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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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 柳眞

1987년 대구 출생, 2016년 『21세기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밴드 ‘선운사주지승’에서 활동 중. Kaizelk@gmail.com

 

 

 

악몽망고

 

 

발자국 안에 발자국을 누가 찍었습니까 말들로 푸석이는 백사장을 밟고서

나는 피서를 갑니다

 

한없이 긴 미끄럼틀을 타고 물가로 떨어지며

이대로 곤죽이 되는 것도 괜찮단 생각을 하면서……

 

망고밭은 끝장이고 이아시스 꽃잎은 무너졌습니다

해변의 낭독회만이 정오의 붉은 뽈을 이리저리 차고 있죠

 

자신이야말로 삶이라고 다들 말하죠

쾅쾅 노크하고 월계관 쓰고 뛰어다니고 슬프고

밤이 노래하고 왕은 죽어가고 오늘 안 슬프면 사람새끼도 아냐 박수소리가

쓰러지고

 

막의 뒤편에서 낄낄대는 저것은 무엇입니까 잡아당기니 허리띠처럼 긴 긴 어둠

 

내 말소리는 거기에 칭칭 휘감겨 있습니다

그리고 총독은 이마에 찬란한 뽀올을 달고 낭독했습니다 “수많은 자라가 깨어져 내렸습니다 여러분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견딥니다……” 견딜 만한 부끄러움이기에

 

피서를 갑니다

총독, 지난 고랭지에서의 일은 정말 안됐습니다 정말 슬프죠

거기엔 파랗게 시든 입술뿐이기에

 

천사들은 나팔 불고 발 구르고 나는 눈 대신 토마토꼭지만 붙이고 걷다가 이

파리 부서지는 소리나 듣겠죠 하얀 풀이 모도록이 자란 언덕에서 오셀로나 두면서

 

왜요 나는 캄캄해진 바나나를 곰곰이 씹을 것입니다

망고는 망했고 군화 속의 보석은 잠이 안 오고

천개의 심장을 켜도 당통은 죽습니다 검었다 희었다 하면서

 

그리고 법관의 엄지발가락보다 엄한 심판을 맞으며 멍뭉

멍뭉 오래 기른 장서의 근육을 쓰다듬을 뿐입니다 검었다 희었다 하면서

 

이 공놀이는 16세기 프랑스로부터 최초로 패쓰패쓰 되어 많은 이들에게 열병과 침식을 주었고 나흘 안으로 일곱명에게 패쓰패쓰 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죽어 있습니다

 

뽈은 내리쬐고 파라솔이 미간에 명중하고 그리하여 건기의 바나나 잎처럼 우수수 혀가 떨어질 것입니다

“여기 둥글고 상한 망고가 있습니다

자꾸 참석하라고 합니다

나는 안 갈 것입니다”

 

망고는 망고밭 안에서 가장 노란 과일입니다

정성스레 깎아서 먹기 좋게 냠냠

갈라진 망고는 노랗지 않다

 

 

 

되겠습니다

 

 

행복은 힘센 황소, 진창에 처박을 때까지 춤추고

나는 정말 삶이 좋아 미칠 것 같다

 

새가 떠난 가지마다 새가 밟을 자리다 내 찬물에

그늘이 있어 행복했다 아니면 온 나라가 새떼의 맨발로 개울을 건너는 소리겠지

 

나는 들었다 애를 포대기로 감싸고 다락을 오르는 숙모처럼

머릿속에서 돌이 부글거리는 소리를

 

자정에 날아든 새가 자정에 고인 물을 쪼아 먹는 소리를

나는 가을에 꺾여 여름에 상해갔다 관 속에서

 

태어나 요람에서 죽어갔다

더 빠르다, 연못 앞에 쭈그린 나보다 삼면경을 만나 쪼개지는 내가

더 빠르다, 바지를 입은 나보다 대문 밖에 알몸으로 쫓겨난 내가

태양 아래서 불타는 나보다 정수리에 젖은 미역을 얹은 내가

 

더 빠르다 시월은 바닥

치며 비가 바라보았고 파편이 가라앉은 사람들을 꿰었다

나는 성난 후투티처럼 물 위를 찰박찰박 뛰었다

 

나는 들었다

사회가 희박한데 숨 막히지 “않다면 불감증이다 세상이 채찍질”인데 노래한다면 피학증이다

그래, 생선가게에 종아리가 늘어서 있다

오늘은 오늘의 머리를 쳐내고 내일은 내일의 꼬리를 쳐내고

 

나는 걸었다 밟으면 피가 핏핏 새는 살덩이를 밟으며 몸 어딘가 핏핏 새는 물을 틀어막고 걷는 것처럼

 

아무리 주저앉아도 더 빠른 나를 허겁지겁 쫓는 것처럼

 

첫눈을 끌어안고 잠들라 흡혈귀와

밤사이 삼십 밀리 내린 흡혈귀와

점 박힌 알을 잔뜩 낳은 흡혈귀와!

나는 들었다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그대의 피가 거리를 밝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딸칵, 가스레인지 같으니라고

딸칵, 가스레인지 같으니라고

 

이제 산책하지 않는다 콩나물 발을 톡톡 끊으며

점치지 않는다 다만 저렴하고

불이 잘 안 붙는

 

나는 물들었다 딸칵,

 

닫고 누우면 벌벌 떨린다

침대가 도마야 생물이 토막 난 침대에 남는 건 생물이 붉게 젖은 자리다

책장이 이불 같아 내 몸 안이 찬물이야

머리와 꼬리를 구덩이에 쓸어 담긴 채

 

정말 부활한다

정말 좋아 시월엔 전락이 나락을 고민하고 결론 끝에 미지근한 사과가 떨어져

혀끝을 좀 데웠고 신음이 그림자 없이

공처럼 굴러 나오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나는 불었다 붉은 쪽에서 검은 쪽으로

죽은 장원에서 태어난 정원으로

그런데 뭉게뭉게

 

점차 남태평양 기단을 이루는 이것……?

 

등에 “오르시오 제군

뛰고 또 뛰어 안개가” 되어 흩어져야지

시든 맨드라미처럼 피를 빨려

가을은 머리부터 떨어질 것이다

 

아니면 온 나라가 새떼의 맨발로 개울을 건너는 소리겠지

춤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