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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노국희 魯椈喜
1978년 전남 목포 출생.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minmillay@gmail.com
램블(Ramble)
사라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 갈참나무 사잇길을 폭우가 채운다 세상을 뒤집어볼까, 회백색 뒷면을 흔들며 나뭇잎이 제창한다
얼굴이 오늘에서 떨어져 나와 구멍으로 떠다닌다
저채도의 볼륨 속
뒤로 걷는 유령이 복화술한다 시든 얼굴로 어디까지 가려는 거지
명쾌하게 도토리가 부러진 잔가지 위 방점을 찍는다 나무엔 상실이 열리고 죄를 고백하며 가슴을 세번 칠 때마다 쐐기가 박혔다
각피가 떨어진다 후드를 뒤집어쓴다 날다람쥐는 아랑곳없이 수피를 활강한다 신발 밑창 진흙 더미가 걸음을 굳힌다
물웅덩이를 찰방댄다 소용돌이들 아름답다 그것은
모두 나의 바깥에 있다
봉합을 찢고 단면의 비탈을 미끄러진다 잡초 덤불에서 목도리도마뱀이 튀어나온대도 입을 쩍 벌려 달아날 몰골로
불필요한 마음을 다해 간극을 벌린다 조합 가능한 색들을 펼쳐가도록
물비린내를 호흡하며 우산이끼는 자란다 영토를 넓히고 작은 다리를 감춘다 홀씨를 부풀린다 멀리 있는 숲으로 신호를 날리자
샛노란 버섯 무리가 에코처럼 돋아난다 포자 하나가 얼굴 위로 떨어진다 안의 것이 기어나와 외피를 두를 때
미치광이버섯이 이렇게 자랐네 우산이 뒤집힌다
노란 앞니를 다 드러내고 웃어본다 반쯤 남은 얼굴로
밀렵
당신은 시선으로 나를 조각한다
화살대를 메고
당신의 눈 속 울울한
숲으로 들어가본다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화살촉
달그락 경계를 알린다
혹한의 침엽수림 숨죽인
야생이 매순간을 읽는다
수리부엉이 긴 울음소리에
어린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내 몸이 튼튼한 얼음이었다면
좋았겠지 기꺼이
껍질을 날리며 쨍쨍
빛났을 테지
겹겹의 암묵 안에서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 순록의 뿔처럼
분열하는 질문을 매달게 된다
오래 아팠던 얼굴은
흉기가 되어갔다
시선을 겨누지 않고도
죽일 수 있었다
당신이 찾는 풍경은 없다
새들이 쪼으다 만 열매 사이로
피 흘리는 동공이 매달려 있다
이곳에 당신은 없다
확인사살하면서
제각각 무관한 선으로
눈발이 허공을 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