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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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金守愚

1959년 부산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등이 있음. soowoo59@daum.net

 

 

 

소금 엽서

 

 

오늘도 엄마는 바다를 말린다

오징어도 가재미도 편편한 후박나무 잎새로 만들었다

 

용왕을 섬기던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

싸락별도 돌벼랑도 한장 엽서로 만들어버리는

엄마의 능력은 바다 허파로 숨 쉬는 일

벵골만에서 부친 심해의 안부를 읽는 일

 

너를 기다리는 무수한 푸른 계단을 잊었니

 

오징어와 가재미를 널다가

답장처럼 물끄러미 반달을 바라보는 엄마

그때 바다는 혼자 해골처럼 깊어진다

 

물기 많은 햇살에도

투명한 살점과 가시를 드러내는 영원

 

거품으로 된 무수한 물기둥을 잊지 말아라

 

숙명이 아니다 선택이었다 엄마의 때 묻은 지느러미

보이지 않는 영원을 몸으로 관통하려는, 소금기 많은 사랑은

늘 안부에 그친다

첫사랑도 밥그릇도 관절염도 비린 엽서 밑에서 소용돌이가 된다

 

글썽이는 그물코 사이로

꾸덕꾸덕 말라가는, 길고 깊은 바다의 계단들

 

 

 

대추꽃 할아버지

 

 

옛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늙은 대추나무

총총총 붉은 대추 줍느라 어린 두 손녀 부지런하다

 

할아버지는 대추꽃을 닮았다

어느 결에 피었는지 잘 보이지 않던 꽃자리들, 붉게 영글었다

 

팔레스타인에는 대추야자가 많다 사막 아이들은 대추야자를 물고 놀았다 굽이도는 할아버지는 거기서도 대추나무를 심었다 메마른 황야에서 대추 따는 손녀들을 믿었다 심는 것은 믿는 것이다 죽어서 마주 보는 충실한 깊이

 

대추꽃은 신을 닮았다

보이지 않는 꽃자리들, 어느 결에 지면서 사람을 믿는 일에 최선이었구나

 

백살이 넘는 대추나무 아래 손녀들이 터뜨리는 웃음방울들, 하염없는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준비한 선물이다 믿는 것은 심어야 한다 할아버지가 심은 대추는 시간의 허기를 채워가는 붉은 독경

 

신은 두엄 내는 할아버지를 닮았다 오래오래 싱싱한 밤과 낮을 예비한다

신들에게 피고 지는 법, 기도하는 법,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는 아득한 할아버지

 

대추를 따는 세상의 손녀들은

어느 결에 피고 진, 보이지 않는 꽃자리를 찾아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