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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정훈 李政勳
1967년 강원 평창 출생. 2013년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쏘가리, 호랑이』 가 있음.
man6120@naver.com
이소골(耳小骨)
대장간 다 됐지
움막 안에서 날마다 땡강땡강
지나가던 말들이 하도 기웃거려
펄럭대는 거적문은 고막이라 부른다
뒤에선 망치뼈와 모루뼈가 분주하다
말은 고삐를 혼자 덜렁거리게 하면 안 된다
적당한 속도로 달팽이관을 향해 몰고 갈 것
말들의 발굽을 살펴 편자를 갈고
뱃대끈을 조여준다
밖에서 놀던 말들이 등자뼈 나란히 돌아오는 걸
대화라고 하지 않던가
쓸쓸해 보인단 말은 잃어버린 말이 있다는 뜻
오래전 떠났다 돌아온 말에겐 마중할 말이 없다
말들이 몰려 나간 들판
귀에 손을 모으면 바람 소리가 몰려온다
산도를 빠져나올 때
가장 세게 문지른 살이 바퀴가 되었다니
귓바퀴가 양쪽에 붙어 있는 건
들어줘야 할 말이 수레에 넘친다는 말씀
발굽 소리만 들어도 검정말 흰말을 분간하지만
말엔 지금도 자신이 없다
산벚나무
천공엔
커다란 새가 있어 밤마다 알을 품는다
깃에선 볏짚 냄새 송진 냄새
별들은 부싯돌 부리 끝에 튄다
꽃들과 재잘거리다
인기척이 들리면 뚝 그치는
가지에 짐승이 도사려
행인 목덜미를 덮칠 것 같은
산벚나무 아래
마을 집엔
박제 표범을 올라탄 아이가
오십년 뒤의 눈을 들여다본다
왜 표범 배 속에 무전기와 독침이 있었단 걸까
사진사 간첩이 잡혔다던 마을과
산벚나무와 아이와 나 사이엔
성난 표범 눈동자
흰 새와 검은 새가
번갈아 알 품다 날아가는 천공엔
산벚나무가 자라
우린 정착하지 못한 것들을 흙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