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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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철 尹載喆

1953년 충남 논산 출생. 1981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아메리카 들소』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능소화』 『거꾸로 가자』 등이 있음.

sokpari@hanmail.net

 

 

 

월명리

 

 

잠이 안 와 막걸리 한병 사러

24시 편의점 가는 길

조붓한 골목길 돌고 돌아

달이 떠 있다

 

길 따라 늘어선 연립주택들

지붕 위로 달은 떠 있어

가로등보다도 흐릿하게 달은 떠 있어

흔들리며 나는 가고

 

아마 신라 때 월명사가 피리를 불어 멈추게 한

그 달이 지금 저 달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마 이 골목길이 그 월명리일지도 모르겠다고

흔들리며 나는 가고

 

처마를 포개고 높이 잠든 집들

피리 소리는 진작에 그치고

나는 집을 향해 가지만

아직도 그 월명리 어디 떠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방배 6구역

 

 

주인 떠난 빈집

대문에는 출입금지 노란 테이프 두르고

철거 예정 딱지 붙은 집

이미 갇혀버린 좁은 마당 한켠에

70년대생 늙은 감나무

 

아직도 푸른 잎사귀 사이로

주황색 감 가득 매단 채

골목길 내다보고 있다

벌써 무릎만큼 자란 풀들은

길바닥으로 내려서고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이

이별은 발밑에 와 있는데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아무 의심 없이 내려섰던

지층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감나무는 이별을 모른다

단지 이 겨울 지나며

이 도시 어딘가 숨어 사는 텃새들

마지막 사랑처럼 날아와 입 맞출

주황색 감 가득 매단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