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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철산
1966년 대구 출생. 1994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iisan66@hanmail.net
실업명세서
당신에게 드릴게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일하지 못할 때 일을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일하는 내가 일하지 않는 당신에게
일하는 모든 시간이 일을 멈춘 모든 시간에게
일하고 싶을 때 일한 만큼
일하지 못할 때 일을 멈춘 만큼
내 손으로
일하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일하는 내 손과 일하는 수많은 노동의 손들이
일하지 못해 상처받았거나
상처받아서 일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실업명세서를 드립니다
일을 멈추고 주저앉아
시간을 멈추고
하루를 멈추고 말을 멈추고 사랑을 멈추고
세상을 멈추는 순간의 당신에게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툼한 실업봉투 다달이 건네줄 수 있다면
월급날 으쓱했던 당신의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월급날
일하지 못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일하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에 지금 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시나요
아시나요 아름다운 별마을 소성리
성주에서 가장 북쪽 달마산 아래 진밭교 따라
마을길 따라 마을회관 앞에서
바람과 함께 햇살과 함께 땅과 함께 고요와 함께
평화와 함께 사람들 살아가는데요
아름다운 별마을 소성리
벚꽃 자지러지고 라일락 향 짙어가는 아침
경찰과 함께 군대와 함께 무자비의 폭력과 함께
숨어드는 저 사드가 무엇인지
그 많은 사람들이 왜 눈 돌리고 입 닫아버렸는지
아시나요 이 아침을 이 침묵을 이 배반을
당신은 누구입니까
가슴에 사랑을 품고 걸어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눈길에 존경을 담고 걸어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두 손 모아 촛불을 밝힌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름다운 별마을 소성리
마을길 따라 마을회관 앞에서 오롯이 하루를 지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꽃보다 더 그윽한 향기가 되어
바람보다 더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사랑의 약속을
존경의 규율을
촛불의 정의를
평화의 큰 희생을 새겨주신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름다운 별마을 소성리
절뚝거리며 다리를 절며 홀로 밤을 지켰던 할머니 당신이었군요
한순간처럼
지금까지 이 시간을 지키시는 교무님 당신이었군요
지금까지 이 시간을 기도하시는 신부님 당신이었군요
목사님 당신이었군요 당신이었군요
이름 모를 수많은 얼굴의 당신이었군요
새벽을 아침을 깜깜한 밤을 지켰던 당신이었군요
아시나요
아름다운 별마을 소성리
이 아침을 지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