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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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1971년 전남 해남 출생. 2002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등이 있음.

haebang2004@naver.com

 

 

 

자리

 

 

한쪽 날개가 부러진 햇살이 폐허의 난민촌으로 추락했다

 

추락한 햇살을 씹어 먹으며 바람은 안간힘을 다해 날갯짓했다

 

안간힘을 그러모아 비대해진 슬픔이 다시 무명들의 꿈으로 파고들었다

 

구겨지고 찢긴 이력으로 노동은 오래 앓다가 밥을 끊었다

 

문턱 없는 불안 문턱 있는 계급은 늙거나 낡거나 죽지도 않았다

 

세치 혀의 무게만 한 거리를 두고 부역자와 조력자는 수시로 흥정을 했다

 

더러워서 무서워서 돌아앉았던 자리마다 수치로 축축하다

 

 

 

견고한 지붕 아래

 

 

먼 길을 같이 걸어온 몸뚱이가 앓는다

갈지자걸음에 우울이 달라붙어

무시로 들이닥치는 빚쟁이처럼 위태롭다

 

너의 가난을 증명하라 탈탈 털어 보여라

네 영혼의 색깔까지 정확하게 기록하라

속이고 속는 자를 걸러내는 동안

성실한 알몸들은 허공에 떠 부유하다

서류에 미끄러지고 절차에 미끄러진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세련된 욕망으로 합리적 욕망으로 유연한 결단으로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맹렬하게 때려잡는

말랑말랑한 왕국의 지붕

지붕 아래 넓고 화려한 대리석 무덤에 누우면

푹신하고 뜨뜻할까나

 

오랜 패배의 냄새는 퀴퀴한 지하방 같고

오랜 침묵의 냄새는 엇박자 기침 같은

야만의 시간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