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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인숙 黃仁淑
1958년 서울 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行 야간열차』 등이 있음. rana58@naver.com
월식(月蝕)
누가 별로 젊지 않은
한 이방 여인의
안위를 걱정하겠는가
버스는 끊어지고,
식당을 나서
여인은 걸어간다
퉁퉁 부은 다리를 번갈아
지상에서 살짝 떼었다 무겁게 내려놓는다
비바람이 불지 않아도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아도
깊은 밤
더 짧게 질러가는 길이
있을지 모르는데
알고 싶어하지 않고 그녀는
매일 같은 길을 걸어간다
무뚝뚝하지만
헤매지 않을 길을
간혹 버스가 있는 시간에도
그녀는 걸어간다
버스비를 아끼자고
허겁지겁 돌아갈 게 뭐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방
일이층은 보석상점과 양품점
지하와 삼사층은 까페와 식당
쇼핑센터 네 동이 둘러싼
좁다란 광장
거기서 이어지는
대로에서 대로, 그리고 작은 방
가녀리건 해쓱하건
누가 이미 젊지 않은
한 이방 여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눈여겨보겠는가
일산이나 강남의
중국에서 온 여인
혹은 하와이나 뉴욕의
한국에서 온 여인
어쩌다 제 땅을 떠나
인적 끊긴 깊은 밤
모형 도시 같은 거리를
경직된 얼굴로 따박따박
혼자 걸어가는
제 땅에서도 가난하고
낯가리고 겁 많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