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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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高明載

1987년 대구 출생.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myung0613@naver.com

 

 

 

포드 이후

 

 

이제 녹슨 엔진을 조용히 내려놓고서 친구는 압축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생명이 생명을 잇는 거니까 마음껏 덜어가도 괜찮아 사람의 장기를 무슨 찌개 속 두부처럼 말해서 화도 나고 눈도 매워졌지만 새파란 희망의 줄기를 꺼내고 있으니 입을 다물고 편지를 써줄 수밖에, 비둘기 다리에 간과 씨앗을 질끈 묶고서 가까운 녹십자에 파를 뿌리고 우리는 잠든 친구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이대로 모든 것을 잊을 겁니다

 

속을 다 파낸 가슴에 귀를 얹은 채

구공탄이 허물어지는 골목처럼

 

우릴 걷게 하는 다리 속의 힘은 뭘까요 풀을 뜯고 고기를 씹고 기도하면서 손톱을 쿵쿵 찧던 실린더 소리는, 이제 폐광 속에 버려진 석탄처럼 닫힌 채로 홀로 빛을 발할 겁니다 하나의 시대가 닫히고 새것이 불타고 젊은 연통을 우리는 싹 다 비운 채 귓속에서 가끔 파나 뽑아낼까요 텅 빈 친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제세동기처럼 마지막 시동을 걸어봅니다

 

 

순수시

 

 

반지를 빼고 시계를 풀고 손바닥으로 손등을 조용히 포개고 손톱 틈을 스크럽으로 세게 비비고 거품 낀 손목을 씻어내고

 

빛을 떠받치듯 손을 들어올린 채

 

수술실 문을 열고 죽어가는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