 공장

 

 

중국에 가면 우리 집 앞에 공장이 있어, 오만평이래, 종업원은 수천명이야, 이 큰 공장이 무슨 공장일까 궁금해하다가 양초공장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 양초를 이렇게 큰 공장에서 만드나, 백화점에도 납품한대, 놀랍지 않아? 양초 공장의 향수들, 이집트 앰버향, 시트러스향, 용연향이 진동하지, 공장이니까,

 

중국에 우리 집이 어디 있다고 그래? 우리 집은 여기에만 있잖아, 아니야, 중국에 한번 가봐, 우리 집이 거기 있다니까, 어디서나 양초를 켜면 요염한 오리엔탈 향이, 앰버향이, 버베나향이 퍼지고 우리 집은 그 불빛마다 발갛게 익고 있지 혹은 노랗게 깜박이지. 전 세계로 양초가 수출되고, 메이드 인 차이나 우리 집도 그렇게 동반 수출되고 있는 거야.

 

우리 집은 아마도 행복할 거야, 거기엔 제2부인이 있고, 남편은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하지,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남편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다 여자들을 위해서야, 그렇지 않다면야 돈을 벌 이유가 없잖아, 퇴근해 오면 전화기도 꺼놓고 오로지 부인만 불빛처럼 쳐다보며 살고 있지, 양초는 캔들의 복사본이고 행복을 전사하지, 전 세계로 행복을 수출해야 하는 거야, 우리 집만 행복할 수는 없잖아?

 

요즘은 촛불로 음식을 해, 어머니는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라는 시도 있잖아, 낭만을 피우는 거지, 녹차 유리 주전자 밑에서, 전복찜 밑에서 양초가 은은히, 식지 않기 위해 내내 타지, 손님처럼 우리가 전복찜을 앞에 놓고 따끈하게 앉아 있는 동안, 그 밑에서 양초는 소꿉아궁이처럼 환하지, 당신 왜 이래? 중국에 우리 집이 어디 있다고 그래? 우리 집은 여기 있잖아, 왜 못 믿는 거야 중국에 가면 진짜 우리 집이 있고 우리 집은 거기서 남의 집처럼 수출되고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