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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육근상 陸根箱
1960년 대전 출생. 1991년 『삶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절창』 『만개』 등이 있음. yookism@hanmail.net
곡우
얼마나 독한지 땅개라는 별명으로 살더니
아랫집 살며 밤낮으로 어지간히 괴롭히더니
가뭄 길어진 날 입원했다며 전화 왔습니다
지가 하지 못하고 아들 시켜 다 죽어가는 소리로 왔습니다
즈 집 앞 지나려면 통행세 내야 한다고
50년 전 뜯긴 5원 꼭 받아내야지 올라간 것인데
호랭이 물어갈 년 아프지나 말든가
아이고, 썅눔시끼 난 이렇게 늙었는디 하나도 안 늙었네
얘기 듣던 젊은 여자 호호호 밖으로 나가니
작은며느리랍니다
요새 이런 며느리 어디 있느냐 문틀 놓아둔
난 잎에 말 건네자 금방 목이 멥니다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빗소리로 훌쩍입니다
상감청자
가을은 청잣빛으로 익어가는 것인데 입술 썰어놓으면 한접시 나오겠다 싶어 한접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생님께서는 고려문화의 정수 상감청자에 관해 열변 토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한창 먹성 깊을 나이라 이 시간 지나면 도시락 먹을 생각으로 군침 흘리고 있었던 것인데 수업 마치기 전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하라기에 쭈뼛쭈뼛하다 저 그시기 불화는 절간 베름빡에 부처님 그려 붙인 그시고 청자도 사극 같은 거 보먼 아점니가 밥상머리에서 삿갓 쓴 주인공헌티 한잔 따뤄주는 술병인 거 알겄는디요 상감청자가 뭐대유
에 상감청자란 말여 옛날에는 백성들이 임금을 왕이라 부르거나 상감이라 불렀거덩 상감도 밥 먹고 술은 마시야 헐 긋 아녀 그렁게 밥 먹고 술 마실 때 얻다 먹긋냐 느 집이서두 밥 먹을 때 김치며 간장이며 고추장 얻다 퍼놓고 먹냐 그륵이다 퍼놓고 먹지 느 집이서야 스뎅이나 사기그륵이다 밥 푸고 국 푸고 허겄지먼서두 명색이 상감인디 백성덜 먹는 그륵이다 퍼놓고 먹을 수는 없었겄잖여 그렁게 상감님 국그륵 밥그륵으루 쓸랴구 특별히 제작헌 것이라 허여 상감청자다 그 말이여
말 떨어지기 무섭게 뒷자리 용진이 녀석 어찌나 킥킥대던지 얼굴 벌겋게 해가지고 그래서 우리 할머니 막 비벼 드시는 그륵이라 허여 막사발이라구 허는게비쥬 이 그렇지 그렇지 출석부 들고 교무실 가시다 낌새 이상하셨는지 갑자기 돌아와 얀마 너 이리 와봔마 근디 너 그거 왜 물어봤어 귀싸대기 얼마나 맞았는지 양쪽 입술 터지고 퍼렇게 멍든 얼굴보고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닮았다 허여 삼학년 내내 상감청자로 불렸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