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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우대식 禹大植
1965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이 있음. wds1592@naver.com
꽃의 북쪽
개구리도 겨울잠에 들고
싸락눈이 내리는 밤
마쓰오 바쇼,
이런 날은 늘 바람이 창호문을 두드렸지
화로에 술을 데우도록 하지
낡은 신발은 방 안 머리맡에 놓아두도록 하지
왜 마음이란
천리 만리 달아나는 것인지
조금은 뜨거운 술을 천천히 내장에 붓고
매화나 동백 같은 꽃을 기다리기로 하지
아니면
꽃의 북쪽으로 달아날까
신음처럼 그대가 내게 물을 때
나는 절망의 심줄을 활시위처럼 당겨
심장 가장 먼 뒤쪽으로 모든 생각을 모으곤 하지
마쓰오 바쇼,
조금 추워도 되겠지
유여(裕餘)한 봄빛이 마루 구석 쌀통에 넘칠 즈음이면
안개와 연기는 강줄기를 따라 무진 무진 흐르겠지
그대와 나도
이쯤에서 안녕이지
연기를 좋아하는 나와 안개를 좋아하는 당신
바람이 올 때까지만 지상에 기대기로 하지
이쯤에서 안녕이지
12월의 기도
12월 저녁 어스름에 중세의 성당에 앉아 있었네
마을 변두리에서는 연기가 오르고
성당의 마룻바닥은 차가웠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절실한 기도도 없이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네
수녀님이 지나칠 때는 옷깃에서 깻단을 턴 냄새가 났네
높고 높으신 것
나를 나이게 한 것
나의 신과 당신의 신이 만나 서로 오래 바라보았네
당신의 신이 나의 신보다 키가 조금은 컸네
우리는 그 겨울 먹고 마시는 일을
기도드렸으며
눈발이 쏟아지는 기차역에 나아가
우리의 신을 배웅했네
나는 없는 긴 밤
기차는 떠나기 시작하고
멀리 중세 성당에서는
감자를 찌는 연기가 피어올랐네
페스트처럼 무서운 소문이 온통 눈발에 묻혀 떠돌고
담벼락에 기댄 소녀의 하혈은 멈추지 않았네
덜덜 떠는 사람들은
12월의 성당에 모여 밤새 읊조리며 울며
다시 읊조리며 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