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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복희 金福姬
1986년 출생.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등이 있음.
bokhuibh@gmail.com
머리가 셋 달린 개
더이상은 안 되겠어 이렇게 말하고 일어날까
목이 아프다 등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가 두개 더 자라나서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어쩐지 요즘 스킨로션이 빨리 닳고 배가 부른데도 입이 계속 고팠다
새로 난 머리 두개가 지금 키스라도 나누고 있나
가끔 사람들이 뚫어져라 내 머리를 본다
사실 나는 지옥에서 온 개인데
너희들이 지옥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지옥을 지켜주고 있는 건데
세번째 머리가 좀 심약해서 너희들과 눈을 못 마주치고 있는 것뿐인데
머리 중 하나는 몰래 매일 지옥문을 열어본다
꼭 닫힌 문을 보면 꼭 가서 살짝 종이를 끼워둔다
비가 내리는 세계
그 구름 위 구름 아래 발밑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영원히 비가 오지 않는 곳이 있다
크게 짖어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고
열지 못하는 문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지키는 문 내가 주인은 아닌 문
종이를 끼울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몸
지옥의 내부
지옥이 무너지고 난 후
지옥에 깃들었던 문틈을 본다
누군가 꿈같이 종이를 밀어내어
문밖으로 종이를 조금, 밀어내 놓은 것이다
개 주인이 보고
가장 먼저 본 머리가 먹어, 그런다
그걸 시라고 피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수
옆집 사람들이 새를 기르는 것 같다 이사 온 날 못 보았으니까 나는 영원히 옆집 사는 새를 보지 못할 것이다 지수야 엄마 왔어 지수 맞니 나는 옆집 새가 이 밤에 잠잠히 삐-이 소리 내는 걸 전해 듣는다 지수야 다녀올게 창문 좀 열어 중국집 배달 그릇이 문밖 가득 반짝이고 나는 본 적도 없는 옆집의 새에게 소중함을 느끼고 새에게 허락된 중력을 생각하고 횃대를 흔들어볼 생각, 새장에 넣은 손가락 끝이 살짝 부리에 긁혀 나른하다는 생각…… 끝에 문을 열고 들어서며 지수야 너 지수지 지수야 부르면서 그게 딸의 이름인지 아들의 이름인지 새의 이름인지 알 것 같으면서 모르면서 자꾸 지수야 하고 불릴 때 지수가 새장에 덮인 천 가운데서 새답게 얕게 자다가 문득 옆집에서 기르는 나를 나만큼 생각하면 좋겠다 지수와 나 사이에 날이 밝도록 만나 옆집의 지수와 옆집의 나. 그 작은 방에서 어떻게 지수들끼리 삐-이 소리만 들리게 사랑하고 먹고 자는지 지수들을 놀라게 하지 않느라고 신발을 신고도 얼마나 기다리고 귀 기울이고 망설이는지
나의 간절한 소원은 우연히 옆집 지수를 보는 것
그게 지수라는 것도 모르고 본 다음에
아주아주 나중에 지수였구나 지수 맞았구나 나는
지수구나 하는 것