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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재종 高在鍾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 시집 『시여 무기여』를 출간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등이 있음. kojaejong21@hanmail.net
연두바람에게로의 귀거
바람이 분다, 바람 부는 수북의 사월에
수북수북 툇마루에 쌓이는 적막이야
바람에 목청을 씻은 까치울음으로 깨우지.
애옥살림에 얼기설기한 홍진쯤은
마당가에 펑펑 터지는 참배꽃으로 닦아내자니,
바람 부는 수북의 사월은
고금(孤衾)의 시간, 그 느릿느릿한 응시 속에
멀리서 날아오는 한점 나비가 눈앞에서 아연
눈부신 애인이 되어 다가오듯
사방이 연둣빛으로 생환하는 청명곡우 아닌가.
헛간에선 잘 삭은 밸젓내가 퍼지는
이곳의 사월, 이내 울쑥불쑥한 영농(營農)일 테지만
시래기밥에 탄식을 끓이는 냄비와
댓잎을 치는 달빛 주안상쯤은 차려도 되겠지.
나는 다만 관솔불처럼 피는 뜨거워서
그 뜨거운 피의 역마와 비단길로도
그간 얻지 못한 안심(安心)과 찾지 못한 법문(法文)이었지.
이렇게 아무런 죄 없이도 괜찮나 싶게
귀거(歸據)의, 바람 부는 수북의 사월이라면
그리하여 느티나무에서 사방에서 어처구니로
풀려나는 연두의 장엄쯤은 차마 어려라.
풀려나서 흘러들어서 제 무죄한 빛을 밝혀서
내 오랜 독학과 풍찬노숙의 남루를 좀 벗겨낸다면,
세계란 한낱 바람의 날들일 뿐이라고 속삭이는
마음의 탁월한 세정제, 연두바람에
잠시잠깐, 나 머무는 바 없이 머물다 가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