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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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趙仁鎬

1981년 충남 논산 출생. 2006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방독면』이 있음. sd31345@hanmail.net

 

 

 

슈뢰딩거의 돼지

 

 

“할로윈데이에 나는 왜 돼지를 찾으러 이태원 밤거리를 헤매야 하나?”

 

하는 투덜거림도 없이 나는 쫓는다 누구를? 돼지를! 할로윈 가장행렬 속을 거침없이 뚫고 달리면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들이 싸구려 맥주나 처마시면서 오늘 밤 할로윈을 좋아라 하지만, 나는 왜 돼지를 쫓아야 하는 건가? 하는 투덜거림도 없이

 

나는 쫓는다 누구를? 돼지를! 쫓다가 양꼬치 집을 지나치는데 사내 몇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로 쇠꼬챙이에 꽂힌 채 회전하던 양 한마리 “어이구, 인간아, 돼지는 저쪽으로 갔지 말입니다!” 고자질하며 내게 하는 말, 언제부터 조선놈들이 양꼬치를 먹었다고,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다, 슬프다, 사실 원래 나는 양이 아니었다,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새끼 양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쫓는다 누구를? 돼지를! 사실 말하자면 아까 거리에서 보았던 김정은 분장을 한 그 녀석이 꽤 맘에 들었다 할로윈데이 오늘 같은 밤 이태원 한복판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빨간 버튼 한번 꾹, 누르면 오늘 같은 밤이 좋아라 한다고 김정은에게 은근슬쩍 쪽지 한장 건네주고 싶었지만

 

1급 국가기밀보다 시급한 건, 쫓는다는 것이다 누구를? 돼지를! 새끼 양이 알려준 곳은 다름 아닌 이슬람 사원이었는데 이 시국이 나는 고민된다는 것 잠깐, 그러니까 새끼 양은 억울한 게 아닐까? 불판 위에서 둘둘둘 돌아가야 할 운명은 양이 아니라 돼지여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아, 쇠꼬챙이에 꽂혀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돼지의 꾀가 아니었을까? 나는 희생양이다 기름 뚝뚝 흘리며 익어가면서 죽도록 억울해하던 찰나 돼지를 쫓던 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양의 거짓말 따위야 성경이라든가 꾸란이라든가 둘 중 아무거나 펼쳐만 봐도 그 혐의가 다분하지만 나는 쫓는다 누구를? 돼지를! 나는 이태원 골목 어둠 속에서 돼지 꼬리를 은근슬쩍 본 것도 같고, 처음부터 내가 돼지를 쫓은 건지, 김정은 분장을 하고 할로윈 밤거리를 쏘다녔던 건지 자꾸 모르겠다는 생각

 

두번 다시 돼지에게 속을 순 없지, 속지 말자, 내 뺨을 한대 후려치며 나는 쫓아야 한다 누구를? 돼지를! 새끼 양이 알려준 오르막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더러운 할머니가 더러운 손수레를 끌고 더러운 박스를 줍는 모양이 오늘 같은 할로윈에는 참 잘 어울리고! 나는 문득 이슬람 사원 앞에 다다른 것인데

 

어라, 그곳에서 나는 돼지와 마주쳤다 돼지는 이슬람 사원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 우람한 붉은 등 근육… 참 맛깔스러워, 왠지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해 아, 부끄럽다 나는 수컷인데… 저 돼지는 왠지 오늘 밤 더 멋져 보이시는 것 같기도 해

 

부끄럽게도 아니다, 돼지는 절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성스러운 자세로 젖을 물리고 있었다 우글우글 그 작고 귀여운 붉은 핏덩어리들이 돼지라고 부르기에 너무나 신성한 것이 아,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그 말에 돼지씨는 고개를 휙 돌리며 내게 말하길, “이 돼지새끼야! 왜 날 쫓아다녀!”

 

나는 하염없이 부끄러워져 두 볼이 빨개졌는데 돼지는 그 억센 힘으로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간다 잠깐, 이거 놓고 말로 하자, 지껄이고 싶었지만 멱살 잡힌 나는 돼지의 억척스러운 손아귀 힘에 그만, 꿰에엑… 천사가 이슬람 사원 돔 위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듯이 수치스러워질 뿐인데

 

돼지는 나를 끌고 간다 대관절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것도 할로윈데이 밤인데 아이들이 사탕을 물고 빠는 날인데 김정은 놈이 빨간 버튼, 그것만 눌렀어도 모든 것이 쾅! 이태원 거리 위로 할로윈 호박이 커다랗게 피어오르는 광경을 떠올리며 나는 수치스럽게 돼지에게 끌려간다

 

돼지가 나를 끌고 간 곳, 나는 어느새 양탄자 위에 엎드려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돼지처럼 엎드려 절하고 있었는데 가슴 안쪽에서 그것이 자꾸만 돼지처럼 살이 쪄서 우글우글 내 젖을 빨고 죄를 불리고 있었단 사실을, 새끼 치고 있었단 사실을, 아, 눈물이 흐르고 나는 없는 죄까지 새끼 치면서…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두명의 성스러운 사나이들이 돼지처럼 엎드린 나를 발밑에 놓고 시장바닥에서 흥정하듯 다투기 시작했다

“이 돼지는, 내가 취하겠다”

“이 돼지를, 내가 취하겠다”

그러는 사이 그러던 사이 돼지는 썩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낡고 이슬람 사원의 벽돌은 허물어지고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이 모든 것이 새끼 양의 고약한 거짓말이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